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69)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269화(269/466)
새벽.
아직 달빛만이 세상을 가득 비추고 있는 시간.
스텔라가 잠에서 깨어났다.
무려 13시간만의 기상.
간만에 푹 자서 그런가, 혈색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다.
“……배고파.”
어느 정도 컨디션이 돌아왔기 때문일까. 여태껏 전혀 생각이 없던 식욕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스텔라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저택 1층의 조리실로 향했다.
“아가씨!”
그렇게 1층에 도착하고.
1층에서 당직을 서고 있던 집사가 눈을 부릅뜨고 스텔라에게 달려왔다.
“몸은……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집사가 진심으로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자기 때문에 마음 고생했을 집사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를 건넸다.
“괜찮습니다. 전혀 신경 쓰실 필요 없으십니다. 제 걱정 따위, 아가씨가 입은 마음의 상처에 비하면…….”
집사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말실수를 했다는 표정.
지금의 스텔라 앞에서 루안 팔라티아를 연상케 하는 말을 해선 안 됐는데.
이런 실수를 해 버리다니.
“괜찮아요. 그 건은 이제…….”
스텔라가 베시시 웃었다.
마음의 응어리 따윈 전혀 보이지 않는 표정.
모두 털어 낸 듯한 표정이었다.
집사가 진심으로 감동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성장하셨군요…….”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한층 더 성장한 스텔라의 모습에 진심으로 감격한 것이다.
“……아하하.”
스텔라가 오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집사는 지금 성대한 착각을 하고 있다.
스텔라가 지금 이렇게 괜찮아 진 건, 마음의 상처가 아물었기 때문이 아니다.
상처의 원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말할 순 없지만.’
루안 팔라티아의 정체가 신하율이라는 사실은 극비 중의 극비다.
비노슈가에서 그걸 아는 사람은 스텔라와 세인 뿐.
제 아무리 집사라고 해도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굳이 집사의 말을 부정하지 않은 것이다.
조금 양심이 찔리긴 해도, 성장했단 걸로 해 두는 게 깔끔하니까.
“이 기쁜 소식을 한 시라도 빨리 가주님께 전해드려야겠습니다.”
격하게 감동한 집사가 그런 말을 했다.
‘이미 어머니는 알고 계실 텐데.’
루안 팔라티아의 정체가 신하율이라는 건 세인도 알고 있다.
당연히 스텔라가 괜찮아졌을 거란 것도 알고 있을 테지.
그렇다면…….
“어머니껜 제가 직접 말씀드릴게요.”
“아! 그게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집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완전히 평상시의 상태로 되돌아 온 스텔라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는 방에 계시죠?”
“아뇨. 지금 가주님은 지하 훈련장에 계십니다.”
“……지하 훈련장에요?”
“네. 오늘 낮에 신하율 님과 함께 지하 훈련장으로 가시더니…… 그 후로 계속 나오지 않고 계십니다.”
“신하율 님이랑……. 그럼 지금도 같이 계시는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신하율 님은 한참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미처 못 다한 얘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조금 아쉽다.
“그럼 지하로 가 봐야겠네요.”
원래라면 식사부터 가볍게 해결한 뒤에 어머니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어머니가 지금 뭘 하고 계시는지 너무 신경 쓰여.’
이미 정점에 달한 검사가 10시간가량이나 훈련장에 있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이 시간까지 훈련장에 있는 걸까.
신경 쓰인다.
너무나도 신경 쓰인다.
“그, 지금은 안 됩니다.”
“안 된다뇨?”
“별도의 언질이 있기 전까진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저도요?”
“모두라고 했으니 아마도…….”
“……그래요?”
호기심이 더 커졌다.
대체 뭘 하고 계시길래 축객령까지 내린 걸까.
“신경 쓰이긴 하는데……. 어머니의 명령이면 어쩔 수 없네요.”
“……예.”
호기심은 호기심이고.
명령은 명령이다.
비노슈가의 가주가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한 이상, 그 명령은 준수되어야 한다.
스텔라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삐이익!
당직관용 무전기에서 신호음이 울린 건 그때였다.
그것도 평범한 신호음이 아니다.
가주의 연락을 알리는 신호음.
이 무전은 세인 비노슈의 무전이었다.
―들어오라고 해라.
“……?”
주어도 없이 다짜고짜 들어오라고 하는 세인.
집사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스텔라는 상관없다. 들어와도 좋다.
그제야 상황 파악을 완료한 집사가 눈을 부릅떴다.
세인 비노슈는 지금 이곳의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 훈련장에서 이곳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 따윈 없는데…… 대체 어떻게?’
지하 훈련장은 말 그대로 비노슈가 일족들의 비밀 훈련을 위해 설계된 곳이니만큼,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세인 비노슈가 이곳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곳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일까.
―무얼. 지금 꽤나 흥분되는 훈련을 해서 말이야. 감각이 필요 이상으로 날카로운 상태일 뿐이다.
세인이 작게 웃었다.
―아, 그래. 집사. 옷부터 제대로 정돈하도록. 비노슈가의 집사가 그런 상태여서야 면목이 안 선다.
“제 옷이 어떻……. 아!”
집사가 자신의 옷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방금 전 허겁지겁 달려오며, 옷이 상당히 흐트러져 있었다.
“이걸…… 어떻게…….”
―말했잖나. 지금 감각이 좀 날카로운 상태라고.
집사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생각을 읽혔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더 놀라운 건 감각이 날카로운 상태라는 말이었다.
‘세인 님의 감지 능력이 한층 더 성장하셨다. 그것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밀 엄수를 위해 마나 차단벽이 깔려 있는 지하 훈련장 내부에서 외부의 기운을 감지하다니.
이전까지의 세인에겐 불가능한 곡예였다.
“……지금 뭘 하신 거예요?”
옆에서 조용히 상황 파악을 하고 있던 스텔라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스텔라도 지금 세인에게 뭔가가 일어났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궁금하면 와서 직접 보거라.
세인이 픽 웃었다.
그게 마지막 무전이었다.
“갔다 올게요.”
스텔라는 멍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집사에게 건넸다.
그리곤 그대로 뭐에 홀린 듯이 지하 훈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니. 저 왔…….”
그렇게 지하 훈련장에 도착한 스텔라의 눈에 보인 것은.
“이건…….”
“왔느냐.”
바닥에 대자로 누워, 거친 숨을 색색이고 있는 세인 비노슈의 모습과.
“이건 대체…….”
“아, 이거 말이냐?”
완전히 파괴된 훈련장의 전경이었다.
어지간한 고서클 마법으로도 흠집조차 낼 수 없을 만큼 튼튼하게 만들어진 훈련장.
그런 훈련장이 걸레짝처럼 찢겨져, 짓이겨진 상태였다.
“그냥. 신이 나서 검을 휘두르다보니 이렇게 돼 버렸다.”
바닥에 대자로 쓰러져 있는 세인이 개운한 표정으로 웃었다.
“미안하지만, 한동안 훈련은 다른 데서 해야 할 것 같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스텔라가 멍한 표정으로 다시금 훈련장을 살폈다.
1/1000의 크기로 압축시킨 태풍을 열 개 정도 이곳에 풀어 버리면 이런 광경이 되지 않을까.
“진짜…… 뭘 하신 거예요?”
“별거 안 했다.”
세인이 누워있는 상태에서 고개를 더 들어, 머리 위에 서 있는 스텔라를 올려다봤다.
“그냥. 내 과거를…… 비노슈가의 과거를, 나를 되돌아 봤을 뿐.”
세인이 환하게 웃었다.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 원하는 선물을 받은 아이 같은 천진한 웃음이었다.
“그게 무슨…….”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말에 스텔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뻐해라. 딸아.”
“……?”
세인이 스텔라의 멍한 눈을 보며 진심을 담아 웃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더욱 더 강해질 수 있다.”
“……??”
스텔라의 머릿속에서 의문이 계속해서 커져갔다.
* * *
새벽.
나는 미미르의 조언에 따라,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 들어섰다.
조금 더 준비를 한 뒤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그냥 지금 들어가라고 했다.
준비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가 열린 순간 모든 준비가 끝난 거라고.
지금 당장 들어가는 게 좋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들어왔다.
지금까지 미미르의 말을 들어서 손해를 본 적은 없으니까.
미미르가 저렇게까지 단언하는 이상, 따르는 게 맞다.
뭐, 솔직히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엔 어떤 시험과 어떤 시험관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또 어떤 새로운 세계와 지식이 날 기다릴까.
그런 생각과 함께 설렘을 가득 안고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로 들어섰다.
“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거라. 본녀는 그대를 환영한다.”
허리 밑으로 오는 긴 녹발.
누가 봐도 자신이 황녀임을 주장하는 듯한 화려한 예복.
“먼저 본녀의 소개부터 해야겠지. 본녀의 이름은 미미르 벨 바이테너. 그대가 습득하고 있는 바이테너식의 창시자인 레이 벨 바이테너의 유일한 직계이니라.”
미미르.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더냐.”
나를 전혀 모르는 듯한.
내가 전혀 모르는 듯한.
그런 미미르가 말이다.
“내 말. 듣고 있는 게냐.”
“어? 어. 듣고 있는데…….”
머리가 복잡했다.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된다.
지금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
“흐음. 초면부터 상당히 친근한 말투로구나. 예의는 어디, 흑마법사 놈들에게 팔아먹기라도 한 게냐.”
미미르가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 날카로운 눈빛과 눈을 맞추고 있다 보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내가 아는 미미르가 맞긴 하구나.’
외모 빼고는 다 다른 듯한 느낌이었는데. 저 표정만큼은 내가 아는 미미르와 판박이다.
그래서인지, 단숨에 마음이 편해졌다.
“……매도를 당하고도 웃는다라. 묘한 놈이로다.”
미미르가 희귀한 동물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직시했다.
“그래. 책에서 읽은 적 있다. 분명 그대 같은 자들을 마조히스트라고…….”
“아니야.”
뭔가 성대한 오해를 하는 것 같아서 빠르게 부정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하지. 이해했다.”
“……아니라니까.”
“흠. 역린이었나. 알겠다. 그런 걸로 해 두겠다.”
미미르가 모두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그만 하도록 하지. 본녀에게 타인의 상처를 쑤시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
뭔가 말이 안 통한다.
평소의 미미르와는 천지차이다.
진짜 내가 아는 미미르가 아닌 건가?
“혹시 연기하는 거 아니지?”
“연기?”
미미르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연기라기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만 하는구나. 이런 자가 계승자라……. 걱정이 앞서는구나.”
미미르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앞으로의 일이 걱정된다는 표정이다.
“그래서야 이번 시험을 통과할 수나 있겠느냐.”
시험.
그 말에 갑자기 머리가 차가워졌다.
그래. 상황 파악이고 뭐고, 일단 시험에 집중해야 한다.
자세한 건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를 나선 뒤, 미미르에게 들으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의 정리를 끝마쳤다.
“하긴. 그건 본녀가 걱정할 게 아니군. 시험에서 떨어진다면, 고작 그것뿐인 남자였다는 말이니.”
미미르가 자못 차가운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그럼 바로 시험을 시작하겠다.”
미미르가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오거라.”
“……인정?”
“그래. 그녀에게 인정을 받고 온다면 합격이다.”
미미르가 씨익 웃었다.
어디 인정을 받아 올 수 있다면 받아 와 보라는 표정.
내가 절대 인정받지 못할 거라 자신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 뭔가 욱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이걸 이렇게 자존심을 긁네.
“어디로 가면 되는데?”
“동쪽에 있는 대삼림. 그린우드 숲.”
“그린…우드?”
“그래.”
거기서 살고 있는 누군가라고 하면…….
설마.
아니겠지?
“그곳에서 은거하고 있는 숲의 마법사. 엘레나 로 그린우드. 엘레나에게 인정을 받아 오거라.”
“…….”
……맞네?
‘진짜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야?’
안 그래도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