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345)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345화(345/466)
약 10분이 흘러.
미미르의 데이터 카피가 끝났다.
놀라울 정도로 수월한 일 처리였다.
아무리 그래도 연구의 정수가 담겨있는 메인 컴퓨터 정도는 최대한의 보안으로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이렇게 허술할 수 있는 건지.
이 연구소의 존재의의에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정말…… 쉬워도 너무 쉽네요.”
엘레나 님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는 듯했다.
“주요 연구 기록들은 여기가 아니라, 다른 데 보관되어 있다거나. 그런 걸까요?”
방비다운 방비도 없었고, 보안다운 보안도 없었다.
엘레나 님은 이 허술함을 방심이 아니라, 이유가 있는 허술함이라고 보신 듯하다.
이곳에 지켜야 할 게 없기에 보안이나 방비가 없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신 걸 테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보통 이런 기밀 연구 시설의 연구 기록은 별도로 저장해 두는 경우가 많다.
비인가 실험이니만큼, 만에 하나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연구 기록 일체를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는 게 보편적이다.
엘레나 님의 말대로 이 컴퓨터엔 아무런 정보도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때 미미르가 끼어들었다.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나와 엘레나를 차례대로 바라본다.
“데이터를 카피하면서 내용을 확인해 봤는데…….”
미미르가 손을 움직여, 허공에 홀로그램 모니터를 띄웠다.
홀로그램 모니터에 묘한 사진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나는 이게 가짜처럼 보이진 않아.”
모두 키메라화 연구의 결과들을 촬영해 둔 사진들이었다.
“여기, 연구 일지도 분 단위로 세세하게 나뉘어 있고.”
미미르가 오른손을 움직여서, 사진을 옆으로 밀어버리고.
연구 일지를 띄웠다.
미미르의 말대로, 분 단위로 세세하게 연구 진행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가 기록되어 있다.
“이런 게 621일 치나 저장되어 있어.”
하물며 하루 이틀의 데이터도 아니고, 무려 621일 치의 데이터다.
이 정도 분량의 데이터를 일일이 분 단위로 쪼개서, 더미로 만들 수는 없다.
아니, 더미로 만들 수는 있어도 만들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말이리라.
이게 더미든 뭐든, 이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놈들을 체포할 수 있으니까.
굳이 이런 의미 없는 더미를 만들 필요가 없다.
“진짜겠네.”
말인즉, 이 연구 기록은 진짜다.
이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아무런 방비도 없이 이런 기밀 정보를 메인 컴퓨터에 저장해 뒀으며.
그 정보를 지킬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방치해 뒀다.
요약하면 이런 말이 된다.
“……머리 아프구만.”
사람은 자신의 인지를 벗어난 무언가와 마주하면, 생각이 멈추는 법.
지금 내 상태가 바야흐로 그렇다.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 처리를 마주하고,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카피한 데이터 안에 주모자에 대한 정보는 있어?”
“있어.”
미미르가 다시금 홀로그램 모니터를 컨트롤해, 새로운 화면을 띄웠다.
“마피아. 그중에서, 강건파의 대표라 불리는 마르코. 그놈이 이 연구소를 후원하고 있어. 여기. 장부도 있어.”
“……장부까지 있는데, 이렇게 허술하다고?”
장부까지 있다니.
대체 이 연구소의 사람들은 뭐지? 사람이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나?
“……이상하네요.”
줄곧 조용히 있던 아델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연구 기록서를 보는 한, 이 연구소에 소속된 연구자들은 상당히 세세하고, 세밀한 성격인 것으로 보여요. 그런 사람들이 이런 중요한 정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해 뒀다는 게 납득이 안 가요.”
그냥 3류 악당들이 만든 연구소가 이런 식으로 허술한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하면, 뭐, 그러려니 했을 거다.
근데 이 연구소는 3류 악당들이 만든 별 볼 일 없는 연구소 같은 데 아니라, 마피아라는 거대 세력이 만든 최고급 기밀 연구소다.
이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지녔는지는 이 연구 일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뛰어난 사람들이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한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연구원들과 별개로, 데이터 관리를 일임하고 있는 인물이 무능한 것뿐이지 않을까요?”
엘레나 님이 그나마 이해가 갈 법한 가설을 세우셨다.
“그 마르코라는 인물이 감시 역할로 보낸 부하가 데이터의 관리를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마피아는 이 연구소를 ‘후원’하고 있었다.
말인즉, 이 연구소는 마피아의 하청업체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다.
그런 관계라면, 마피아 쪽에서 바지사장으로 부하를 파견했어도 그리 이상한 상황은 아니다.
그 바지사장이 그냥 직급만 높을 뿐인 무능한 인간이었다면, 이딴 허술한 일 처리도 납득이 된다.
더불어 연구의 세세함과는 상반되는 괴리함도 어찌어찌 해소가 된다.
“지금 그 말을 듣고, 다른 데이터도 찾아봤거든?”
미미르가 다시금 홀로그램 모니터를 조작해, 새로운 사진을 띄웠다.
“엘레나의 말이 맞는 거 같아. 이 연구소의 대표는 폴 칼라. 연구 같은 거랑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3류 양아치야.”
“주제에 맞지 않는 양아치가 권력을 쥐고, 일을 이따위로 처리했다. 이거구만.”
“그치. 보면 권한 자체가 다 이 양반에게 집중돼 있기도 하고.”
“……확실한 것 같네.”
모든 권한을 소유하고 있는 자가 무능한 인물이라면,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하다.
위가 썩었는데, 아래가 맑을 수는 없으니까.
“이해했어. 굳이 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겠네. 그냥 이게 끝이었구나.”
의문은 풀렸다.
이 이상 깊게 접근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저, 근데…….”
그때 아델라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직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다는 표정이다.
“아까 그러지 않으셨나요? 저희를 습격해 온 습격자들의 빠른 움직임을 봤을 때, 상당한 실력자가 지휘를 맡고 있을 게 분명하다고…….”
“그건…….”
아델라의 의문은 날카로운 단검처럼 내 머리를 파고들었다.
“……확실히 그 예리한 움직임은, 폴 칼라. 그 무능한 놈의 지휘하에 이루어진 움직임이라곤 생각이 안 드네.”
괴리감이 해소되자, 또 하나의 괴리감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어떻게 된 게, 이 연구소에서 벌어진 일들은 제대로 맞물리는 게 없다.
무능할 건지, 유능할 건지.
둘 중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미미르. 혹시 폴 칼라 외에, 다른 권력자의 정보는 없어?”
“안 그래도 바로 찾아보고 있었는데. 없어. 이 연구소의 모든 권력은 폴 칼라에게 집중되어 있어.”
미미르의 동공이 빠르게 움직인다.
지금 자신에게만 보이는 화면을 이용해, 데이터를 살피고 있는 것이리라.
“근 시일에 지원을 온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없……. 잠깐만. 이거…….”
그때, 미미르의 눈이 멈췄다.
“3일 전부터 오늘까지의 데이터가 없는데?”
“……없다고?”
“어. 없어. 621일간, 단 하루도 기록이 없던 적이 없는데. 딱 오늘까지 3일 동안의 기록이 없어.”
600일 넘게 이어져 온 연구일지가 3일 전을 기점으로 갑자기 끊겼다.
이 말은 즉.
“3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가?”
이런 말이 된다.
“3일 전이면…….”
아델라가 떨리는 눈으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아델라도 눈치챈 모양이다.
“소피아 님으로 추측되는 인물이 CCTV에 찍힌 날 아닌가요?”
“맞아. 그날이야.”
3일 전.
그날은 소피아 님이 편의점의 낡은 CCTV에 찍힌 날이자.
“푸른 로브가 Rid 가구 공장에 들어가신 날.”
소피아 님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이 공장 내로 들어선 날이다.
“……아무래도 조사가 더 필요하겠네.”
미미르가 딱딱한 눈빛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줬다.
“그러게.”
나는 그대로 홀로그램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미미르와 눈을 맞췄다.
“소피아 님. 혹은 소피아 님으로 보이는 푸른 로브 인물이 이 연구소에서 뭘 얻고자 했는지. 그걸 찾아낼 필요가 있어.”
미미르, 엘레나 님, 아델라.
셋 모두 내 의견에 동의하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미르. 카피한 데이터 안에, 이 연구소의 실내 구조에 대한 데이터도 있어?”
“있어.”
미미르가 다시금 홀로그램 모니터를 조작해, 이 연구소 내부의 단면도를 띄웠다.
“만약 추가로 정보를 더 얻어야 한다면, 여기보다 한 층 아래. 지하 4층의 메인 실험장을 가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 단순 데이터로는 알 수 없는 살아있는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테고…….”
“만약 소피아 님이 뭔가를 노리고 여기 잠입하신 거라면 거기에 뭔가 힌트가 남아있을 확률이 크겠지.”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실험장으로 가 보자.”
그리곤 아델라에게 손을 건넸다.
아델라가 곧장 내 손을 맞잡았다.
“미미르.”
“알고 있어.”
그리고 다음 순간, 다시금 나와 미미르의 말이 겹쳤고.
‘움브라.’
‘움브라.’
우리는 다시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지하 4층.
몬스터를 보관해 두는 곳임과 동시에, 몬스터의 신체를 이리저리 붙여가며 실험을 하는 장소.
그런 장소이니만큼, 상당한 방비와 보안으로 철통같이 지켜지고 있어야 하는 장소.
……인데.
“……이제 알겠네.”
이 실험장의 보안은 아주 형편없었다.
“왜 지하 3층까지의 보안이 그리 허술했는지…….”
“그러게.”
아니, 형편없다는 말엔 조금 어폐가 있을 테지.
형편없어 ‘졌다.’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파괴된 보안을 부랴부랴 복구시켰던 거였구나.”
지하 4층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철통같았을 것으로 보이는 연구 시설은 태풍을 직격으로 맞은 듯, 걸레짝이 되어 있고.
삼중, 사중으로 지켜지고 있는 두꺼운 철창은 완전히 잘려 나가 있다.
“이 핏자국……. 몬스터의 피일까요?”
그런 파괴된 시설 사이사이로 말라붙은 피들이 눈에 띈다.
“그쪽 파란 피는 몬스터의 피가 맞는 거 같은데……. 붉은 피는 모르겠네.”
이 참상만 봐도, 3일 전. 이 장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거……. 소피아 님이 하신…… 거겠죠?”
“아마도.”
소피아 님이 단독으로 쳐들어 와, 이 실험장을 그대로 박살 내신 것이리라.
“화마석으로 만들어진 철벽이 화염에 녹았어. 저걸 녹일 수 있는 수준의 화염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나를 제외하곤 한 분밖에 없어.”
소피아 아네체프리.
이 실험실을 이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분뿐이다.
“이건 이제 애매하게 가능성으로 둘 필요도 없어.”
증거는 녹아내린 철창만이 아니다.
저쪽, 몬스터의 보관소로 보이는 장소는 전격 마법으로 파괴되었고.
반대쪽 수술실로 보이는 장소는 바람 마법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저 세 가지 속성을 저 정도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소피아 님밖에 없다.
“소피아 님은 살아계셔.”
이걸로 확실해졌다.
소피아 님은 살아계신다.
살아서, 모종의 이유로 우리에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
“소피아 님께서…….”
아델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점점 흉흉해져 가는 세상.
소피아 님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이리라.
나는 그런 아델라를 뒤로하고, 파괴된 실험실을 이리저리 살폈다.
‘문제는 왜 소피아 님이, 자신의 생존 사실을 우리에게까지 감췄는가인데…….’
주위를 살피는 척을 하며, 슬쩍 미미르를 바라봤다.
‘미미르의 가설이 맞는 건가?’
미미르의 가설.
흑마도왕 생존설.
흑마도왕이 소피아 님을 쫓고 있기에, 우리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얼핏 들으면 얼토당토않은 가설.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흑마도왕이 살아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계승자. 여기. 이거 봐.”
미미르가 나를 불렀다.
“여기. 이 단면부 보여? 엄청 예리해.”
뭔가 신이 난 표정.
연구자로서, 새로운 연구거리를 찾아내서 기뻐 보이는 표정이었다.
“바람 마법의 응용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한 걸까? 이 마석의 마법 저항률을 생각하면 9서클 마법으로도 이런 건 불가능할 텐데.”
미미르가 가리키는 철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철창이 무처럼 반으로 썰려 있다.
“그러게. 어떻게 한 걸까.”
바람 마법인가 싶었지만, 미미르의 말마따나, 저 정도 강도의 마석을 바람 마법으로 잘라내는 건 힘들다.
대체 어떤 마술을 부리신 걸까.
미미르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흥미가 돋는다.
“뭐가요?”
내 말에 덩달아 흥미가 솟은 듯, 아델라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여기. 이 단면부. 어떻게 마법을 사용하면 이런 게 되나 싶어서.”
“단면부…….”
그리곤 그대로 반토막 난 철창을 어루만지고는 작게 탄성을 흘렸다.
“그러게요. 어떻게 한 걸까요?”
그리곤 이어, 작게 중얼거렸다.
“검으로 벴다고 해도 믿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