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95
95화 마담 여덟다리 (1)
비키르를 포함한 발락의 전사들이 귀환했을 때 그들이 본 것은 참혹한 폐허로 변해 버린 마을의 풍경이었다.
집이 올라가 있던 높은 나무들이 모조리 부러져 꺾여 있었다.
자연스럽게 집 역시도 부서진 채 바닥에 낮게 고인 물속에 처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박살이 나 물 위로 둥둥 떠다니는 판자와 나무토막, 그리고 각종 세간들.
우기에 대비해 지은 수상가옥들이 모조리 파괴되었다.
무기나 포로, 기타 도구들을 보관해 놓은 창고들 역시 죄다 박살났다.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은 전부 다 못 쓰게 된 채 바깥에 그대로 내팽개쳐져 있었다.
오직 건량들이 보관되어 있던 식량 창고만이 부서진 채 텅 비어 있을 뿐이다.
“……이게 대체?”
족장 아퀼라가 황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을이 이 꼴이 났는데 인명피해가 없을 리가 없다.
곳곳에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전사들이 일리아드를 구경하러 갔었기 때문에 마을에 남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어린애와 노인, 전투를 할 수 없는 환자나 여자들이었다.
최소한의 경계 병력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대부분이 시체로 변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
비키르는 그 누구보다 빨리 이성을 되찾았고 이내 자초지종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비키르의 기감에 걸려든 것은 바로 대기였다.
탁하게 오염된 기운이 발락의 마을을 넘어 숲 전체에 질척하게 맴돌고 있었다.
비키르는 사냥개답게 예리한 후각으로 이 불길한 냄새를 따라갔다.
이윽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흔적들이 보였다.
흙탕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손을 물 아래로 넣어 더듬어 보면 땅바닥에 난 흉측한 상처들이 만져진다.
깊게 패인 땅의 흉터. 마치 거대한 통나무 같은 것이 한번 북- 긁고 간 듯한.
물 밑에 생겨난 이 깊은 고랑들은 한두 개가 아니라 매우 복잡하고 불규칙하게 나 있었다.
‘……폭이 최소한 80cm. 길이는 3m 정도인가.’
이 정도 되는 크기의 흔적들을 여기저기 마구 남겨댈 수 있을 정도의 존재가 수해에 몇이나 될까?
비키르는 머릿속에 얼추 세넷 정도의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용의선상을 더욱 더 좁혀 주는 단서들이 계속 발견된다.
끈적……
머리 위로 늘어지는 점액.
비키르가 고개를 젖히자 그것은 비키르의 몸을 지나 수면 위로 퐁당 떨어졌다.
고개를 드니 반쯤 부서져 기울어진 수상가옥 위에서 허옇고 끈적끈적한 점액이 실처럼 늘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검은 털들과 검붉은 살점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그것에 닿은 부분의 목재가 검게 변색된 채 쪼그라들어 있는 것도 보였다.
아마 강력한 독기를 머금고 있는 듯싶었다.
그때.
첨벙- 첨벙- 첨벙-
발목까지 오는 수면을 깨트리며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아휼. 그녀가 가쁜 숨을 내쉬며 나타났다.
난리 도중 향료가 든 항아리 속에 숨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그녀는 비키르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며 달려와 안겼다.
비키르가 말없이 등을 토닥여 주자 아휼은 목 놓아 울며 말했다.
“마담이 왔었어요.”
그 말에 비키르의 뒤에 있던 모든 전사들이 선 채로 얼어붙었다.
마담 여덟다리! 수해의 공포. 적과 흑 산의 악몽.
그녀가 왜 발락의 마을을 습격했단 말인가!
그러한 의문에 아휼이 손가락을 뻗어 대답했다.
“마담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저곳부터 부쉈어요. 그리고는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우리를……”
그녀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유난히 심하게 부서져 있는 한 높은 건물. 암반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돌을 깎아 만든 집이었다.
아흐헤만의 제전.
아휼이 그곳을 가리키는 순간 전사들은 깨달았다.
“후회하게 될 거다! 나를 이렇게 내몬 것을 후회하게 될……! ……! ……!”
아흐헤만이 죽기 전에 했던 말,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 저 먼 곳에 있는 마을을 쳐다보려던 행동의 이유를.
비키르는 암반지대 위로 올라가 부서진 석조 건물의 잔해를 뒤졌다.
이 건물은 아흐헤만이 평소 제사를 올리던 제전이었는데 유달리 심하게 파괴된 외부와 달리 내부는 비교적 멀쩡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비키르는 돌무더기를 들어내고는 안쪽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비키르도 알지 못하는 기묘한 종류의 약초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타들어간 흔적이 보였다.
약초들이 불타고 남은 흔적에서는 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이 주위로 새끼손톱만한 작은 벌레들이 드글드글 몰려들어 그 냄새에 취해 있는 것이 보인다.
아이옌이 이를 뿌득 갈며 말했다.
“벌레를 꼬이게 하는 풀인가.”
“…….”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흐헤만은 자신이 장시간 이곳을 비울 경우 마담 여덟다리가 여기로 오게끔 장치를 깔아뒀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이 약초를 태우는 냄새가 일정 구역을 넘어 퍼지지 않게끔 불 조절을 하지만, 관리해 줄 사람이 없게 되면 불은 계속 약초를 태우게 되고 이 기묘한 냄새가 끝을 모르고 퍼져나가게 된다.
그리고 결국 수해 깊숙한 곳에 사는 마담이 이 냄새에 반응을 보기에 된 것이다.
아훈이 주먹으로 석벽을 쳤다.
“제기랄! 자기가 없어지면 모든 이들이 죽게끔 해 놨다고!? 미친 놈!”
아흐헤만이 얼마나 발락의 부족사회 내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 인정욕구는 비뚤어진 방향으로 뻗어나갔고 종국에는 끔찍한 파멸을 드리웠다.
아훈은 조부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에 따라 더욱 더 강한 증오 역시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들이 늦어 버렸다.
발락의 마을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고 거의 재기불능 상태에 놓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할 만한 점은 대부분의 인구가 일리아드를 구경하러 바깥에 나가 있었다는 점, 그리고 마을에 남아 있던 이들 역시 대부분 나무열매나 풀뿌리를 캐기 위해 마을 바깥으로 나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이옌의 지시 때문이었다.
비키르가 일리아드에서 이겼을 경우 베풀어 줄 피로연을 준비하라는 지시 말이다.
아퀼라는 주먹을 피가 날 정도로 꽉 말아 쥐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명피해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마을은 다시 지으면 되고 식량은 다시 모으면 된다. 어차피 우기 때문에 급조했던 수상가옥들이니.”
발락의 전사들은 부지런히 움직여 사망자의 유해를 수습하고 아직 숨어 있는 생존자들을 구출했다.
마담이 마을을 직접 방문한 것치고는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피해량이 적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다.
한편.
“…….”
아훈은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좌절에 빠져 있었다.
그런 아훈의 어깨를 비키르가 두드려 주었다.
아훈은 비키르를 돌아보며 울먹였다.
“비키르. 네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는 울분과 통한을 담아 말을 이었다.
“네가 아흐헤만의 마지막을 나한테 장식하라고 했을 때, 내가 그 말을 진즉 들었더라면……”
“……네 잘못이 아니다.”
비키르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전사들 모두에게 말했다.
“진짜 잘못은 제국,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스커빌가에 있다.”
그 말에 모든 전사들이 고개를 돌린다.
원흉이 바스커빌가라는 말은 둘째 쳐도, 비키르가 원래 바스커빌가 출신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키르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했다.
“수해의 마담이 이곳까지 생활터전을 넓힌 이유, 그리고 허기에 미쳐 발락의 마을을 습격한 이유, 이 모든 것들은 전부 다 바스커빌의 탓이 크다.”
바스커빌가에서 워낙 적극적으로 마물들을 토벌한 결과 마담의 먹잇감이 부족해졌고 이내 마담은 먹이 사냥터를 확장했다.
그로 인해 발락의 원주민들은 굶주린 마담을 피해 산의 저지대로 생활터전을 옮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키르는 발락의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제국에 대한 증오를 정확히 짚어냈다.
그리고 발락의 전사들은 자기가 원래 소속되어 있던 가문의 잘못을 명확히 규탄하는 비키르의 태도에 강한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비키르가 말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었다.
‘이것은 내가 바스커빌가에 있을 때 세운 정책 때문이기도 하지.’
8살 때, 비키르는 모르그과의 연합전선을 제시하면서 적과 흑 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계획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는 이미 휴고가 세우고 있던 계략을 회귀 이전의 지식으로 미리 짚은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비키르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 소지는 있는 셈이다.
그래서 비키르는 이번 기회에 발락의 전사들에게 얻은 많은 은혜들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했다.
몸을 완전히 회복했고, 휴고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힘을 길렀으며, 각종 마물들의 스킬을 손에 넣었고, 보우마스터의 궁술을 배웠으며, 알려지지 않은 야만족들의 신비한 문화를 직접 배우고 체험했고, 추적과 샤낭법을 익혔으며, 밀림 속에서 살아남는 각종 생존술들을 배웠다.
더군다나 수해의 모든 야만부족들이 비키르를 지지하게 되면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 또한 가지게 되었다.
비키르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보답을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밤의 여우 아퀼라. 발락의 족장인 그녀는 아도나이와의 치열한 대전으로 인해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아이옌은 비키르를 돕기 위해 나섰다가 다리에 독화살을 맞아 걸음이 부자연스럽다.
비키르는 말했다.
“발락의 전사들은 그간 마담에게 소홀하게 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모든 이들이 비키르의 얼굴을 바라본다.
비키르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불과 일주일 전에도 마담에게 제사를 지냈고 제물도 바쳤습니다.”
그렇다. 발락은 늘 사냥감을 잡으면 그중 제일 좋은 부위를 골라 마담의 영역에 상납해 왔다.
전쟁포로들을 잡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들의 터전을 습격했고 죄 없는 아이들과 노인, 늑대들을 죽였습니다.”
발락의 전사들은 숨을 죽인 채 비키르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윽고, 비키르는 눈에서 짙은 핏빛을 뿌리며 말을 끝맺었다.
“나는 이제 그녀를 만나 따져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