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43)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243화(243/466)
열한 번째 신화 마법.
누베스.
최고신을 죽였다는 전승이 있는 암살자의 신화를 계승한 신화 마법으로.
무언가를 감추는 데 특화되어 있는 마법이다.
이 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완벽하게 자신의 기척을 지울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의 형체조차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다.
신화에 따르면 완전히 모습을 감춘 누베스를 찾는 건 그 어떠한 신도 불가능했다고 하니, 얼마나 강력한 은신인지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이곳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차폐성이 누베스의 힘을 빌린 거라면 말이 돼.’
나와 미호의 감지 능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누베스를 뚫을 정도는 아니다.
누베스가 괜히 신화 마법인 게 아니다.
물론 미호가 본래의 힘을 지닌 상태였다면 어찌어찌 감지해 냈을 수도 있다.
허나 아직 여섯 개의 꼬리 밖에 지니지 않은 현재로선 감지는 불가능에 가깝다.
‘나도 마찬가지고.’
나는 다시 한번 검은 돌에 손을 가져갔다.
역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봤음에도 소용없다.
내게 이 검은 돌은 그냥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검은 돌일 뿐이다.
진짜 감탄밖에 안 나오는 은신 능력이었다.
‘누베스라니…….’
아마 이게 ‘진짜’ 누베스의 매개체는 아닐 거다.
이게 진짜였다면 미호가 이상함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 이 검은 돌은 누베스의 힘을 이용해 만든 열화 카피.
혹은 복제품이다.
실제로 문헌에서 본 누베스의 매개체는 돌 같은 형태가 아니기도 했고.
‘골치 아프네.’
만약 이 검은 돌이 누베스의 힘을 이용해 만든 열화 카피라면, 상당히 머리 아픈 상황이다.
‘세 비밀 통로에 모두 이 검은 돌이 설치되어 있다는 건, 이 검은 돌의 양산이 가능하단 말이잖아…….’
흑색 마탑이 이 돌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다면, 그땐 정말 막을 방법이 없다.
나나 미호의 감지 능력으로도 포착하는 게 불가능한데, 다른 사람들이 기척을 느낄 수나 있겠는가.
‘이 힘을 이용하면 잠입은 물론 암살도 용이해져.’
세계 어디에 있던지 간에, 어떤 방비로 보호받고 있던지 간에, 안심할 수 없다.
흑색 마탑이 누베스의 힘을 다루는 이상, 세상 그 어떠한 곳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세상에 날고 긴다는 대마법사들이 아무런 힘도 써 보지 못하고 죽어나가게 되겠지.
그렇게 천칭은 천천히 흑색 마탑 쪽으로 기울게 될 테고.
세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흑색 마탑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비상사태 수준이 아니잖아.’
누베스의 열화 카피 양산.
이건 비상사태라는 가벼운 말로 표현할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든 대응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방법을 찾지 못하면 그땐 모든 게 끝날 수도 있다.
‘미미르와 상담해서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어.’
열화 카피인 이상 어떻게든 활로는 있을 거다.
미미르라면 방법을 찾아 내 줄 것이 분명하다.
‘이 검은 돌을 가져갈 수만 있다면 더 확실해 질 텐데.’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지금 여기서 이 검은 돌을 가져간다는 건, 이 통로에 누군가가 침입했다고 저들에게 알리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그건 절대 해선 안 된다.
굳이 저쪽에 나라는 침입자의 정보를 줄 이유가 없다.
지금은 나라는 존재를 최대한 감추고 저들의 동태를 살피는 게 우선이다.
‘일단 이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야.’
이 안에서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이렇게까지 철두철미하게 통로를 감추고 있는 것인지.
그것부터 확인해야 한다.
‘사실 굳이 확인 안 해 봐도 뭘 하고 있는지 대충 예상이 가긴 하는데…….’
힌트는 차고 넘칠 만큼 많다.
놈들이 여기서 할 일이야 한 가지밖에 없다.
‘이그니스의 양산.’
놈들이 할 만한 짓은 이것 밖에 없다.
* * *
프랑스 파리 지하에 세워져 있는 특수 연구소.
이 연구소의 총괄을 맡은 남자, ‘닥터’는 오늘도 광기로 가득 찬 웃음을 띤 채, 실험을 반복하고 있었다.
“4번 샘플의 상태는?”
“죽었습니다.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닥터의 질문에 조수로 보이는 연구원 한 명이 답했다.
그리곤 4번 샘플이 있는 방의 카메라 영상을 메인 화면에 띄웠다.
시꺼멓게 불탄 인간의 사체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완전히 잿더미가 됐군. 역시 화염이라는 건가. 다루기가 영 까다롭단 말이지. 다른 샘플들의 상태는 어떻지?”
“다 비슷합니다.”
연구원이 패널을 조작해서, 1~8번까지의 모든 샘플의 영상을 띄웠다.
모두 하나 같이 불타 잿더미가 되어 있다.
산 채로 불타,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은 듯. 이리저리 뒤틀린 상태로 쓰러져 있는 사체들이 대다수였다.
“흐음. 모든 샘플이 다 똑같이 불타 죽었다는 건, 실험의 전제 조건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인데…….”
“예. 역시 화력을 더 낮출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화력. 화력을 낮춘다. 이 이상 화력을 낮출 방법이라……. 당장은 떠오르는 방법이 없군.”
닥터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이 이상 억누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도 상당히 화력을 억누른 것인데 말이지.
“일단 뭐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니, 남은 샘플들도 써 보자고.”
“남은 샘플을 전부 말입니까?”
“그래. 몇 체나 남았지?”
“31번 샘플까지 있고, 8체를 사용하였으니 23체입니다.”
“좋아. 적당하군. 모두 투입해.”
“……다시 생각해 보심이 어떨까요?”
연구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실험체로 쓴다는 것에 일말의 양심은 있다는 걸까.
“현재 저희는 운반책을 잃은 상태입니다. 지금 모든 샘플을 사용했다간, 내일 사용할 샘플이 없습니다.”
그럴 리가.
애초에 그런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이런 실험을 하고 있지도 않았을 거다.
연구원이 걱정하는 건 실험의 단절. 샘플 부족으로 실험을 더 할 수 없게 되는 것뿐이다.
“그것도 그렇군. 그럼 혹시 모르니, 8체는 남겨 둬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구원이 페널을 조작해 다른 연구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이제부터 연락을 받은 연구원들이 각 방으로 이동해, 샘플들에게 물건을 투입할 테지.
그렇게 되면 2차 실험이 시작된다.
“이번엔 살아남는 샘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좋겠군.”
닥터가 전혀 기대하지 않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답했다.
다른 샘플들이 살아남을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표정이다.
아니. 저들이 살아남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아, 21번 샘플은 아껴 둬. 새 운반책이 온다고 해도 어린 개체는 구하기 힘든 샘플이니까. 좀 더 유용하게 써야지.”
“예. 알겠습니다.”
닥터가 그대로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리곤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 강력한 불의 기운을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다스릴 수 있을까.”
앉은 자리 바로 앞.
엄중한 보안으로 지켜지고 있는 유리관 너머.
심장처럼 생긴 특수한 보석을 바라보며 눈을 날카롭게 떴다.
“화력을 낮출 방법이라…….”
이그니스의 매개체.
닥터를 비롯한 연구원들도 이그니스라는 이름을 알고 있지만 간략하게, A2 특수 매개체라 부르고 있는 보석.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어렵군. 어려워.”
닥터의 눈이 작게 빛났다.
“역시 화염 내성에 강한 놈들을 실험체로 써 봐야 하나.”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법사나, 기사나……. 그럼 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흠.”
닥터가 썩 괜찮은 접근법이라는 듯이 씨익 웃었다.
“좋아. 그럼 일단 호위대 중 한 명을 샘플로 써 보자고.”
“……호위 중 한 명을 말입니까? 괜찮으신 겁니까?”
“상관없다. 호위야 언제든지 새로 구하면 되는 거니까.”
닥터의 눈에서 시뻘건 안광이 흘러나왔다. 광기에 물들어 비틀린 안광이었다.
“그딴 것보다 내 호기심을 푸는 게 먼저다.”
“아……!”
연구원이 감탄한 표정이 되었다.
“시시한 정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실험을 우선한다……. 역시 닥터는 연구원들의 귀감이십니다.”
마음속 깊이 감동한 표정이었다.
추후, 자신만의 연구소를 갖게 되면 자신도 저렇게 하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단, 다른 호위들이 반발할 수 있으니 들키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도록. 그렇지. 아예. 한 명을 빼고 다 외부로 보내버려.”
“예.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닥터가 흡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낮에 2번 비밀 통로가 열린 이유는 알아냈나.”
“예.”
연구원이 품에서 주섬주섬 서류 한 장을 꺼냈다.
“비노슈가의 영애가 열었더군요.”
“안으로 들어 온 흔적은?”
“없습니다. 그냥 열고 난 뒤, 바로 닫았습니다. 아마 세인 비노슈에게 비밀 통로에 대한 얘기를 듣고, 진짜 있는 건지 호기심에 열어 본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뿐인가?”
“예. 그것뿐입니다.”
“그렇군.”
닥터가 이내 흥미를 잃었다는 표정으로 서류를 던져버렸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내부로 들어온다고 해도, 벙커에서 또 다른 비밀 통로를 열어야 이쪽으로 올 수 있으니까요. 이곳이 들통 날 일은…….”
“걱정을 해? 그럴 리가.”
닥터가 작게 혀를 차고 입맛을 다셨다.
“비노슈가의 영애는 차가운 기운의 검기를 다룬다고 하지. 그리고 보통 그런 존재는 화염에 대한 내성이 강하단 말이지.”
걱정? 그딴 건 일체 하지 않는다. 닥터는 다만 아쉬울 뿐이다.
“아쉬워. 통로로 들어오기만 했다면, 좋은 샘플이 생겼을 텐데.”
스텔라 비노슈라는 훌륭한 연구 소재를 얻지 못했다는 아쉬움 말이다.
* * *
통로를 따라 이동한지 어언 1시간 40분 째.
‘이 통로는 대체 얼마나 긴 거야?’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평소 걷는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걷고 있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통로가 길어도 너무 길다.
‘……조금 더 속도를 올려야 하나?’
지금까지 파수꾼이고 CCTV고 하나도 찾지 못했다.
이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는 건, 진짜 아무 방비도 없다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 안전을 뒤로하고, 탐색 속도를 늘려도 되지 않을까.
‘아니야. 외곽에 경비가 없다고, 중심지에도 경비가 없으리란 법은 없어.’
이제 와서 탐색 속도를 늘리는 건 하책이다.
지금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탐색을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1시간 40분이나 걸어왔으면 슬슬 보일 때도 됐다.
안달 낼 필요가 전혀 없다.
지금까지처럼 냉정 침착하게 탐색을 이어나가면 될 뿐이다.
‘후우.’
조금이나마 흐트러졌던 마음이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그렇게 나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다시 30분이 흘러.
드디어 통로에 변화가 생겼다.
‘청소가 돼 있어.’
통로의 바닥이나 벽면이 세상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누군가가 청소를 한 것이다.
이 말은 즉, 목적지에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나는 천천히 정돈된 통로에 발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딱 세 걸음을 내딛은 순간.
화르르르르르르르륵-!
강력한 화염의 잔재가 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
마치 내 신체가 불타 소멸한 것 같은 감각.
내 사지가 잿더미로 변해 흩날렸다.
물론 진짜 내 사지가 불타 버린 건 아니었다.
모든 건 환각.
강력한 불의 마나가 내게 보여 준 환상이었다.
‘이게 이그니스의 힘…….’
말할 것도 없겠지만, 강력한 불의 마나는 이그니스가 내뿜는 마나였다.
그냥 뿜어내는 마나만으로 이 정도의 환상을 보여 줄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 거지?
쫑긋!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있는 중.
미호가 귀를 쫑긋 세웠다.
전방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경계한다.
지금 앞에서 누가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재빨리 자세를 낮추고, 벽면에 딱 달라붙었다.
그리곤 공명을 사용해 은신을 추가로 강화.
전력을 다해서 내 기척을 지워버렸다.
또각, 또각.
터벅, 터벅.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개의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하이힐 특유의 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단화 특유의 소리였다.
그 중에 단화 소리가 묵직한 걸 보면 체중이 좀 나가는 것 같다.
아마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일까.
“결국 오늘 실험도 완전 실패했네요.”
“그래도 반년 전보단 안정적이었다.”
앞서서 여성이 말했고, 뒤이어 남성이 대답했다.
예상대로 남녀 한 쌍이었다.
“그렇긴 하지만요. 결국 오늘도 다 죽어 버렸잖아요.”
여성이 다소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잘 좀 버텨 보지. 1분도 못 버텨서 다 정신을 잃고 불타 죽다니. 다들 삶에 대한 집착이 너무 없는 거 아닌가요?”
“의지로 될 거였으면 누군가 한 명은 살아남았을 거다. 실험체의 문제가 아니야.”
불타 죽다.
실험체.
대충 상황이 예상되는 키워드들이었다.
‘이 새끼들…… 인체 실험을 하고 있어.’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인간 밖에 없다.
내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알아요. 그냥 너무 답답해서 해 본 말이에요. 제가 아마추어도 아니고. 실험쥐 탓을 하겠어요?”
실험쥐.
그 말에 내 표정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차갑게 벼린 분노가 내 눈을 날카롭게 벼렸다.
“알고 있으면 됐다.”
남자가 무표정하게 답했다.
“진짜……. 선배한테는 푸념도 못 하겠다니까요.”
“푸념 같은 거 할 시간에 연구에나 더 집중해라. 이제 정말 한 걸음 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예예. 알겠습니다.”
여자가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한 톤으로 설렁설렁 대답했다.
“에휴. 또 언제 새 실험체가 들어 오려나요. 이미지 트레이닝만 하는 덴 한계가 있는데.”
“……사람을 해부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나쁜 버릇. 아직 못 고쳤나?”
“에이. 나쁜 버릇이라뇨. 좋은 버릇이죠. 사람은 무언가에 시선을 집중할 때, 사고 능력이 상승한다고들 하잖아요? 제가 하는 것도 그것과 같아요.”
“이해할 수 없군.”
“선배님도 해 보시면 알 걸요? 타인의 뇌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보면…… 괜히 제 뇌가 더 자극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화가 난다. 저 새끼들은 대체 사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저 쓰레기들을 소각해 버리고 싶었다.
‘……후우. 진정하자.’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금 저 둘을 죽여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지금은 일단 화를 삭이고, 내부에 확실히 잠입하는 것만 생각해야 한다.
‘그 후에 정보를 모아, 이 쓰레기들을 일소한다.’
그게 최선책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화를 억눌렀다.
“아 참, 오늘 호위 한 분이 실험 재료로 쓰였잖아요?”
……호위를 실험 재료로 썼다고? 동료를?
“……그 일은 대외비다.”
“에이. 여긴 저희 둘밖에 없는데요 뭐.”
여성이 손을 적당히 흔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튼 그걸 보고 좀 생각해 봤는데요. 설마 필요해지면 저희도 실험체로 쓰진 않겠죠?”
“글쎄. 필요해 지면 그럴 수도 있겠지.”
남성이 무표정하게 답했다.
“닥터의 성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무섭네요.”
“그게 무서우면 더 정진하도록. 닥터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계속해서 증명하면,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하긴. 선배님만 봐도 12년이나 닥터를 보조하고 계시니…….”
여성이 싱긋 미소 지었다.
“뭐, 벌써부터 그런 걱정을 해도 의미가 없으니. 잘 할 생각이나 해야겠네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둘은 침묵을 유지한 채 내가 왔던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아마 순찰을 하러 가는 거겠지.
그렇게 완전히 내 시야에서 모습을 감춘 두 남녀.
나는 그 둘이 사라진 뒤로도 약 5분 정도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딱히 두 명이 돌아올 것을 경계한 건 아니다.
그냥 놀라서.
너무 뜻밖의 명사가 튀어나와서 넋이 나간 것뿐이다.
‘……닥터?’
저 둘의 입에서 나온 ‘닥터’라는 인물에 대해선 이전, 섀도우에게 들은 적이 있다.
‘닥터. 흑색 마탑의 간부 중, 헤르메스와 더불어 셋 밖에 없는 비전투 계열 간부 중 한 명이다.’
코드 네임 닥터.
섀도우 가라사대.
‘길게 말 안 하겠다. 이놈과 만나게 된다면 무조건 도망가라. 간부들 중에 제일 위험한 놈이다.’
흑색 마탑에서 제일 위험한 놈이다.
‘그 닥터가 여기 총괄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