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73)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273화(273/466)
베일 스톨.
상상도 못한 거물의 등장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베일 스톨이…… 어떻게 시험의 페이지에……?’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된다.
베일 스톨.
흑마법의 시초가 왜?
‘이것도 스승님의 계획인가?’
아니.
아마 아닐 거다.
상식적으로 그럴 수가 없다.
‘스승님이 제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고 해도, 베일 스톨까지 그대로 복제해, 구현화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베일 스톨.
사국의 왕이자, 흑마법사들의 왕. 스승님을 죽게 만든 놈이다.
제 아무리 스승님이라고 해도, 그런 놈을 구현화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바이테너식이라고 해도 한계가 없는 건 아닐 테니까.
고로, 지금 이 상황은 스승님의 의도하신 게 아니다.
이런 말이 된다.
“네 생각이 맞다. 나는 레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베일 스톨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생각을 읽은 건 아니야. 타인의 생각을 읽는 건,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지만……. 레이와 레이의 후계자. 너희에겐 불가능하지. 방금은 네 당황하는 얼굴을 보고 유추해 봤을 뿐이다.”
“…….”
베일 스톨의 눈이 한층 더 가늘어졌다.
먹이를 관찰하는 포식자의 시선이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한가?”
“…….”
대답하고 싶었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저 남자를 앞에 두고 있으니, 입이 움직이질 않았다.
무언가가 내 세포 하나하나를 옥죄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레이가 미래의 계승자. 너를 위해 이러한 책을 남길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내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 턱을 괜 채로 느긋하게 말을 시작했다.
“그걸 예상하고, 그에게 마지막으로 저주를 걸 때 내 의지를 담은 마나를 레이의 심연 깊은 곳에 침투시켰지. 레이가 자신의 모든 힘을 다 쏟아부을 때. 내 의지가 스며들어 갈 수 있도록.”
베일 스톨의 눈이 한층 더 어둡게 빛났다.
“이렇게 내 존재를 남기기 위해서. 미래의 숙적인 레이의 계승자를 제거하기 위해서.”
베일 스톨이 천천히 꼬았던 다리를 풀고 턱을 지지하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리곤 그대로 왕좌에서 일어나 아주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꽤나 승률이 낮은 도박수였다만 이렇게 성공해 냈지.”
터벅.
터벅.
죽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죽어가던 레이는 내가 준비해 둔 마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이렇게 미래의 계승자를 사자의 아가리에 집어넣는 결과를 낳게 됐다.”
걸으면서 작게 박수를 쳤다.
“골계(滑稽). 이 얼마나 익살스러운 상황인가.”
터벅. 터벅.
이제 놈과 나 사이의 거리는 5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저 남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바로 내 목은 몸통과 분리되어 하늘을 날아가게 되겠지.
“끝이다.”
베일 스톨이 세상 기분 좋다는 듯이 웃으며 나를 내려다봤다.
“네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난다. 너만 사라지면 더 이상 날 막을 사람은 없다. 이제 이 세계는 나의 것이다.”
베일 스톨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심연을 연상케 하는 듯한 어두운 마나가 응집되어 있다.
타락한 마나가 저 정도로 응집되어 있는 건, 난생 처음 본다.
3미터.
2미터.
1미터.
“내가 이겼다. 레이. 너는 끝끝내 내게 패배하였다.”
놈의 손이 내 코앞까지 다가온 그 순간.
쨍그랑-!!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이미 몇 번이나 들어서 익숙한, 공간이 깨지는 소리였다.
“……베일 스톨!”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공간 사이로 아스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 눈을 날카롭게 빛내고 있는 엘레나 님과, 성체의 모습이 된 구미호가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 다급한 표정의 미미르가 보였다.
아까 전 황녀궁에서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장식들이 주렁주렁 달린 예복을 입고 있다.
얼굴도 내가 아는 미미르보다 애티가 나고.
그것만 보면 내가 아까 전 황녀궁에서 만났던, 7년 전 미미르다.
하지만 뭔가가 달랐다.
복장과 얼굴은 7년 전 미미르지만, 품고 있는 분위기가 다르다.
아주 익숙한 분위기.
미미르의 서에서 몇 번이고 느꼈던 미미르 특유의 분위기였다.
“계승자!”
“미미르?”
확실하다.
저 미미르는 7년 전 미미르, 날 모르는 미미르가 아니라.
내가 아는 미미르다.
“계승자! 어디 다친 데 없어?”
미미르가 내게 다가와 내 신체 이곳저곳을 살폈다.
“다행이야. 안 늦었구나.”
이내 내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 어떻게……?”
미미르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걸까?
“설마 아까 전엔 연기였던 거야?”
황녀궁에서 만났을 땐 연기를 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 아무리 봐도 그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황녀궁에서 만난 미미르는 진짜로 나를 모르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미미르가 강하게 부정했다.
“그때의 나는 진짜 계승자와 만나기 전의, 과거의 나였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미미르가 내게서 시선을 떼고 저 멀리서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는 베일 스톨을 노려봤다.
“계승자가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 들어서고 난 후.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강제로 난입했어.”
“난입? 그런 게 가능해?”
“원래라면 불가능했겠지. 근데…….”
미미르의 시선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저 놈이 이 세계의 구조를 어느 정도 붕괴시켜 줬으니까. 과거의 내게 현재의 나를 덮어씌우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어.”
베일 스톨이 만든 빈틈을 비집어 열고 끼어들었다.
이런 말이었다.
“저놈이 난장판으로 만들어 줘서, 엘레나랑 아스란도 이 세계에 빨려들어 온 거고.”
그게 그렇게 된 거구나.
“설마 내 결계를 부순 게 너인가?”
베일 스톨이 제법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미미르를 바라봤다.
“그럴 리가. 결계는 엘레나랑 아스란이 부쉈어. 나는 결계의 파훼 방법을 알려줬을 뿐.”
“……호오.”
베일 스톨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마법의 재능은 없더라도, 레이의 핏줄은 핏줄이라는 건가.”
“그렇지 뭐.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연구나 분석 쪽으론 아바마마 보다 뛰어날 걸?”
“……흠.”
베일 스톨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화 낼 거라 생각했는데, 멀쩡해 보여서 짜증나?”
미미르가 여유롭게 웃으며 머리칼을 휘날렸다.
“지금의 내게 그런 도발은 안 통해. 그럴 나이는 한참 전에 넘어섰어.”
“……흐음.”
베일 스톨이 썩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못 보던 사이에 꽤나 많이 변했군.”
“그렇지 뭐. 그간 꽤 많은 일이 있었거든.”
미미르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변하지 않은 건 당신을 향한 원망, 분노 정도가 아닐까?”
미미르의 농담 아닌 농담에 베일 스톨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농담까지 할 수 있게 됐나. 이전까지의 반푼이 황녀라곤 생각되지 않는군.”
베일 스톨의 웃음이 돌연 멎었다.
“허나 네가 달라졌다고 해서,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베일 스톨의 신체 주위로 타락한 마나가 한가득 뿜어져 나왔다.
지금껏 본적도 없는 수준의 마나량.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마나를 다 합쳐도, 저 마나량에는 안 된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엘레나 로 그린우드. 아스란 폴로함루인. 너희들 정도론 날 막을 수 없다.”
베일 스톨이 차례대로 시선을 돌렸다.
“구미호. 레이가 없는 너는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다. 반푼이는 벗어난 황녀. 너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베일 스톨이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아직 꽃피우지 못한 레이의 계승자. 너 또한 마찬가지. 너희는 날 이길 수 없다. 절대로.”
베일 스톨의 마나가 한층 더 커졌다. 마치 세계의 모든 마나가 베일 스톨에게 집중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포기해라. 포기하고…….”
베일 스톨이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 순간, 마나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우릴 삼키겠다는 듯이, 살기등등하게 요동친다.
“너희의 희망이 먼지로 화해 허공에 흩날리는 광경을…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지켜봐라.”
베일 스톨이 마나가 오직 나만을 노리고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스란! 방어는 제가 맡겠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다!”
콰아아아아아앙!
베일 스톨의 마나와 아스란의 공간 마법이 격돌하며, 공간이 깨져나가는 듯한 파열음이 울렸다.
치열한 전투의 서막을 알리는 공 소리였다.
* * *
다짜고짜 발발한 전투.
전세는 압도적이었다.
“하등한 놈들. 모두 쓸데없는 짓이다. 너희는 레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베일 스톨의 압도적인 우세.
그의 압도적인 힘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저 남자는 격이 다르다.
지금의 우리가 한 다스로 덤벼도 저 남자에게 승리를 따 내는 건 불가능하다.
“너희에게 허락된 건, 바닥에 엎드려서 나를 우러러보는 것뿐이다.”
베일 스톨이 그대로 손을 허공에 내리쳤다.
“벌레는 벌레답게 지면을 기어라.”
그 손짓은 거대한 압력이 되어 우리를 짓눌렀다.
마치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아, 우리를 누르는 듯했다.
“큭!”
엘레나 님이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제 정말 한계에 달한 듯하다.
나는 그런 엘레나 님의 등을 바라보며, 마나를 움직였다.
“이그니스!”
완벽하게 시전된 이그니스.
그것이 베일 스톨을 향해 날아들었다.
‘신화 마법이라면……!’
제 아무리 베일 스톨이라고 해도, 신화 마법까지 무시할 순 없을 테지.
“참으로 연약한 태초의 불꽃이로다.”
베일 스톨이 마치 파리라도 쫓아내듯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이그니스가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마치 촛불을 끄는 것처럼, 가볍게 이그니스를 지워버렸다.
“이게 정말 레이가 사용하던 이그니스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베일 스톨이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노려봤다.
그런 베일 스톨의 뒤에 공간이 열렸다.
아스란이 펼친 간이형 포탈.
그곳에서 튀어나온 아스란이, 그대로 공간 마법으로 벼린 검을 높게 치켜올려, 베일 스톨을 향해 내리친다.
“나쁘지 않은 기습이야.”
그러나 베일 스톨은 그런 공격 따위,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래도 이 중에 멀쩡한 건 너 뿐인 것 같군.”
베일 스톨이 뿜어내는 무형의 마나에 가로막혀, 그 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아스란의 검.
“하지만 소용없다. 네가 만전의 상태라고 해도, 혹여 한계를 초월한 상태라고 해도.”
베일 스톨이 팔짱을 낀 채로, 아주 작게 발을 굴렀다.
“네 마법은 내게 닿지 않는다.”
“커헉!”
그 순간, 아스란의 신체가 지면으로 격돌했다.
베일 스톨의 주위를 가득 채운 마나가 아스란의 신체를 짓누른 것이다.
“거기서 보고 있어라.”
베일 스톨이 아스란을 힐끔 쳐다 본 후, 엘레나 님에게 고개를 돌렸다.
“엘레나 로 그린우드. 힘 잃은 숲의 마법사여. 너도 이제 그만 쉬거라.”
쿠우우우우웅-!
“꺄아악!”
엘레나 님을 짓누르던 압력이 한층 더 거세졌다.
결국 엘레나 님은 베일 스톨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너희 둘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구미호와 미미르였다.
반항할 수 없는 거대한 폭류가 쏟아져, 두 명을 좌우로 날려버렸다.
구미호와 미미르.
둘은 각각 내 왼편과 오른편 벽면에 부딪쳐, 그대로 고정되었다.
“너희의 희망이 눈앞에서 짓밟히는 모습을 지켜보거라. 그게 날 방해한 너희에게 내리는 벌이다.”
베일 스톨이 내게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그대로 내 목을 잡았다.
“네……놈……!”
아스란 님이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엘레나 님이나 구미호, 미미르도 마찬가지였다.
이 셋은 아예 입을 열 수조차 없는 듯, 표독스런 눈으로 베일 스톨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네게 원한은 없다. 편하게 보내주마.”
베일 스톨의 마나가 내 목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들어온다.
그 순간, 내 신체 내부의 마나가 완전히 동결되었다.
내 신체의 마나는 이 남자의 마나에 반항할 의지조차 잃어버렸다.
“즉사 마법이다. 아무런 고통도 없을 거다.”
그렇게 베일 스톨의 마나가 내 심장을 완전히 감싸기 시작한 바로 그때.
돌연 베일 스톨의 마나가 멈췄다.
내가 공포에 번민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기 위함인가?
“이건…….”
아니.
그런 느낌은 아니다.
베일 스톨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부릅뜬 눈. 한껏 찌푸려진 미간.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지?”
베일 스톨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왜 내 마나가, 내 의지가 널 죽이길 거부하는 거지?”
베일 스톨의 마나가 날 죽이길 거부하고 있다?
무슨 말이지?
“과연. 아직 미숙하다곤 하나, 레이의 계승자라 이건가. 그렇다면…….”
베일 스톨이 그대로 마나를 회수해, 이번엔 검의 형상을 이뤘다.
그리곤 그대로 검을 높이 치켜들어, 내 심장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놈의 검은 내 심장을 꿰뚫지 못했다.
“……이것도 마찬가지인가.”
놈의 검은 내 가슴 바로 앞에서 멈춰버렸다.
그리고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때.
“베일.”
옆에서 제 3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 제자를 죽일 수 없다.”
익숙한 목소리.
당장 최근에도 들었던 중저음.
흐릿한 기억 너머로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힘 있는 목소리.
“그렇게 되도록 내 심연에 깃든 네 의지를 조정해 뒀다.”
그곳에서 마나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지금 이 공간을 가득 채운 타락한 마나와 비견될 정도의 마나.
태양을 연상케 하는 찬연한 마나가 타락한 마나를 쫓아내며, 이 공간을 양분하기 시작했다.
빛과 어둠이 세상을 절반으로 나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베일 스톨이 세상 불쾌하단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곤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천천히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이…….”
태양과 금빛의 화신 같은 남자.
레이 벨 바이테너.
그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