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138)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138화(138/466)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현실인지 꿈인지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리얼한 꿈.
“아스란. 정말 욕망의 미궁을 선택할 건가?”
황금을 연상시키는 긴 금발을 허리 밑까지 기른 남자.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범상치 않다.
그 금안을 앞에 두고는 그 어떠한 거짓도 고할 수 없으리라.
그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고강하고, 또 깊은 눈동자였다.
“네. 제가 다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 배치된다면, 저는 욕망의 미궁과 함께 배치되고 싶습니다.”
금색과 대비되는 온통 흑색인 남자.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유는 무엇이지?”
“욕망의 미궁은 심, 기, 체 모든 것을 동시에 시험할 수 있는 미궁임에 더불어, 인간의 숨겨진 본성까지 확인할 수 있는 천혜의 시험장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계승자를 시험한다면,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마구 기른 게 분명한 짧은 흑발.
두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충성심과 존경심이 가득 담겨 있다.
“천혜의 시험장이라는 건 인정한다. 허나, 5서클에 불과할 터일 계승자에게 욕망의 미궁은 너무 위험한 곳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흑색 남자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그래서 욕망의 미궁을 정리하려 합니다.”
“정리라. 그 말은 미래의 계승자도 깰 수 있을 수준으로 미궁을 개조한다는 의미인가?”
“예.”
“그 정도 수준의 미궁을 개조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 보이겠습니다.”
“오해하지 마라. 실패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너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조건 성공할 테지.”
“……황송합니다.”
흑색 남자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주군의 신뢰에 감격하는 가신의 모습이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네가 실패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다.”
금색 남자가 왼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쳤다.
남자의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마치, 무슨 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네가 미궁을 개조할 때까지, 내 몸이 버틸 수 있을지. 그걸 모르겠구나.”
“……주군.”
흑색 남자가 입술을 짓씹었다.
일그러진 표정과 눈동자.
후회와 분노를 형상화 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 전에. 무조건 해 보이겠습니다.”
남자가 어두운 감정을 삼켜내고, 자못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심란할 주군의 마음을 고작 자신 따위의 감정으로 더 어지럽힐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필사적으로 웃었다.
“어차피 지금의 바이테너 제국에 제가 할 일은 없기도 하고……. 반 년 내에 반드시 완료해 보이겠습니다.”
“할 일이 없다라…….”
금색 남자가 오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휘황찬란한 방 한편에 달려 있는 거대한 유리창.
아름다운 대도시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장은 활기로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웃고 있으며, 모험자들은 힘이 넘친다.
완전한 평화가 자리 잡은 이상향.
유리창 너머에는 행복이 형상화 되어 있었다.
“확실히. 지금의 제국에 우리 둘 다 할 일은 없겠구나.”
“……주군 그런 말씀하지 마시길. 제국에는 아직 주군이 필요합니다.”
흑색 남자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라. 어떻게 쟁취한 평화인데. 나도 이 평화를 최대한 만끽할 생각이다.”
“……예.”
흑색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지금 자신이 짓고 표정을 주군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흑색 남자의 기분을 알고 있는 듯. 금색 남자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부탁하겠다.”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넌지시 말했다.
“욕망의 미궁을 미래의 계승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네가 미래의 계승자를 평가할 수 있도록, 훌륭한 시험장으로 만들어 보여라.”
“예. 맡겨 주십시오.”
남자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바로 욕망의 미궁으로 향하겠습니다.”
흑색 남자의 마나가 움직였다.
공간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듯한 마나. 공간 이동 마법이라도 사용하려는 것일까.
“가는 길에 엘레나에게 안부 인사라도 전해 주거라.” “…….”
흑색 남자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그린우드 숲에 자리 잡은 숲의 마법사, 엘레나 로 그린우드.
흑색 남자는 그녀를 대하는 게 아주 서투르다.
“……그건 저 말고, 미미르 님에게 시키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만.”
그 반응에 금색 남자가 웃음을 지었다.
“아니. 네게 시킬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신뢰하는 두 명이 언제까지고 어색한 사이여선 안 되지.”
“……예. 알겠습니다.”
흑색 남자가 ‘끙’ 소리를 내며 답했다.
그 모습이 또 재미있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럼 전 정말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하겠다.”
흑색 남자가 가슴에 손을 얹고, 격조 있게 고개를 숙였다.
“레이 벨 바이테너에게 영광 있으라.”
그 구호에 금색 남자가 쓴 웃음을 지었다.
“그 군호는 대체 언제까지 쓸 생각이냐.”
수십 년이나 계속된 군호(軍號).
저것도 이제 바꿀 때가 됐다.
“이제 슬슬 바꿀 때도 된 것 같은데 말이지.”
전쟁은 이미 끝났으니까.
레이 벨 바이테너의 영광은 이제 다 끝났으니 말이다.
“아뇨.”
흑색 남자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바꾸지 않을 겁니다. 아니. 바꾸게 두지 않을 겁니다.”
남자가 무언가 거대한 감정을 씹어 삼키듯이, 강인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 벨 바이테너. 주군의 영광은 영원할 테니까요.”
“…….”
금색 남자.
아니, 레이 벨 바이테너.
스승님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무언가 생각이 많은 듯한.
지금 이 상황이 슬프고, 또 기쁜 듯한.
“고맙구나.”
그런 아련한 미소였다.
* * *
“일어났나.”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건 꿈에서 보았던 흑색 남자.
아스란 폴로함루인의 얼굴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으윽!”
자리에서 일어나려 팔을 움직였으나, 짜릿한 통증이 내 행동을 막았다.
아프다. 너무 아파서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라. 그대로 불구가 되고 싶지 않으면.”
아스란이 내 신체에 손을 올렸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새하얀 마나가 내 신체를 감쌌다.
치유 마법인 것일까.
내 신체를 좀먹던 강렬한 통증이 빠르게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진통 마법이다. 부상이 치료된 건 아니니 움직이지 말도록.”
“……예.”
내 신체를 짓누르던 통증이 빠르게 완화되어 갔다.
아예 안 아프다곤 할 수 없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 만하다.
“그, 감사합니다.”
“인사는 됐다.”
남자가 내게서 손을 떼곤, 다시 하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
누워있는 내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각도상, 목을 살짝만 돌리면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목을 돌릴 수도 없는 중증 환자다.
고로, 그가 뭘 하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아니, 그보다 중요한 건 아스란이 무얼 하고 있느냐가 아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왜 여기 이렇게 있느냐다.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지?”
남자가 여전히 하던 일에 몰두하며, 넌지시 답했다.
“……철문에 새겨진 마법식에 파훼를 시도했던 데까지 기억납니다.”
“파훼를 성공한 건?”
“생각납니다. 파훼를 성공하고, 철문이 열리는 중에…… 정신을…….”
그 순간, 어렴풋하게 무언가가 떠올랐다. 정신을 잃기 전 들렸던 목소리.
‘호랑이의 새끼는 시대를 넘어서도 호랑이의 새끼라는 건가.’
그건 분명 아스란의 목소리였다.
“……당신이 절 구해주신 거군요.”
“아니.”
아스란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너는 네 힘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거다. 나는 감독관으로서 날뛰는 두 몬스터를 잠재운 것뿐.”
그렇게 말하며 슬쩍 내게 시선을 돌렸다.
“두 놈을 정리하는 데, 네가 방해가 돼서 잠시 데리고 온 것뿐이다.”
“……그게 도와주신 거 아닙니까?”
“글쎄.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남자는 다시 시선을 내려, 하던 일에 집중했다.
“……의외네요. 무슨 일이 생겨도, 당신이 절 도와 줄 일은 없을 거라고 들었는데 말이죠.”
“미미르 님에게 들은 말인가?”
……미미르 님?
왜 ‘님’을 붙이지?
미미르가 이 남자보다 지위가 높은 건가?
“대답.”
“아, 예. 미미르에게 들은 말입니다.”
“그래.”
아스란이 픽 웃었다.
“……미미르 님께서 생각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계셨군.”
뭔가 생각이 많아 보인다.
“그래. 미미르 님의 말대로, 나는 네게 무슨 일이 생기던, 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럼 어째서…….”
저를 구한 건가요?
나는 뒷 말을 묵음으로 흘렸다.
“변수가 발생해서 말이야.”
“변수요?”
“그래.”
아스란이 변수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첫 번째 관문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통과 방법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어찌하여 감독관인 자신이 나서게 되었는지.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럼, 저는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했다. 이런 말인가요?”
“그래. 그렇게 되는군.”
아스란이 큭큭 웃었다.
지금 이 상황이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그나저나 신기하군. 호루스와 다크니스가 서로 앙숙 관계라는 건 알고 있으면서, 구미호에 대한 건 모르다니. 어째서지?”
“……어째서고 뭐고. 처음 듣습니다. 구미호가 몬스터가 아니라 신수이고, 신수는 마냥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니. 아니, 애초에 신수란 단어를 처음 들었습니다.”
아스란이 턱을 쓰다듬었다.
“역시 현대에 신수라는 개념은 아예 사라진 건가?”
“예. 그 어떤 문헌에서도 본적이 없습니다.”
“흠.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그럴 수도 있겠지.”
아스란이 작게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튼 그래서다. 나는 네가 신수에 대한 걸 아예 모른다고 판단했고. 더 이상 평가를 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 판단. 이렇게 나서게 됐다는 거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시대적인 차이에서 오는 무지.
이는 평가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고로, 시험관인 아스란이 움직였다.
마땅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
그런 말이었다.
“헌데…….”
아스란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아주 흥미롭다는 눈빛이다.
“설마 그런 방법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할 줄이야. 제법이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그걸 통과한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철문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 했다.
만약 호루스의 브레스가 아니었다면 끝끝내 눈치 채지 못 했을 것이다.
내가 철문의 마법진을 파훼할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아서였다.
“하물며 파훼와 함께 정신을 잃기까지 했으니…….”
그런 천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통과하지 못 했다.
내 성취를 넘어선 마법진을 파훼하며 막대한 부하가 찾아 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만약 아스란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난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을 테지.
고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고는 볼 수 없다.
“아니. 통과다.”
“아뇨. 저는…….”
“시끄럽다. 감독관이 통과했다고 한 이상, 통과한 거다. 말대꾸하지 마라.”
아스란이 인상을 팍 쓰고 나를 노려봤다.
한번만 더 지껄여 보라는 표정이다.
“호루스의 쉼터와 다크니스의 쉼터가 벽 하나를 두고 붙어 있다는 걸 깨달은 점. 호루스의 쉼터에 마법을 고정해 두어 다크니스와 함께 행동을 개시하도록 설정해 둔 것. 마지막에 두 놈의 공격을 그 벽면에 집중시키는 것으로 벽면을 파괴한 것까지. 네 전략은 칭찬해 마땅한 것이었다.”
“……그, 감사합니다.”
“비록 경지가 부족하여, 마지막에 실수를 하긴 했으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급제점을 줄 만하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고로 첫 번째 관문은 통과. 뭐 이의 있나?”
“……없습니다.”
“알았으면 됐다.”
내 대답에 아스란이 픽 코웃음을 쳤다.
“예.”
뭔가 내가 예상했던 인상이랑은 많이 다른데.
조금 더 완고한 기사적인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흠. 뭐가 됐던 이건 내 실수군. 시대적인 지식 차이를 생각하지 못 하다니. 첫 번째 관문도 적당히 개조해 둘걸 그랬어.”
아스란이 다소나마 후회하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개조…….”
“왜 그러지?”
“아뇨. 그, 저……. 제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꿈을 꿨거든요.”
욕망의 미궁 개조.
이는 내가 꿈에서 들었던 말이다.
“꿈?”
“네. 아스란 님과 스승님이 왕궁에서 대화를 하고 계시는 꿈이었습니다.”
“……스승님이라 함은 주군을 의미하는 것인가?”
“예.”
“주군의 꿈…….”
아스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더 자세히 말해 봐라. 내가 주군과 어떤 대화를 했지?”
“욕망의 미궁을 다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 넣기 위해 개조를 한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군. 그때인가.”
아스란이 뭔가 떠올린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라는 건……. 제가 꾼 꿈이 진짜라는 건가요?”
“그래. 아마 그럴 거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죠?”
아스란은 그렇게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스란의 손에는 청색빛이 아름다운 작은 포션이 쥐어져 있었다.
아까부터 뭔가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싶었더니, 저걸 만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설명하기 전에, 일단 이것부터 마셔라.”
“아, 네.”
아스란이 포션을 그대로 내 입에 가까이 가져왔다.
나는 내 입에 흘러들어오는 포션을 꿀꺽꿀꺽 삼켰다.
“윽!”
저릿한 통증이 내 신체 전체를 짓눌렀다.
“참아라. 뒤틀렸던 신체 내부와 인피니티 서클이 정상으로 돌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회복통이다.”
“……예.”
아스란이 다시 원래 앉아 있던 곳으로 돌아가, 앉았다.
“아무튼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하자면, 너는 내 과거를 꿈으로서 체험한 것이다.”
“타인의 기억을 꿈으로…….”
남의 과거를 꿈으로 체험하다니.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다른 장소였다면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이곳은 욕망의 미궁. 사람의 욕망이나 심상이 현실화되는 장소다.”
아스란이 다리를 꼬고 픽 웃었다.
“네 치료를 위해 내 마나를 직접 불어넣었으니 말이야. 내 마나를 통해 내 과거를 꿈으로써 체험하는 것 정도는 있을 법한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