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97
97화 마담 여덟다리 (3)
콰쾅! 우르릉……
천둥이 훑고 간 자리에 시커먼 지진운이 덮인다.
분명 시간대는 낮이었지만 하늘을 뒤덮은 짙은 먹구름과 쏟아지는 비, 미친 듯이 내리 찍히는 번개 때문에 밤이나 다름없었다.
비키르는 검수림(劍樹林)의 칼날 같은 잎사귀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내내 마담의 흔적을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보통 사냥을 하는 도중 비가 내리면 추격을 단념하는 것이 상식이다. 사냥감의 흔적이 지워져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가 이렇게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마담이 움직인 흔적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곳곳에 반쯤 녹아내리다가 만 고깃덩어리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것들은 마담이 먹다가 토해 놓은 음식물의 일부로 보였는데 어떤 종류의 고기인지는 굳이 살피지 않았다.
곳곳에는 마담이 흘린 점액과 배설물들이 물에 허옇게 불어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마치 까만 바늘처럼 느껴질 정도로 굵은 털들이 군데군데 흩날리고 있었고 그 주변의 풀과 나무들이 까맣게 말라죽은 것이 보였다.
이렇게 흔적이 뚜렷한데 추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고사목들이 알려 주는 죽음의 길을 따라 사냥개는 전진한다.
비키르는 마담의 정체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수해의 칠흑 속에 몸을 완전히 파묻고 있었다.
따라서 마담의 몸뚱아리가 정확히 어떤 모양인지는 알 수 없다.
심지어 그토록 오랫동안 마담의 횡포에 시달려 온 발락의 전사들조차도 마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종류의 생물인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그저 족장인 아퀼라만이 희미한 구전 기록을 토대로 마담의 정체에 대해 간략히 말해 주었을 뿐이었다.
‘……확실히, 흔적들만 놓고 보면 당최 어떤 종(種)인지 감이 안 잡힐 만도 하지.’
육전종 마물처럼 통나무나 바위를 들이받아 부수고 간 흔적, 맹금류종 마물처럼 강이나 높은 골짜기를 훨훨 날아서 건너간 흔적, 지하종 마물처럼 땅굴을 파고 들어간 흔적…… 모든 마물들의 생물학적 특성들이 죄다 섞여 있다.
더군다나 압권인 것은 경사가 90도를 넘어 역으로 치솟아 있는 암벽을 기어 올라갔다는 점이다.
새들도 너무 높아 오르지 못하는 절벽. 마담은 이곳을 기어 올라갔다.
비키르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절벽의 꼭대기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마담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 높은 곳을 기어올라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겠군.”
비키르는 한동안 절벽을 올려다보던 끝에 발걸음을 돌렸다.
절벽가를 한바퀴 빙 둘러본 결과 이 절벽은 외딴 산 형태를 하고 있다.
평지에 송곳처럼 툭 튀어나와 있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아마도 마담은 저 높은 고지대에 둥지를 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비키르는 마담의 위치를 대충 확인해둔 뒤 돌아섰다.
지금 싸우면 필패(必敗), 이기기는커녕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상대방이 있는 곳을 알아 놨으니 이제 시간은 비키르의 편이었다.
비키르는 천천히 절벽가에서 멀어졌다.
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대체 어느 정도나 높을지를 가늠하면서.
* * *
비키르는 마담의 둥지에서 꽤 떨어져 있는 늪지대에 도착했다.
늪의 가장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비키르가 제일 먼저 한 짓은 그동안 몸에 품고 있었던 짚단을 사방팔방으로 흩뿌리는 일이었다.
비키르는 그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밀림을 가로질렀고 비키르의 후끈한 채취는 짚더미에 깊게 배어든 상태였다.
비키르는 자신의 냄새가 깃든 그 지푸라기들을 바람에 날려 온 사방에 퍼트렸다.
이제 늪지대를 한 바퀴 빙 둘러 감는 대류의 특성 상 비키르의 냄새가 나는 지푸라기들은 늪지대 전체를 포위하듯 흩어질 것이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수해 더 깊숙한 곳으로 흘러가겠지.
그렇게 되면 비키르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포위되었다고 느껴질 여지마저 있었다.
……누가 그렇게 느끼느냐고?
“그야 이 늪지대의 주인이지.”
비키르는 고개를 들어 늪지대 한가운데를 주시했다.
이윽고, 수면 위로 떠다니는 통나무 하나가 푹 가라앉았다.
그리고 무언가 거대한 것이 걸쭉한 수면을 헤치고 늪 밖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위험등급 : A+
크기 : 9m
발견지 : 적과 흑 산맥 8부 능선
-일명 ‘무한재생의 되룡’.
늪지대 깊숙한 곳에 서식하는 거대한 양서류형 마물.
영역본능이 강하고 식탐이 게걸스러워 늪지대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일단 삼키고 본다.
어떠한 상처든 금세 재생해 버리는 불가살(不可殺)의 회복력 때문에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아주 오랜 시간을 이곳 늪가의 패왕으로 군림해 온 존재.
늙고 거대한 도롱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매끈한 가죽과 끈적끈적한 점액으로 뒤덮여 있는 존재.
입에는 어느 부족 출신인지 모를 원주민 몇몇의 팔과 다리가 우물거려지고 있었다.
비키르는 한눈에 알아챘다.
‘저놈이 무슈후슈의 라이벌이었지 아마?’
얼마 전 바알제붑의 먹이가 된 무슈후슈라는 커다란 뱀이 있었다.
그 뱀의 경쟁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 저 거대한 놈이었다.
이 늙은 도롱뇽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크고 강력해지는 육체를 꿈틀거리며 바깥으로 나왔다.
[쉬익-]늙은 도롱뇽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침입자를 찾으러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딱히 방향을 특정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비키르가 자신의 채취가 밴 지푸라기를 바람에 실어 보낸 것과 동시에 온몸에 진흙을 발라 냄새를 지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르르르르…… 쉬이익!]수렁도롱뇽은 혀를 낼름거리며 계속해서 늪가를 기어 다녔다.
비키르는 잠시 싸워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단념했다.
저번에 무슈후슈를 잡았던 것은 여러모로 운이 작용한 바였다.
놈은 홍수에 영역을 잃고 떠내려갔던 적이 있었기에 체력을 많이 소모한 상태였고 그 체력을 보충하느라 평소의 페이스답지 않게 과식을 해 몸이 둔해졌었다.
지치고, 배부르고, 졸린 상태에서 기습을 한데다가 아이옌마저 도와줬으니 사냥을 비교적 수월하게 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저 늙은 도롱뇽은 적당히 배가 고픈 상태이고 심기도 매우 불편해 보였다.
게다가 그 무슈후슈와 호각세를 이룰 정도로 강력한 마물이 아니던가.
맞서 싸운다면 100%를 장담할 수 없었다.
적당히 이길 수야 있다고 해도, 뒤이어질 마담과의 싸움을 생각해 보면 이런 곳에서 체력을 낭비할 이유도 없다.
‘다만…… 저놈을 이용해서 할 일이 있단 말이지.’
비키르는 수렁도롱뇽이 늪에서 완전히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또 하나, 비키르가 노리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방금 전 지푸라기들을 바람에 실어 보낸 것은 단순히 위치를 숨기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람이 닿는 곳 저 너머에 도사리고 있을 ‘어떤 위험한 생물’을 유인하기 위함도 있었다.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비키르는 늪을 벗어나 숲지대로 향하는 도롱뇽을 조심스럽게 미행하며 생각했다.
그때.
아니나 다를까 반응이 온다.
비키르의 체취가 밴 지푸라기들이 바람을 타고 밀림 곳곳으로 퍼지자 마물들이 준동하기 시작했다.
미노타우로스, 오우거, 트롤 등등을 비롯한 대형 마물들이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놈들은 늙은 도롱뇽의 영역으로는 함부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저 영역 바깥의 경계에서 침만 흘릴 뿐.
……그러나.
웨에에에엥!
딱 하나.
늙은 수렁도롱뇽을 겁내지 않고 그의 영역으로 불쑥 들어오는 마물이 있었다.
웨에에에에엥!
불길함이 느껴지는 날갯짓 소리.
그것은 천하의 수렁도롱뇽조차도 흠칫하게 할 정도로 섬뜩한 것이었다.
이윽고, 비키르를 찾기 위해 늪을 나와 숲으로 들어온 늙은 도롱뇽의 앞으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먹구름 같은 존재, 아주 크고 넓고 광대한 체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흐물흐물 움직이는가 하면 뱀처럼 길어지기도 하고 또 위로 치솟기도 한다.
뚜렷한 형체가 없는 이 기묘한 존재에 대해 비키르는 잘 알고 있었다.
위험등급(개체) : D
위험등급(군체) : S
크기 : 3mm
발견지 : 적과 흑 산맥 9부 능선
-일명 ‘뼈는 빠는 모기’.
피가 아니라 뼈를 빤다는 것을 제외하면 자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저것은 하나의 거대한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작은 것들이 만들어 이루고 있는 군체였다.
웨에에에에에엥!
모기들은 떼를 지어 날아와 주변의 모든 것에 달라붙었다.
늪지대에서 나와 제법 먼 거리를 이동해 온 도롱뇽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비키르는 모기떼를 보며 생각했다.
‘정말로 끔찍한 것들이다.’
저 모기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모기들보다 더 질이 나쁜 존재였다.
일반적인 모기는 긴 빨대와도 같은 주둥이를 살에 박고 피를 빨아 마신다.
하지만 저 모기가 탐하는 것은 타인의 피가 아니었다.
뼈(骨).
저것들은 일반적인 모기보다 훨씬 더 길고 뾰족한 주둥이를 사냥감의 몸에 찔러 넣은 뒤 뼈를 빨아먹고 이놈들에게 당한 피해자는 온몸의 뼈를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 모기들은 오로지 뼈만 빨아먹을 뿐이지 가죽이나 살점, 피나 내장은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윽고, 이 무시무시한 모기들에게 잘못 걸린 존재가 어떻게 되는지. 그것을 늙은 도롱뇽이 실시간으로 보여 주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잇!?]늙은 도롱뇽은 기겁을 했다.
놈은 전신에서 점액을 내뿜어 모기들의 공격을 막는 한편 잽싸게 몸을 틀어 늪으로 도망가려 한다.
하지만 그보다 모기들의 대응이 훨씬 빨랐다.
비키르의 체취에 이끌려 온 이 모기들은 도롱뇽의 몸에 들러붙어 죽어 점액을 굳게 만들었고 뒤늦게 온 모기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발판삼아 침을 찔러 넣는다.
이윽고, 모기들이 도롱뇽의 뼈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쪽쪽쪽쪽쪽쪽-
모기의 침에서 나온 체액은 정확히 도룡뇽의 뼈만을 녹인 뒤 다시 액체로 만들어 빨아들인다.
도롱뇽은 있는 힘을 다해 늪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불과 물가를 몇 미터 남겨두고 자리에 퍼져 버렸다.
몸무게를 지탱해 줄 뼈를 전부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모기들은 도롱뇽의 뼈를 전부 빨아먹은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늪지대를 떠돌며 기승을 부렸다.
쿠르륵! 활활활활!
비키르가 불을 피워 연기를 내 모기들을 전부 쫓아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모기들은 나타났을 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비키르는 비로소 늪지대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몰라 젖은 잎사귀를 태워 자욱한 연기를 만들어 내면서.
“……과연.”
비키르는 주위를 둘러본 뒤 고개를 끄덕거렸다.
뼈를 빠는 모기들은 역시 무서웠다.
모기 각각은 작고 약하지만 군체의 위험등급은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비키르는 고개를 돌려 늪지대를 보았다.
늪지대를 불과 2미터 정도 앞두고 바닥에 쓰러진 도룡뇽.
놀랍게도 놈은 아직 살아 있었다.
온몸의 뼈가 사라져 흐물거리는 몸, 하지만 특유의 질긴 가죽과 생명력 탓에 아직도 숨은 끊기지 않았다.
물론 질긴 가죽 안에 물을 채워 넣은 것 같은 모양새에 불과하기에 그 비참한 삶마저 얼마 영위하지 못할 것이 자명해 보였지만.
“…….”
비키르는 손을 뻗어 도룡뇽의 몸을 한번 만져 보았다.
질긴 가죽 안에 흐물거리는 살점과 피, 둥둥 떠다니는 내장.
이제 놈은 그저 한낱 피주머니에 불과하다.
“좋아. 잘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비키르는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도룡뇽의 꼬리를 잡아끌었다.
그래듀에이터 상급의 마나가 체내에 돌자 이 거대한 마물의 몸뚱이도 잡아끌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늙은 도룡뇽의 몸은 뼈가 사라져 있었기에 그만큼 더 가벼웠다.
[구우욱! 쉬익-]도룡뇽은 몸이 끌릴 때마다 기괴한 소리를 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마저도 이제 몸속의 폐와 기타 내장들이 모두 뒤섞여 버렸기에 소리조차 낼 수 없다.
그저 두 눈에서 굵은 눈물만 뚝뚝 떨어트릴 뿐.
“그동안 숱한 인간들을 잡아먹은 것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해라.”
거대한 피, 내장 주머니가 된 도롱뇽을 끌고 가는 비키르의 두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짧다면 짧았고 길다면 긴 준비였다.
이제 모든 준비가 된 지금,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다.
마담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녀를 죽이는 것.
그 후 모든 마음의 빚을 내려놓은 채 밀림을, 그리고 발락을 떠날 것이다.
‘철혈검가(鐵血劍家) 바스커빌’로의 복귀.
그것은 길게 끌 것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