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18)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18화(18/466)
밤새 이드레드의 서를 읽는 데만 전념하다보니 어느덧 아침이 되어 있었다.
“……아, 다음 페이지 없나.”
다음 페이지는 이제 백지다.
더 읽고 싶은데 더 읽을 수가 없다.
이렇게 슬픈 일이 또 있을까.
“3서클…….”
31p 이후를 읽으려면 내 경지가 3서클이 되어야 한다.
[만약 네가 완벽하게 ‘공진(共振)’의 경지에 들어섰다면, 210페이지에 손을 대고 공진의 묘리대로 마나를 움직여라.] [그곳이 두 번째 시험의 페이지다.] [혹여나 공진이 조금이라도 미흡하다면, 두 번째 시험의 페이지는 작동하지 않으니 주의 바란다.]그리고 3서클이 되기 위해선, 2서클 마스터의 징표인 공진을 극한까지 다듬어야 한다.
“얼마나 걸리려나.”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두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 도전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나는 공진을 마스터하지 못했다.
아니, 마스터는커녕 아직 제대로 된 실마리도 못 잡았다.
‘심의의 고리랑 공명의 고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라니…….’
이론은 확실히 머릿속에 박혀 있는데, 이걸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서로 다른 엔진 두 개를 앞에 딱 두고, ‘자, 이제부터 엔진을 합쳐 보렴.’ 이러는 느낌이다.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건 진짜 자료 조사가 좀 필요하겠는데.’
아직 애매한 이론이 있어서, 이쪽을 조금 더 본격적으로 조사해 보긴 해야 할 것 같다.
도서관부터 뒤져봐야겠네.
‘아, 일단 알바부터 갔다 와야지.’
현재 시간은 오전 11시.
알바를 가야 할 시간이다.
마도신가에 복귀한 이상 금전적인 압박은 사라졌으므로 알바를 더 할 이유는 없어졌지만.
사전에 미리 하기로 한 근무는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
‘마지막 인사도 드릴 겸.’
나는 그렇게 마지막 아르바이트를 위해 기숙사를 나섰다.
* * *
“그럼 다음에 또 보자!”
“하율아 안녕~ 학교생활 열심히 하고~”
“예.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오후 10시 20분.
마지막 알바를 마치고 같이 일하던 형 누나들이랑 늦은 식사까지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5월 초의 나름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기는 중, 기숙사 인근 편의점 앞에서 뜻밖의 인물과 마주쳤다.
“아델라?”
“앗.”
아델라 스테어트.
잠시 요 앞 편의점에 들른 것일까. 그녀는 한손에 CS24라 적힌 봉투를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델라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야식?”
“아뇨. 그, 저녁을 깜빡하고 못 먹어서…….”
“아하. 마법 공부에 집중하다가 식사 때를 놓쳤구나.”
“……예.”
아델라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나도 자주 까먹는데.”
“정말요?”
“어. 가끔 괜찮은 고서적을 찾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다가 눈치 채면 새벽이더라고.”
“그쵸 그쵸?”
아델라가 매우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넌 나은 편이야. 나는 저녁 시간 놓치면 그냥 귀찮아서 아예 거르거든.”
기숙사는 배달 음식이 금지고 늦은 시간에 저녁을 때우려면 편의점을 나오는 수밖에 없는데.
나오는 시간이 귀찮아서 보통 저녁은 거르곤 했다.
……사 먹는 돈이 아깝기도 했고.
“그러면 안 돼요. 밥은 제대로 챙겨 드셔야 해요.”
“응?”
“안 먹으면 머리도 굳고, 근육도 안 붙고, 영양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한창 크는 청소년 시기에 치명적이에요.”
“…….”
맞는 말이다.
특히나 우리 나이에 식사를 자주 거르는 건 좋지 않다.
맞는 말이긴 한데…….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아?”
10시에 편의점 음식이 담긴 비닐봉투를 들고 있는 사람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닌데.
“저는 늦게라도 챙겨 먹으니까요.”
“……자랑이다.”
나나 쟤나.
내가 픽 웃으며 말하자, 아델라도 살포시 웃었다.
“하나 드실래요?”
그리곤 봉투에서 바나나우유를 하나 꺼내 내게 건넸다.
“땡큐.”
아델라도 남은 하나의 바나나우유를 꺼내서 빨대를 꽂았다.
그리곤 천천히 음미하듯이 마신다.
아주 행복해 보인다.
“여전히 마실 건 이거만 마셔?”
“네. 인류가 만든 최고의 음료니까요.”
“거기까지 대단한 우유였어, 이게?”
맛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만.
나도 적당히 빨대를 꽂아 인공색소 특유의 단맛을 즐겼다.
“주말에 기숙사에만 있었나 봐?”
“네. 중간 종합 평가 영상들도 전체적으로 확인할 겸. 할 게 많아서요.”
“집에서 뭐라고 해서 그런 거 아니고?”
“그것도 있고요.”
아델라와 어린 시절부터 교류가 있었던 만큼, 아델라의 부모님이 어떤 성격인지도 안다.
16강에서 나한테 진 걸로 엄청 잔소리를 했을 거다.
아델라는 그게 싫어서 기숙사에 남은 거고.
“당신은……. 집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어. 어제 잠깐 갔다 왔어.”
“다시 마도신가로 복귀하시는 건가요?”
“이미 했어.”
아델라의 눈썹이 아주 살짝 치켜 올라갔다.
놀라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기뻐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마법에 관련됐을 때 말고는 표정에 변화가 너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다행이네요.”
“다행이지. 2학년부턴 돈도 엄청 들어갈 텐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었거든.”
2학년 수업부터는 실전 훈련이 늘어나기에, 교재비라든지 장비 값 등 엄청난 돈이 깨진다.
절대 내 알바비로 충당할 수 있을 만한 금액이 아니다.
이게 해결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당신의 꿈은…… 지금도 여전히 마도신가의 주인이 되는 건가요?”
“뜬금없이 뭐야?”
“아뇨. 그냥…….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서요.”
예전에 했던 말?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네. 그냥. 지나가는 말로.”
“……그랬나?”
기억에 없는 것 같은데.
너무 찰나의 일이라 기억에 없는 건가?
“실례되는 질문이었다면, 굳이 대답해 주지 않으셔도 되요.”
내 침묵을 곤란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인지 아델라가 곧장 말을 물렸다.
“아니야. 실례될 게 뭐 있어.”
내 꿈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숨길 이유가 없다.
“음. 그때랑 조금 달라지긴 했지?
“……달라져요?”
아델라가 조금은 실망한 기색이 되었다.
“역시…… 현실과 타협하신 건가요?”
“응?”
“가주가 되는 게 힘드니까, 현실적인 선으로 목표를…….”
“잠깐만.”
아델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반대야 반대.”
“반대요?”
“어. 목표가 달라졌다고 말한 건, 현실과 타협했기 때문이 아니야.”
“그럼……?”
고개를 갸웃하는 아델라를 바라보며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내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어. 마도신가의 가주가 되는 건 지금에 와선 그냥 경유지일 뿐이야.”
“경유지요?”
“그래. 경유지. 거쳐 지나가는 곳.”
내 꿈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마도신가의 주인이 되고, 최고의 마법사가 돼서, 모든 마탑의 위에 서는 것. 그게 지금 내 최종적인 목표야.”
아델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눈에 띄게 놀란 표정이다.
“모든 마탑을 아래에 둔다. 그건 또 상상을 초월하는 목표네요.”
그리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소를 짓는다.
“따라가는 입장에서 조금 곤란할 정도로요…….”
앞으로의 일들이 기대돼서 참을 수가 없다는, 그런 미소였다.
* * *
한편, 그 시간.
마도신가의 저택.
신지한과 신세아는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신지한이 검지로 의자 옆면을 톡톡 두드렸다.
신지한이 생각을 정리할 때 자주 하는 버릇이다.
“……하율이에게 허튼 수작을 부리지 말라고?”
신인혁은 신지한을 비롯한 자식들에게 신하율에게 간섭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신하율은 아직 미성년자고, 가문에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후계자 경쟁에 낄 만한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였다.
1년간의 공백기도 있고, 적어도 2달 정도는 가문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할 것 같다.
신인혁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게 말 그대로 명목상의 이야기인 건, 마도신가의 개도 알 거다.
“왜 그런 말을 하신 걸까.”
신인혁이 고작 그런 이유로 후계자 경쟁에 끼어들 리가 없다.
복귀한지 얼마 안 된데다가 미성년자니까 유예를 주자?
평소의 신인혁이라면 1년의 공백기를 만든 것도 후계자로서의 자질 부족이 초래한 사태라며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했을 것이다.
미성년자라는 것도 그렇다.
어리다고 보호받는 건 인공지능을 각인하기 전인 17세 전까지다.
18살인 신하율은 그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오빠. 설마 아버지가 하율이를 후계자로 점지하신 건 아니겠지?”
신세아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신인혁의 행동은 누가 봐도 신하율을 편애하는 것이었다.
신하율을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특례는 있을 수 없다.
신세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건 아니야.”
하지만 신지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만약 그랬다면 1년 전부터 노골적으로 행동하셨겠지. 이제 와서 이러실 이유가 없어.”
1년 전의 신인혁도 신하율을 편애하긴 했어도, 후계자로 정하진 않았다.
그런 신인혁이 이제 와서 신하율을 후계자로 점지했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높지도 않다.
“그럼 뭐야? 왜 뜬금없이 하율이한테 간섭하지 말라고 하신 건데?”
신세아가 앙칼진 목소리로 짜증냈다.
“일단 아버지가 하율이한테서 뭔가를 보신 게 아닐까 싶은데.”
“뭔가라니?”
“그거야 모르지. 내가 아버지의 눈을 가진 게 아니니까.”
마도신가를 이 자리까지 끌어 올린 건, 전적으로 신인혁의 눈썰미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튼 뭔가 가능성을 보고, 조금 더 지켜 볼 필요가 있다. 그런 판단을 내리신 게 아닐까 싶어.”
신인혁은 신하율을 편애하기도 했으니, 조금 더 너그럽게 봐 준 면이 있을 수도 있고.
“하율이의 마법 체계가 신기하니까. 조금 더 지켜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셨을 수도 있고.”
마법사는 모두 탐구자들이다.
특히나 신인혁 같은 고위 마법사들은 그런 성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신하율의 특이한 마법 체계를 보고 흥미를 느낀 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신지한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하율이가 아버지에게 뭔가 거래를 제시했을 수도 있겠네.”
“무슨 거래?”
“그건 나야 모르지. 말했듯이 이건 그냥 추측이야.”
신지한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율이의 가문 복귀 속도가 너무 빠른 것도 그렇고. 이번 2달의 보호관찰도 그렇고. 도저히 아버지가 혼자 결정을 내린 것처럼은 안 보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 거지.”
너무 빠르고 너무 단호하다.
이번 일 처리에 신하율이 껴 있을 확률은 낮지 않다.
“아니면 뭐.”
신지한이 다리를 반대로 꼬고, 뒷목에 깍지를 꼈다.
“세 개 다일지도 모르고.”
“……뭐야 그게.”
답답하다는 표정의 신세아를 바라보며 신지한이 싱긋 웃었다.
“아무튼 확실한 건, 아버지가 하율이를 후계자로 정한 건 아니란 거야.”
분명히 환한 미소였음에도, 묘하게 거북함이 느껴지는 그런 미소였다.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2달 정도는 지켜보는 수밖에. 아버지한테 밉보일 수는 없으니까.”
“……아, 짜증나. 감시로 붙이려던 애들 다 돌아오라고 해야겠지?”
“그림자한테 안 걸릴 자신이 있으면 계속 붙여둬도 되고.”
그림자.
신인혁의 직속 정보 부대로, 마도신가의 암부 격 단체다.
잠입부터 정보수집, 호위까지 못하는 게 없다.
그들의 감시망을 뚫고 신하율에게 눈을 붙여두는 건 불가능하다.
“……아, 진짜 짜증나.”
신세아가 히스테릭하게 인상을 찡그리며 폰을 들었다.
“나야. 하율이 감시하는 거 중지하기로 했으니까. 준비하던 거 다 멈추고 철수해.”
신지한은 그런 신세아를 뒤로하고,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2달이라. 세아는 그렇다치고, 나까지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좀 그런데 말이지.’
만약 신지한의 예상대로, 신하율이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신인혁에게 거래를 제시한 거라면 이대로 자유롭게 풀어 줘서는 안 된다.
‘흑색 마탑에 의뢰를 해 볼까.’
흑색 마탑이라면 그림자의 눈을 피해서 잘 해결해 줄 것이다.
‘만약 걸려도, 내가 했다는 증거는 남지 않을 테고.’
신지한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오늘, 간만에 비밀 회선을 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