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41)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241화(241/466)
그 후.
나는 스텔라에게 꺼림칙한 기운은 기분 탓이었다고 둘러댔다.
내부의 마나들이 고립되어서 마나가 전반적으로 쾌쾌한 느낌으로 변했고. 그 잔재를 꺼림칙한 느낌이라 생각했다.
대충 이런 식으로 둘러댔다.
꽤나 그럴싸한 변명이었기 때문인지, 의심받진 않았다.
의심받긴커녕 놀라기만 하더라.
‘마나의 기운을 그 정도로 세세하게 느끼실 수 있으세요? 와…….’
하면서 눈을 빛내는데.
과장 안 하고, 모시는 신을 바라보는 신도 같은 느낌이었다.
안 그래도 부담스러웠던 눈빛이 한층 더 부담스러워졌다.
그때 그 변명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실수였다.
마나의 분위기를 읽는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나 소피아 님뿐이다.
아델라의 심안이나 김강인 님의 홍옥의 눈도 어느 정도 마나의 특색을 읽을 수는 있지만.
케케묵은 느낌 같은 미세한 성질까지 읽는 걸 불가능하다.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하니, 스텔라가 놀랄 수밖에.
다시 생각해도 변명이 어설펐다.
내가 루안 팔라티아라는 걸 잊고, 신하율 다운 변명을 해 버렸다.
‘뭐, 이 정도로 내 정체가 의심받진 않겠지만…….’
이런 게 쌓이고 쌓이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더 조심해야겠지.
스텔라의 두뇌 회전 능력과 눈치를 생각하면 진짜 조심해야 한다.
한두 번 더 실수 했다가, 그대로 내 정체가 들통 날 수도 있다.
‘당장 오늘 모임에부터 조심해야지.’
현재 시간은 오후 7시.
세인 님의 주최로 열린 다과회가 시작되기 20분 전.
나는 약속 장소인 비노슈가의 저택 앞에서 다시금 마음을 가라앉혔다.
‘세인 님의 예상할 수 없는 성격과 릴리안 님의 장난기를 생각하면, 절대 방심해선 안 돼.’
언제 또 신하율의 모습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후우.”
나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깊게 호흡을 내뱉고 건물로 들어섰다.
* * *
7시 20분.
세인 비노슈 주체의 다과회가 시작됐다.
참가자는 비노슈가와 스테어트가의 두 모녀와 루안 팔라티아까지 해서 다섯.
직사각형의 테이블 중간에 한 명이 앉고, 둘둘이 좌우로 흩어 앉아 있다.
말할 것도 없지만 중앙이 상석이다.
“……정말 이 배치가 맞습니까?”
보통은 주최자인 세인이 가장 상석인 중간 자리에 앉아야 정상이다.
주최자인 것을 빼도, 사회적으로 가장 높은 사람이기도 하고.
이 집의 주인이기도 하다.
만약 소피아 아네체프리가 이 자리에 있었어도, 상석에는 세인 비노슈가 앉았어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배치다.
“부외자인 제가 상석이라니.”
하지만 세인의 통통 튀는 성격은 정상적인 판단을 거부한다.
현재 상석에는 루안 팔라티아. 즉, 신하율이 앉아 있고.
좌우에 두 가문의 모녀가 차례대로 앉아 있다.
“자리에 의미 따위 둘 필요 없다. 나는 그냥 이 자리가 편해서 여기 앉아있는 것뿐이야.”
세인이 세상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신하율을 관찰했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아주 귀엽다는 표정이다.
누가 봐도 놀리려고 저 자리에 앉힌 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익숙해져 두는 게 좋을 거야. 앞으로 자주 앉게 될 테니까.”
“그건 또 무슨…….”
자주 앉게 될 거라는 건 무슨 말일까. 이 다과회가 자주 열리게 될 거라는 말인 걸까?
“데릴사위로 들어오게 되면 자주 앉지 않겠느냐.”
“엄마!”
좌불안석. 세상 불안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스텔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혹시나 싶었더니 역시나였다.
“진정해라. 실력상 루안이 가주가 되는 게 맞아. 데릴사위라고 썩히는 건 인류의 손해야. 네가 그 자리에 앉고 싶다고 해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흐음. 가주를 데릴사위에게 넘긴다는 게 문제인 게 아니었나? 그럼 뭐가 문제지?”
세인이 능글맞게 웃었다.
스텔라가 분통 터져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 진짜.’ 라고 중얼거렸다.
“그 이전의 문제잖아요.”
“이전의 문제?”
“예!”
세인이 턱을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치켜들었다.
“그렇군. 결혼 보다 약혼을 먼저 하겠다는 건가. 요즘 시대에 약혼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만. 굳이 하고 싶다면 반대는 하지 않겠다.”
스텔라가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저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 루안. 저렇게 소녀틱한 꿈만 꾸는 딸이다만, 상관없나? 상관없다면 일단 약혼부터…….”
“엄마아아아!!”
스텔라가 빼액 소리쳤다.
한껏 붉어진 뺨과 귀.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런 스텔라를 보며 세인이 세상 밝게 웃었다.
너무 행복하다는 표정이다.
“농담이다. 농담. 뭘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느냐. 진지한 사람은 인기 없다.”
“씨이…….”
스텔라의 입술이 오리처럼 튀어나왔다.
“맨날 뭐만 하면 농담이래…….”
그리곤 세상 짜증난 표정으로 투덜댔다.
“모녀 관계가 참 보기 좋네.”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웠던 모양인지, 릴리안이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터울 없어 보이는 관계가 참 부러워.”
그리고는 옆에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멍 때리고 있던 아델라를 힐끔 바라본다.
“우리 애는 이래서……. 뭔 얘기를 하던 어지간하면 반응이 없거든.”
“그건 우리 애도 마찬가지긴 하다.”
세인이 픽 웃으며 아직까지 씩씩대고 있는 스텔라를 바라본다.
“그렇겐 안 보이겠지만, 학교에선 얼음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라서 말이야. 표정을 관리하거나 감정을 다스리는 덴 천부적이지.”
“병 주고 약주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맨날 똑같아…….”
스텔라가 여전히 토라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주 제대로 삐진 모습이었다.
“이런 애들이 반응하게 하려면 화제를 잘 선택해야 한다. 반응할 수밖에 없는 약점을 찌르면, 평소 억눌러왔던 만큼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법이다.”
“아하.”
릴리안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런 거 진지하게 가르쳐 주지 말라구요…….”
스텔라는 여전히 툴툴댔다.
“그쪽 애도 우리 애와 그런 면은 비슷해 보이니. 한번 그렇게 접근해 보면 좋을 거다. 그쪽도 찌르면 바로 반응이 올 소재가 하나 있는 것 같던데.”
“아. 하율이?”
아델라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평범하게 신하율의 이름 석 자만 나왔을 뿐인데도 아주 격렬한 반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세인이 혀를 날름거렸다.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벌써부터 반응이 오는군.”
릴리안의 미소도 더 짙어졌다.
“좋은 팁 고마워. 그 팁은 추후, 한국에 돌아간 뒤. 하율이랑 같이 있는 자리에서 잘 써 먹을게.”
“엄마…….”
아델라가 제발 그러지 말라는 표정으로 소리 죽여 소리쳤다.
릴리안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무조건 써 먹어야 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써 먹고 후기도 부탁한다.”
“그럼. 물론이지.”
의기투합.
두 명의 공감대가 완벽하게 형성되었다.
신하율이 속으로 두 명의 명복을 빌어줬다.
그와 동시에 감탄했다.
‘사람을 놀리는 건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오늘 얻은 깨달음은 돌아가면 지순찬에게 꼭 써먹으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그나저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가?”
“응. 아델라를 혼자 둘 수는 없으니까.”
릴리안의 표정에 암운이 가득 꼈다. 위상철의 죽음을 떠올리자 다시금 슬픔이 몰려왔다.
아델라도 마찬가지였다.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렇군.”
세인의 표정도 다소나마 어두워졌다. 제 아무리 제멋대로인 성격을 지닌 여자라곤 하지만, 사람의 죽음에 애도할 줄은 안다.
일순 방 안에 어두운 분위기가 똬리를 내렸다.
“아하하.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자. 이런 좋은 자리에선 좋은 얘기를 해야지.”
릴리안이 곧장 분위기를 바꿨다.
아니, 바꾸려 노력했다.
“…….”
“…….”
하지만 한번 침체된 분위기를 한 번에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뭔가 계기가 필요하다.
그때 세인이 뭔가 떠오른 표정으로 웃었다.
“그럼 쳐진 분위기도 바꿀 겸. 다과상을 내 오기 전에 대련부터 하는 건 어떤가.”
대련.
그 말에 네 명이 각양각색의 반응을 드러냈다.
그 중,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건 단언컨대 스텔라였다.
언제 토라졌었냐는 듯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세인을 바라보며, ‘해도 되는 거예요?’ ‘지금 바로 해도 되는 거죠?’라는 의사를 쏘아낸다.
“루안. 상관없나?”
“좋습니다. 몸을 움직일 거라면, 뭔가를 먹기 전에 하는 게 좋기도 하고.”
신하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분만 괜찮다면, 저도 상관없습니다.”
세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릴리안과 아델라에게 눈으로 물었다.
둘 다 상관없냐는 물음이었다.
“전 오히려 좋답니다.”
릴리안이 싱긋 웃으며 동의했고, 아델라가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게 5명 모두의 승낙이 떨어졌다.
스텔라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내뱉었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루안 팔라티아와의 대련.
스텔라의 심장이 기대감으로 힘차게 박동했다.
* * *
대련은 약 20분가량 이어졌다.
이전, 세인과의 대련이 5분 남짓한 시간 만에 끝난 걸 생각하면,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교관으로서는 나 이상이로군.”
딱히 막상막하의 승부가 펼쳐졌기에 대련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신하율이 전력을 다했다면 대련은 1분 내에 끝났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신하율은 세인과도 20합 가량의 검을 나눌 수 있는 실력자다.
고작 19살 남짓한 유망주가 버텨낼 수 있는 실력이 아니다.
현재 대련이 길어지고 있는 이유는 그냥 신하율이 봐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말인데. 교관으로서는 격이 달라.”
릴리안이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릴리안의 말마따나 실례가 될 수 있는 말이었다.
저런 말을 들으면 보통은 불쾌해 하거나, 심한 경우 분노할 수도 있을 테지.
“내 격이 아득히 떨어진다?”
“응.”
하지만 세인은 그닥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평소엔 말을 굉장히 아끼더니, 이런 땐 또 과감하군.”
“과감하고 뭐고, 너도 나랑 똑같이 생각하고 있잖아.”
불쾌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개운한 표정이다.
“자존심이 상해서 긍정하진 않겠다만……. 뭐, 딱히 부정하지도 않겠다.”
두 명이 서로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리곤 다시 두 명의 대련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질문 하나만 해도 돼?”
“뭐지?”
“지금 루안이 하고 있는 거. 너도 할 수 있어?”
현재 루안 팔라티아는 스텔라의 검술을 완벽하게 모방해서 시연하고 있다.
“할 수야 있지. 물론 어느 정도 격이 떨어지는 상대의 검에 한정되긴 한다만.”
세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루안을 관찰했다.
10년 넘게 봐 온 딸의 검술을 펼치고 있는 루안.
대련은 처음이라고 했으니, 오늘 처음 본 검일 텐데.
그가 사용하는 스텔라의 검술엔 일점의 어색함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스텔라의 검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
“불가능하다.”
릴리안이 다음 질문을 하기도 전에 세인이 대답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상대의 검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단계 진화시킬 수도 있냐고 물어 볼 거 아니었나?”
“눈치 빠르네.”
“방금 그 대화의 흐름에서 눈치를 못 채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그렇긴 해.”
세인이 픽 웃었다.
“하던 대답을 계속 하자면, 불가능하다. 제 아무리 격이 떨어지는 상대라곤 해도. 그가 사용하는 검은 그가 몇 년 간 다듬어 온, 그만의 검이다.”
같은 검술을 배우더라도, 사람의 체형과 타입에 따라 검술의 형태는 변화하는 법이다.
완력이 부족한 사람은 조금 더 예리한 형태로.
민첩성이 부족한 사람은 조금 더 묵직한 형태로.
당장 비노슈가의 검술을 익히고 있는 세인과 스텔라만해도 초식이 같을 뿐, 세세하게 들어가면 차이가 심하다.
세인의 검이 절대적인 힘을 자랑하는 ‘왕의 검’이라면, 스텔라의 검은 세상의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혹한의 검’이다.
“본인의 신체 구조에 맞춰 변화한 검의 장점과 단점은 본인밖에 알 수 없지. 당연히 개량 방법도 본인밖에 알 수 없어.”
그렇기에 검술을 가르치는 건 힘들다.
체형마다, 근육의 성질마다, 마나 코어의 형태마다, 검술은 각양각색으로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교관이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상한 조언을 했다가, 오히려 검이 더 망가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 정도로 타인에게 검을 가르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당연히 타인의 검술을 진화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럼 쟨 뭐야?”
“……글쎄. 모르겠군.”
근데 그 불가능한 일을 현재 신하율이 실현해 내고 있다.
실시간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가 없다.
“상대의 검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위 호환으로서 재현해 냄으로서 상대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세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군. 이런 몽상 속의 망상이 현실로 떡하니 나타나다니.”
스텔라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얻고 있는지 알고나 있을까.
모든 검사들이 원해마지않는 절호의 기연을 붙잡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 행운을 쥐고 있는 건지 자각하고 있을까.
‘모르겠지.’
모르니까 저렇게 세상 신난 표정만 짓고 있는 걸 거다.
무아지경으로 눈앞의 남자가 펼치는 검만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검을 휘두른다.
아마 꽤나 행복한 시간일 테지.
“누군가를 진심으로 부럽다고 생각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1분 1초가 모두 성장으로 변화하는 저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인도 딱 한번 느껴본 적 있을 뿐인 감각이지만, 다시 생각해도 그때 이상의 행복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 감각을 느끼고 있을 딸에게 진심으로 질투가 났다.
“안 그래도 욕심이 났지만, 더더욱 욕심이 나.”
그러나 질투도 잠시.
세인의 눈동자가 탐욕과 욕망으로 물들었다.
저 남자를 가지고 싶다.
저 남자를 통해 가문의 입지를 끌어올리고, 기사라는 존재의 부흥을 꿰차고 싶다.
“욕심 날 만하네. 나도 하율이가 아니었으면, 조금 욕심 날 뻔했어.”
“흥. 관심 꺼라.”
“어유. 무서워. 그런 눈으로 안 봐도 관심 끌 거거든?”
세인의 살기등등한 눈빛을 받으며 릴리안이 작게 몸을 떨었다.
세인이 살기를 지우고 호의로 가득 찬 눈빛으로 루안을 바라봤다.
‘자…… 그럼 어떻게 공략을 해 볼까.’
저 탐나는 검사를 어떻게 가문의 일원으로 만들어 볼까.
세인의 머릿속은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