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324)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324화(324/466)
세인 비노슈와 흑마도왕의 전투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군. 만약 네가 조금만 더 그 힘을 일찍 깨달았다면 어땠을까.”
흑마도왕이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도 수시로 잘려나가고 있는 검정색 마나 너머.
흩날리는 어둠 건너편의 세인 비노슈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갑자기 뭐지? 트레쉬 토크로 내 집중력에 타격을 주는 게 목적인가?”
시선이 묘하게 미적지근하다.
다른 사람이 저런 눈빛을 보내면 모를까.
흑마도왕이 저런 표정으로 말하니까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마치 등 뒤에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다른 의도는 없다.”
흑마도왕이 픽 웃으며 마법을 펼쳤다.
세인의 검에 베여져, 산산이 부서지던 어둠이 다시금 세를 넓히기 시작했다.
“신하율의 무리한 마법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라곤 하나. 전력을 다하고 있는 나와 호각으로 싸우고 있다. 고작 2개월 익힌 검으로. 이 나를 압박하고 있다.”
세인이 그런 어둠을 다시금 잘라내었다.
흑마도왕의 미적지근한 시선까지 잘라버리겠다는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쨍그랑-!!
산산이 부서져, 흩날리는 칠흑의 꽃잎.
타락한 마나의 결정체가 흩날리는 광경은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웠다.
“만약 네가 1년…… 아니, 반년만 더 일찍 그 경지에 들어섰다면 어땠을까. 그땐 과연 이 전투는 어떤 양상을 띠고 있었을까.”
세인이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디딘 일보.
그 걸음은 순식간에 십여 미터의 간격을 지워버렸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당연한 걸 묻는군.”
세인 비노슈가 이번에 신하율의 이그니스와, 흑마도왕의 어둠을 관찰하며 새로이 깨달은 기술.
신화라는 고차원의 존재를 자각하고, 흑마도왕이라는 절대악을 상대하며 익힌 신기술.
“너는 3수도 채 버티지 못하고 패배했을 것이다.”
공간을 베어내는 것으로. 공간 자체를 건너뛴다는 터무니없는 보법.
마법이 아니기에, 흑마도왕으로선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초신속의 이동기.
세인이 순식간에 흑마도왕의 품에 파고들었다.
촤아아아악-!
그리곤 텅 빈 흑마도왕의 가슴팍에 그대로 검을 내려친다.
어둠으로 무장하고 있는 흑마도왕의 신체가 그대로 잘려나갔다.
“……이젠 공간마저 뛰어넘는가.”
흑마도왕이 신체를 사선으로 양단하는 형태로 새겨진 자상을 어루만지며,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기술의 이름은 뭐라 하지?”
“모른다.”
세인이 그대로 다시 검의 궤도를 틀어, 올려베기를 시전했다.
“지금 처음 사용해 본 기술이라서. 이름 같은 건 없다.”
마치 물리법칙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품고 있던 힘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방향만 180도 전환된 검.
검이 그대로 흑마도왕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흑마도왕이 그대로 몸을 뒤로 빼 검의 궤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대로 목이 잘려나갈 뻔했어.”
그때, 세인의 검이 흐릿하게 일렁였다.
“아니. 이미 잘렸다.”
신기루가 일렁이는 것처럼.
검 자체가 환각이었던 것처럼.
검이 안개처럼 요동쳤다.
“이 간격에서 내 검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순간, 흑마도왕의 목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이건…….”
그리고 다음 순간, 흑마도왕의 목은 몸통과 분리되어 하늘을 날고 있었다.
“흐음. 심검으로 내 목을 직접 벤 건 아닌 듯한데.”
그러나 그것도 잠시.
흑마도왕의 목은 언제 잘려나갔냐는 듯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마치 처음부터 베이지 않았던 것처럼.
목을 베인 게 환각이었다는 것처럼, 멀쩡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그렇군. 방금 그 참격. 공간을 베어서, 내가 뒤로 물러난 행위를 없었던 것으로 한 건가.”
“……한 눈에 간파하는가.”
요령은 조금 전, 공간을 잘라 이동했을 때와 다를 게 없다.
세인이 이동할 예정인 공간을 벤 게 아니라, 흑마도왕이 도주할 경로를 벤 것만이 다를 뿐.
“나는 나 이상의 재능을 지닌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흑마도왕이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
“레이 벨 바이테너고, 베일 스톨이고, 신화 속 신들이고. 나만큼의 재능은 지니지 못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세인이 뭔 헛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나야 말로 지고의 재능을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나만한 재능을 지닌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흑마도왕이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세인을 직시했다.
“헌데…….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했던 모양이야.”
검 한 자루로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검사를 바라보며 진심을 가득 담아 박수를 쳤다.
“설마 나와 대등한…… 아니, 어느 면에선 나를 넘어설 정도의 재능을 지닌 자가 존재할 줄은.”
성심성의껏.
이 세상 모든 감탄과 경애를 담아, 갈채를 보냈다.
“세인 비노슈. 인정하마. 네 재능은 충분히 지고의 영역에 닿을 수 있는 수준의 재능이다. 나와 동등한 수준의 천혜의 재능이다.”
“……집어치워라. 네게 칭찬 따위 받아 봤자 기분만 잡칠 뿐이니.”
흑마도왕이 다소 안타깝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기에 더더욱 안타깝구나.”
“뭐가 안타깝다는 거지?”
“너 정도의 인물을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세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내 패배가 당연시되는 것처럼 말하는군.”
이미 이긴 것처럼 행동하는 흑마도왕의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게 제안을 하나 하지.”
“듣지 않겠다.”
세인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그대로 공간과 함께 어둠이 잘려나갔다.
마치 세상 자체가 잘려나간 듯했다.
“들어라. 세인 비노슈. 들어둬서 손해는 없을 테니.”
“듣지 않겠다고 하였다.”
세계와 함께 잘려나간 흑마도왕의 신체가, 순식간에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감기라도 한 것처럼.
신체가 원래의 온전한 상태로 복구되었다.
“세인 비노슈.”
“끈질기군.”
흑마도왕이 이번엔 세로로 잘렸다.
정수리부터 시작해서 사타구니까지.
그대로 반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수평으로 잘렸는가, 수직으로 잘렸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
흑마도왕의 신체는 곧바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너. 나의 것이 되지 않겠느냐.”
“듣지 않겠다고…… 뭐라?”
세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이상 싫을 수가 없다는 듯이 한껏.
혐오감을 곱씹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나의 것이 되라고 했다. 내 수족이 되어서. 나를 보필하며, 그 재능을 끝까지 펼쳐보아라. 네 검의 끝을 보고 싶어 졌다.”
흑마도왕이 세인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니. 아예 언약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 또한 종족번식의 욕구는 있으니, 너 정도라면…….”
“닥쳐라. 그 혀를 잘라버리기 전에.”
세인이 이를 까드득 갈았다.
양팔에 오소소 돋아난 소름.
“내가 들었던 말들 중, 가장 소름이 돋는 말이었다.”
수억 마리의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광경을 본 것 같은 표정과 반응이었다.
“내 정신에 데미지를 주기 위한 트레쉬 토크였다면…… 칭찬해 주지. 네 작전은 충분하리만큼 효과를 발휘했다. 정신이 아득해 질 것만 같군.”
세인이 진심으로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언약.
흑마도왕의 입에서 나온 두 글자 단어를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 등 뒤에 오한이 든다.
“흠. 진심이었다만.”
“그렇다면 더더욱 최악이군. 토가 나올 것만 같다.”
세인이 울분을 가득 담아,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수십, 수백 갈래로 나뉘어 잘려나가는 흑마도왕.
“언제까지 그런 의미 없는 힘자랑을 할 속셈이지? 날 죽일 수 없다는 걸 이제 슬슬 알 때도 된 것 같은데.”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복구되는 흑마도왕의 신체.
“네 검은 날 벨 수 있을지언정, 내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다. 네 참격은 내 재생력을 따라잡을 수 없어.”
부정할 여지가 없는 말이었다.
지금껏 세인이 무슨 공격을 하던 간에, 흑마도왕은 순식간에 원래의 형체로 되돌아갔다.
세인의 공격력은 흑마도왕의 재생력에 미치지 못한다.
“네 심검이 대단하긴 하나. 그래 봐야 검일뿐이다. 점과 선의 공격으로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지금의 흑마도왕을 죽이기 위해선, 점과 선이 아니라. 면 전체를 공격해야 한다.
찌르기나 베기로는 흑마도왕의 재생을 막을 수가 없다.
솔직히 전세는 그리 좋지 않다.
“그래. 확실히 지금은 희망이 없다. 하지만 그건 지금에 한정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전세가 아주 조금 불리할 뿐.
저쪽에 승기가 넘어간 건 아니다.
“네 재생은 무한이 아닐 지도 모른다. 이렇게 계속 공격을 반복하다보면 언젠가 네가 한계에 접어들지도 모른다.”
세인이 검을 휘둘렀다.
심검을 이용한 연격.
참격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내가 포기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흐음.”
쏟아지는 참격의 비를 전신으로 맞으며, 흑마도왕이 침음을 흘렸다.
조금 질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너도 내심 알고 있을 텐데. 내가 지금 너를 봐 주고 있다는 걸.”
흑마도왕의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내가 널 죽이려 마음먹었다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다.”
“아니. 네 마법은 내게 닿지 않는다. 내 검이 네 재생력에 닿지 않는 것처럼. 네 공격 또한 내 영역을 침범할 수 없어.”
흑마도왕의 마법은 아직 미완성이다.
흑마도왕이 벼린 신화, ‘어둠’은 흑마도왕의 신체를 지키고, 무한한 재생을 선사할 뿐.
공격의 용도로 사용할 순 없다.
어둠을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이상, 세인의 방어를 뚫는 건 불가능하다.
이는 흑마도왕 또한 알고 있는 일이다.
“인정하마. 확실히. 내 마법은 아직 미숙하다. 어둠을 이용해 네 방어를 직접 뚫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회해서 뚫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네놈…… 설마…….”
세인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흑마도왕이 왼쪽으로 손을 뻗었다.
“자. 막아 보거라.”
세인과 흑마도왕의 사이에 놓인 소피아 아네체프리의 신체를 향해 손을 뻗은 것이었다.
“큭!”
흑마도왕의 목적은 소피아 아네체프리의 신체를 빼앗는 것.
지금 흑마도왕은 소피아의 신체를 빼앗을 속셈이다.
세인이 곧장 공간을 잘라, 소피아의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에서라면, 소피아를 지킬 수 있다.
“과연 지킬 수 있을까?”
그런 세인을 바라보며, 흑마도왕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소피아 아네체프리 하나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다.”
“동의한다. 확실히. 지금의 너라면 소피아 아네체프리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겠지.”
흑마도왕이 반대쪽 손도 뻗었다.
소피아의 바로 옆에 쓰러져 있는 신하율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둘이라면 어떨까.”
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허세부리지 마라. 너는 하율이를 죽일 수 없다. 하율이는 인질이 될 수 없어.”
“글쎄. 과연 그럴까.”
흑마도왕이 오른손에 저주를 벼렸다.
“확실히 나는 신하율을 죽일 수 없다. 신하율을 죽이는 건, 내 미래를 죽이는 것과도 같으니.”
끈적한 저주.
대상을 속박하는 주박의 궤가 흑마도왕의 오른손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뿐이다. 죽일 수 없을 뿐. 신하율의 신체에 제약을 거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 저렇게 정신 방벽이 약해진 상태라면, 제약을 걸어, 내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지.”
세인의 눈꺼풀이 떨렸다.
흑마도왕이 진심으로 신하율을 노리려 한다는 걸 느끼고, 당황한 것이다.
“양자택일이다. 선택해라.”
왼손은 소피아를.
오른손은 신하율을.
“신하율에게 향하는 저주를 막을 건지. 아니면 내가 소피아 아네체프리의 몸을 빼앗는 것을 막을 건지.”
각기 다른 마법으로 두 명을 노린다.
“개인적으로는 신하율을 지키는 걸 추천한다만. 선택은 네 자유. 누굴 지킬지는 전적으로 네 판단에 맡기겠다.”
흑마도왕의 마나가 질척하게 뻗어나갔다.
“기대되는군. 과연 네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너무나도 야비한 흑마도왕의 행동에 세인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을 때였다.
움찔!
“……!”
“……!”
돌연, 신하율의 손가락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