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24)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224화(224/466)
“그러니까. 그냥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네.”
“따로 멘탈이 깨지거나 한 게 아니라?”
“네.”
“…….”
평소와 똑같은 표정.
평소와 똑같은 대답.
아델라는 아주 아주 멀쩡했다.
“그럼 왜 전화는 안 받은 거야?”
“그, 폰은 집에 두고 왔어요. 자꾸 모르는 사람들한테 전화오고 그래서…….”
“언론사?”
“네.”
“……그렇구나.”
안 그래도 정신없는 상황에서, 자꾸 언론사에서 연락이 오면, 나라도 폰을 두고 집을 나설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연락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던 거 아냐?”
“…….”
아델라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머뭇거렸다.
손가락을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면서 내 눈을 봤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를 반복한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고 해야겠다 싶다가도. 괜히 원망스럽고. 원망할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마음은 정리가 안 되고…….”
원망.
내가 위상현을 죽인 걸 말하는 걸 테지.
복수를 하지 못하게 한 내가 미웠던 걸 테지.
“왜 그렇게 마음대로 나를 판단하는 걸까 싶어서 화가 나다가도. 맞는 걸 알아서 또 우울해지고…….”
사건 당시, 내가 아델라에게 했던 말은 말 그대로 쓸데없는 참견이었다.
아델라의 입장에서 자존심이 상할 만한 말들이 많았을 테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또 나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생각해 주고 있었구나, 싶어서 고맙고……. 고마운 만큼 또 밉고…….”
복잡한 심사가 그대로 드러나는 행동과 목소리였다.
“그런 생각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당신한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됐어요.”
아버지의 죽음.
그 아버지를 죽인 작은 아버지.
그리고 그런 작은 아버지를 죽인 나.
그 사이에 낀 아델라.
슬픔에 번민하고, 분노에 사로잡히고, 탈력감에 사로잡히고.
아델라의 고뇌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연락 못 드렸어요.”
“……그래.”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지금은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이 호텔에 처음 발을 옮긴 첫 날에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피폐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때의 아델라라면 내게 연락을 하길 꺼려할 법도 하다.
“그럼 지금은 좀 괜찮아 졌고?”
“네. 지금은 다 훌훌 털어냈어요.”
아델라가 다시 나와 시선을 맞췄다. 아델라의 두 눈동자 너머로, 결의와 다짐이 엿보였다.
확실히 어느 정도는 마음을 다잡은 듯하다.
“그래. 털어냈으면 됐어.”
뭐가 됐던 좋은 일이었다.
“그럼 훈련도 다시 나오겠네?”
“네. 마침 오늘부터 나가려고 했어요. 컨디션도 어느 정도 회복됐고요.”
그러고 보니, 아델라는 운동복 차림이었지.
이 호텔 지하에는 개인 단련실이 있으니까, 거기서 훈련을 하고 온 것이리라.
“아직 다 회복된 게 아니면, 조금 더 쉬어도 돼.”
“아뇨. 괜찮아요. 확실히 베스트 컨디션은 아니지만……. 훈련해야죠. 월반 시험이 코앞이니까요.”
아델라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 활활 타오르는 눈빛이었다.
다만, 이전처럼 찬연한 빛이 느껴지는 열정 어린 눈빛은 아니었다.
‘복수심…….’
현재 아델라의 의지를 활활 불태우고 있는 장작은 복수심이다.
이전의 호승심, 상승 욕구, 성취감을 원료로 쓰던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를 만도 하다.
‘뭘 생각하고 있는지, 대충 알 거 같네.’
월반 시험에 합격해서, 신비위가를 무사히 물려받고. 그 후에 흑색 마탑 놈들의 소탕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겠다.
대충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러면, 조급해 하는 게 아닐까 걱정되는데.’
나는 그런 걱정을 하며, 슬쩍 화두를 던졌다.
“그래도 무리하면 안 좋으니까. 컨디션 회복 위주로 커리큘럼을 짜 볼게.”
“훈련 일정에 관한 건, 전부 맡길게요.”
저렇게 대답하는 걸 보니까, 딱히 조급해 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복수심을 마음속 깊이 품고 있으면서도 조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마음의 정리를 끝냈다는 말과도 같다.
‘이러면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아델라는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이제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선, 흔들리지 않을 테지.
망설임이 보이는 걸로 봐선 다소 끙끙대긴 할 테지만.
그래도 흔들리진 않을 거다.
저 눈동자는 그런 눈동자다.
“그래. 준비해 둘게.”
나는 속으로 다시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게요?”
“어. 가야지. 너도 올라가서 씻고, 준비해야 할 거고.”
방금 막 운동을 끝내고 올라 온 애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
땀이 다 말라서, 찝찝할 텐데.
“……예.”
아니나 다를까, 아델라가 자신의 신체를 내려다보며, 찝찝하단 표정을 지었다.
대화에 몰두하고 있을 땐, 눈치 못 챘는데. 자각하고 나니까 상당히 찝찝한 거겠지.
“그럼 1시간 뒤에 보자. 순찬이 한테는 내가 미리 말해 둘게.”
“네.”
아델라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배웅은 괜찮아. 너도 얼른 올라가서 준비해.”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아델라가 다시금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기……. 그러니까, 그…….”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마워요.”
세상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뭐야. 갑자기.”
붉게 물든 뺨.
세상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꼼지락댄다.
“이제 와서 너무 늦은 것 같긴 한데. 늦게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아델라가 깊게 심호흡을 하곤, 다시 나와 눈을 맞췄다.
“정말 고마워요. 제 목숨을 구해주신 것도 고맙고. 절 많이 생각해 주신 것도 고맙고. 절 계속 걱정해 주신 것도 고마워요. 그냥……. 다 고마워요.”
아델라의 얼굴이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갔다.
자기가 낯부끄러운 말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겠지.
“끄, 끝이에요. 그럼 이제 가세요.”
그 직후, 아델라가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저도 이만 올라가 볼게요. 이따, 이따 봐요!”
그리고는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그대로 몸을 180도 돌려, 엘리베이터 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나는 빠르게 멀어져가는 아델라의 등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일주일이 흘렀다.
그 사이에 꽤나 많은 일이 있었다.
아델라의 무사 복귀.
예정되어 있던 토크쇼 출연.
순찬이의 작은 부상.
그 외 기타 등등.
진짜 순찬이가 다쳤을 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시험까지 앞으로 3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씻다가 그대로 넘어진다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다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더라.
만약 청색 마탑주님이 고급 포션을 따로 구해 주시지 않았다면, 월반 시험을 치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양심이 있다면, 순찬이는 매일 청색 마탑주님 방향으로 절을 해야 한다.
아무튼 그렇게 가슴 철렁했던 순찬이의 부상은 작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대망의 월반 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시험 시작 전에 마탑주님한테 인사 좀 드리고 올게.”
“그래. 아홉 번 절 올리는 것도 잊지 말고.”
“……아홉 번으로 충분할까?”
“아예 108배를 하던가. 뭐가 됐던 저번처럼 두 번 하진 마. 또 하면 진짜 난리난다.”
“그건 잊어 달라니까…….”
한국에서 두 번 절을 하는 건, 죽은 사람에게 하는 절이다.
근데 순찬이는 그걸 몰랐던 건지, 아니면 망각했던 건지, 청색 마탑주님에게 했다.
그냥 한 번 절을 드리기는 뭐하니까 두 번 드려야겠다.
대충 이런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
“아니지. 절을 두 번 하는 것까지도 어찌어찌 이해할 수 있는데. 그 후에 반절은 하지 마라.”
“아니, 그니까 그건 실수였다고!”
두 번 절을 하고, 마지막에 고개까지 숙여서 반절까지 올려서.
완벽한 제사식 절이 됐다.
그때, 정수아 비서님 분위기가 진짜 쩔었는데.
지금 당장 저 배은망덕한 것을 죽이겠다는 살의가 공기를 타고 그대로 느껴졌었지.
아마 최고급 마도 동결고를 써도 그 정도로 빠르게 주변을 얼어붙게 하진 못 할 거다.
“……그런 짓을 하셨어요?”
“아니이이! 실수였다니까!”
“실수여도 그건 좀…….”
“그치? 청색 마탑주님이 쟤 부러진 다리 회복시켜 주겠다고 그 비싼 포션까지 구해 주셨는데. 그에 대한 인사라고 한 게…….”
“아, 쫌! 언제까지 우려먹을 건데!”
“너 죽을 때까지?”
“아. 제발.”
순찬이가 시뻘개진 얼굴로 씩씩댔다.
벌써 3번은 써 먹은 거 같은데, 반응이 계속해서 좋다.
역대급 흑역사이니만큼, 두고두고 써 먹을 수 있을 듯하다.
나중에 순찬이가 애 낳으면, 그 애 앞에서도 슬쩍 말해야지.
아주 좋아 죽겠지?
“거래하자. 내가 뭘 해 주면, 그 일 잊어줄래?”
“음. 네가 오늘 희윤 선배한테 고백하면?”
“아니, 그건…….”
“왜? 어차피 근 시일 내에 할 거였잖아. 오늘 응원 오신다고 했으니까. 좋은 모습 보인 다음에 확 질러버려.”
“……그게 나으려나?”
“어차피 고백할 거면 그게 훨씬 낫지. 시나리오 좋잖아.”
“끄응…….”
순찬이가 끙끙대며 고민에 잠겼다.
일생일대의 선택을 눈앞에 둔, 불쌍한 어린양 같은 모습이었다.
“……오케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잘 생각했어.”
“아무튼 더 늦기 전에 마탑주님한테 갔다 올게.”
“그려.”
그렇게 순찬이가 대기실을 떠나고.
대기실엔 나와 아델라, 둘만이 남았다.
“오늘 고백한다고 성공할까요?”
“그거야 모르지. 근데 어차피 1달 내에 할 거였으면, 지금이 제일 나은 건 사실이니까.”
월반 시험에 합격한 직후, 화끈한 고백. 내가 볼 땐 이게 제일 성공률이 높다.
“월반 시험 합격 후라는 눈에 띄는 자리에서 화끈하게 차인 순찬 씨를 놀리시려고 그러시는 건 아니죠?”
“…….”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걸 걸리네.
요즘, 부쩍 눈치가 늘었단 말이지.
“크흠. 넌 컨디션 좀 어때?”
“말 돌리시는 거 보니까 맞나보네요.”
아델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 * *
월반 시험이 끝났다.
“시험 결과. 세 응시자 모두, 마땅한 자격을 지녔다고 판단. 합격을 선언합니다.”
시험 결과는 당연히 전원 합격.
아주 당연한 결과였다.
너무 당연하다시피한 합격이라, 별 감흥도 없었다.
평범한 6서클도 아니고, 바이테너식 6서클인 내가 월반 시험 정도 못 합격할 리가 없으니까.
놀라울 것도 아니다.
……만.
아예 놀랄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이게 되네…….”
세상에 이런 일이.
이렇게 놀라울 수가.
“와, 저 왈가닥이 진짜 연애라는 걸 다 하네.”
마진석 선배가 진희윤 선배를 보며 허허 웃었다.
“그러게요. 저 모질이가 연애라는 걸 다 하네요.”
나도 그 옆에서 헤벌쭉 웃고 있는 순찬이를 보며 허허 웃었다.
“……진짜 이게 되네.”
정말.
정말 놀랍게도 순찬이의 고백은 성공했다.
진희윤 선배는 순찬이의 고백을 그대로 승낙.
둘은 우리 올림피아드 멤버 1호 커플이 되었다.
“에휴. 불쌍한 순찬이. 엄청 고생하겠네.”
마진석 선배가 진심으로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순찬이를 바라봤다.
진심으로 순찬이가 아깝다는 표정이다.
“순찬이 보다 희윤 선배가 더 아깝지 않나요?”
“저 왈가닥이 뭐가 아까워. 순찬이가 훨씬 아깝지.”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 둘은 친남매 같단 말이지.
저러는 것도, 혼자만 누나가 예쁘다는 걸 인정 안 하는 남동생 같고.
“뭐, 서로 좋다니까. 축하하긴 해야겠지만서도. 어우. 아깝다. 아까워.”
마진석 선배가, 아깝다 아까워를 반복하며 희윤 선배와 순찬이 쪽으로 걸어갔다.
그 직후, 마진석 선배가 희윤 선배에게 뭐라 뭐라 중얼거렸고.
“뭐, 이 새끼야?”
그 직후 희윤 선배가 수라나찰 같은 표정으로 변해, 마진석 선배를 비오는 날 먼지 나듯이 패기 시작했다.
“오냐.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야! 타임! 너, 남자 친구가 보는 앞에서 그런 폭력적인 모습을……. 으억!”
“닥치고 죽어!”
그리고 주위에선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여전들 하시네요.”
아델라가 슬쩍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렇지 뭐.”
뭔가 생각이 많아 보인다.
“……이제 어쩌실 건가요?”
“뭘 어째?”
“이후의 계획이요. 계열사를 물려받아, 운영해 보면서 본격적으로 가주가 될 준비를 하시는 건가요?”
“음. 본격적으로까진 아닌데. 슬슬 준비를 하긴 해야지. 내 사람들도 만들고, 입지도 다지고…….”
민혁 형님이 차기 가주 경쟁을 포기하셨기 때문에, 별 다른 경쟁자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미리미리 준비는 해 둬야겠지. 그래야 뒤탈이 없을 테니까.
“바쁘시겠네요.”
아델라가 담담하게 답했다.
“그러는 너는 어쩔 건데?”
“저야 말로…… 바쁘게 움직이게 되겠죠. 어머니가 가주 대리를 맡고 계시는 동안, 제 영향력을 키우고. 입지를 다져서, 모두의 지지를 받는 가주가 될 거에요. 그리고 신비위가의 위치를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보이겠어요.”
아델라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리고 나서, 흑색 마탑 놈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겠죠.”
아델라가 주먹을 꽉 쥐었다.
흑색 마탑 놈들을 떠올리며, 분노를 꾹꾹 눌러 삼키고 있는 듯했다.
“그렇구나.”
내 말을 끝으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물론 정적이라고 해도, 나와 아델라가 조용히 하고 있다는 것뿐.
주위는 여전히 떠들썩했다.
“혹시 내일 시간 좀 내 줄 수 있어?”
“내일이요?”
“어. 할 말이 있어서.”
나는 아델라에게 몸을 돌려, 아델라와 눈을 똑바로 맞췄다.
“네가 앞으로도 흑색 마탑과 계속 싸울 생각이라면, 흑색 마탑과 나 사이에 얽힌 이야기 정도는 알고 있는 게 좋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