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42)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242화(242/466)
약 40분가량의 대련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손님방으로 되돌아왔다.
참고로 손님방에 돌아 온 건 스텔라를 제외한 넷뿐이다.
스텔라는 현재 자기 방 침대에서 쥐 죽은 듯이 자고 있다.
“미숙한 것. 그런 절호의 기회를 고작 기절 따위로 날려버리다니.”
세인 님이 세상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대련 중 기절을 해 버린 스텔라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반응이 예상 밖인데?’
약 40분가량 이어진 대련.
나는 그 40분 동안 스텔라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40분은커녕 10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기절했을 테지.
순찬이라면 한 15분 정도 버텼으려나.
이번 대련은 그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40분을 버틴 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 욕을 먹을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욕을 먹다니.
비노슈가의 교육이 그만큼 빡세다는 건가?
‘음. 그래 보이진 않는데…….’
그렇게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중.
“부러워서 저래요.”
릴리안 님이 슬쩍 내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세인이 그랬거든요. 이런 기연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거라고요. 진짜 엄청 부러워했어요. 자기도 저런 대련을 다시 한번 경험해 보는 게 소원이라고 노래를 불렀다니까요?”
릴리안 님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툴툴대고 있는 세인 님을 흘겨봤다.
“그런 절호의 기연을 고작 기절 따위로 끝내다니. 얼마나 배가 아프겠어요.”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았다.
“요약하자면, 그냥 심통 난 거뿐이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된다는 말이에요.”
릴리안 님이 작게 웃으며 내 귓가에서 입을 뗐다.
“릴리안. 다 들린다.”
“아, 들렸어? 미안.”
“일부러 들리도록 말해 놓고선…….”
세인 님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릴리안 님을 째려봤다.
저걸 구워먹을까, 삶아먹을까 고민하는 표정이다.
릴리안 님은 그 시선을 가볍게 받아넘기며 여유롭게 웃었다.
“근데 솔직히 맞잖아.”
“아니다.”
“고집 부리긴.”
릴리안 님의 눈동자에 장난기가 한층 더 짙어졌다.
“예전에도 그렇고. 그 쓸데없는 고집이 문제라니까. 예전에 무도회장에서도…….”
“그만.”
세인 님이 진지하게 경고하는 표정으로 말을 끊었다.
어디 죽고 싶으면 그 이상 얘기해 보라는 표정이다.
“네가 그 얘기를 하면, 나도 속에 담아 둔 얘기를 꺼내는 수밖에 없어.”
“오케이. 그만하자.”
릴리안 님이 순순히 물러났다.
아무래도 두 분 다, 오래 알고 지낸 만큼 서로의 흑역사를 상당수 알고 있는 듯하다.
두 분이 아주 미묘한 표정으로 혀를 차고는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크흠. 아무튼 오늘 대련. 정말 고생 많았다. 스텔라에게 큰 도움이 됐을 거야.”
그리곤 곧장 화제 전환을 시도하셨다.
상당히 억지스러운 화제 전환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분의 흑역사가 굉장히 신경 쓰이기는 하는데…….’
만약 순찬이나 아델라가 이랬으면 곧바로 물어뜯었겠지.
하지만 상대는 세인 님과 릴리안 님이다.
내가 물어뜯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고생이라뇨. 저는 즐거웠습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전환된 화제에 답을 했다.
“워낙 흡수력이 좋아서, 가르치는 맛도 있었고.”
김강인 님이 굳이 유망주만을 데려다 키우는 이유를 이해했다고 해야 하나.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는 건 상당한 쾌감이었다.
“진심으로 즐겁다는 표정이군.”
내 즐거움이 표정 밖으로 새어나간 것일까.
세인 님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교관이 적성에 맞는 모양이야.”
“예. 적성에 맞긴 합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즐겁고, 그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도 즐겁다.
재미가 없는 게 이상한 상황이다.
“이번 기수들은 행운아로군. 너 같은 교관에게 수업을 받을 수 있다니.”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
세인 님이 차를 홀짝인 뒤 픽 웃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루안 네 겸손은 도가 지나치다. 너는 조금은 당당해질 필요가 있어.”
그리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시작했다.
“강자는 강자다워야 하는 법. 네 모습에선 그런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아마 겸손이 몸에 뱄기 때문인 거 같은데…….”
아니,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아니라 그냥 잔소리였다.
여기서 갑자기 잔소리가 시작될 줄은 몰랐는데.
“너는 본인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네가 무시 받으면, 널 인정한 나까지 의심받는다는 걸 명심…….”
세인 님의 겸손과 겸양, 그리고 자만과 자부심에 대한 이야기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 * *
세인 님의 잔소리는 약 10분 정도 더 이어졌다.
아마 릴리안 님이 아니었다면 다과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지 않았을까.
‘세인 님이 저렇게 잔소리가 많을 줄은 몰랐네.’
세상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거만한 절대자.
대충 그런 느낌이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역시 사람은 직접 만나 봐야 알 수 있구나.’
세인 님도 그렇고.
스텔라도 그렇고.
생각해 보면 릴리안 님도 그렇다.
다들 세간에 알려진 모습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공적일 때랑 사적일 때가 다른 거야 당연하긴 한데. 저 세 분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나?’
스텔라 비노슈.
언론에선 얼음 여왕.
평상시엔 세상 활발한 소녀.
세인 비노슈.
언론에선 세상만사 흥미가 없는 나태한 절대자.
평상시엔 장난기 많고 잔소리 많은 어머니.
릴리안 스테어트.
언론에선 감정이 거의 없는 차가운 사업가이자 마법사.
평상시엔 아델라를 못 놀려 안달인 장난 많은 어머니.
‘진짜 이중인격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이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죄송해요. 좀 늦었죠?”
그렇게 실없는 고민을 하던 중.
아델라가 도착했다.
아델라의 등장과 동시에 집사로 보이는 분께서 차에서 내려, 차 뒷문을 열어줬다.
“가요. 태워다 드릴게요.”
아델라가 곧장 리무진에 올라탔다.
“오늘도 실례 좀 하겠다.”
나도 뒤따라 옆에 탔다.
문이 닫히고, 뒷좌석은 완전한 고립 상태가 되었다.
이제 이 안에서 하는 얘기가 바깥으로 새어 나갈 일은 없다.
“후우. 지친다 지쳐.”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곧장 와이셔츠의 제일 위 단추를 풀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계속 연기를 하고 있다 보니,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다.
“수고하셨어요.”
아델라의 표정이 녹아내렸다.
이제 연기는 더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이, 흐물흐물한 표정이 되었다.
“너도 수고했어.”
“……수고라 할 게 있나요. 저는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요.”
“수고지. 무표정만 짓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든데.”
반응해야 할 거에도 반응할 수 없고. 대처해야 할 것에도 대처할 수 없다.
그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직접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거다.
“아무튼 진짜 고생 많았어. 그 두 분 사이에서 연기하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혹시 걸리는 거 아닐까 싶어서 조마조마하긴 했어요. 워낙 날카로우신 분들이니…….”
아델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생각해도 피가 말린다는 표정이다.
“아, 맞아. 까먹기 전에 이것부터 드릴게요.”
아델라가 지참하고 있던 핸드백에서 박스 하나를 꺼냈다.
“여기. 말씀하신 마나 동결 플라스크에요.”
베르사유 궁전 지하에서 수집한 마나가 동결되어 담겨 있는 플라스크가 들어 있는 상자였다.
“고마워.”
나는 상자를 건네받음과 동시에 그대로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바로 확인하시게요?”
“어.”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냥 지금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나는 그대로 상자에서 플라스크를 빼서, 천천히 마개를 열었다.
아주 살짝. 내부의 마나가 아주 조금씩 흘러나오도록.
마치 담배 연기처럼 흐릿하게 흘러나오는 마나.
나는 그 마나를 천천히 음미하듯이 느꼈다.
‘지하에서 수집한 마나라 그런가, 확실히 쾌쾌한 느낌이긴 하네.’
일단 지하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그나마 관리가 되어 있기 때문인지, 이전 연구동 옆 비밀통로보단 훨씬 낫지만.
그래도 지하 특유의 분위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
좁고 어두우며 쾌쾌하다.
‘이거다.’
그렇게 마나를 느끼던 중.
지하에서 느껴져선 안 되는 이질적인 마나가 감지됐다.
이미 수차례나 확인한 불의 마나.
이제는 익숙해진 기운.
‘이그니스.’
상가 단지 비밀 통로.
연구동 비밀 통로.
베르사유 궁전 지하에서 채집해 온 마나에선 두 곳에서 느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기운이 감지되었다.
이 말은 즉.
‘이그니스는 분열되거나 하지 않았으며, 세 통로는 모두 이어져 있다.’
이런 말이었다.
* * *
그날 새벽.
나는 스리슬쩍 호텔방을 떠나, 상가 단지로 향했다.
마엘 나달이 뿜어낸 피가 말라붙어 굳어 있는 바닥.
거기서부터 약 5.73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벽면에 손을 댔다.
그리고 이전과 똑같이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조작이 끝남과 동시에 비밀 통로가 활짝 열렸다.
나는 그대로 망설임 없이 통로 내부로 들어섰다.
그리고 약 5초의 시간이 흘러, 통로의 문이 닫혔다.
‘과연 이 안에 뭐가 있을지.’
이전. 우연찮게 이 통로를 발견한 날.
나는 위험상의 이유로 이곳을 수색하는 걸 뒤로 미뤘었다.
일단 이그니스의 상태를 비롯해, 다른 정보들을 조금이나마 더 수집한 후에 어느 정도 확신이 생기면 조사에 나서자.
그렇게 결론을 내렸었지.
그리고 지금 모든 정보 수집은 끝났다.
이 이상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남은 건 이 통로를 수색하는 것뿐.
‘다행히 내부가 이어져 있다는 것도 알았겠다.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어.’
통로가 세 개나 되는 이상, 여기서 고립될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
나는 그대로 ‘팩티오’를 사용해 미미르의 서에서 쉬고 있는 미호를 소환했다.
미호가 소환되자마자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내 품에 안겨 전방을 주시한다.
소환과 동시에 사주경계에 들어선 것이다.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말해줘.”
미호가 그런 건 맡겨만 달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시작해 볼까.’
미호에게서 시선을 뗌과 동시에 신안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곤 주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역시 보이는 게 없어.’
딱히 주위에 의심스러운 게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
흔하디흔한 마나조차도 제대로 느껴지질 않는다.
마치 이 통로 자체에 마나 감지 차단 마법진이라도 새겨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나 감지 차단 마법진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가까이 있으면 감지돼야 정상인데.’
여긴 진짜 아예 아무 것도 느껴지질 않는다.
그냥 이 주위에 마나가 없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근데 또 마법이 사용되는 걸 보면 마나 자체가 완전 없는 건 아니란 말이지.’
되게 이상한 감각이었다.
감각적으로 마나는 일체 느껴지지 않는데. 사용은 할 수 있다.
이 감각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음식을 먹는 데 냄새랑 맛, 그리고 씹는 감촉조차 일절 느껴지지 않는데, 배는 부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게 비밀 통로의 완벽한 차폐성의 이유겠지?’
아마 이건 확실한 것 같다.
직접 안에 들어 왔음에도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밖에서 뭘 느낄 수 있겠는가.
‘이해가 안 가네. 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그렇게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였다.
내 품에 안겨있던 미호가 코로 내 턱을 살짝 찔렀다.
평소라면 작게 울어서 나를 불렀겠지만, 지금은 잠입 미션 중이니만큼 소리를 내는 건 자제해야 한다.
그걸 알고 있기에 터치로 내 시선을 돌린 것이다.
“뭐 찾았어?”
나는 아주 작게 미호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물었다.
내 질문에 미호는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통로 한쪽 벽면에 박혀 있는 검은색 돌을 뚫어져라 노려본다.
마치 저기에 뭐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천천히 그 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대로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건 없었다.
“이게 뭔데?”
미호가 내 품에서 벗어나,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곤 그대로 발톱을 빼 내서, 지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바이테너 제국 시대의 문자.
이드레드의 서부터 미미르의 서까지 모두 이 글자로 적혀져 있기에, 내게는 한국어만큼이나 익숙해진 문자.
[열한 번째―]미호는 그 문자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뭐?”
딱히 미호가 글자를 구사한다는 것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미호가 똑똑한 거야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고작 글을 쓴다고 놀라지는 않는다.
“열한 번째…….”
내가 놀란 건 미호가 쓴 글에 담긴 내용 때문이었다.
“신화…… 마법… 누베스의 흔적?”
미호는 이 검은 돌에서 열한 번째 신화 마법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니까, 이 안에 이그니스 외에도 다른 신화 마법의 매개체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