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13)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13화(13/466)
사실 심의가 극의에 이르렀다는 건 어제부터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좀 더 마법을 숙달시킨 뒤에 이 마법진을 작동시키려 했다.
책에도 쓰여 있지만, 마법을 익힘에 있어서 조급함은 독밖에 안 되니까.
조금 더 심의(心意)가 안정된 후에 마법진을 발동시키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지금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야.’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내 목적은 8강 진입.
16강 상대가 아델라인 이상,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재빨리 203페이지를 펼쳤다.
난생 처음 보는 마법진이 떡하니 박혀 있는 페이지.
분석해 볼 엄두도 안 나는 희귀한 마법진이 내 손끝과 만나 묘한 광채를 내뿜었다.
“가자.”
나는 손바닥 전체를 마법진에 밀착시키고, 인피니티 서클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바이테너의 정식 계승자여. 그대의 성취를 기원한다.’
레이 벨 바이네터.
스승님의 목소리가 내 머리에 직접 꽂혀왔다.
그리고 다음 눈을 떴을 때는.
“……여긴 어디야?”
나는 난생 처음보는 방에 서 있었다.
고풍스러운 서재 같으면서도, 동시에 트레이닝 룸의 모습이 엿보이는 묘한 방.
“첫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 묘한 방의 중심에서 한 여성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이 첫 번째 시험의 페이지를 관리하고 있는 안내자. 알파입니다.”
자신을 알파(α)라 소개한 여성이 사람 좋은 미소로 나를 반겼다.
“……첫 번째 시험의 페이지?”
“예. 마법서, 이드레드 내부에 존재하는 시험의 페이지 중 첫 번째 페이지입니다.”
마법서 이드레드?
이 책의 이름이 이드레드였어?
아니, 그보다.
“여, 여기가 책 내부라고?”
“네.”
“그러니까, 그 203페이지… 그 작은 한 페이지 안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 뒀다는 거야?”
“네.”
“공간 마법으로 뭐 어디 멀리 존재하는 방으로 이동한 것도 아니라, 책 안에 별도의 공간을 만들었다고?”
“네.”
“……허.”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온다.
대체 어떤 기예를 부려야 책 안에 이런 방을 만든다는 말도 안 되는 마법이 탄생할 수 있는 걸까.
“너무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계승자님께서도 나중에 다 하실 수 있게 되실 테니까요.”
“……그게 더 놀라운데.”
바이테너식 마법의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인 걸까.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이 방은 뭘 위해 존재하는 거야?”
나는 놀람을 삼켜내고 상황 파악에 힘쓰기로 했다.
“말 그대로 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방입니다.”
“아, 시험의 페이지라고 했지.”
이런 당연한 걸 굳이 되묻다니.
아직 놀람이 다 수습되지 않아서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첫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서는 계승자의 ‘심의(心意)’가 완숙되었는가를 시험합니다.”
알파가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
“시험 내용은 시험 시작과 동시에 알게 되실 것이며, 시험에 통과하실 경우, 심의가 완전히 숙달되었다고 판단. 2서클 마법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18~31페이지가 갱신됩니다.”
“아. 페이지 갱신이 이런 방식으로 변한 거구나.”
“네.”
어쩐지.
아무리 심의를 단련해도 다음 페이지가 갱신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설명은 이상입니다. 곧바로 시험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알파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어. 더 설명할 게 없다면, 바로 시작해 줘.”
“네. 그럼 첫 번째 시험의 장.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알파의 선언과 함께, 알파의 몸이 마나로 변화해 하늘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설마했는데, 진짜 마법 인격체였어?”
이 또한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마법이다.
바이테너식 마법의 한계란 대체 어디인가.
아까 겨우겨우 삼켜냈던 의문이 또 다시 내 뇌를 잠식했다.
‘지금부터 첫 번째 시험의 내용을 공지하겠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또 다시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만했던 정신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보석의 이름은 엘리멘트 마나라이트라고 한다.’
돌연 내 눈앞에 묘한 형태의 보석이 두둥실 떠올랐다.
‘네 가지 속성의 마나가 난잡하게 섞여 있는 불완전한 혼돈의 보석이지.’
적, 청, 녹, 황색의 오로라를 내뿜는 아름다운 보석이었다.
‘엘리멘트 마나라이트를 정제하는 방법은 단 하나. 내부의 난잡하게 흩어진 마나를 정확히 분리해, 고정시키는 것.’
딱 봐도 이 안의 마나는 엉망진창이다.
비유하자면 모래, 설탕, 소금, 후추가 제멋대로 섞여있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질이 나쁘다.
서로 충돌하는 네 개의 마나가 서로를 거절하면서도 서로 뒤엉켜 있는 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상태.
‘시험 내용은 간단하다. 이 보석을 완벽하게 정제해라.’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말의 앞뒤를 생각했을 때, 그렇지 않을까 싶었는데.
‘심의가 완전히 숙달됐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다.’
‘쉽지 않을 테지만, 내 제자라면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럼 건투를 빌겠다.’
그 말을 끝으로 스승님의 말은 더 들려오지 않았다.
“엘리멘트 마나라이트…….”
나는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네 가지 빛깔로 빛나는 보석을 손에 쥐었다.
“심각하네.”
만져보니까 더 잘 알겠다.
이 보석 안은 혼돈이다.
네 속성의 마나가 이렇게 뒤범벅이 되어 있는데도 안 터지는 이유가 뭔지 궁금할 정도다.
“이 마나를 완벽하게 분리시키란 말이지.”
이 안의 마나를 완벽하게 분리시키는 건 어지간한 컨트롤로는 불가능하다.
한 종류의 마나를 움직이면, 다른 세 종류의 마나도 같이 움직이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한 순간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테지.
“확실히 이걸 정제할 수 있는 사람은 ‘심의’를 완전히 마스터한 바이테너식 마법의 사용자뿐이겠네.”
이 안에서 발생할 마나의 충돌과 온갖 변수들을 생각하면, 현대 마법으로는 이 보석을 정제할 수 없다.
이걸 정제할 수 있는 건, 바이테너식 마법의 사용자인 나뿐이다.
“……재밌겠어.”
내 입가에서 미소가 피어났다.
뭔가 도전욕구가 솟구친다.
“좋아. 해 보자.”
내 의지와 함께 인피니티 서클이 세차게 회전했다.
* * *
한편, 그 시간.
청색 마탑주는 적색 마탑주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미안. 제임스. 윈드 스피어 개량 마법식을 사는 건 힘들 것 같아.”
김강인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튀어나왔다.
―역시 그런가.
적색 마탑주가 쓰게 웃었다.
적색 마탑주도 신하율이 마법의 비밀을 공개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비전 마법이란 천금을 주고도 지켜내야 할 마법이라는 걸 적색 마탑주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설득해도 소용없겠지?
“아마도. 지옥의 끝자락에서 찾은 유일한 활로인데, 그걸 공개할 리가 있겠어?”
그 기묘한 윈드 스피어는 신하율의 희망이다.
부적합자라는 페널티를 극복하게 해 준 유일한 희망.
그런 마법을 쉽사리 공개할 리가 없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난 비전 마법 같기도 하고.”
―뛰어나다니?
김강인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아까 하율 군이랑 대화를 좀 나눠 봤는데. 윈드 스피어만이 아니라, 다른 개량 마법도 존재하는 거 같더라고.”
―뭐?
신하율은 다른 마법도 개량할 거냐는 김강인의 질문에 YES라 답했다.
“예상컨대. 개량된 윈드 스피어가 비전 마법인 게 아니라, 어떠한 마법을 개량, 개조하는 게 하율 군의 비전 마법인 것 같아.”
이게 답이었다.
―말도 안 돼!
적색 마탑주, 제임스 필러가 소리쳤다.
―그런 마법이 실재할 리가 없어! 마법식이 얼마나 예민한지 자네도 알잖아.
“음. 그렇긴 한데.”
김강인이 왼손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면서 답했다.
“모르는 일이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고대 마법 중에, 그러한 마법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고대 마법과 비전 마법은 사실 같은 말이다.
특정 가문이 고대 마법에 대한 마법식을 얻어,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마법으로 삼는다면, 그게 바로 비전 마법이 되는 식이다.
―끄응. 분명 신하율 학생은 고서적을 모으는 게 취미라고 했었지.
“맞아.”
―특별한 고서를 얻은 거라면 말이 되긴 하는데.
적색 마탑주가 침음을 흘렸다.
―자네 말이 진짜라면, 억만금을 다 줘서라도 사고 싶은 마법이야.
“동감이야.”
두 명이 오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뭐, 내 가설이 진짜일지 아닐지는 내일 시합을 보면 알겠지.”
―윈드 스피어 외에 다른 마법도 개량해서 사용한다면, 확실해 지겠어.
아마 이 두 명은 내일 신하율의 경기를 생방송으로 보고 있지 않을까.
“그럼 용무는 이걸로 끝인 거지?”
―아. 아직 한창 실험 중이라고 했지. 방해한 것 같아서 미안하네.
“아니야. 마침 쉬는 타이밍이었거든.”
―그럼 다행이고.
적색 마탑주가 끌끌 웃었다.
―마지막으로 이건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묻는 건데. 연구는 좀 잘 되고 있어?
“……아니.”
김강인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방 한편에 놓아둔 보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 개의 원소를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게 쉽지 않네.”
―거 봐. 내가 어려울 거라고 그랬잖아.
네 가지 색을 불규칙적인 패턴으로 뿜어내는 묘한 형태의 보석.
[엘리멘트 마나라이트]가 영롱한 빛을 내뿜었다.―너무 그 연구에만 몰두하진 마. 물론 잘 정제하기만 하면, ‘올 타입 아티팩트’로 만들 수 있긴 하겠지만…….
적색 마탑주는 굳이 그 다음 말을 잇지는 않았다.
* * *
5월 2일 오전 4시 40분.
나는 방 안에서 퀭한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
“……8시간 40분 걸린 거 실화야?”
내 손에는 네 개의 색으로 빛나는 보석이 하나 들려 있었다.
전처럼 불규칙적인 패턴으로 빛나는 묘한 상태의 보석이 아니라.
네 개의 색이 완벽하게 분리된 상태였다.
“그래도, 성공했다.”
정제된 엘리멘트 마나라이트.
그것이 내 손 안에서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레이 벨 바이테너].
아니, 정식 명칭 [마법서 이드레드]를 펼쳤다.
[시험에 합격한 것을 축하한다.]텅 비어있던 18페이지는 스승님의 필체로 가득 차 있었다.
[축하의 의미로 엘리멘트 마나라이트를 선물로 주마. 아티팩트 제작에 큰 효율을 보일 거다.]알고 있다.
이 보석이 아티팩트를 만드는 데 있어 최상급 재료라는 건, 처음 본 순간부터 직감했다.
그럼에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책 속에서 가지고 나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설마 가지고 나올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걸 책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 있을 줄이야.
기쁜 오산이다.
‘이걸 맡길 장인을 알아봐야겠네.’
이런 고급 재료를 어중간한 장인에게 맡길 수는 없다.
이 보석에 걸맞은 마땅한 장인을 섭외해야 한다.
‘아니,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엘리멘트 마나라이트를 적당한 상자에 담아 서랍에 넣었다.
엘리멘트 마나라이트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곧 있을 아델라와의 대련에 집중해야 한다.
“시합까지 남은 시간은 7시간 정도인가.”
그리곤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에 [이드레드의 서]를 손에 쥐었다.
“7시간 내에 2서클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
내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지금부터 두 번째 고리를 엮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겠다.]* * *
16강의 7번째 경기까지 모두 끝나고.
경기는 신하율과 아델라의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현재 시간은 오전 11시 25분.
8경기 시작까지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신하율 학생. 여전히 연락이 안 됩니다.”
“무슨 사고라도 생긴 게 아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하율은 여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뭐야, 신하율 설마 도망간 거야?”
“아델라가 무서워서 튄 듯?”
“그럴 줄 알았다.”
“신하율 거품이라니까.”
“거품인 거 들키기 싫어서 튀었네. 큭큭.”
관객석에서 농익은 질투심에서 우러나온 비난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사고라도 난 거 아냐?”
“순찬아. 전화해 봐.”
“……안 받아.”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순수하게 신하율을 걱정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진짜 뭔 일 난 거 같은데.”
“하율이 방 갔다 와 봐야하는 거 아냐?”
“아까 노크해 봤는데, 아무 반응도 없었어.”
지순찬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
소란스러운 콜로세움의 중심에서 아델라는 혼자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귀에 관객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치 고요한 호수처럼 그녀의 마음은 잔잔하기 그지없었다.
신하율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건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남은 시간 1분.”
그렇게 4분이 훌쩍 흘러.
“이거, 진짜 부전승 처리를 해야 하나?”
“그래야 할 것 같군.”
교관들이 슬슬 부전승 판정을 내려야 하나 생각하고 시작한 바로 그때.
“……왔어요.”
아델라가 눈을 떴다.
동시에 콜로세움 입구에서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급한 표정 사이로 환희나 기쁨이란 감정이 엿보인다.
“신하율 학생. 왜 이렇게 늦었지?”
한 교관이 신하율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시계를 톡톡 두드렸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아냐는 표정이다.
“죄송합니다. 준비가 좀 늦어져서.”
신하율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준비를 어떻게 했길래 이 시간까지…….”
교관이 뭐라 더 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쯧. 나중에 얘기하지.”
잔소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지금 당장 경기를 시작해야 한다.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은 따로 줄 수 없다. 페널티는 감수하도록.”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양자 위치로.”
교관이 신호와 함께 콜로세움에서 빠져나갔다.
두 명만 남은 콜로세움 안에서 아델라가 잔잔한 호수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준비는 다 끝나셨나요?”
조금 전, 준비가 늦어졌다는 신하율의 말을 떠올리고 안부 차 물은 질문이었다.
“끝났어.”
신하율이 적당히 몸을 풀며 답했다.
“혹, 어떤 준비 때문에 늦어진 건지, 여쭈어도 될까요?”
이 또한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었다.
“음. 별건 아니고.”
그러나.
“널 쓰러트릴 준비를 좀.”
“네?”
돌아 온 대답은 자못 대수로웠다.
신하율의 입꼬리가 한껏 치켜올라갔다.
“기대해. 네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는 전투가 될 테니까.”
눈을 빛내는 신하율의 몸속에서, 또렷한 두 개의 서클이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