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77)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277화(277/466)
다음 눈을 떴을 때.
나는 호텔방 중앙에 쓰러져 있었다.
쓰러져 있는 내 옆에 놓여있는 미미르의 서가 눈에 들어왔다.
빛이 바랜 미미르의 서.
굳이 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미미르의 서는 완전히 힘을 잃었다.
힘을 잃고, 평범한 책이 되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미미르의 서를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펴 보았다.
아닐 건 알고 있지만, 혹시나 싶어서. 혹시 기적이 일어났을 수도 있으니까.
“…….”
그러나 역시나.
기적 같은 건 없었다.
미미르의 서를 펼쳤음에도, 미미르의 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미미르.”
정말 사라졌구나.
그런 실감이 들었다.
슬픔이 내 머리를 짓눌렀다.
저절로 숙여지는 고개.
파트너와의 이별은 이리도 가슴 아픈 것이었나.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폭-!
그때, 내 가슴에 새하얀 털뭉치가 뛰어들었다.
따스한 털뭉치.
여섯 개의 꼬리가 매력적인 여우.
미호였다.
미이-
미호가 구슬프게 울었다.
미호도 미미르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슬퍼하는 게 가슴 아픈 것일까.
아니, 둘 다 일까?
“……미호야.”
나는 미호를 꽉 안고 얼굴을 묻었다. 미호의 온기가 조금이나마 날 안심시켜 주는 듯했다.
제법 강하게 껴안았음에도 미호는 싫은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평소처럼 애교를 부릴 부리며 내 뺨을 핥을 뿐.
미호의 상냥함이 큰 위로로 다가왔다.
미이-
미호가 다시금 울었다.
내 상태가 조금은 괜찮아 졌기 때문일까.
이번엔 아까 전 같은 구슬픈 울음소리가 아니라, 힘이 느껴지는 울음소리였다.
마치 나를 다그치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그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미호에게서 얼굴을 떼고 껴안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미르의 서와 같이 안아 들어서 그런가, 자세가 불편한지 몸을 이리저리 비튼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편한 자세를 찾아 낸 듯, 미미르의 서 위에 앞발을 올린 상태로 내 가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다.
나는 그런 미호를 쓰다듬고는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는 온갖 책들이 가득했다.
그중 만화책 더미들이 유독 돋보였다.
이전 내가 미미르에게 읽으라고 가져다 줬던 만화책.
대충 봐도 200권은 넘는다.
그 외에도 전공 서적들이나, 논문들도 가득하다.
모두 내가 구해다 준 책이다.
“……역시 이렇게 됐구나.”
미미르의 서가 사라지면서, 내부에 있던 이물질들은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그렇기에 이 책들이 호텔방을 나뒹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책들을 정리하며, 살폈다.
만화책이 참 너덜너덜하다.
대체 얼마나 본 걸까.
이 정도면, 최소 열 번 이상은 다시 본 거 같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많이 가져다 줄 걸.”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깟 만화책 좀 구해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아예 한 천 권정도, 아니. 도서관 하나를 통 채로 사서 가져다 줘도 됐을 텐데.
후회가 된다.
더 미안한 건, 다 헤진 게 비단 만화책만이 아니라는 거다.
전공 서적부터, 논문들까지.
내가 구해다 준 책들은 모두 낡아 빠져서, 헌 책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낡은 전공 서적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책의 이름은 [AI의 개발과 그에 따른 인류의 미래].
나는 천천히 그 책을 펼쳐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건, 소제목 소개란에 적혀 있는 미미르가 수기로 작성해 둔 메모들이었다.
[3-4~3-6까지의 자료는 조금 오류가 있는 거 같음! 다시 확인할 때 주의!] [8-1부터의 가설은 C논문과 상당한 유사점이 보임. 추후, 두 개의 자료를 교차 분석해 보면 좋을 것 같음!]└[글러먹었네! 이론만 그럴싸한 쓰레기 연구! 폐기! 누구야 이딴 헛소리를 논문으로 만든 건.]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스스로 가설을 부정하고, 부정한 가설을 다시금 고찰하고, 고찰한 가설을 다른 데 부합시키고.
이 책에는 미미르의 노력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여백이 없이 빼곡히 적혀 있는 메모들.
나는 그 메모들을 하나하나 정독하며 페이지를 넘겨갔다.
[큰일! 시간 부족! 오늘 계승자의 몸에 아바마마의 영혼이 들어왔었다고 함! 상태를 보니,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 들어 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조금 더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음!]
다음 페이지.
[다행이다! 어느 정도 결과가 나왔어!]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이 연구 결과를 이용하면, 움브라의 그림자를 확실히 신화 마법으로 벼릴 수 있을 것!] [역시 답은 AI에 있었어!] [이 시대의 학자들은 AI에 대한 접근법 자체가 틀려먹었었어.] [진짜 바보들. 나도 그렇고. 이런 간단한 걸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하다니.]미미르의 신남이 메모장 너머로도 전해져 오는 듯했다.
[이제 남은 건 세부적인 조율인……]다음 페이지.
가장 서두에 적힌 메모 바로 뒤에, 붉은 핏자국이 찍혀 있었다.
코피가 쏟아진 듯한 자국이었다.
[깜짝이야. 지금 이 상태에서도 코피가 나는구나. 신기하네. 신체가 멀쩡히 활동하고 있는 건가? 아바마마의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아니, 애초에 이 마법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 영혼을 복제해서 이곳에 배치시키는 마법이라고 들었는데. 그럼 내 영혼은 가짜라는 걸까?] [가짜……. 그건 좀 싫은데…….]코피를 쏟는 와중에도 고찰을 하는 게, 참으로 미미르다웠다.
왜일까.
가슴이 조금 아려왔다.
[오늘,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가 열렸다. 아무래도 계승자가 마지막 관문을 뛰어넘은 모양이야.] [원래라면 바로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 들어가라고 해야겠지만, 조금만 조용히 하자.] [내 연구가 완성될 까지만. 3일. 아니, 4일…… 가능하다면 일주일.] [거의 다 완성됐지만……. 그래도 검증은 필요하니까. 그래. 딱 일주일만. 일주일만 늦게 말하자.] [이 정도는…… 괜찮겠지?]일주일.
그 문장에서 담겨져 있는 감정에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완성이야. 응. 역시 나라니까. 아바마마도 못 해낸 걸 이렇게 해 내다니.] [다행이다. 마지막으로나마 이런 선물을 남기고 갈 수 있어서.] [응. 정말 다행이야.] [정말로……]마지막 두 문장이 적혀 있는 페이지는 종이가 쭈글쭈글했다.
마치 물에 젖은 것처럼.
눈물을 떨군 것처럼.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모든 연구 결과를 정리해서 계승자도 이해하기 쉽게 적어두면, 그걸로 끝. 이걸로 내 할 일도 모두 끝.] [이제 안심하고 사라질 수 있겠어.]미미르의 메모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아까 전,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외치던 미미르의 모습이 떠올라서, 가슴이 아려왔다.
이 바보는 대체 어떤 심정으로 이런 메모를 남긴 걸까.
어떤 생각을 하면서, 연구를 진행한 걸까.
눈물을 흘리면서, 코피를 쏟으면서.
대체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 준 걸까.
손이 떨렸다.
머리가 멍했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미미르가 남긴 책들을 살펴보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낡은 책들 사이에서 홀로 빳빳한 새 노트를 발견했다.
[Dear 계승자에게.]그 노트는 그런 이름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 노트를 꺼내들어, 그대로 펼쳤다.
“아…….”
평소의 정갈한 문체와는 다른 삐뚤삐뚤한 문체.
평소 미미르가 쓰던 바이테너 제국의 룬 문자가 아닌.
한국어로 쓰인 편지.
[한국어. 나름 공부를 해 보겠다고 했는데. 의미가 제대로 전달 될 지는 모르겠어.] [왜 갑자기 한국어로 편지를 쓰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왠지 모르게. 마지막 만큼은 계승자의 모국어로 인사를 하고 싶었어.] [조금 이상한 점이 있어도, 귀엽게 봐 주면 좋겠어.]글자는 삐뚤삐뚤 하지만, 문법은 완벽하다.
그게 묘하게 이상해서.
묘하게 미미르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일단. 뭐부터 말해야 할까.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은데.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계속 늘어놓다 보면, 이 노트를 다 채우고도 남을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진심을 담아 짧게 몇 마디만 하려고 해.] [구구절절 감동적인 문장을 나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 계승자가 울 거 아냐?] [어때. 나, 마지막까지 배려가 넘치지?] [다시 반했어?]이 문장 밑으로, 아래 페이지는 텅 비어있었다.
나는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고마워. 미안해. 행복했어.]다음 페이지에는 큼지막하게 네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안녕.]그리고 그 밑.
작게 주석처럼 ps.가 달려 있다.
[ps. 연구 정보에 대한 건, 옆에 잘 정리해 뒀으니 잘 확인해 봐.] [분명 계승자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ps2. 그리고 아델라 스테어트 잘 키워 봐. 큰 힘이 될 거야.] [ps3. 아참. 검사 쪽도! 그들이 제대로 검을 익히기만 하면 어지간한 마법사들 보다 강한 전력이 되어 줄 거야.] [ps4. 아, 그리고 또…….]다음 페이지도.
그 다음 페이지도.
편지에는 ps라는 주석이 계속해서 달려 있었다.
4페이지, 5페이지, 10페이지가 넘을 때까지.
하나 같이 잔소리 뿐.
“짧게 몇 마디만 한다더니,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있잖아…….”
무려 5페이지에 달하는 주석들.
나는 그 주석들을 모두 읽은 뒤, 천천히 노트를 닫았다.
“정말…… 마지막까지…….”
미미르답다.
잔소리가 너무 많은 점도.
너무 잔소리가 많아서, 불평을 해 주고 싶은 것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미미르다웠다.
“어딜 잔소리만 하고 도망가려고.”
나는 그대로 미미르의 마지막 편지가 담긴 노트를 침대 한편에 올려두고, 옆에 놓인 또 다른 노트를 꺼내들었다.
“갈 거면, 내 불평까지 다 듣고 가란 말이야.”
미미르의 연구 결과가 기록되어 있는 노트였다.
“치사하게. 안 그래? 미호야?”
미호가 자기도 동의한다는 듯이 크게 울었다.
“두고 봐. 울며불며, 그렇게 온갖 부끄러운 말은 다 하고 떠난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고 싶게 해 주겠어.”
흑역사라며 몸부림치는 미미르.
그 모습은 꽤나 볼 만할 것이다.
미미르는 AI에 대한 연구, 현대 마법 기술을 과거의 기술에 접목시키는 연구를 했다.
이는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과거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는 내 착안점과 같다.
내 예상이 맞다면, 여기에 힌트가 있을 거다.
[허나, 이는 잘못된 명제야.] [계승자도 AI를 이식할 수 있어.] [잘못된 건 계승자의 뇌가 아니라, AI.] [AI의 구조 자체를 계승자의 뇌 구조에 맞추지 못했을 뿐이야.]내 상식을 뒤집는 연구 결과.
과연 선물이라고 할 법한 내용이었다.
[내 계산대로 AI를 만든다면, 계승자도 충분히 AI의 혜택을 볼 수 있어.] [AI의 대리 연산의 혜택을 볼 수 있어.] [영창이 길다는 신화 마법의 유일한 단점을 극복시킬 수 있어.]AI의 대리 연산을 통한 신화 마법의 영창 가속화.
이그니스의 무영창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나는 이게 바이테너식이 새로 해결해야 할 숙제, 새로 나아가야 할 미래라고 생각해.]이건 진화와 미래를 상징하는 바이테너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연구 결과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럼 다음으로 제일 중요한 계승자에 맞는 AI를 만드는 방법이야.] [솔직히 이건 아직 완성됐다고 보긴 힘들어. 이건 전부 이론적인 접근 하에 나온 불확정 가설일 뿐이니까. 자세한 건, 계승자가 직접 실험을 통해 조율해 나가.] [그 정돈 할 수 있잖아?]나는 뭐에 홀린 듯이 페이지를 넘겼다.
[계승자에 맞는 AI란, 뇌에 직접 작용하는 게 아닌, AI 자체에 또 하나의 코어를 두는 AI를 의미해.]“……또 다른 코어?”
[듀얼 코어라고 하면 될까. 계승자의 뇌와는 별도로, 또 하나의 뇌를 AI에 형성. 그 AI에 대리 연산을 일임하는 형태인 거지.] [그렇게 하면 계승자의 뇌와 AI가 충돌할 일은 없어.]듀얼 코어.
그렇게 말하니까, 확 와 닿는다.
[단, 이렇게 하려면, AI의 성능의 비약적인 진화가 필요해. 지금처럼 단순히 입력한 값을 계산해 주는 계산기 같은 AI가 아니라. 또 하나의 뇌라 해도 손색이 없는 완전 자율형 AI가 필요해.]“완전 자율형 AI……?”
순간, 내 머리에 벼락이 내리쳤다.
마지막.
여섯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서 스승님에게 주입 받은 지식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신화 마법. 페르소나를 이용한 영혼의 구현화. 그게 미미르의 서와 이드레드의 서의 탄생 비밀…….”
그리고 신화 마법 페르소나란, 인격 자체를 하나의 코어로 응집시키는 마법이다.
즉.
“스승님에게 전수받은 페르소나의 구조에 대한 지식에 미미르의 연구 결과를 끼워 넣으면…….”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