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67)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267화(267/466)
기사에게 ‘명예를 잃었다.’는 말은 최고의 비난이자 비하이다.
그런 말을 신하율이 했다.
심지어 기사만을 비하한 것도 아니다.
신하율은 비노슈가의 검도 명예를 잃었다고 했다.
이건 세인 비노슈의 역린을 제대로 건든 말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세인에게 저런 말을 했다면, 그 자리에서 몸통과 머리가 분리되었으리라.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신하율의 날카로운 말에 세인 비노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말 그대로의 의미라 함은 비하의 의미가 맞다는 말인가?
세인의 눈에서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만약 그런 의미로 말한 거라면…….’
기사와 비노슈가를 단순히 비하할 목적으로 그런 말을 한 거라면, 제 아무리 신하율이라고 해도. 루안 팔라티아라고 해도 용서치 않으리라.
세인이 시베리아의 폭풍보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으로 신하율을 응시했다.
“세인 님은 기사. 검을 다루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를 택하는 건 불가하다.”
세인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검술을 뒷받침할 신체능력. 그 신체능력을 보조할 마나 코어. 뛰어난 신체능력과 마나 코어를 100% 활용할 수 있는 두뇌. 두뇌를 살릴 수 있는 전투 경험과 센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침착한 판단 능력. 검사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따윈 없다. 모든 게 중요하다.”
검을 다루기 위해선 모든 것에 통달해야 한다.
어느 하나가 부실하면, 다른 하나도 같이 부실해진다.
고로, 검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따윈 없다.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
“정석적인 대답이네요. 하지만 아닙니다.”
하지만 신하율은 고개를 저었다.
“말씀하신 것들은 모두 중요한 것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부가적인 것들일 뿐. 검사에게 제일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신하율을 노려보고 있는 세인.
신하율은 그런 세인과 여유롭게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마법사에게 있어 ‘마나 서클’ 같은 게 말이죠.”
만약 방금 전 질문을 마법사들에게 했다면, 누구나 다 ‘마나 서클’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마법사에게 제일 중요한 건 마나 서클이 맞으니까.
다른 부가적인 요소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마나 서클이야 말로 마법의 핵심이자 근원.
마나 서클이 있기에 마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마나 코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마법사에게 마나 서클이 있다면, 기사에겐 마나 코어가 있다.
지금 한 말의 흐름과 논지로 보아, 마나 코어가 제일 중요하다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헛소리. 마나 코어는 마나 서클과는 다르다. 마나 서클은 고리의 수가 늘어나며 성장하지만, 마나 코어는 그런 게 없다. 코어의 수가 늘지도 않을 뿐더러, 밀도나 용적도 크게 변화하지 않지.”
세인 비노슈가 12세에 처음 마나 코어를 완성시킨 뒤로 약 50년 간 훈련해서 늘린 용적이 고작 20% 남짓이다.
마나 코어의 성장 기대치는 마나 서클과 비교할 게 아니다.
“마나 코어는 마나 코어 자체의 성장이 아니라, 다른 것들의 복합적인 성장과 맞물려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다. 고로, 마나 코어가 제일 중요할 수가 없다. 네 생각은 틀렸다.”
어디 부정할 수 있으면 부정해 봐라.
그런 표정으로 신하율을 바라봤다.
“아뇨. 제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신하율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세인의 말을 부정했다.
세인의 눈이 더 날카로워졌다.
“……오래 살다 볼 일이로군. 내게 검을 가르치려 하는 놈이 나타날 줄이야.”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그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설명해 봐라. 어째서 마나 코어가 가장 중요한 것인지.”
두 명이 눈을 맞춘 채, 침묵했다.
세인은 신하율의 말을 기다리는 것이었고, 신하율은 조금 더 자신의 말에 힘이 생기도록 의도적으로 뜸을 들이는 것이었다.
“그 전에 정정부터 해 두겠습니다.”
약 3초의 정적 끝에 신하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기사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마나 코어가 아닙니다.”
“……뭐라?”
세인이 눈을 찌푸렸다.
마나 코어를 논한 게 아니라고?
“날 능멸하는 건가?”
마법사에게 마나 서클과 같은 것. 그런 말까지 해 놓고 마나 코어가 아니라니.
우롱하는 건가?
“그럴 리가요.”
신하율이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에게 마나 서클과 같은 것. 그 얘기를 듣고, 마나 코어를 떠올리신 건 당연합니다. 그게 지금의, 이 시대의 상식이니까요.”
“…….”
세인의 고개가 아주 살짝 기울었다. 이 시대의 상식? 지금 신하율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예상도 되지 않는다.
“기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 마법사에게 마나 서클과도 같은 것이란…….”
신하율이 다시금 말을 끌었다.
세인의 시선이 신하율의 입과 눈으로 집중되었다.
“명예입니다.”
“…….”
세인의 표정이 이 이상 없을 만큼 일그러졌다.
“무슨 말을 하나 싶었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정신론에 의거한 추상적인 대답이었나.”
아주 실망했다는 표정이다.
“퍽 재미있긴 하군. 돌고 돌아서 나온 게 다시 ‘명예’라.”
세인의 입가가 싸늘한 미소로 변했다.
“어디 더 얘기해 봐라. 기사에게 가장 중요한 명예. 그게 기사와 비노슈가의 검술이 명예를 잃었다던 말과 어떻게 이어지는 것인지.”
세인이 눈으로 ‘이게 내 마지막 자비다.’ 라고 말했다.
여기서 제대로 된 답을 내 놓지 못한다면, 정말 각오해야 할 거다.
그런 경고의 의미가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과거. 마법과 검은 누가 우위라 할 것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세계를 양분하고 있었습니다.”
신하율이 다짜고짜 옛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인이 무슨 생각이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어디 무슨 말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 들어나 보자.
그런 표정이었다.
“지금에 와선 한 세기에 한 명도 찾아보기 힘든 9서클 마법사가 열댓 명은 존재하던 시기. 그들과 쌍벽을 이루는 검사들도 그들과 같은 수만큼 존재했죠.”
“……호오.”
생각보다 흥미로운 얘기였다.
9서클 마법사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검사들이라.
그런 존재들이 열 명이나 됐다는 건 어디서 알게 된 걸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이지?”
“그 정도로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검사들이 이런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게 말입니다.”
“…….”
그런 대단한 선조들을 뒀음에도 여기까지 추락한 자신들을 비하하는 말인가?
아니다. 그런 기색은 전혀 없다.
다른 의미가 있다.
“무슨 의민지 설명해라.”
“AI의 발전은 마법사들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8서클 이하의 마법사들에게만 한정된 얘기일 뿐. 9서클 마법사에게 AI의 발전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왜지?”
마법에 대한 건 수박겉핥기로만 알고 있는 세인이니만큼, 저런 얘기는 금시초문일 수밖에 없었다.
“9서클 마법사들은 AI가 없어도, 자유자재로 마법을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9서클 마법사들의 마법 처리 속도는 슈퍼컴퓨터에 필적한다.
그들이 혼자 사용하는 마법이나, AI의 지원을 받아 사용하는 마법이나 큰 차이가 없다.
9서클 마법사에겐 AI나 마나 코어나 그게 그거다.
마법 효율을 수치화 하면 고작 4% 남짓한 정도밖에 안 된다.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큰 수치도 아니다.
“즉, 과거의 9서클 마법사들이나, 지금의 소피아 님이나 별 다를 건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 말대로라면 그렇게 되겠군.”
“그럼 삼단논법으로 지금의 소피아 님에게 필적하는 수준의 기사가 열댓 명 이상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신하율의 정보가 모두 진실일 경우에 한한 말이긴 하지만.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걸까요?”
“…….”
세인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 신하율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100% 이해한 표정이었다.
“이 시대의 최강자. 소피아 님에게 필적할 정도의 검사가 존재했었다는 말은, 검사의 성장 포텐셜이 현대 마법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인데. 기사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몰락한 걸까요. 마법 혁명으로 마법사에 입문하는 게 더 쉬워진 만큼, 어느 정도 밀리는 건 필연적이긴 합니다만, 이렇게까지 큰 차이가 벌어질 건 아니었는데. 대체 왜.”
“…….”
세인이 침묵했다.
지금 신하율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을 낼 수는 없었다.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모르겠군. 이유가 뭐지?”
신하율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어째서 이런 상황이 펼쳐진 걸까.
“정답은 이미 말했습니다. 2시간 전, 세인 님께 연락을 드렸을 때.”
2시간 전 연락.
세인이 불쾌하다는 듯이 눈을 찌푸렸다.
“기사가 명예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예.”
“…….”
돌고 돌아서 다시 기사 비하인가.
‘아니.’
그건 아니다.
지금까지의 말로 보아, 신하율에게 비하의 목적은 1도 없다.
단순 비하의 목적이라면 굳이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뭔가 다른 의미가 있다.
“번거롭게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제대로 설명해라.”
세인의 닦달에 신하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전. 마법사에게 마나 서클 같은 게 기사에게 무엇이냐는 말을 했었죠.”
“그래.”
“그게 바로 명예입니다.”
또 나왔다.
명예. 명예라.
“말의 논지로 보아, 아무래도 추상적인 개념의 명예를 의미하는 건 아닌 것 같군.”
“예. 아닙니다.”
신하율이 마나 코어를 활성화시켜, 마나의 밀도를 늘렸다.
“애초에 마나 코어는 기사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마나 코어를 지니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세인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과거, AI를 지니지 않은 마법사들은 모두 마나 코어를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다시 봐도 어마무시한 마나 밀도다. 솔직히 마나 코어의 완성도만 보면 자신 보다 위다.
“마나 코어는 말 그대로 코어. 마나 서클의 효율을 끌어올려주는 핵이자…….”
마나 코어는 베이스다.
검사고, 마법사고 관계없다.
과거엔 모두가 평등하게 마나 코어를 엮었다.
고로, 마나 코어는 검사들의 근원. 아이덴티티가 아니다.
“검사의 명예를 드높여주는 핵.”
검사들의 아이덴티티는 명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대의 기사는 명예를 잃었습니다. 비노슈가의 검 또한 명예를 잃고 반쪽짜리 검술로 퇴화했습니다.”
명예, 맹세란 단순히 개념적인 것이 아니다.
마법사에게 있어 마나 서클과도 같은 중요한 것.
검술의 핵심이다.
“…….”
“저는 현대의 검사들이 명예를, 영광의 맹세를 되찾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개선이란 현재 상황을 확실히 알고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 말은…….”
세인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예. 저는 기사들이 잃어버린 것. 명예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신하율의 눈동자가 결의로 빛났다.
“부디 제게 검사들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신하율은 그들이 잃은 명예에 대해 알고 있다.
미미르의 서에는 그에 대한 정보도 확실히 존재한다.
‘나라면 그들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
그리고.
“세인 비노슈 님. 저는 당신이 한층 더 강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싶습니다.”
세인 비노슈.
명예를 잃었음에도, 어지간한 8서클 마법사를 압도하는 강자.
이제는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최강의 검사.
그녀의 성장은 흑색 마탑의 박멸에 큰 도움이 될 테지.
“흐음. 기사 모두의 은인이 되겠다?”
“예.”
기사들의 강화는 신하율의 목표에 큰 도움이 될 거다.
나아가 그런 그들의 은인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
“저는 제 편이 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흑색 마탑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더 내 사람들을 만들어야 한다.
기사들이라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기사들이라면 분명 좋은 파트너가 되어 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양파 같은 놈.”
그런 신하율 보며, 세인이 작게 웃으셨다.
“까도 까도 뭔가 새로운 게 계속 나온단 말이야! 하하하!”
그리곤 이어 아주 즐겁다는 듯이 땅이 꺼지라 대소하셨다.
“그런 얘기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아니, 오히려 내 쪽에서 부탁하고 싶군.”
세인 님의 눈동자가 방 한편에 걸려 있는 명검보다 훨씬 더 예리하게 빛났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시작하지.”
세인 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한쪽 벽에 걸어 둔 검을 꺼내 허리춤에 걸쳤다.
“어디, 네가 말한 명예라는 게…… 맹세라는 게 무엇일지. 내게 보여 봐라.”
“예.”
나도 뒤따라 일어났다.
“진짜 기사가, 진짜 비노슈가의 검술이 어떠한 것인지. 똑똑히 보여드리겠습니다.”
미미르의 서에서 수박 겉핥기로만 배운 반쪽짜리지만, 세인 님을 놀라게 하기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