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319)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319화(319/466)
장소에는 흑마도왕과 세인 님. 그리고 나와 소피아 님만이 남았다.
‘우리 셋뿐이라면, 어떻게든 도주할 수 있어.’
이걸로 한시름 놓았다.
소수 정예가 된 만큼, 도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세인 님이 다시 빈틈을 만드는 걸 기다렸다가, 그대로 도주하면 된다.
‘흑마도왕도 전력으로 우릴 막으려 할 테지만…….’
이미 마흔 명 가까운 마법사들을 놓쳤다.
흑마도왕도 이제 유유자적 여유만 부리진 못할 터.
우리 셋 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며 전력을 다할 게 분명하다.
‘세인 님이 빈틈을 만들고, 나와 소피아 님이 전력으로 도주로를 만들면 이 자리에서 이탈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해.’
흑마도왕이 전력을 다하든 말든 상관없다.
세인 님의 힘은 흑마도왕에게 확실히 닿고 있다.
도주의 기회를 잡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다행히 소피아 님도 멘탈이 좀 회복되신 것 같고.’
소피아 님은 심신미약 상태에서 벗어나셨다.
세인 님이 흑마도왕을 베어낸 것을 기점으로 눈이 번쩍 뜨이셨다.
절망밖에 없는 상황 속, 세인 님의 검이 희망으로 다가 온 것이리라.
‘충분히 도망칠 수 있어.’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러나.
“조금 더 이 전투를 맛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만…….”
그런 내 예상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로 빗나갔다.
“이대로 계속되면, 참지 못하게 될 것 같군. 여기까지 해 둬야겠지.”
흑마도왕이 돌연 모든 마나를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가라.”
싸울 의사가 전혀 없다는 듯이.
모든 살기와 기세를 거두고 비무장 상태로 팔짱을 낀다.
“방심시킨 뒤에 뒤에서 찌를 생각인가?”
세인 님이 한층 더 날카로워진 표정으로 변했다.
갑작스레 모든 무장을 푼 흑마도왕의 기묘한 행동에 경계심이 더 치솟은 것이다.
“내가 그런 하찮은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나?”
세인 님이 침묵했다.
아니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맞다고 하기에도 뭐하기에 일단 입을 다문 것이다.
“내 명예를 걸고 단언하지. 내가 너희를 공격할 일은 없다.”
흑마도왕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말과 표정, 행동. 모든 곳에서 진실된 의지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나는 너희를 죽일 생각이 없다.”
흑마도왕은 진심으로 우릴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 조용히 돌아가라. 이 이상의 싸움은 너희에게도, 내게도 손해밖에 없으니.”
의외가 아니면서도, 굉장히 의외인 말이었다.
나만이 아니라 세인 님과 소피아 님까지 그대로 놓아 준다니.
흑마도왕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대체…….”
소피아 님이 입술을 짓씹고, 분노를 씹어 삼키듯이 말했다.
“대체 당신은 뭘 하고 싶은 건가요?”
이해할 수 없는 현 상황에 대해 분노하듯이.
흑마도왕에게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던 자신에게 분개하듯이.
소피아 님은 떨리는 눈으로 흑마도왕을 노려보며, 흑마도왕의 목적을 물었다.
“내 목적은 50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소피아 아네체프리. 너한테는 한번 말한 적 있던 거 같은데.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이 세계의 진정한 왕이 되겠다고 했던 말 말인가요?”
“잘 기억하고 있군.”
흑마도왕이 작게 미소 지었다.
긍정의 의미가 담긴 미소였다.
“그래. 나는 이 세계의 진정한 왕이 될 것이다. 내게 주어진 모든 사슬과 제약을 풀어헤치고, 오로지 나라는 존재로서 정점에 설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네요.”
소피아 님이 도통 알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당신의 힘은 이미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미 당신은 정점에 선 거나 다름없어요. 그런데 대체 뭐가 아쉬워서…….”
우리가 흑마도왕이 아직 만전의 상태가 아니라고 단정 지었던 가장 큰 이유는 흑마도왕이 아직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흑마도왕이 만전의 상태였다면, 한참 전에 움직이기 시작했으리라.
10서클의 힘을 앞세워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헌데 흑마도왕은 딱히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흑마도왕이 아직 만전의 상태가 아니라고 단정 지은 것이다.
흑마도왕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불완전함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나는 아직 모자르다. 나는 아직 정점과 거리가 멀어.”
흑마도왕의 두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마법적인 실력만 두고 본다면, 정점에 섰다고 해도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마법적인 실력만 정점에 도달했을 뿐. 내가 그 남자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건 오직 마법뿐이다. 그 외에 모든 게 부족하다.”
그 남자.
베일 스톨.
“그 남자……?”
소피아 님의 눈이 한층 더 가늘어졌다.
“신하율에게 듣지 못했나보군.”
흑마도왕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소피아 님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근 시일 내, 세상의 해악. 흑마법의 시초, 베일 스톨이 부활할 것이다.”
“흑마법의 시초…….”
소피아 님이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 처음 들었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흑마법을 사용하는 자는 그에게 반항할 수가 없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부활하게 되면, 나는 그에게 종속될 테지.”
“……종속.”
소피아 님이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당신의 목적은 베일 스톨을…….”
“그래.”
흑마도왕이 당당하게 말했다.
“죽이는 것. 흑마법의 시초. 베일 스톨. 내 선조를 죽이고, 모든 속박을 풀어헤친 뒤. 진정한 왕이 된다. 그게 내 최종적인 목적이다.”
흑마도왕의 두 눈에서 검은 야망이 일렁였다.
일말의 거짓조차 느껴지지 않는 진실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흑마도왕의 눈빛은 자신만의 결의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기에 너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선 안 된다.”
찬란한 검은빛.
추잡하면서도, 순수하다.
“너희는 날 대신해서, 베일 스톨을 죽여줘야 하니까.”
우리를 이용할 것이라는 선언을 하면서도, 꽤나 당당하다.
“너희와 내가 싸우는 건 너희가 베일 스톨을 쓰러트린 뒤의 이야기다.”
순간적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야 이전에도 들은 적이 있는 말이라 충격이 없었지만.
세인 님과 소피아 님은 꽤나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베일 스톨이라는 존재의 부활에 머리가 복잡해지신 듯하다.
“……네 목적과 행동 원리에 대한 건 이해했다. 헌데 하나 의문이 남는군.”
침묵을 뚫고, 세인 님이 질문했다.
“왜 굳이 네 약점이 될 만한 얘기를 곧이곧대로 설파하는 거지?”
이전, 레비와의 전투에서 우연찮게 흑마도왕과 대화하게 된 날 내가 품었던 1차적인 의문.
흑마도왕은 왜 굳이 본인에게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곧이곧대로 털어놓았는가.
한때 내 머리를 아프게 했던 의문이 세인 님의 입에서 그대로 튀어나왔다.
“설마 베일 스톨을 처리할 때까지 손을 잡자는 쓰잘데기없는 제안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
실제로 흑마도왕은 내게 동맹을 맺자는 제안을 했었다.
베일 스톨을 쓰러트릴 때까지 일시적으로나마 손을 잡자.
레비의 몸을 빌려 재현되었던 그는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럴 리가.”
흑마도왕이 씨익 웃으며 부정했다.
“너희가 나 같은 악과… 신뢰고 뭐고 없는 빌런과 동맹을 맺을 리가 없지. 내가 원하는 건 동맹 같은 게 아니다.”
흑마도왕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 눈이 마치 내게 ‘너도 궁금했을 테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일종의 경고다.”
“……경고?”
“그래. 경고.”
흑마도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베일 스톨은 나에 필적할 정도의…… 아니, 아마도 지금의 나를 넘어 설 정도의 괴물이다.”
소피아 님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세인 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니 전력을 다해서 준비하라고 미리 말해 둔 거다. 그 괴물을 처리 할 사람은 너희밖에 없으니.”
그렇기에 경고.
베일 스톨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 모든 걸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런 말이었다.
“흠. 그렇군.”
세인 님이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라면, 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납득이 간다. 이기심에서 비롯된 지극히 계산적인 행위. 누가 봐도 악인다운 마인드라서 크게 의심할 점도 없다.”
“이해가 빠르군. 그렇다면…….”
“허나 그건 말 그대로 의심할 점이 없을 뿐이다. 네 말에 거짓이 없을 뿐.”
그러나 납득한 사람의 표정 치고는 굉장히 살벌했다.
“네놈은 근본적인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진실을 털어 놓고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무언가는 배제한 채. 진실 속에 거짓을 감추고 있다.”
흑마도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세인에게 조금 더 흥미가 생겼다는 표정.
“내가 무엇을 감추고 있다는 거지?”
“모른다.”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없잖느냐.
세인 님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건 네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까진 알지 못한다. 네놈의 검은 속내를 이해하기엔, 너와 내 관계는 너무나도 얕아.”
“정론이군.”
흑마도왕이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겠다. 내 말의 어디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는 거지?”
“네가 나를 그냥 돌려보내 주겠다고 말한 점이다.”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흑마도왕이 무표정하게 답했다.
“내 목적은 베일 스톨의 타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너 같은 고위 전력을 최대한 온존시키겠다는 게 이상한가?”
“이상하다.”
세인 님이 단언했다.
“네 최종적인 목적은 베일 스톨의 타도가 아니다. 네 목적은 베일 스톨을 처리한 뒤, 이 세계의 정점에 서는 것. 베일 스톨이라는 억제기를 제거하고, 네가 이 세계의 왕이 되는 것이다.”
흑마도왕의 미소가 조금씩 짙어졌다.
마치 세인 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네가 말한 대로, 우리가 베일 스톨을 처리하는 것.”
이는 베일 스톨이 자신의 입으로 설명한 내용이다.
베일 스톨에게 반기를 들 수 없기에, 우리가 베일 스톨을 처리해 주지 않으면, 흑마도왕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의 전력이 너무 강력해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베일 스톨이 쓰러진 후.
흑마도왕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우리와 싸워야 한다.
우리를 죽여야 이 세계의 정점에 서서, 진정한 왕이 된다는 본인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의 전력이 너무 강력해 지는 건 막고 싶을 터.
“먼 미래보다, 조금 더 가까운 미래를 중요시 했을 뿐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 나는 그저 베일 스톨을 죽이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너희 쪽의 전력을 컨트롤해서, 베일 스톨의 생존 확률을 높일 생각은…….”
“네가 우리 쪽의 전력을 조절하려 한다는 건 당장 조금 전의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세인 님이 시선을 내려, 두 마탑주님의 시체를 응시했다.
“네 말대로라면, 네가 베일 스톨을 처리하는 데 초점을 두고 행동했다면. 너는 마탑주들을 죽여선 안 됐다.”
흑마도왕이 침묵했다.
어디 더 말해 보라는 듯이, 미소만 지을 뿐.
“마탑주들이라면 멀지 않은 미래, 베일 스톨과의 전투에서 큰 힘이 되어줬을 터. 네가 정말 베일 스톨을 쓰러트리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행동했다면, 마탑주들을 죽이는 일도 없었어야 한다.”
정론이었다.
흑마도왕의 주장대로라면, 마탑주님들이 죽는 일도 없었어야 한다.
“허나 너는 마탑주들을 죽였다.”
마탑주의 죽음은 베일 스톨의 주장을 논파하는 증거다.
“너는 명백히 우리 쪽의 전력을 깎아내고자 하였다. 네 주장과 행동은 완벽하게 상충되고 있다.”
흑마도왕의 미소가 점점 짙어진다.
“아니. 당장 마탑주들을 죽인 게 아니더라도, 흑색 마탑의 행보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만약 네가 정말 베일 스톨의 타도에만 초점을 두고, 그 후의 미래를 일단 등한시 한 채 행동했다면, 이쪽의 전력을 깎아내는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반박할 여지가 전혀 없는 정론의 연속.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세인 님의 기세에 압도당하고 있는 듯했다.
“네 목적은 베일 스톨의 타도만이 아니다. 네 목적은 우리 쪽의 전력도 어느 정도 컨트롤해. 먼 미래 우리와 싸울 때까지 대비하는 것.”
범인의 트릭을 밝혀 낸 탐정이 이러할까.
세인 님이 위풍당당한 표정과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 목적대로라면, 넌 날 살려둬선 안 된다. 네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 네가 모르는… 검술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미지의 위협을 그냥 돌려보내선 안 된다.”
베일 스톨의 입장에서, 세인 비노슈라는 검사는 변수 덩어리 그 자체다.
심검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검술로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미지의 검사.
세인 님의 가설이 맞다면, 흑마도왕의 입장에서 세인 비노슈는 지금 당장이라도 제거하고 싶은 존재일 터.
“헌데 너는 나를 그냥 돌려보내 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흑마도왕은 세인 님을 죽이려 하지 않고 있다.
“마탑주들은 어떻게든 죽이려 하였으면서. 나는 그냥 돌려보내 주겠다고 하고 있다.”
세인 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것도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네 진짜 목적을 숨기면서까지 나를 조용히 돌려보내려 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마탑주들은 죽이면서, 마탑주 이상으로 위험한 힘을 지닌 자신은 그냥 돌아가라 한다.
이 사실에 세인 님은 의문을 품었다.
의문을 품고, 흑마도왕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결론냈다.
“답은 하나밖에 없더군.”
흑마도왕이 침묵했다.
침묵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너는 지금 나와 싸우고 싶지 않은 거다. 아니, 싸워선 곤란한 거다.”
세인 님이 검을 다시 쥐었다.
바람을 붙잡듯이 부드럽게.
아이의 손목을 잡듯이 살며시.
“요컨대.”
세인 님의 손아귀에 쥐어진 검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마음처럼.
세인 님의 검은 마음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너는 지금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닐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촤아아아아아아악-!
흑마도왕의 오른팔이 하늘을 날았다.
“이게 내 결론이다.”
흩날리는 피분수 사이로, 세인 님의 안광이 시퍼렇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