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327)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327화(327/466)
지독한 통증 속.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세인 님의 등이 보였다.
흔들거리는 등.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다 죽어가는 사람의 등이었다.
“세인…… 님…….”
안 된다.
지금의 세인 님으로선, 흑마도왕을 이길 수 없다.
지금 싸우는 건 개죽음일 뿐이다.
“걱정하지 말거라.”
그때 내 신체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세인…… 님?”
언제 다가오신 건지, 세인 님이 나를 껴안고 계셨다.
“난 지지 않는다.”
날 껴안은 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의 나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목소리와 손길이었다.
“그러니. 푹 쉬고 있거라.”
안 그래도 흐릿했던 정신이 한층 더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면, 모든 게 끝나 있을 테니.”
세인 님이 내 몸에 무슨 짓을 하신 걸까.
마치 수면제를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
“세인…… 님…….”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이 단숨에 붕괴되어간다.
“잘 자거라.”
그 목소리를 끝으로.
내 시야가 암전되었다.
* * *
세인 비노슈는 어려서부터 압도적인 재능을 뽐냈다.
AI의 개발과 정착으로 마법사의 입지가 단숨에 높아지고.
검사들의 입지가 위태해진 시대.
만약 세인 비노슈가 없었다면 현재 검사들은 ‘검사’라고도 불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녀가 마법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검사라는 존재는 아예 소멸했을 수도 있다.
아니.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사라졌을 것이다.
모두에게 멸시받으며, 시대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을 테지.
그렇기에 지금의 검사들은 모두 세인 비노슈를 진심으로 경애하는 것이다.
세인 비노슈라는 구심점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재능이 아니었다면 검사들은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한 삶을 살고 있었을 테니까.
“깨달음이란. 깨닫고 난 후에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로다.”
그러한 짐들은 세인 비노슈의 재능을 옭아맸다.
사명감과 책임감이란 거대한 짐들은 그녀가 검에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억제기나 마찬가지였다.
“한 걸음 물러나고 나니, 한 걸음 나아갈 길이 보이고. 모든 걸 내려놓고 나니, 지금껏 그토록 바라던 것이 보이니.”
검사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기에.
모든 검사의 미래를 맡고 있기에.
세인 비노슈는 철이 든 이후부터, 단 한 번도 순수한 마음으로 검을 휘둘러 본적이 없었다.
“감사한다.”
2달 전.
신하율과 만나기 전까지는.
“내 앞에 나타나 준 네게 이 세상 모든 감사를 바친다.”
세인 비노슈가 웃었다.
다 죽어가는 얼굴로.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
그녀의 천진함이 아련함을 머금었다.
“원망스럽기도 하다.”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는 신하율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조금만…….”
고통스러운 듯, 한껏 인상을 찡그린 채 신음하고 있는 신하율의 뺨을 아주 살짝 쓰다듬는다.
“네가 조금만 일찍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찬란한 빛을 보았다.
지금까지의 삶 보다 훨씬 더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랬다면…….”
비노슈가의 가주로 살았던 52년 보다, 세인으로 살았던 2달이 더 가치 있었다.
“그랬다면 조금 더 이 멋진 나날들을 구가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렇기에 조금.
아주 조금 신하율이 원망스러웠다.
마치 희망고문.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이 찬란함을 몰랐다면 이렇게 후회되지도 않았을 것을.
“아니, 기왕이면 20년만 일찍 태어나지 그랬느냐.”
세인이 신하율의 뺨을 꼬집었다.
아주 작은 원망을 담아서.
이 밉살스러운 사내에게 투정부리듯이 살짝.
마치 갓난아이의 뺨을 주무르듯이.
“……나도 나이를 먹긴 한 모양이야.”
세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감정적이 된 걸 보면.”
아련한 쓴웃음.
그런 애처로운 미소를 띠고, 신하율에게서 손을 뗐다.
“만약.”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내세라는 게 있다면.”
그녀의 손바닥에 인생이 담겼다.
세인 비노슈로서의 간절한 마음이 깃들었다.
“그땐, 부디 같은 시대에 태어나면 좋겠구나.”
심검.
그녀의 마음이 온전한 하나의 바람으로 집결되어.
검의 형상을 취했다.
“너는 마법으로. 나는 검으로.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드높여주며, 함께 연마하며 성장해 나가는 거다.”
검의 끝.
그녀가 인생 마지막에서야 간신히 도달한 정점.
아직 아무도 도달한 적이 없기에,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경지.
“분명 즐거울 테지.”
세인은 생각했다.
이 검의 이름은 무어라 할까.
마지막이니만큼, 거창한 이름을 붙여도 좋을 테지.
“……이상한 기분이로다. 원망과 슬픔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
아니.
세인 비노슈의 인생 마지막 검에 거창한 미사여구 따윈 필요 없다.
“아니. 후회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는가. 아주 조금. 그래. 아주 조금, 후회가 남긴 한다.”
이 검은 그냥 검이면 된다.
세인 비노슈의 인생이 곧 검이었기에.
다른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
“스텔라. 그 아이를 두고 먼저 가야 한다는 게 아주 조금…… 걸리는구나.”
세인이 검을 휘둘렀다.
존재하지 않을, 무형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베는 것은 허상이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
“네 미래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주 조금…… 아쉬워.”
베인 건 세상의 이치인가.
아니면, 이 세상 자체인가.
그건 세인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세인의 검이 확실히 무언가를 베었다는 것.
그리고.
“그래. 이러면 되겠구나.”
신하율의 신체가 세인이 벤 균열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뿐이다.
“네게 스텔라를 부탁하겠다. 네가 맡아준다면 안심하고 떠날 수 있어.”
바다에 잠겨가듯, 서서히 함몰되어가는 신하율의 신체.
“너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 아이의 재능은 나 이상이다. 잘만 키운다면 나 이상 가는 검사가 될 거야.”
세인이 그런 신하율에게서 시선을 떼고, 등을 돌렸다.
“그 아이라면, 멀지 않은 미래. 악적과 싸울 때 큰 힘이 되어 줄 테지. 어디 한번 잘 키워 보거라.”
악적, 베일 스톨.
스텔라는 그 전투에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아, 그렇지. 키우다가. 마음에 들면 그대로 잡아먹어도 좋다. 어미인 내가 허락하마.”
세인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신하율의 얼굴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세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성급한 놈이로다. 먼 길을 떠나는 제자의 마지막 한 마디를 들어 줄 여유도 없이 떠나버렸는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하율의 신체가 사라진 것이다.
세인이 미소를 지웠다.
“기다리게 했군.”
따스함 따윈 사라지고, 칼날 같은 날카로운 표정이 되었다.
“조금 의외였다. 등 뒤를 노릴 거라 생각했는데.”
악귀 같은 표정으로 흑마도왕을 노려본다.
“노릴 생각이었다.”
여유 따위 버린 지 오래다.
조금 전, 1:1을 버리고 신하율과 소피아를 노린다는 치사한 전략을 구사한 순간부터 정정당당이란 단어는 버렸다.
지금도 가능하면 세인의 빈틈을 노릴 생각이었다.
허나.
“빈틈이 있었다면.”
노릴 수 없었다.
세인 비노슈의 움직임엔 일말의 헛됨도 존재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등을 돌린 채, 한눈을 팔고 있었지만, 빈틈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텅 빈 등에서 느껴지는 건 허점 따위가 아니라 경이로움뿐이었다.
지금 섣불리 공격했다간 역으로 당한다.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흑마도왕의 감이 공격하지 말라 경고하고 있었다.
“감이 좋군.”
세인이 한 걸음 흑마도왕에게 다가섰다.
“만약 내 등 뒤를 노리고 그대로 다가왔다면…….”
그 순간, 허공이 잘려나갔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세상이 둘로 나뉘었다.
“이렇게 만들어 줬을 텐데.”
흑마도왕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허공을 벤 것 자체는 놀랍지 않다.
공간마저 베던 정신 나간 검사다.
허공을 벤 것 자체는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일격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
아무런 전조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허공이 잘려나갔다는 것이다.
“소피아 아네체프리. 미안하지만 너는 끝까지 날 도와줘야 할 것 같다. 질 것 같진 않다만, 혹시 모를 일이니.”
세인이 옆에서 경계의 색을 띄고, 흑마도왕을 응시하고 있는 소피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참고로 거절은 거절한다. 너까지 살려 보낼 정도의 힘은 남아있지 않아.”
“걱정하지 마세요. 가라고 해도 남을 생각이었습니다.”
세인과 마찬가지로, 소피아 또한 이미 결심을 한 상태다.
자신의 삶은 여기서 끝난다.
여기야 말로 자신이 죽을 곳이다.
자신은 흑마도왕과 함께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훌륭한 눈빛이다. 그래야 소피아 아네체프리지.”
세인이 작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흑마도왕을 바라보며 싸늘한 미소를 짓는다.
“자. 그럼 서로 시간도 없을 텐데. 슬슬 시작하도록 할까.”
허공이 신기루처럼 일렁였다.
흑마도왕의 눈에만 보이는 신기루.
그 신기루는 이내 검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기뻐하거라.”
세인의 검은 오로지 흑마도왕을 죽이겠다는 일념만으로 찬연하게 빛났다.
“이 검을 볼 수 있다는 건 극상의 행운이니.”
극과 극은 연결되어 있다.
마법과 검 또한 마찬가지다.
정점에 달한 검은 마법과 구별할 수가 없다.
“아, 그래. 이걸 묻는 걸 까먹고 있었군.”
세인이 그 거대한 검 아래에서 물었다.
“이름은 무어라 하느냐.”
흑마도왕의 이름을 물었다.
자신과 최후를 함께할 악적의 이름 정도는 알고 싶었다.
“이름 따윈 없다.”
흑마도왕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의 나는 나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고로, 내게 이름은 없다. 지금의 나는 그저 흑마도왕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가.”
세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찾아가는 건 포기하는 수밖에.”
세인의 뒤에 떠올라 있는 검이 크게 요동쳤다.
“그러니.”
당장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처럼, 요란하게 떨린다.
“저세상에선 네가 나를 찾아와라. 내 이름을 쫓아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 거라.”
세인의 검이 빛났다.
그녀의 인생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났다.
“그때. 다시 한번 죽여 줄 테니.”
별이 소멸하기 전, 마지막으로 밝은 빛을 내뿜는 것처럼.
“똑똑히 기억해두거라. 내 이름은 세인. 세인 비노슈다.”
아름답고, 황홀하게 빛났다.
* * *
눈을 뜨자 웬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코끝을 스치는 약냄새와 주위를 가득 채운 특수 의료 장비들.
여긴 병원인가?
“일어나셨습니까.”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
“김강인 님…….”
김강인 님이 침대 옆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어디 아픈 덴 없으십니까?”
“예. 딱히 아픈 덴 없……. 윽!”
상체를 일으키려 힘을 준 순간.
전신에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아프다.
누가 수십 개의 칼로 전신을 난도질하는 것 같다.
“죄송합니다. 괜한 질문이었군요. 괜찮을 리가 없는 중상인데.”
김강인 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등 뒤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내 상체를 들어 올려주셨다.
“무리하지마십시오. 지금 하율 군의 신체는 살아 있는 게 기적인 수준입니다.”
나는 그대로 내 신체 내부를 관조했다.
“……예. 그러네요.”
길게 관조할 필요도 없었다.
김강인 님의 말마따나, 내 신체는 걸레짝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그냥 걸레짝이 아니라, 찢겨질 대로 찢겨지고, 불에 타 잿더미가 되기 직전의 걸레 말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내 몸 상태가 최악인 건, 딱히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이그니스를 폭주시킨다는 무리수를 둔데다가, 완전한 중립에 강제로 접어들어 서클에 큰 부하를 주기도 했다.
오히려 이 정도로 끝난 게 기적이다.
“제가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된 거죠?”
관건은 내가 어떻게 여기 올 수 있었느냐와.
“싸움은 어떻게 끝났나요? 세인 님이랑 소피아 님은요?”
전투의 결과에 대한 것이다.
“…….”
김강인 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표정과 마주한 순간,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표정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두 분은…… 돌아가셨습니까?”
김강인 님이 조용히 가방에서 서류더미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진 몇 장을 따로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건네받았다.
“이 사진은…….”
사진에는 세인 님과 흑마도왕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결계가 사라진 후. 저희가 세인 비노슈 님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이 상태셨습니다.”
사진 속, 세인 님은 눈을 감고 서 계셨다.
세상 평온한 표정으로.
승리를 만끽하는 표정으로.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편안하게 눈을 감고 계셨다.
“세인 님은…… 이기셨군요.”
“예.”
반면, 흑마도왕은 세상 비참한 표정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뭔가 거대한 검에 찔린 듯, 상체에 거대한 자상이 남아 있고.
상체와 하체가 반으로 나뉘어 있다.
승자는 누가 봐도 세인 님이었다.
“세인 비노슈 님은…… 흑마도왕을 죽이고 그대로 잠들듯이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나는 사진을 노려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진짜…….”
마지막, 정신이 아득해지기 전.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던 세인 님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진짜로…… 이기셨네요…….”
착잡했다.
흑마도왕이라는 거대한 적이 죽었음에도 기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얻은 것 이상으로 잃은 게 크기 때문이리라.
나는 천천히 사진을 넘겨가며, 최종 전투의 흔적을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걸 발견했다.
“소피아 님의 사진이 없는데. 소피아 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사진에 소피아 님이 없다.
“소피아 님은 현재 행방불명 상태십니다.”
“행방불명?”
“네. 전투의 흔적으로 봤을 때, 마지막 전투 때 세인 님과 힘을 합쳐 싸우신 건 확실합니다만…….”
시체를 찾지 못했다.
그런 말이리라.
“그 말은…….”
“예.”
그리고 시체를 찾지 못했다는 말은…….
“소피아 님은 살아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