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190)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190화(190/466)
정적이 흘렀다.
섀도우의 표정이 꽤나 심각하다.
딱히 내 태도가 불쾌해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아니다.
그냥 내 태도를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거다.
내가 했던 말을 되뇌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중이니까.
나는 굳이 섀도우를 닦달하지 않고 천천히 기다렸다.
만약 이게 대등한 입장에서 실시하는 ‘거래’였다면 굳이 기다려 주진 않았을 거다.
상대가 평정심을 되찾기 전에 몰아붙이는 건 협상의 기본이니까.
하지만 지금 나와 섀도우는 빈말로라도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갑은 나, 을은 섀도우.
이번 거래에 있어 섀도우는 압도적인 약자다.
섀도우는 절대 내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
‘거래에 있어 간절함이란 패배의 또 다른 이름일 뿐.’
간절하기에 다소 불리한 조건이라 해도 거절할 수 없다.
지금 상황이 바야흐로 그렇다.
섀도우는 정보를 먼저 달라는 내 제안을 대놓고 거절할 수 없다.
‘나는 천천히 기다리면 돼.’
섀도우가 모든 생각을 끝마칠 동안 그저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내 말을 곱씹으며, 나에 대한 환상을 품고, 기대감이 증폭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면 될 뿐이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거다.
말했듯이, 섀도우는 간절하니까.
꿈에 그리던 희망이 눈앞에 있으니까.
‘길어야 1분.’
섀도우는 1분 이내에 모든 생각의 정리를 마치고,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분명 첫 멘트는 이렇지 않을까.
‘초장부터 완전히 말려들었다.’
“……첫 매듭부터 완전히 잘못 묶었군.”
빙고.
“일단, 아까 했던 말부터 철회하지. 너도 흑마도왕, 그와 마찬가지다.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없는 곳에 서 있는 괴물이다.”
섀도우가 다소 평온해진 표정으로 픽 웃었다.
“축하한다. 괴물. 너는 흑마도왕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다.”
섀도우가 과장된 동작으로 정확히 세 번 박수를 쳤다.
“……괴물이라. 묘하게 기분이 나쁜 칭찬이네요. 괴물이라니. 다른 좋은 표현도 많은데 말이죠.”
“흠. 괴물이란 명사는 비난으로 들릴 법한 표현이었나. 그렇군. 기억해 두겠다.”
섀도우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아니, 시각이 보일 리가 없으니만큼 응시하는 척을 하는 거라고 해야겠지.
“이해해라. 이런 성격이라서 말이지.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비위를 맞춰 볼 기회가 없었다.”
묘하게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뭐, 그건 솔직히 어찌됐던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중요한 건 내가 먼저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거겠지.”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제가 제시하는 필수 조건은 당신이 먼저 정보를 제공할 것입니다.”
“흠. 나에 대한 신뢰가 아예 없군.”
“당연한 소릴 하시는군요. 지금 그 저주 때문에 필사적인 상태의 당신이라면 모를까, 모든 주박에서 해방된 당신을 어떻게 믿죠?”
“정론이군.”
섀도우가 큭큭 웃었다.
“정론이니만큼, 그 말은 그대로 네게 돌려주겠다.”
섀도우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흑색 마탑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지금의 너라면 모를까, 필요한 정보를 듣고 난 뒤, 내게 용무가 없어진 너를 어떻게 믿지?”
“글쎄요. 당신 같은 악인 보단 수백 배는 더 믿을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너희의 신뢰와 선의는 오로지 선(善)에 의의를 두고 행해지는 것. 악인과의 약속을 깨는 건 반대로 신뢰로서 취급되지. 안 그런가? 위선자?”
섀도우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그대로 답했다.
화술이 꽤나 능수능란하다.
만약 평범한 거래였다면, 꽤나 곤욕을 치뤘을 지도 모르겠다.
“양 측 다, 양보할 생각은 없다라…….”
하지만 이번 평범한 거래, 대등한 자들 간의 협상이 아니다.
“그럼 이 협상은 결렬이군요.”
“…….”
누누이 말하지만 이번 거래는 이미 우열이 정해져 있다.
상대가 제 아무리 화려한 말재간으로 나를 번롱하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답은 정해져 있다.
“……성미가 상당히 급하군.”
“쓸데없이 시간을 날리는 건 딱 질색이라서요.”
“쓸데없는 시간이라.”
섀도우가 작게 웃었다.
“그렇군. 말로 압박하다보면 조금은 흔들릴 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만, 역시 헛된 희망이었나.”
작게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내게 시선을 집중한다.
“좋다. 그렇다면 잡설은 모조리 배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만 말하겠다.”
섀도우의 기세가 무거워졌다.
“네 제안대로, 내 쪽에서 먼저 정보를 제공하겠다. 간절한 건 이쪽이니만큼, 내가 먼저 양보를 해야겠지.”
“흐음. 당신이 더 간절하다고 그렇게 대놓고 말해도 되는 겁니까? 훨씬 불리해지실텐데요.”
저런 말을 한다는 건, 협상에서 이미 지고 들어가겠다는 말과도 같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놈에게 알고 있는 말을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섀도우가 코웃음을 쳤다.
“이 거래의 우열은 이미 정해졌다. 양 측 모두 그걸 알고 있지. 그렇다면 굳이 감출 이유가 있을까? 없다. 아니. 오히려 감추지 않는 게 이득이라 할 수 있다. 약자임을 선언하면, 약자 나름대로의 방식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
약자의 거래 방식.
그 말로, 다음 섀도우가 할 말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이번엔 약자인 이쪽에서 제안하겠다. 내가 먼저 정보를 제공하긴 하겠지만…….”
“모든 정보를 지금 당장 제공해 줄 수는 없다?”
나는 섀도우의 말을 잘라내고, 이어 말했다.
“정답이다.”
섀도우가 다시금 두 번 박수를 쳤다.
“나도 나름의 안전장치가 있어야 하니 말이지. 정보는 절반만 제공하겠다.”
“그리고 남은 정보는 제가 당신의 그림자를 소멸시킨 뒤에 건네겠다. 이거군요.”
“그래.”
먼저 양보를 하되, 반만 양보하겠다. 이런 뜻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네가 내 그림자에 대한 걸 알고 있는 것과 별도로, 내 그림자를 지울 수 있다는 확신, 혹은 가능성을 보여 줄 것. 그게 이번 거래의 대전제다.”
상당히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이상의 협상은 없다. 이게 최대한의 양보다. 만약 네가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협상은 그대로 결렬이다. 나도 바보는 아니라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모든 걸 퍼주는 호구가 될 생각은 없다.”
섀도우의 표정과 몸짓에서 결연한 의지가 전해져 온다.
이 이상의 양보는 없다고 전신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대답은?”
만약 평범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또 추가로 무언가를 얻으려 했을 테지.
상대가 지고 들어오는 걸 보면, 충분히 더 조건을 후려 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악수다.
“좋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좋은 수는 협상하는 것도, 떠보는 것도 아닌 단순한 긍정이다.
“제가 생각하고 있던 거래 조건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그렇게 하시죠.”
이미 섀도우는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 이상 바라는 건 욕심일 뿐이다.
“……역시 영리하단 말이지. 거래하기 딱 좋은 상대야.”
잠시 뜸을 들이고 내 표정을 살피던 섀도우가, 픽 웃으며 그런 말을 했다.
“그럼 거래는 성립됐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좋습니다. 악수는 따로 청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손을 맞댄 상황에서 반격하는 건 힘들 것 같아서요.”
“끝까지 철두철미하군. 더더욱 마음에 들어.”
섀도우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럼 일단 저부터 조건을 수행하겠습니다. 미호야.”
나는 품 안에서 계속해서 섀도우를 경계하고 있던 미호를 불렀다.
“아주 조금만. 대충 오른손을 잠식하고 있는 그림자만 먹어 치워.”
미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을 내미시죠.”
“……그래.”
‘먹어 치운다?’라고 중얼거리던 섀도우가 천천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섀도우가 내민 손을, 미호가 그대로 덥썩 물었다.
파아아아아앗-!
그 순간,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섀도우가 만든 미약한 그림자 결계 내부를 가득 채운 찬연한 빛.
그것이 단숨에 미호의 입 쪽으로 집중되었다.
아니, 섀도우의 손에 집중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
그 순간, 섀도우의 눈이 커졌다.
뭔가를 느낀 듯,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사아아…….
빛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이내 거의 모든 빛이 사라졌을 때.
“큽!”
섀도우가 기성을 내질렀다.
찡그러진 표정과 움찔거리는 신체 등등.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림자를 제거하는 데 아픔 같은 건 느껴지지 않을 텐데.’
왜 아파하는 거지?
섀도우가 통증을 느끼고 있는 원인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
까드드득!
미호가 그대로 섀도우의 오른손을 잘근잘근 씹고 있던 것이다.
“미호야!”
섀도우가 어지간히도 싫은 듯, 내 만류에도 물고 있는 손을 놓지 않았다.
“우리 미호 착하지? 놔 주자.”
내 간절함이 전해진 것일까.
미호가 진짜진짜 싫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뗐다.
섀도우의 오른손엔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피가 조금 나긴 했지만, 그리 심각한 상처론 보이지 않는다.
미호가 나름 힘 조절을 한 모양이다.
하기야, 미호가 전력으로 깨물었으면 케이크를 베어 무는 것처럼 도륙낼 수 있었을 테니.
“…….”
섀도우가 자신의 오른손을 보며 눈을 파르르 떨었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거린다. 그렇게 아팠던 것일까.
“그, 죄송합니다. 우리 애가 좀…….”
나는 그런 섀도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사과를 건넸다.
“…….”
그러나 섀도우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두 눈에 눈물을 매단 채, 떨리는 입술로 멍하니 자신의 손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아파…….”
목소리도 마구 떨린다.
“아파…… 아프다고…….”
자신의 오른손을 부여잡고, 고개를 떨궜다.
푹 숙인 고개. 앞머리로 가려진 눈동자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나온다.
‘아.’
그제야 섀도우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촉각을 되찾은 게 기쁜 거야.’
섀도우는 움브라의 그림자에 모든 감각을 빼앗겼다.
섀도우는 오감 전체를 빼앗긴 상태다.
그런 섀도우가 통증을 통해 촉각을 자각했다.
아픔이긴 해도, 감각을 느꼈다.
그게 기쁜 거다.
이해한다.
당장 나만해도, 이전 엘레나 님과의 수행 중 오감을 잃었을 때.
상당한 지옥을 경험했었으니까.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촉각만이 돌아왔다면, 나도 섀도우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아, 아……. 안 돼……. 사라지지 마…….”
이내 그림자가 다시 오른손을 잠식하기 시작하며,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한 듯.
섀도우가 간절한 목소리로 떠나지 말라 중얼거렸다.
꽤나 처연한 목소리였다.
“…….”
이내 완전히 통증이 사라진 듯.
섀도우의 행동도 멈췄다.
나는 한참 동안 조용히 섀도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꽤나 흔들렸으니만큼, 정신을 다잡을 때까지 마땅한 시간이 필요할 테지.
“……못 볼 꼴을 보였군. 잊어라.”
그렇게 약 3분이 흘러.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은 섀도우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수치심에서 비롯된 떨림이었다.
“그림자를 통해서 오감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통증을 느꼈다는 게, 그렇게까지 감동할 일인가요?”
“……내 그림자에 대해서 정말 많은 걸 알고 있군. 그런 것까지 알고 있나.”
“예. 아마 당신보다 더 잘 알면 알지, 모르진 않을 겁니다.”
그림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건 비단 시각과 청각만이 아니다. 촉각 같은 것도 그림자가 흡수한 충격량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확실히 오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섀도우가 살기등등한 눈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그것뿐이다. 가짜는 가짜일 뿐.”
섀도우가 그대로 주먹을 꽉 쥐었다.
“차라리 간접적으로도 느낄 수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분노의 움켜쥠.
세상 모든 게 원망스럽다는 듯, 두 눈동자는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후.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지. 어차피 더 설명해 봐야 이해할 수도 없을 테니.”
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아예 화제를 끊어 버렸다.
그리곤 다시 본론을 꺼낸다.
“네가 정말 내 그림자를 제거할 수 있다는 건 알았다. 조건은 충족되었다.”
섀도우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다음은 내가 제시한 조건을 수행할 차례로군.”
섀도우가 제시한 조건.
흑색 마탑에 대한 정보 제공.
나는 섀도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과연 어떤 정보가 나올까.
“원래는 이 얘기는 나중에 할 생각이었다만……. 생각이 변했다. 이 정도로 확실하다면, 네 신변에 위험이 생길 만한 일은 미연에 차단하는 게 나을 테지.”
“……신변의 위험?”
“그래.”
섀도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신하율. 너는 현재 흑색 마탑 내부에서 특 S급 위험인물로 지정되어 있다.”
내 눈이 날카로워졌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