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96
96화 마담 여덟다리 (2)
“마담은 실수한 겁니다. 제가 그녀를 만나 따져 보겠습니다.”
비키르의 마지막 말에 발락의 모든 전사들이 기겁했다.
그들이라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죄 없는 아이들과 노인, 환자, 동료, 늑대들이 죽었고 건물과 식량 등 생존의 터전까지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사들은 비키르의 말에 회의적이었다.
“마담에게 따진다고? 그것은 불가능해. 지금껏 그 어떤 용맹한 전사들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비키르. 아무리 네가 온 수해의 영웅이라고 해도 그것은 만용이야.”
“마담 여덟다리는 이 수해의 신(神)이다. 그것도 악신(惡神) 중의 악신이지.”
“피해는 언젠가는 복구된다. 빨리 잊어버리는 것만이 방법이야.”
비키르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발락의 전사들이 처음으로 비키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 용감무쌍한 이들이 이렇게 말할 정도이니 그간 마담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그때.
…턱!
누군가 비키르의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족장 아퀼라, 밤의 여우가 파리해진 안색으로 비키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의 그 압도적인 위엄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구시대의 전설 아도나이와 1대 1로 겨루어 그를 흙으로 돌려보낸 존재.
하지만 아퀼라 역시도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다.
전신을 무수히 긁고 간 화살 자국, 심지어 마담 여덟다리의 독기가 어려 있어서 마스터 급 강자의 회복력으로도 치유가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비키르여. 온 수해의 젊은 영웅이자 이제 막 뜨고 있는 태양이여. 당장의 뜨거운 격정에 휘둘리지 말라. 마담이 관련되어 있는 일에는 극도의 신중을 가해야 한다.”
그 말에는 옆에 있던 아이옌 역시도 동의했다.
“‘여덟다리 마담’은 비단 발락뿐만이 아니라 모든 부족의 공포다. 항거할 수 없는 인과율 속의 존재이자 암흑의 핵심이지. 그녀의 존재는 자연재해와도 같기에 복수심이라는 감정을 품어 봤자…….”
하지만 아이옌은 말을 미처 끝맺지 못했다.
[끼이잉……]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헤치고 힘겹게 기어 나오는 존재를 봤기 때문이다.
바키라. 아이옌과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지금껏 늘 평생을 함께해 왔던 늑대.
비키르와 아흐헤만의 일리아드가 벌어지기 전, 마을에 비키르의 승전보를 미리 전하러 뛰어갔던 녀석.
순간 아이옌은 바키라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자신의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마을로 가서 일리아드의 승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전하렴.’
그 간단한 심부름의 결과가 이토록 참혹할 줄이야.
[끄으응…… 끼잉……]바키라는 뒷다리를 끌며 힘겹게 기어와 아이옌의 발치에 축축한 코를 부볐다.
녀석의 오른쪽 뒷다리 한 쪽은 처참한 상태였다.
뼈가 죄다 부러진 것도 모자라 시커먼 독기가 골수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너무나도 뻔하다. 마담 여덟다리에게 저항한 결과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독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치밀어 오르고 있어서 다리를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아이옌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키라의 상태를 살폈다.
비키르는 짧게 대답했다.
“이래도 복수심이 헛되다고 말할 텐가?”
“…….”
아이옌은 이번엔 대답하지 못했다.
아퀼라는 딸 아이옌의 얼굴과 신음하는 바키라의 다리를 번갈아 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이야기하지. 우선 바키라부터 치료한다. 어서 다른 환자들도 살펴라.”
자기도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다른 부족원들부터 챙기는 아퀼리다.
족장의 말에 다시 모두들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존자를 구출하고 환자를 살피며 당장 오늘 먹을 것과 잘 곳을 정비해야 했으니까.
* * *
그날 밤은 유독 어두웠고 비가 많이 내렸다.
달이 뜨지 않아 칠흑에 절은 수해를 번개가 때려 밝히는 토막불이 간간히 비춘다.
창처럼 떨어져 내리는 빗줄기 사이를 유령처럼 지나가는 그림자가 하나.
바로 비키르였다.
이번에도 역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발락을 떠나온 비키르.
사냥개는 지금 마담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어차피 한 번은 맞붙었어야 하는 상대다.’
‘마담 여덟다리’는 애초에 비키르가 이곳 수해에 들어온 진짜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직 제국에 그 위험성이 알려져 있지 않은 초위험등급의 마물.
놈을 먼저 선점하여 사냥할 수만 있다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궁무진하다.
윙윙윙-
비키르는 손목의 동맥 속에서 펄떡거리는 바알제붑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중에 멸망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마담 정도 되는 몬스터들이 비교적 흔하게 등장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유니크한 존재이지.’
게다가, 마담은 발락의 전사들이 생활 터전을 버리고 이곳저곳 옮겨 다닐 수밖에 없게 만든 원흉이기도 했다.
발락의 전사들은 허기에 못 이겨 생활 반경을 자꾸만 넓히려 드는 마담을 피하랴, 호시탐탐 제국의 영지를 넓히려 밀림을 개척해 들어오는 바스커빌가를 피하랴, 여러모로 상당히 고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내가 그들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겠지.’
마담 여덟다리와 바스커빌가. 비키르는 발락을 압박하는 이 두 존재를 자신의 휘하에 복속시킬 요량이었다.
그것이 지금껏 자신을 보듬어 준 발락에 대한 보은이자 서로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리라.
또한 비키르는 시험해 보려 했다.
수해에서의 2년 동안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말이다.
‘이번 아도나이 전으로 인해 심득이 있었다. 곧 한 계단을 더 올라설 수 있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빗줄기 속을 뚫고 나가던 비키르.
하지만 사냥개는 이내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물의 장막 너머로 나는 익숙한 냄새.
지난 2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맡아 온 이 냄새를 모를 수가 없다.
아이옌. 그녀가 전신이 흠뻑 젖은 채로 비키르의 앞에 서 있었다.
“기다린 건가.”
“…….”
“언제부터 거기에 서 있었나?”
“…….”
비키르의 질문에도 아이옌은 대답이 없다.
이윽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늑대는 길들일 수가 없지.”
“……?”
“아무리 묶어 놔도 줄을 풀고 달아나.”
아이옌은 고개를 들어 비키르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늑대는 결국 길들일 수 없다. 다만 목줄을 매지 않아도 자기가 원할 때 스스로 찾아오게끔 하는 수밖에.”
그녀는 비키르를 보며 씨익 웃었다.
“너는 사냥개가 아니다. 비키르. 너는 네 자신을 그렇게 칭하지만…… 그 어떤 사냥개도 결코 너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
비키르는 아이옌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오른쪽 다리는 나뭇잎과 가죽으로 꽁꽁 동여 메어져 있었다.
일전에 아도나이와 싸울 당시, 아이옌은 독화살에 맞을 뻔한 비키르를 구해 주는 과정에서 다리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그 후유증 때문에 아이옌은 아직도 다리를 절고 있었다.
비키르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 몸으로는 따라와 봤자 도움이 안 된다. 마을로 돌아가라.”
대기는 물이 짜여져 나올 정도로 습한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건조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아이옌은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이윽고. 그녀는 비키르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말린 육포와 과일, 견과류 따위를 나뭇잎에 싼 것이었다.
비키르는 피식 웃었다.
“제삿밥 같군.”
“그따위 농담 하지 마라.”
아이옌은 눈을 사납게 뜨고는 비키르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약속해.”
기시감이 느껴지는 풍경.
사냥개는 이 상황이 약간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옌이 재차 말했다.
“돌아온다고 약속해.”
“…….”
비키르가 대답하지 않자, 아이옌은 물속에서 숨을 참듯 먹먹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녀는 약간 동안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아니다. 돌아온다고 약속하지 않아도 좋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불안과 초조함, 먹먹함이 매달려 있는 목소리.
아이옌은 이내 피를 토해 내듯 처절한 음성으로 비키르의 눈을 들여다본다.
“돌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 줘.”
비키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제깍 대답했다고 하기에는 조금 늦게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그러자 아이옌의 입에서 참았던 숨이 비로소 하얗게 뿜어져 나왔다.
먼동마저 삼켜 버린 먹구름 속 아득한 어둠.
멀어지는 사냥개, 아니 늑대의 뒷모습을 선 자리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주인.
늑대는 또다시 새벽을 꿰뚫어 달린다.
다만. 저번과는 달리 비키르에게는 말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돌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 줘.’
여자들이란 실로 어려운 요구를 잘도 해 온다.
그는 두 번 태어난 이래의 모든 순간을 통틀어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이번 약속은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그 스스로도 알 수 없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