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68)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268화(268/466)
비노슈가 지하 대련실.
세인 비노슈와 스텔라 비노슈만이 사용할 수 있는 비밀 훈련장.
그곳에서 나는 세인 님과 단 둘이 대치하고 있었다.
“날 안달 나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은 이미 충분하리만큼 달성했다. 그러니 어서 시작해라. 이 이상 뜸을 들인다면,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
세인 님이 내게 자신의 검을 건넸다.
세인 님이 줄곧 몸에 지니고 다니시던 애검.
검사에게 검이란 자신의 신체 일부와 같은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런 걸 이렇게 쉽게 내어주시다니.
그만큼 날 믿고 계시다는 건가?
“왜 그리 놀라지?”
“아뇨. 그…… 아끼시는 검 아니신가 해서요.”
“병장기에 애착 따윈 없다. 검은 그저 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검에 대한 가치관이 여타 기사들과 조금 다르신 모양이다.
꽤나 신선한 가치관이었다.
검은 그저 검일 뿐.
다른 기사들이 들으면 버럭할 수도 있겠는데?
아니, 화자가 세인 님인 이상 그럴 리가 없으려나.
다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기뻐할 것 같기도 하고.
“됐으니까 어서 검이나 받아라. 그리고 내게 보여주거라. 네가 말한 명예가 무엇인지. 진짜 검사라는 게 무엇인지 말이야.”
“예.”
나는 그대로 세인 님의 검을 건네받았다.
그리곤 뒤로 세 걸음 정도 물러나,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명검 특유의 예리한 금속 마찰음이 청명하게 울렸다.
굳이 휘둘러보지 않아도 알겠다. 이 검은 명검이다.
그것도 이 시대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명검.
“이 검. 몇 년 정도 사용하셨습니까?”
“글쎄. 30년 정도일까.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 않다.”
30년.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검이었다.
이런 검이라면 애착이 생길 법도 한데. 저렇게 쿨하게 내어주시는 것도 참 대단하시단 말이지.
“왜 그러지? 네 말대로 내가 지닌 검들 중 가장 오래 된 검을 가져 온 거다만. 30년은 너무 짧은 건가?”
“아뇨. 충분합니다.”
30년.
검의 역사에 비하면 하루살이의 수명만큼이나 짧은 시간이지만.
이 검에 담긴 세월의 밀도는 고작 30년 정도로 치부할 게 아니다.
이 검에는 세인 비노슈의 30년 인생이 담겨 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그대로 검을 가볍게 감싸듯이 쥐었다.
그리고 인피니티 서클은 완전히 동결시킨 채, 마나 코어만을 이용해 마나를 움직였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은 완전한 기사가 되었다.
“아까 전. 세인 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검에 집착은 없으시다고.”
“그랬지.”
“아마 그 가치관, 오늘 이후로 바뀌실 겁니다.”
세인 님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아주 흥미롭다는 표정.
어디 또 무슨 말을 할지, 기대된다는 표정이다.
“재미있군. 이 나이가 돼서 깨달음을 하루에 두 개나 얻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가치관의 부정.
자존심이 상해도 한참 상할 만한 말인데, 그런 기색은 전혀 없어 보였다.
놀라웠다.
본디 강자라 함은,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존재를 일컫는다.
그리고 자신의 힘에 자부심이 있는 자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상식을 진리라 생각한다.
그런 강자가 저 정도로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있다니.
‘아까 전, 내 말을 상당히 쉽게 믿어주시기도 했고.’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
이게 세인 비노슈가 지닌 강함의 비밀이 아닐까.
적어도 그녀가 지닌 강함 중 하나인 건 확실하다.
나는 다시금 세인 비노슈라는 인물의 강함에 감탄하며, 검을 조금 더 강하게 쥐었다.
“제가 읽은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곤 천천히 마나를 움직여, 검에 집중시켰다.
“레이 벨 바이테너. 그가 만든 마법은 미래를 위한 힘이다.”
마법이란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무한히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마법은 미래를 의미한다.
“베일 스톨. 그가 만든 흑마법은 현재를 위한 힘이다.”
흑마법은 현재를 위해 미래를 버린 힘이다.
고로, 흑마법은 현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내 검에 깃든 마나가, 서서히 밀도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그건…….”
그 순간, 세인 님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내 마나…… 인가?”
나는 세인 님의 질문에 답하는 일 없이, 하던 말을 이었다.
“검이란 과거를 위한 힘이다.”
번쩍-!
세인 님의 검에 깃든 마나가 팽창했다.
강하면서도 유연하고, 예리하면서도 부드러운 마나.
내 마나가 아닌, 세인 비노슈의 마나가 내 검과 내 신체에 깃들었다.
“검이란 과거를 받아들이고 답습하는 것으로, 새로운 지평을 여는 힘이다.”
세인 비노슈의 인생이 내 검에 깃들었다.
30년.
아니, 정확히는 32년 하고도 48일.
세인 비노슈가 세인 비노슈로서 존경받기 시작한 순간부터의 인생이 내게 깃들었다.
“과거를 버린 자에게 영광은 없다. 명예를 저버린 자에게 광휘는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그대로 검을 들었다.
떠올리는 건, 닥터와 싸우던 세인 님의 검.
세인 님의 검은 무엇을 담고 있었나.
무엇을 담고 있었기에 그리도 아름다웠는가.
어찌하여 그리도 외로워 보였는가.
“과거를 버린 자에겐 현재도, 미래도 없다.”
고독함.
세인 비노슈의 검은 지독한 고독함을 담은 검이다.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이기에 아름답고, 홀로 피어 있는 꽃이기에 외롭다.
“아…….”
세인 님이 눈을 부릅뜨고 탄성을 내뱉었다.
지금 내 검에 깃든 게 무엇인지 눈치채신 걸까.
“기억해라. 검이란 이어가는 것. 과거를 현재로, 미래로 잇는 것이다.”
나는 그대로 검을 내려쳤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부드럽게 휘둘렀다.
내 검은 그 무엇도 베지 않았다.
엄청난 검기가 생성되어 훈련장을 두 동강 낸 것도 아니다.
그저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졌을 뿐.
그저 그것뿐.
“……하, 하하.”
세인 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실성한 듯한, 넋이 나간 듯한.
그런 웃음소리였다.
“하하하하!!”
세인 님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 이상 기쁠 수 없다는 듯이, 이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듯이.
“과연. 그게 네가 말한 명예인가. 영광인가. 맹세인가……!”
“예.”
대수롭지 않아 보였던 종베기.
그 검은 세인 비노슈에게 만큼은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그 검에 담겨 있는 게 무엇인지.
과거를 담는다는 게 무엇인지.
명예를 잊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
그녀라면 모든 걸 이해했을 것이다.
“그렇구나. 그래. 그랬던 거였어.”
세인 님의 입꼬리가 이 이상 없을 만큼 치켜올라갔다.
“과거를 받아들인다. 과거를 기억한다. 과거를 축적한다. 그게 검. 진짜 검인가.”
깨달음에 희열하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지금 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해 하는 건 세인 님이다.
지금 세인 님의 표정을 보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거다.
“나는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세인 님이 웃었다.
아이처럼. 소녀처럼.
“감사한다.”
그렇게 웃으며 날 바라봤다.
세인 님의 두 눈에 담겨 있던, 미약한 공허함과 허무함은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내 모든 진심을 담아 경의를 표한다.”
아마 오늘 이후로, 나태한 절대자는 사라질 것이다.
나태하다는 수식어는 완전히 사라져, 평범한 절대자가 될 테지.
새로운 등대를 발견한 그녀의 인생에 ‘나태’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검을 이리.”
세인 님이 내게서 검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자리를 비워드릴까요?”
“아니. 괜찮다.”
그리곤 소풍가기 전 날의 아이처럼 웃었다.
“제자가 처음 펼치는 검이다. 스승이 떠나서야 쓰겠느냐.”
“……스승이라뇨. 제가 어떻게 세인 님의 스승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내게 가르침을 준 사람은 모두 스승이다. 그게 아직 성인도 안 된 학생이라고 해도.”
세인 님이 그대로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니 보고 있거라. 내 첫 걸음을 내딛는 광경을 봐 주거라.”
그리고는 살짝 눈을 감고, 깊게 호흡을 내뱉었다.
세인 비노슈의 인생이 검과 숨을 통해 내게 전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흡!”
짧은 기합과 함께 세인 님의 검이 허공을 베었다.
아까 전, 내가 펼친 검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높은 격을 지닌 종베기.
그저 보고 있었을 뿐인데, 내 전신에 닭살이 돋았다.
방금 그 검은 이미 완성형이라 불러도 좋을 수준이었다.
고작 한번 눈으로 봤을 뿐임에도 이런 수준이라니.
그녀의 재능에 감탄조차 나오지 않는다.
“어떤가. 스승. 이 정도면 급제점인가?”
세인 님이 묘하게 장난스런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바로 하산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나는 그런 세인 님과 눈을 맞추며 허허 웃었다.
“그런 말 마라. 스승. 난 아직 멀었다.”
세인 님이 결의에 찬 눈으로 검을 꽉 쥐었다.
아직 이 정도론 만족하지 못한다는 듯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이.
세상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일단, 그 장난으로라도 스승이란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진심으로 부담스럽습니다.”
“부담스럽다라. 그렇다면 계속 해야겠군.”
“짓궂으시네요.”
“친애의 증표라고 생각하거라.”
“……예.”
아마 그리 멀지 않은 미래.
기사라는 존재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 * *
그 후.
나는 곧장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원래대로라면 조금 더 얘기를 했겠지만, 세인 님이 훈련장에서 나올 생각이 없으셔서, 남은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했다.
“미미르. 나 왔어.”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미미르의 서로 향했다.
“빨리 왔네?”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언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미미르가 책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반겼다.
“어. 얘기가 좀 빨리 끝났…….”
미미르의 환대에 평소처럼 대꾸를 하려다가, 무언가를 목도하고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어서 넋이 나가버린 것이다.
“아, 얘? 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이러던데?”
미미르의 무릎 위에 미호가 올라가 몸을 말고 있다.
나와 아델라를 제외하곤 그 누구의 접촉도 꺼려하던 미호가.
미미르의 온갖 어프로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꼬리치기만을 반복하던 그 미호가, 미미르의 무릎 위에 몸을 말고 웅크려 누운 채 잠들어 있다.
“진짜 변덕스럽다니까.”
미미르가 미호를 쓰다듬으며 쓰게 웃었다.
“누가 여우 아니랄까 봐……. 그래서 더 귀여운 거긴 한데.”
뭔가 슬퍼 보이는 미소였다.
“미미르? 뭔 일 있어?”
기쁨에 몸서리쳐도 모자랄 판에 저런 표정이라니.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뭔가 싱숭생숭해서.”
미미르가 손사래를 쳤다.
언제 쓴웃음을 지었냐는 듯이 환한 미소로 변했다.
하지만 그 미소 또한 묘하게 슬퍼 보였다.
“그보다 일은 잘 해결 된 거지?”
“……어? 아, 어. 잘 해결됐어. 이제 내일 준비해 둔 카피본을 건네 드리면 끝이야.”
“그래? 잘 됐네.”
미미르가 묘하게 어색한 답변을 하고는 그대로 침묵했다.
확실히 뭔가 이상해 보이긴 한다.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미미르. 고민이 있으면…….”
“계승자.”
미미르가 내 말을 끊고 나를 불렀다.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가 열렸어.”
“……어?”
“계승자가 시험을 치를 만한 수준까지 올랐다는 거야.”
“아.”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는 또 그런 식으로 되어 있구나.
“축하해. 이제 곧 7서클이네.”
“에이. 아직 축하하긴 이르지. 시험이 얼마나 어려울지 눈에 보이는데.”
앞선 시험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 또한 엄청난 난이도일 게 분명하다.
축하하긴 이르다.
“시험에 합격해도 7번째 인피니티 서클을 엮는 데 또 엄청 시간이 들 거고……. 축하는 합격한 뒤. 무사히 7서클에 오른 뒤에 받을게.”
“…….”
미미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웃고만 있을 뿐.
“응. 알았어.”
그렇게 약 5초의 침묵이 흘러.
미미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합격하고 난 뒤. 7서클에 오르고 나면 제대로 축하해 줄게.”
그렇게 말하는 미미르의 표정은 뭔가 슬픈 듯하면서도, 묘하게 개운해 보였다.
“기대해. 그때를 대비해서 이렇게…….”
미미르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연구일지의 표지를 보여주며 베시시 웃었다.
“선물까지 준비해 뒀으니까.”
“오. 드디어 보여주는 거야?”
“응. 거의 다 완성됐거든. 이제 보여줘야지. 진짜 엄청난 게 탄생했어. 보면 깜짝 놀랄 걸?”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대단한 거란 건데. 알았어. 기대할게.”
“귀엽게 편지도 써서 줄 테니까. 보고 감동해서 울면 안 돼.”
1) 뭔가를 털어낸 듯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