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54)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254화(254/466)
새벽 2시.
닥터는 엉망이 된 실험실에 혼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비노슈가 습격 건에서 얻은 정보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습격 개시부터 세인 비노슈가 대응하기 위해 움직이는 데까지의 텀이 짧아도 너무 짧다.’
습격자가 모두 죽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대응이 얼마나 빨랐는지 정원에 20명 다 들어서지 못했다.
세인의 성격을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대응 속도였다.
‘나태한 절대자. 세인 비노슈가 굳이 저택 밖에까지 나와서 습격자들을 참살했다. 그것도 두 명을 살려둔다는 귀찮은 짓을 하면서까지…….’
즉, 세인 비노슈의 빠른 대응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이런 말이 된다.
‘그럼 세인 비노슈가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을 만한 이유가 뭘까.’
굳이 저택 밖으로 나서면서까지 조기 제압을 해 버린 이유.
답은 하나밖에 없다.
‘뻔하지. 루안 팔라티아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서.’
세인 비노슈는 루안 팔라티아를 꽤나 신뢰하고 있다고 들었다.
신뢰하고 있는 만큼 루안을 저택 내에 숨겨주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서 습격자들이 저택 내에 잠입하기 전에 신속하게 대응한 것이다.
루안 팔라티아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서.
‘그렇다면 세인 비노슈가 이곳, 연구소에 대한 걸 알게 됐을 확률이 높다.’
세인이 루안을 감춰주고 있다는 말은 루안이 세인에게 모든 걸 말했다는 말과 같다.
“쯧.”
닥터가 혀를 찼다.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하필 세인 비노슈가 끼어들다니.’
세인 비노슈.
파리에 연구소를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닥터가 유일하게 경계해 온 괴물.
그 괴물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루안 팔라티아를 붙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짜증이 한층 더 치솟았다.
‘다행인 건 섀도우가 별말 없이 도우러 와 준다고 한 건가.’
닥터는 세인 비노슈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세인 비노슈는 섀도우를 이길 수 없다.
상성이 그렇다.
닥터의 ‘소멸의 권능’은 세인 비노슈의 검격에 모조리 잘려나가, 힘을 잃지만.
섀도우의 ‘움브라의 그림자’는 세인의 검격을 완벽하게 차단 흡수한다.
‘섀도우가 세인 비노슈를 맡아 주기만하면 다른 놈들은 다 나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
닥터의 ‘소멸의 권능’은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 용이하다.
오히려 상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효과가 커진다.
닥터의 마나 성질, ‘바이러스’란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절대적인 강자, 세인 비노슈만 없으면 그 누구도 닥터를 막을 수 없다.
‘결론이 났군.’
물러날 이유가 전혀 없다.
닥터는 싸울 것을 선택했다.
세인 비노슈를 처리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루안 팔라티아를 생포한 뒤, 놈이 가져간 이그니스를 되찾는다.
‘그리고 그놈이 어떻게 이그니스를 가져 갈 수 있었는지 분석한다.’
이건 오히려 전화위복이다.
정체되어 있던 연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닥터가 웃었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살벌한 웃음이었다.
“줄곧 소식이 없다 싶더니. 이런 데서 연구를 하고 있었나. 빈티지 취미라도 생긴 건가?”
그때 닥터의 앞에 그림자가 일렁였다. 서서히 사람의 형태로 변화해가는 그림자.
그 그림자는 이내 섀도우의 모습이 되었다.
“빨리 왔군.”
“상당히 급해 보여서 말이지. 최대한 빨리 날아왔다.”
“그렇군.”
닥터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무덤덤하게 답했다.
자신을 저렇게 만든 원수를 구하기 위해 최고속으로 날아 왔다는 게 아주 우스웠다.
‘내가 자신의 원수라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말해 버리고 싶다.
네게 그림자를 넣은 건 자신이라고. 그때 섀도우는 어떤 표정을 보일까.
‘상상만으로도 짜릿하군.’
닥터의 눈동자가 유열과 희열이란 감정으로 가득 찼다.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나면, 그때 모든 걸 털어 놓으리라.
‘자신의 원수를 위해 필사적으로 세인 비노슈와 싸웠다는 걸 깨닫고, 더 절망하겠지?’
닥터가 입술을 핥았다.
그때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래서. 지금 무슨 상황인 거지? 누군가가 이 연구소를 습격하기라도 한 건가?”
“그래. 침입자가 있었다.”
닥터는 검은 감정을 일단 머릿속 한편에 집어넣고 현재 상황의 설명을 시작했다.
루안 팔라티아라는 침입자가 있었던 것.
그놈이 감히 괘씸하게도 이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는 최중요 물건을 훔쳐간 것.
그놈이 현재 높은 확률로 비노슈가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것까지 모조리 빼놓지 않고 설명했다.
“중요한 연구 재료를 도둑맞았다는 건 네 오점일 텐데. 그런 걸 그리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건가?”
“여기서 괜히 정보를 감췄다가, 더 큰 오점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못 본 사이에 꽤나 변했군. 자신의 오점은 무슨 수를 쓰던 지운다. 그게 네 방식 아니었나?”
“잘 기억하고 있군.”
이번 일이 끝나면 섀도우라는 간부는 자신의 실험 재료로서 전락할 것이다.
오점이고 뭐고, 뭔 말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솔직히 모든 걸 털어 놓은 거다.
‘내 유일한 오점을 없애기 위해서 널 실험체로 쓰려고 하는 거기도 하고.’
닥터가 겉으론 무표정을 가장한 채, 속으로 비열하게 웃었다.
“물론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라 말이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거다.”
“그래놓고 나중에 날 죽여서 입막음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우린 동료. 같은 간부잖나. 내가 제정신은 아니지만, 동료에게 손을 댈 만큼 미치진 않았어.”
닥터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흥. 흑마도왕님의 눈치가 보인다는 걸 그런 식으로 돌려 말할 필요 없다. 네 입에서 동료라는 말을 들으니 토가 나올 것 같아서 말이야.”
“말이 너무 심하군.”
“심한 건 네 인성이다.”
섀도우가 진심으로 질색이라는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어쨌든 간에 상황은 이해했다. 그럼 날 부른 이유는? 뭘 도와달라는 거지?”
“누구 한 명을 좀 상대해 줬으면 한다.”
섀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그 한 명이 세인 비노슈는 아니겠지?”
“역시 눈치가 빨라.”
“……돌아가겠다.”
섀도우가 그대로 돌아가는 척을 했다.
“워워. 잠시. 딱히 쓰러트려 달라는 게 아니야. 잠시 발만 잡아주면 돼. 네 능력이면 어려울 거 없잖아?”
닥터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섀도우가 그대로 그림자 속으로 스멀스멀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진짜 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쯧. 성질이 급하군. 좋아. 대가를 제시하지.”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군.”
닥터의 말에 섀도우가 다시 그림자 밖으로 나왔다.
“그래. 세인 비노슈의 발을 묶어주는 건의 대가로 뭘 제시할 거지?”
닥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세인 비노슈를 상대하기 위해 섀도우를 부르긴 했지만, 놈을 어떻게 꼬실지는 생각해 두지 않았다.
내심 자신의 실험 재료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당연하게 자신의 명령을 따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쩔까.’
닥터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래. 이게 좋겠어.’
방법은 금방 떠올랐다.
“너는 네 그림자를 제거할 방법을 찾고 있었지.”
“그래.”
“네 그림자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
“…….”
섀도우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설마. 내가 미쳤다고 거짓말을 하겠나.”
“…….”
“진짜야. 못 믿겠으면, 일단 네 그림자의 진짜 이름부터 말해 줘도 좋아. 항상 궁금해 했잖아?”
“……말해 봐라.”
섀도우의 반응에 닥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 반응…….’
아무래도 섀도우는 자신의 그림자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정도는 알아 낸 모양이다.
그렇다면 얘기가 더 빠르지.
“움브라의 그림자. 네 그림자는 그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과연. 확실히 뭔가를 알고 있긴 한 모양이야.”
섀도우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역시. 놈은 움브라의 그림자라는 명칭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걸로 닥터의 제안은 신빙성이 생겼다.
움브라의 그림자라는 명칭이 겹친 이상, 섀도우는 닥터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됐다.
“좋아. 그 제안. 수락하지. 네가 지시하는 타이밍에 정확히 세인 비노슈의 발을 묶어 주겠다.”
“좋아. 그럼 난 그 대가로 이번 일이 끝남과 동시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겠다.”
두 명이 서로의 계약 내용을 읊었다.
“난 언제 움직이면 되는 거지?”
“내일…… 아니, 이제 오늘이군. 아침 6시 반에 비노슈가를 습격할 생각이다. 그때 너는 그림자의 성역을 사용해 세인 비노슈를 봉쇄해 주면 된다.”
“3시간 30분 뒤인가. 상당히 빠르군. 그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있나?”
“루안 팔라티아. 그놈이 언제 비노슈가를 떠날지 알 수 없다. 그 전에 처리해야 해.”
“도주하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으면 세인 비노슈의 방해 없이 쉽게 놈을 잡을 수 있을 테니까.”
“…….”
닥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과연. 네 오점을 헤르메스에겐 알리고 싶지 않다. 이건가.”
섀도우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가 빨라서 좋군.”
불쾌하다는 듯한 닥터의 표정을 보며 섀도우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또 신하율의 예상이 맞았군.’
굳이 정보 파악을 위해 습격자를 보낸 것으로 보아, 헤르메스의 지원을 받고 있지 않을 확률이 크다.
신하율은 그렇게 말했었지.
그 예상이 맞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신하율의 손바닥 위라는 건가.’
섀도우가 재미있다는 듯이 픽 웃었다. 그때 신하율에게 접촉한다는 선택을 한 과거의 자신을 다시금 칭찬해 주고 싶어졌다.
“헤르메스의 지원이 없다면 현재 외부 상황을 파악할 수단이 없겠군. 그럼 지금부터 내일 작전 개시까지 내가 정찰을 맡아 주겠다.”
“네가 정찰을 해 준다면야 더 바랄 게 없지.”
“참고로 유료다. 정찰비는 추후 청구할 테니 알아두도록.”
그렇게 섀도우가 다시금 그림자를 흩뿌려, 밖으로 이동하려 할 때였다.
쿠구구구구구구궁-!
돌연 연구소 전체가 떨렸다.
지진과는 묘하게 다른.
마치 폭발의 여파가 지면을 타고 연구소를 흔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듣던 것과 다르군.”
섀도우가 날카롭게 닥터를 노려봤다.
“놈들이 쳐들어 올 거란 얘기는 못 들었다만.”
“…….”
닥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마 저쪽이 자신보다 빨리 이렇게 습격을 해 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는 표정이다.
“습격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있나?”
“CCTV로 확인하면 되는 거 아닌가?”
“통로엔 CCTV가 없다.”
“허술하군. 그래서 침입자의 침입을 허용한 건가.”
섀도우가 한심하다는 듯이 닥터를 바라봤다.
섀도우의 비아냥에 닥터의 표정이 한층 더 사나워졌다.
“아무튼 알겠다. 확인해 보지.”
섀도우가 그대로 닥터에게서 시선을 떼고, 그림자를 흩뿌렸다.
빠르게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 그림자.
그림자는 순식간에 침입자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침입자는 열. 그중 여덟 명은 로브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특정이 불가능하다.”
“남은 둘은?”
“한 명은 금발의 남자. 날렵한 인상에 기사 학교 교관들이 입는 정복을 입고 있군. 검도 차고 있고, 검사로 보인다.”
“루안 팔라티아군.”
“흐음. 역시 이놈이 루안 팔라티아인가보군.”
“남은 한 명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섀도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흐렸다.
“……세인 비노슈인가?”
“잘 아는군.”
“쯧.”
닥터가 혀를 찼다.
“일이 안 풀리려니까, 이렇게도 꼬이는군.”
설마 저쪽에서 먼저 쳐들어 올 줄이야.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닥터의 분노가 다시금 폭발 직전까지 솟구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닥터는 이내 침착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진정하자. 지금 이 상황은 내게 있어 전혀 나쁠 게 없는 상황이야.’
계획이 계속해서 어긋나고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짜증나긴 하지만, 화를 낼 건 아니다.
‘놈들은 굳이 내게 유리한 장소에서 싸우러 와 준 거다.’
닥터의 마나 성질은 ‘바이러스’
그의 마나는 이러한 지하에서 더욱 큰 효율을 보인다.
이곳에서 싸운다면 질래야 질 수가 없다.
지금 이 상황은 오히려 찬스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되지? 세인 비노슈의 발을 묶으면 되는 건가?”
“그래. 조금 이르지만 부탁하겠다.”
“알겠다. 놈들이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세인 비노슈를 그림자 성역에 가둬, 봉쇄하겠다.”
섀도우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모습을 감췄다.
‘좋아. 이제 세인 비노슈는 걱정할 필요 없다.’
이걸로 상대는 루안 팔라티아를 포함해서 아홉.
아홉 정도는 눈 감고서도 처리할 수 있다.
‘자. 와라. 루안 팔라티아. 네가 얼마나 멍청한 선택을 했는지 알려 주마.’
닥터는 문득 한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랑이와 토끼. 그리고 여우의 이야기.
‘호랑이 등에 업힌 토끼는, 호랑이가 사라지자마자 여우에게 잡아 먹혀 죽지.’
바야흐로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과연 세인이란 호랑이를 잃은 루안 팔라티아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닥터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어서 와라. 어서 와.’
그렇게 닥터의 기대와 함께 시간은 빠르게 흘러.
침입자들이 연구소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섀도우의 그림자가 세를 넓혀나갔다.
아마 그림자 성역을 발동한 것이겠지.
‘좋아. 이걸로 세인 비노슈는 봉쇄됐다.’
이제 남은 건 어중이떠중이들뿐이다.
닥터가 그렇게 확신함과 동시에 침입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건, 밉살스러운 루안 팔라티아의 얼굴이었다.
“환영한다. 루안 팔라티아. 네가 네 발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나 줘서 얼마나 기쁜…….”
그렇게 멍청한 선택을 한 루안에게 비웃음을 선사하려 할 때였다.
“……!”
닥터가 눈을 부릅뜨고 입을 닫았다.
“네놈이 닥터인가.”
루안의 뒤로 있어선 안 될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네년…… 어떻게……?”
“왜 그렇게 놀라지? 내가 여기까지 온 게 그렇게 신기한가?”
“…….”
닥터가 미간을 찌푸리고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생각을 거듭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세인 비노슈는 섀도우의 그림자 성역에 갇혀 봉쇄되었어야 하는데. 왜 세인 비노슈가 멀쩡하게 여기에……. 실패한 건가? 그럼 섀도우는 대체 어디에…….’
그렇게 닥터의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차 갈 때.
“호랑이의 등에 타서 권력을 탐하던 토끼는 호랑이가 사라지자마자 여우에게 잡아 먹혀 죽었다고 하던가.”
“……!”
세인의 입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네 상황에 딱 어울리는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나?”
세인이 한껏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니. 조금 다른가.”
비웃음을 머금은 채, 그대로 검을 빼들었다.
“옛 이야기 속 토끼와 호랑이는 아주 친한 친구였지만, 지금의 토끼는 호랑이가 적이라는 것도 모르는 더한 멍청이니 말이야.”
사아아아아아아-!
그림자가 다시금 팽창했다.
그 그림자는 이내 하나의 성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림자……성역……?”
그림자 성역은 닥터를 포함한 10인의 침입자를 완벽하게 가뒀다.
이제 섀도우가 성역을 풀기 전까진, 그 누구도 이 밖으로 나설 수 없다.
“섀도우 네놈 설마……!”
상황 파악을 마친 닥터가 분노에 차 소리쳤다.
“그래. 친구라 생각했던 호랑이에게 등 뒤를 물린 기분은 어떤가?”
세인 비노슈가 닥터를 조롱했다.
닥터는 그런 세인 비노슈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한층 더 큰 분노를 터트렸다.
“감히, 감히 날 배신해? 샘플 따위가……! 감히!!”
닥터의 분노 어린 외침이 그림자 성역 내부를 가득 채웠다.
“체크 메이트다. 닥터.”
그런 닥터를 바라보며 세인이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필살(必殺).
반드시 죽인다는 의지를 품은 세계 최고의 살인검이 닥터를 향해 송곳니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