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161)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161화(161/466)
나는 누님과 약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고 난 뒤, 호텔로 복귀했다.
“그럼 푹 쉬십시오.”
나를 방까지 데려다 준 석현 아저씨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문을 열어 준 뒤,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호출벨 가져가라고 안 하시네요?”
“……하하. 말에서 뼈가 느껴지는 것 같은 건 제 착각인가요?”
“착각이십니다. 딱히 호출벨을 지니고 다니기 귀찮았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석현 아저씨가 쓰게 웃었다.
뭐라 반응할지 모르겠다는 티가 역력하다.
“농담입니다. 귀찮음을 느낄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요 뭐. 절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란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석현 아저씨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평소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용건이 있다거나, 부탁하실 일이 있으시면 바로 불러주시길.”
“아. 그럼 당장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 듣겠습니다.”
석현 아저씨가 진지한 표정이 됐다. 내가 부탁을 했을 땐, 항상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였으니만큼, 긴장하신 것이리라.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번엔 심각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소한 부탁인데.
“만화책 좀 사와 주실 수 있을까요?”
“만화책…… 말씀이십니까?”
석현 아저씨의 미간이 의문으로 살짝 찌푸려졌다.
“그건 어떠한 이유 하에 필요하신 것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만화책을 산다.
이 행위 자체에 뭔가 따로 의도가 있다고 받아들이신 듯.
오히려 표정이 더 심각해 졌다.
“아뇨아뇨. 은어나 돌려 말하기 같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만화책 좀 사와 주실 수 있나, 하는 사소한 부탁입니다.”
“……단순히 읽으실 용도입니까?”
석현 아저씨의 얼굴에서 힘이 빠졌다. 뭔가 당황한 듯한 표정이다.
“순찬이한테 추천받은 만화가 있는데, 요즘 좀 한가하기도 하겠다. 사이사이 읽으려구요.”
“그, 그렇군요. 도련님께서 만화책을……. 예. 알겠습니다.”
석현 아저씨가 굉장히 복잡한 표정으로 허허 웃었다.
“마법밖에 모르시던 하율 도련님께서 다른 것에 흥미를…….”
이걸 좋아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분명한 표정으로 허어. 하는 숨을 내쉬었다.
* * *
미미르의 서에 들어온 나는 곧바로 미미르에게 암시의 흔적을 발견한 건에 대한 얘기를 했다.
“오케이. 그럼 내 가설에 조금 더 신빙성이 생겼네.”
얘기를 전해들은 미미르가 손가락에서 딱 소리를 내며 쾌재를 불렀다.
자신의 가설이 옳았다는 데서 오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는 듯한 표정과 동작이었다.
“그럼 계승자의 누이가 퇴원을 한 이후, 하루 내지 이틀 사이가 결행일일 확률이 높겠네.”
만약 미미르의 가설대로, 누님에게 걸려 있는 암시가 ‘나를 어딘가로 유인해라.’라고 한다면,
이 암시가 발동하는 것은 필히 누님이 퇴원한 직후가 될 것이다.
입원해 있는 동안은 나를 따로 불러내는 게 불가능할 테고.
미국에 있는 동안 일을 처리해야 할 테니, 너무 텀을 오래 둘 수도 없을 노릇.
고로, 신지한의 작전 결행 예상일은 누님이 퇴원한 날로부터 1~2일 이내라는 말이 된다.
“퇴원 예상일은 언제야?”
“오픈 레이드 재경기 날.”
“뭐야. 그럼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어. 퇴원한 날 당일 밤, 혹은 다음날 아침. 둘 중 하나 밖에 없어.”
오픈 레이드 재경기는 3일 뒤.
그 다음날인 4일 뒤는 시상식이다.
그렇게 되면 4일차 밤 내지, 5일차 낮에는 필연적으로 귀국하게 된다.
내가 미국을 뜨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결행일은 3일 뒤, 혹은 4일 뒤가 될 수밖에 없다.
“좋네. 준비 시간도 충분하고, 결행일의 오차가 12시간 내외라서, 준비하기도 쉬울 거고.”
카운터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내 예상이 틀렸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에 따른 준비도 해 둬.”
“그건 괜찮아. 누님이 암시에 걸려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이쪽이 무조건적으로 유리하니까.”
이번 작전의 요지는 내가 누님을 신뢰하는 것에 있다.
내가 누님을 의심하고 있는 이상, 신지한의 작전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하기야. 계승자의 누이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대응을 바꾸면 되는 거긴 하니까.”
“그치.”
뭐가 됐던 누님이 ‘암시’에 걸려 있다는 걸 알게 된 지금.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해 졌다.
“이제 관건은 어떻게 위험을 타파하느냐 따위가 아니야.”
미미르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얼마나 강력한 카운터를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
“빙고.”
나도 그런 미미르와 눈을 맞추고 웃었다.
“그럼 일단 그 은신 마법 특화 마법사랑 네 아버지를 꼬시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네.”
“안 그래도 아버지께 연락 드려놨어.”
신지한이 세아 누님을 이용해서 무슨 짓을 하려는지, 그 모든 것을 아버지와 석현 아저씨에게 전한다.
그래야 신지한을 확실히 붙잡을 수 있다.
우웅!
그 순간, 도서관 전체가 은은하게 떨렸다.
누군가가 문을 노크하거나, 초인종을 누를 시에 책이 떨리도록 설정해 놓은 알람 마법이 발동한 것이다.
“오셨나보다.”
석현 아저씨가 오신 모양이다.
“그럼 갔다 올게. 슬슬 아버지도 돌아 오셨을 때고.”
“그럼 좀 걸리겠네?”
이번 일의 심각함을 생각하면 얘기가 길어질 건 필연적이다.
미미르도 그걸 알고 있기에 늦을 거라는 말을 한 것이다.
“아니. 일단은 빨리 돌아 올 거야.”
“왜?”
“너한테 줄 게 있어서. 일단 돌아와서 그걸 건넨 뒤에, 다시 나가서 아버지 방으로 갈 거야.”
한번 돌아오고, 그 후에 다시 아버지와 석현 아저씨를 불러서 얘기를 할 생각이다.
“나한테 줄게 있어? 뭔데?”
“만화책 구해달라며?”
“아.”
미미르가 놀란 표정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벌써 구했어?”
“그럼. 구했지. 누구 부탁인데.”
“계승자…….”
미미르가 조금 감동한 표정이 되었다.
“고마워.”
“뭘 이런 걸로.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바로 구해줄 테니까.”
“응.”
미미르가 환하게 웃었다.
나까지 뿌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만면의 미소였다.
* * *
그 후, 석현 아저씨가 구해 오신 만화책을 미미르에게 건넨 후.
나는 곧바로 아버지와 석현 아저씨를 불러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곧바로 내가 얻은 정보들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허나, 현재 상황을 봤을 때. 지한 형님이 지금 이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처음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둘이었지만, 내 얘기가 이어짐에 따라 표정은 점점 심각해져 갔다.
“고로, 지한 형님의 목적은 저를 따로 유인해내, 세아 누님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뒤에 저를 죽이는 것일 확률이 높다. 저는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세상 복잡한 표정의 석현 아저씨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아버지.
나는 그런 둘을 보며, 마지막 말을 꺼냈다.
“세아 누님이 저를 불러내는 곳으로 모든 전력을 집중시킨다면, 신지한을 확실히 붙잡을 수 있습니다.”
“…….”
“…….”
정적이 흘렀다.
나는 모든 말을 끝내서 더 할 말이 없었고.
석현 아저씨와 아버지는 생각을 정리하느라 말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내려앉은 필연적인 고요함.
나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두 명이 생각의 정리를 마치는 것을 기다렸다.
그렇게 약 3분이 흘러.
“……암시의 흔적을 찾았다고?”
먼저 생각의 정리를 끝내신 듯,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예. 증명하라고 하시면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네가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건 십분 알고 있으니까. 내가 물은 건 네가 암시의 흔적을 찾은 게 참이냐, 거짓이냐가 궁금해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날카로운 눈으로 내 눈을 응시했다.
“암시의 흔적을 찾은 건, 네 눈…… 신안의 힘인가?”
아. 그런 의미의 질문이었구나.
아버지는 내가 암시의 흔적을 찾은 방법을 물은 것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믿을 수가 없군요.”
내 대답에 반응을 보인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석현 아저씨였다.
“어딘가로 인물을 유도한다. 그 정도의 사소한 암시의 흔적까지 놓치지 않는 탐지안이라니……. 이런 기예. 소피아 아네체프리 님도 불가능합니다.”
그렇겠지.
당장 내 ‘신안’의 힘 하나만으로도 찾을 수 없었는데.
소피아 님의 보석안이 찾을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신안은 진정 보석안의 상위 호환이라는 말인가…….”
아버지가 경탄하는 듯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셨다.
“그렇군. 소피아 님은 그걸 알고 계셨기에, 따로 하율이를 만나, 얘기를 나누셨던 것인가.”
아버지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또 다시 1분가량이 흘러.
“……아무튼 상황은 이해했다.”
아버지가 다시 날카로운 표정이 되었다.
“다소 비약적인 추측이 많지만, 현재 상황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신빙성 있는 가설이었다.”
아버지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네 말대로 3일… 내지 4일 뒤. 세아가 퇴원한 직후. 지한이를 붙잡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겠다.”
내 망막에 비친 아버지의 눈동자는 굉장히 복잡한 심사로 빛나고 있었다.
* * *
그 후로,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별다른 일은 없었다.
신지한의 수색은 계속되었으나, 여전히 붙잡지는 못했고.
세아 누님은 여전히 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며.
나는 여전히 훈련에 몰두했다.
지금까지와 여타 다를 바 없는 일과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총 3일이 흘러.
드디어 올림피아드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오픈 레이드 재경기 날이 되었다.
경기 시작 20분 전이지만, 경기장은 이 이상 없을 만큼 조용하다.
당연했다.
이번 오픈 레이드 재경기는 무관중 경기. 관객이 없이 펼쳐지는 경기다.
TV로 송출은 하기에, 해설자들은 있지만, 관중들이 없으므로 스피커를 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관중들이 없기에 소음이 발생할 여지도 없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경기장은 고요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나는 텅 빈 관중석 한쪽 구석 벽에 몸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진짜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일까.
뭔가 시원섭섭하다.
“경기장에 사람이 없으니까 되게 이상하네. 그치?”
그러고 있는 중, 갑작스레 다가온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 이렇게 있으셔도 되는 겁니까?”
사냥개의 단장 샤를.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평소대로 털털한 분위기를 뽐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무관중 경기라 누구 보는 사람도 없고.”
샤를이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를 찍고 있는 CCTV도 미리 처리해 뒀거든.”
이미 사전 작업이 다 끝났구나.
“철두철미하시네요.”
“뭐, 20년 넘게 마담과 비밀친구를 하고 있다 보니, 어련히 몸에 밴 스킬 같은 거야.”
샤를이 ‘음하하’ 하면서 과장스럽게 웃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어허. 서운하게 왜 이러실까. 우리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사이야?”
“그렇진 않습니다만…….”
나는 하늘에서 시선을 떼고, 샤를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3일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일까요. 기척을 감추고 제 주위를 조용히 돌고 계시기만 하시던 분이 이렇게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면,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알고 있었어?”
“예.”
샤를이 ‘흐응’ 하며 비음을 흘렸다.
“역시 눈이 좋긴 하구나. 김석현도 눈치 못 챘는데.”
“샤를 단장님의 기세가 워낙 특출 나야죠. 멀리서도 훤히 보이더군요.”
“내 기세라고? 그런 걸 뿜어낼 만큼 어리숙한 사람 아닌데.”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내 마나는 대상의 주위 마나를 ‘성질’로서 파악한다.
그런 만큼 대상 마나가 특출 날수록, 더 눈에 잘 보인다.
“그냥, 제 눈에만 보이는 게 있어요.”
“뭐, 너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거야?”
다른 세계를 본다.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보셔도 됩니다.”
“뭐야 그게. 사기잖아.”
“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보통은 그 정도 거리를 두고 계시면 잘 안 보이거든요. 샤를 단장님의 기세가 워낙 야생스럽다고 해야 할지…… 도시랑 너무 안 어울리는 기세라서, 유독 눈에 띄는 것뿐입니다.”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은신은 너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말이잖아.”
“예. 그렇죠.”
“그럼 사기 맞잖아.”
“음. 샤를 단장님 한정으론 사기라고 해도 되긴 하겠네요.”
“……씁.”
샤를이 ‘진짜 귀찮은 눈이네.’라는 표정으로 뒷목을 벅벅 긁었다.
“그래서 저한테 할 말이 있어서 오신 게 아니라는 겁니까?”
“……아니. 맞아.”
샤를이 뒷목을 긁던 손을 다시 원위치로 되돌리고,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너. 지금 뭔가 준비하고 있지?”
“…….”
나는 침묵했다. 이번 일은 철저히 ‘마도신가’ 내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다.
샤를이고 소피아 님이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대답할 수 없다 이거야? 이거 서운한데. 이쪽은 비밀을 모두 공유했는데.”
“……지극히 사적인 일이라서요.”
“뭐, 좋아.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고 있으니까. 네가 왜 대답을 꺼리는지도 대충 이해되고.”
……무슨 상황인지 안다고?
나를 따라다니며, 뭔가 정보를 얻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블러핑인 걸까.
“흑색 마탑과 관련된 일이잖아?”
샤를의 기세가 변했다.
아까 전엔 다소 길들여진 늑대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야생 본연의 늑대.
아니, 펜릴과 같은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다.
“나도 껴 줘.”
모두 씹어 삼키겠다.
그런 의지로 빛나는 살기등등한 눈빛과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