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297)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297화(297/466)
내가 흑마도왕이 내민 손을 잡는 일은 없었다.
딱히 흑마도왕의 제안을 거절했다거나 한 건 아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거절하고 싶지만, 지금 나는 그럴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흑마도왕이다.
괜히 어정쩡하게 거절했다간 그대로 내 목숨이 위험하다.
여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동맹 제안을 수락하는 척해서 이 자리를 무사히 넘기는 것.
무작정 거절하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일단 싫든 말든 손을 잡을 생각이었다.
근데…….
“벌써 구조가 붕괴되기 시작했나……. 예상 보다 훨씬 빠르군.”
내가 흑마도왕의 손을 채 붙잡기도 전에, 흑마도왕의 왼팔이 먼지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손을 잡고 싶어도 잡을 손이 없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대답은 또 다음 기회에 듣도록 하겠다.”
손을 시작으로, 빠르게 소멸하기 시작한 흑마도왕의 신체.
조금씩 기울던 건물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단숨에 붕괴되기 시작하듯.
흑마도왕의 신체도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잘 생각해 봐라.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지.”
모래로 만든 조형물에 강풍이 불어닥치기라도 한 것처럼, 흑마도왕의 신체는 먼지로 변해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럼 또 보자. 바이테너식의 정식 계승자, 신하율.”
흑마도왕의 신체가 소멸함과 맞물려, 함께 소멸하기 시작한 검은 장막.
“좋은 대답을 기대하겠다.”
서서히 걷혀가는 검은 장막 너머로, 아버지를 비롯한 세 마탑주님과 샤를 단장님의 얼굴이 보였다.
“신하율!”
“꼬맹이!”
장막 너머로 들려오는 걱정으로 가득 찬 목소리.
모두의 목소리를 듣는 동시에, 몸에서 힘이 주르륵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이어지던 긴장의 끝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일단…… 살았다.’
예상치 못한 흑마도왕과의 조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새로 얻은 정보들만큼이나 수많은 의문을 남기고.
* * *
그 후.
나는 샤를 단장님과 석현 아저씨의 극진한 비호를 받으며 마도신가로 돌아왔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평소와 마찬가지로 석현 아저씨가 운전을 하고.
샤를 단장님은 내 옆에 앉아 있다.
“예. 괜찮습니다.”
샤를 단장님이 세상만사 모든 걱정은 다 떠안은 듯한 표정으로 내 신체 곳곳을 훑는다.
“잘 확인해 봐. 몸에 뭐 저주 같은 거 걸렸을 수도 있어.”
“이미 수차례 확인했습니다. 아무 이상도 없습니다.”
“한번만 더 확인해 봐. 흑마도왕 그놈 진짜 무서운 놈이야. 네 감각을 속이고 뭔가를 했을 수도 있어.”
“정말 괜찮습니다. 제 몸은 멀쩡해요.”
벌써 이 대화만 몇 번째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듣지를 않는다.
시종일관 다시 확인해 보라고만 답할 뿐.
“그리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제가 만난 건 진짜 흑마도왕이 아니라, 레비라는 놈이 신체 변용 마법을 사용해 만든 가짜였다고요.”
이번에 등장한 흑마도왕은 가짜였단 걸로 해 뒀다.
어지간하면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엔 좀 얘기가 다르다.
베일 스톨을 비롯해, 온갖 비밀들과 얘기가 맞물려 있는 만큼, 진실을 모두 털어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진실을 모두 털어놓을 수 없는 이상, 모두를 납득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단 가짜인 걸로 해 두기로 했다.
그게 제일 깔끔하게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니까.
“가짜 따위가 저주를 걸어 봐야 얼마나 대단한 걸 걸었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샤를 단장님이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흘겨봤다.
“가짜였던 거 맞아? 신인혁 그 양반 말로는 가짜 따위가 흉내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하던데.”
“외견은 진짜에 한없이 가깝게 구현화됐으니까요. 어느 정도 흑마도왕의 마나까지 구현화해냈었고요. 그걸 감지하고 착각하신 걸 겁니다.”
“…….”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진짜였으면 제가 이렇게 살아 돌아 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샤를 단장님은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으셨다.
제법 논리적인 반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씨알도 안 먹히는 모양이다.
“뭔가 내 감이 아니라고 하고 있단 말이지……. 진짜로 가짜였던 거 맞아?”
“맞다니까요.”
샤를 단장님의 감은 초능력의 영역에 도달해 있다.
논리적으로 내 말이 맞다고 해도, 감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다.
그래서 저렇게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고 계신 것이다.
‘진짜 감 하나만큼은 세계 제일이시라니까.’
샤를 단장님이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번뇌하고 있는 듯했다.
“샤를 단장님의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만. 의심은 거기까지 해 두시길.”
시종일관 운전에 집중하고 있던 석현 아저씨가 처음으로 말을 꺼내셨다.
“도련님께서 거짓말을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도련님께서 놈이 가짜라고 하신 이상, 놈은 가짜인 겁니다.”
“그것도 맞긴 한데…….”
샤를 단장님이 ‘그래도 뭔가 묘하단 말이지…….’라고 중얼거렸다.
“일단, 알겠어. 납득은 안 가는데. 일단 가짜인 걸로 해 둘게.”
“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샤를 단장님의 집요한 공세가 멈췄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그럼 이제 눈 좀 붙여도 되겠습니까? 좀…… 아니, 많이 피곤하네요.”
“아, 미안. 피곤하겠구나.”
샤를 단장님이 세상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배려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한 표정이었다.
“어여 자. 무릎 빌려줄까?”
샤를 단장님이 자신의 무릎을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에 누우라는 제스처였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대로…….”
잠을 자려는 게 아니라, 눈을 감고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은 거라서.
굳이 무릎 위에 누울 필요가 없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기왕 잘 거 편하게 자야지. 자. 누워.”
샤를 단장님이 반쯤 강제적으로 내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렸다.
“어때. 막상 누우니까 편하지?”
“편하긴 합니다만…….”
높이도 적당한 것이.
편한 건 사실이다.
사실인데…….
‘좀 부담스러운데.’
짧은 반바지를 입고 계시다보니, 허벅지 쪽은 그냥 맨살이다.
덕분에 아주 부담스럽다.
“편하면 됐어. 자. 눈 감고 자.”
딴 소리할 시간에 눈이나 감으라는 듯이, 내 눈에 손바닥을 얹어, 눈을 감을 것을 종용했다.
……이 강압적인 태도.
내가 일어나겠다고 해도 절대 들어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냥 이대로 누워있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럼 눈 좀 붙이겠습니다.”
“그래. 푹 자.”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오늘 새로 얻은 정보들과 그 정보를 기반으로 새로 생겨난 의문들을 정리해가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생각의 틈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다음날 이른 새벽.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머리아파.”
어제 사건이 끝난 뒤로 지금까지 줄곧 생각을 정리하는 데 힘썼지만.
제대로 결론이 나는 게 없었다.
‘대체 흑마도왕은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한 거지?’
흑마도왕의 목적이 베일 스톨을 쓰러트리고 자유를 얻는 것이라는 건 이해했다.
그걸 위해서 내가 필요하다는 것까지도 이해했다.
하지만 그 얘기를 굳이 나한테 정직하게 털어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왜 굳이 불리해 질 게 뻔한 말을…….’
흑마도왕은 나를 죽일 수 없다. 아니, 죽여선 안 된다.
이 정보는 끝까지 숨겨뒀어야 할 극비 중의 극비 정보다.
일단 내가 흑마도왕의 입장이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정보만큼은 감춘다.
굳이 적에게 ‘나는 너를 죽이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알려서 스스로 페널티를 떠안을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언젠가 들킬 정보였다면 모를까, 자기가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몰랐을 얘기를 왜 굳이…….’
흑마도왕의 목적이 베일 스톨의 타도라는 건, 흑마도왕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모를 정보다.
그걸 모르는 이상, 흑마도왕이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것도 알 방도가 없다.
그런 정보를 왜 굳이 스스로 발설해서 페널티를 떠안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왜 스스로 을의 위치에 설 법한 짓을 한 거지?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너무 생각을 많이 했더니, 머리에 펑크가 날 것만 같다.
머리가 뜨겁다.
손을 가져다 대 보니, 진짜 뜨겁다. 머리를 너무 혹사시켰더니, 지혜열이 오른 듯하다.
“이럴 때 미미르가 있었으면…….”
미미르라면 분명 좋은 의견을 제시해 줬을 텐데.
그게 아니더라도, 서로 얘기하다 보면 훨씬 좋은 결과를 도출해 냈을 텐데.
미미르의 부재가 오늘 따라 더욱 크게 느껴진다.
‘아무튼 확실한 건…….’
슬슬 밖에서 해가 뜨고 있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내가 흑마도왕과 동맹을 맺을 일은 없다는 것 정도.’
흑마도왕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지 간에, 내가 흑마도왕과 손을 잡을 일은 없다.
언제 내 뒤를 찌를지 모를 놈과 동맹을 맺을 만큼 멍청하지 않다.
괜히 흑색 마탑이 세계 최악의 범죄 집단이겠는가.
그런 놈들과는 상종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천지가 뒤집혀도, 흑마도왕과 손을 잡을 일은 없다.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아, 근데 흑마도왕도 내가 이렇게 생각할 걸 알고 있었을 텐데.’
흑마도왕 정도의 인물이 내가 동맹을 거절할 걸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 내가 동맹을 거절하게 하는 게 목적인 건가? 아니, 그건 말이 안 되는데. 흑마도왕한테 이득이 되는 게 아예 없잖아.’
억지로 생각을 멈췄는데.
다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의문을 낳기 시작했다.
‘그럼 내게 혼란을 주는 게 목적인가? 아니…… 그런 하찮은 목적을 위해서 그런 극비 정보를 푼다는 게 말이 안 돼. 이건 아니야. 분명 다른 이유가…….’
벌써 10여 차례나 이어진 무한한 생각의 굴레.
내가 이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는 완전히 해가 지고 난 뒤였다.
* * *
그렇게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끝이 나고.
현재 시간은 오후 6시.
나는 아버지에게 호출되어, 서재로 향했다.
“뒤처리는 다 끝났다.”
서재에 도착한 나는 곧장 아버지께 일의 뒤처리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헤르메스를 속이기 위해 준비한 가짜 동영상에 누군가 접근한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부터.
레비의 사망 원인을 조작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까지.
모두 계획대로 잘 되었다는 말을 약 5분에 걸쳐 전해 들었다.
“한동안은 경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하율이 네게 이목이 쏠릴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번 작전의 목적은 모든 일의 원인을 아버지에게 떠넘기는 것이었다.
레비가 인천국제공항에서 그림자 마법을 감지한 이상.
놈은 섀도우를 발견할 때까지 한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레비라는 간부의 존재가 한국에 길게 남아있다는 건, 우리 입장에선 큰 손해다.
그렇기에 이번 작전을 구상한 거다.
섀도우와 손을 잡은 건 신인혁인 걸로 모든 증거를 미리 조작해 두고.
섀도우의 모습으로 레비를 유인.
그 후에 레비를 처리한다.
이것으로 레비라는 간부 중 한 명을 처리할 수 있으며.
흑색 마탑의 모든 시선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께 집중되게 되므로, 내 위험 부담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대충 이런 시나리오였다.
……만.
‘어차피 흑마도왕은 모든 걸 알고 있단 말이지…….’
이게 크게 의미가 있나 싶다.
흑마도왕은 모든 사건의 원흉이 나라는 걸 알고 있다.
이렇게 증거를 조작한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흑마도왕이 입을 열기 만하면 모든 게 들통난다.
‘물론 흑마도왕이 조용히 있을 확률이 높긴 할 텐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부하들이 움직이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조용히 방관할 확률이 높다.
흑마도왕은 내가 죽지 않길 바라니만큼, 굳이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길 바라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 작전은 성공으로 돌아 갈 확률이 굉장히 높다.
하지만 이번에 갑작스레 돌발행동을 한 것으로 보아, 행동 방침을 바꿨을 가능성도 없는 게 아니다.
지금 상황을 생각해 보면 뭐가 어떻게 되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당장 나한테 동맹을 맺자고 요구한 직후에, 갑자기 나를 적대시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대답을 기다린다고 했으니.
분명 그때까진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보일 거다.
방침을 바꾸는 건 내 대답을 듣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그럼 일단 작전은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움직여도 되겠지.’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런 내 확신은 정확히 다음날 아침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긴급상황]다음날 아침.
까마귀의 그림자를 통해 도착한 편지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목표는 신하율. 위험. 작전 실패.]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