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123)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123화(123/466)
대인전 결승이 끝난 후.
나는 김강인과 1시간 정도 추가로 대화를 나눈 뒤에 경기장으로 복귀했다.
‘……생각보다 길어졌네.’
원래는 김강인이 혼수상태가 된 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것만 간단하게 설명하고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대화가 길어졌다.
‘하기야. 그런 경기를 봤으니, 말이 많아지는 것도 당연한가.’
아델라의 경기에 크게 흥분한 김강인은 곧장 투 머치 토커 모드가 되어, 말을 속사포처럼 쏘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뭐 끼어들 새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쏟아내는데, 진짜 듣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만약 이후에 미궁 탐사가 예정되어있지 않았다면 밤까지 붙잡혀 있었을 것이다.
어우 끔찍해.
그 속사포 토크에 몇 시간이나 어울릴 뻔하다니.
상상만 했을 뿐인데, 몸이 부르르 떨렸다.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중.
석현 아저씨가 경기장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감사합니다.”
나는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선수 전용 주차장이기에 별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기실까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운전석에서 내린 석현 아저씨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괜찮습니다. 설마 여기서 무슨 일을 당하려고요.”
“상대가 흑색 마탑인 이상 모를 일입니다.”
“……음.”
반박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호텔에서 더 피스트의 습격을 받기도 했고.
여기서 습격이 벌어질 가능성도 0%는 아니다.
“그럼 은신 마법을 사용한 상태로 호위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괜히 눈에 띄는 건 좋지 않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석현 아저씨의 모습이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신기루가 흩어지는 듯한 광경.
언제 봐도 참으로 대단한 은신 마법이었다.
“갑시다.”
허공에서 목소리만 들렸다.
나와 커뮤니케이션을 취하기 위해서 음성 차단 마법은 일시적으로 해제하신 모양이다.
“더 피스트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여전하다고 합니다. 가끔 심심하다며 투정을 부린다곤 합니다만, 그것뿐입니다.”
“추가로 정보가 나왔다거나 하는 건 없고요?”
“예. 흑색 마탑 관련 정보에 관해선 일언반구 입에 담지도 않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럼 습격자는요?”
더 피스트는 현재 흑색 마탑에게 노려지고 있다.
자신들의 정보가 누설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피스트를 제거하려 할 테지. 감옥에 대대적으로 습격이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직까진 없습니다.”
“……의외네요.”
흑색 마탑이 이렇게까지 조용하다니. 제 아무리 미국 최고의 감옥 중 하나라곤 해도, 생포당한 게 꽤나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는 간부이니만큼, 어떻게든 제거하기 위해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송식이 늦어지고 있는 만큼, 저쪽에서 뭔가 움직임을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지금 상황에서 급한 건 흑색 마탑이다.
증거 인멸을 꾀하는 입장에서 더 피스트가 오래 생존해 있다는 건 꽤나 골치 아플 테니까.
“더 피스트의 성격이 성격이니만큼, 화엘리안 감옥으로 완전히 이송되기 전엔 정보를 누설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준간부급인 만큼, 성격도 어느 정도 알려졌을 테니까요.”
더 피스트의 용의주도한 성격을 알고 있다면, 저렇게 조용히 있는 것도 말이 안 되진 않는다.
“뭐가 됐던 이송식이 관건이네요.”
더 피스트를 무사히 화엘리안 감옥까지 이송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게 이번 작전의 명운을 가를 테지.
“이송식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송식에 호위로 붙을 마법사들의 명단을 보시면…….”
석현 아저씨가 누군가의 접근을 감지한 듯 돌연 말을 하다 말았다.
“……사람이 오는군요. 이 얘기는 나중에 이어 하죠.”
“네.”
은연중에 느껴지던 인기척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과연 완전무결한 은신이라 부를 만했다.
또각, 또각.
석현 아저씨의 인기척이 사라짐과 동시에 복도 저편에서 단화가 바닥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아한 듯하면서도 터프한 발걸음 소리.
그 발걸음의 주인이 나를 발견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내게 다가왔다.
도도도도-
그녀의 조급한 속내를 보여 주듯, 발걸음 소리가 한층 빨라졌다.
“……신하율.”
붉은 장발이 트레이드 마크인 불의 여인.
달리아 살렌티아.
그녀가 세상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내 앞에 섰다.
“……이 사기꾼.”
그리곤 다짜고짜 그런 말을 내뱉었다.
“4서클이라며?”
이전, 카일과 아델라의 경기에서 우연히 만난 달리아에게 나는 아델라가 4서클 유저라는 말을 했었다.
아마 달리아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을 것이다.
카일을 상대로 5서클 마법을 사용하지도 않았으니만큼, 더더욱 믿었을 테지.
그런데 이게 웬걸.
결승에서 만나고 보니 아델라는 5서클 유저인 것 아닌가.
달리아의 입장에서 사기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계획이었던 거야? 아니, 애초에 둘 다 5서클이었으면 이런 귀찮은 작전 안 짜도 됐잖아.”
자존심이 상한 듯, 날카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우리를 농락하는 게 목적이었던 거야?”
5서클 유저를 둘이나 보유하고 있으면 굳이 이런 작전을 짤 필요도 없다. 정공법으로 나서도 우승은 따 논 당상이다.
그런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어정쩡하게 아델라의 성취를 감추는 선택을 했다.
달리아의 입장에서 농락당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뭐, 실제로는 성취를 감춘 게 아니라, 도중에 성취가 있었던 것뿐이지만 말이다.
“대답해. 신하율. 처음부터 우리를 농락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게 분명한 표정이었다.
“오해야. 농락할 생각 같은 건 아예 하지도 않았어.”
“그럼 뭔데? 우리를 무시한 게 아니라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
“네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근데 진짜 오해야.”
나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이걸 보면 알 거야.”
슬슬 시작할 시간이다.
“마침 딱 시작했네.”
그리곤 그대로 TV모드를 실행, 아델라의 독점 인터뷰가 잡혀 있는 채널을 홀로그램 모드로 송출했다.
―그럼 아델라 양은 처음부터 5서클이었던 게 아니라…….
―네. 카일 벤티아 선수와의 경기 직후에 작은 깨달음을 얻어, 5서클 유저가 됐습니다.
달리아의 동공이 이보다 커질 수 없을 만큼 확장되었다.
“결승 직전에 성취를 얻은 거라고? 말도 안 돼, 어떻게 그 타이밍에 성취가…….”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 * *
그 후, 완전히 넋이 나간 달리아와 헤어지고 난 뒤.
곧장 대기실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빨리도 온다.”
진희윤 선배가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희윤 선배는 팀원 간의 화합을 중시하는 만큼 응원 같은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만큼 중요한 경기에 병문안을 나선 내가 썩 마음에 들진 않으리라.
병문안 대상이 청색 마탑주님이니 만큼 대놓고 뭐라곤 못 하지만 말이다.
“왔어? 청색 마탑주님은 좀 어떠셔?”
뒤이어 순찬이가 다가왔다.
“완치까진 좀 걸릴 거라고 하시네.”
“얼마나?”
“최소 보름이래.”
“……헐. 진짜 큰 상처셨구나.”
“그치. 다행히 후유증은 안 남을 거래.”
“아, 그건 다행이네.”
순찬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승 소식은 당연히 들었지?”
“당연하지. 청색 마탑주님이랑 같이 경기도 봤어. 아델라가 완전히 압도하던데? 마지막 월광에서 살짝 소름 돋았어.”
“크으. 지렸지. 그 장면을 네가 직접 현장에서 봤어야 하는데.”
순찬이가 껄껄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관중석이 순식간에 고요해지는데, 그 전율이……. 진짜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닭살이 돋네.”
순찬이가 닭살이 오소소 솟은 팔뚝을 마구 문질렸다.
호들갑을 떠는 순찬이의 뒤로 진희윤 선배가 다가왔다.
“짜샤. 누가 보면 네가 우승한 줄 알겠다.”
그리곤 그대로 등짝을 세게 두드린다.
찰싹! 하는 소리가 신명나게 울렸다.
“아, 누님! 아파요!”
“엄살 부리지마. 탱커. 그리 세게 치지도 않았구만.”
진희윤 선배가 다시 순찬이의 등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소리가 아주 찰지다.
“아파요! 누님 손 진짜 맵다고요!”
“어허. 이게 다 맷집 향상 훈련이야.”
“아니, 제가 기사도 아니고 이런 물리적인 맷집이 무슨……. 으악!”
순찬이가 몸을 배배 꼬았다.
어떻게든 등따귀를 피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필사적인 오징어 무브먼트였다.
“어휴. 완전 깡패가 따로 없네. 안 그래?”
내 뒤로 마진석 선배가 다가왔다.
신나서 순찬이의 등을 두드리는 진희윤 선배를 세상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넌 나중에 저러지 마라. 진짜 3학년 망신은 혼자 다 시키고 다닌다니까.”
“망신이랄 게 있나요. 친하니까 저러는 건데요 뭐.”
순찬이도 마냥 싫은 것 같지는 않고. 애초에 저런 장난스러운 대화를 워낙 좋아하는 애라서.
“아파요! 진짜 아프다고요!”
“으히히.”
……아닌가.
이번엔 진짜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순찬이가 필사적으로 희윤 선배를 피하는 와중.
인터뷰를 마친 아델라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기자들에게 질문 세례를 받으며 피곤이 쌓인 듯, 얼굴에 피로가 가득하다.
“앗. 우리 지수 왔구나.”
희윤 선배가 곧바로 순찬이에게 흥미를 잃고 아델라에게 달려갔다.
“고생했어. 우리 지수. 인터뷰 잘 하던데?”
아델라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한가득 애정이 묻어 나온다.
순찬이를 대할 때와는 아예 다른 모습이었다.
“……차별 반대.”
그런 진희윤 선배를 바라보며, 순찬이가 소심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엉? 뭐라고 했냐?”
진희윤 선배의 눈이 희번덕하게 빛났다. 동시에 손바닥을 슬며시 치켜든다. 어디 한 마디만 더 해 보라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아닙니다! 마치 자매처럼 잘 어울린다고 했습니다!”
순찬이가 아픈 등을 어루만지며 소리쳤다.
“오호. 우리 순찬이가 보는 눈이 있네.”
“감사합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군인 같은 절제된 동작이 돋보였다.
‘……진짜 아팠구나.’
저 격렬한 반응.
아무래도 희윤 선배의 손이 진짜 맵긴 한 모양이다.
“청색 마탑주님의 부상은 좀 어떻던가요?”
아델라가 희윤 선배에게 안긴 채 내게 다가왔다.
이제 아델라도 희윤 선배의 스킨십을 막는 건 포기한 듯, 그러려니 하고 있다.
“퇴원까진 보름 정도 걸리신다고 하는데, 후유증은 없을 거래.”
나는 가볍게 병문안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청색 마탑주님의 상태부터, 청색 마탑주님이 아델라를 얼마나 극찬했는지까지 모조리.
흑색 마탑에 대한 얘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조금 부끄럽네요. 제 힘으로 얻은 성취도 아닌데.”
아델라가 쓰게 웃으며 나를 힐끔힐끔 바라본다.
내가 건넨 비약의 힘으로 성취를 얻은 것이니만큼, 기분이 오묘한 듯했다.
“응? 지수 네 힘으로 얻은 성취가 아니라니? 그럼 누구 힘으로 얻은 성취야?”
희윤 선배가 아델라를 껴안은 채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비약에 대한 건 팀원들에겐 말하지 않았다.
저 말에 의문을 갖는 건 당연했다.
“……그,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델라가 아차 한 표정으로 부정했다.
비약에 대한 건 비밀로 하기로 한 만큼, 방금 전 아델라의 말은 실수였다.
“……흐으음?”
희윤 선배가 아델라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뭔가 의심하는 듯한 표정.
아델라는 필사적으로 진희윤 선배의 시선을 피했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시선 회피에 희윤 선배의 눈빛이 더더욱 가늘어졌다.
“아항.”
그렇게 약 10초.
아델라의 얼굴을 뚫어져라 직시하던 진희윤 선배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말인즉. 사랑의 힘이구나?”
그리곤 세상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뭔 힘이요?”
아델라가 벙 쪘다.
“깨달음의 벽을 깬 날. 계속 신 리더가 옆에 있었다는 게 계속 걸렸는데. 그런 거였구만. 그런 거면 또 납득이지. 사랑은 무한한 힘을 지닌 만능 에너지라고 하니까.”
“……언니?”
“분명 둘이 손에 손을 잡고 서로 의지하면서…… 흐흐.”
상상을 넘어 망상의 영역으로 들어선 진희윤 선배.
“…….”
그런 그녀를 아델라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봤다.
뭐라 말하기도 지친다는 표정.
평소에 아델라가 희윤 선배에게 얼마나 시달리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어휴. 저 민폐 덩어리.”
마진석 선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기인 진희윤이 진심으로 부끄럽다는 표정이다.
“야. 망상은 적당히 하고…….”
그렇게 마진석 선배가 한 마디 내뱉으려던 찰나.
“잡담은 거기까지 해 두도록. 슬슬 이동할 시간이다.”
대기실에서 줄곧 침묵을 고수하고 있던 강신우 선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 넵. 장비 챙기겠습니다.”
순찬이가 곧바로 샤샤샥 움직여 한쪽 벽에 세워 둔 세 개의 가방을 가져왔다.
미궁 탐사에서 사용할 배급품들을 담아 둔 경기용 백팩이었다.
“선배님. 여기 있습니다. 자. 여기. 네 것도.”
순찬이가 가방 하나를 신우 선배에게, 그리고 또 하나를 내게 건넸다.
“땡큐.”
나는 백팩을 건네받고, 적당히 한쪽 어깨에 걸쳤다.
“그럼 가볍게 우승을 따 내서 돌아오겠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고, 강신우 선배, 순찬이와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