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368)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368화(368/466)
꿈을 꿨다.
무척이나 신비로운 꿈.
꿈속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아니, 드래곤이 되어 있었다.
“포기해라.”
꿈속의 나는 전신에 끈적한 피를 쏟아내며 흐릿한 시야 너머로 한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흰 패배했다.”
거대하고도, 우아한 하얀 날개가 도드라지는 남자.
100명이 본다면 100명 모두 ‘천사’라 답할 남자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표정으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지금이라도 패배를 인정하고, 너희의 과오를 인정한 뒤, 반성한다면 여기서 끝내 주겠다.”
남자의 주위엔 또 다른 천사들이 무수히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두 걸레짝이 된 내 신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중간계를 수호한다는 중역을 몇만 년 동안 수행해 온 너희들의 업적을 높이 사서, 자비를 내리는 거다.”
충분히 기분이 나쁠 만한 상황이었지만. 딱히 기분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혐오감과 공포뿐.
“골계(滑稽). 익살이로다.”
나를 향하는 그들의 시선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기분 나쁠 일은 없다.
그렇기에 무섭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기에. 내 인지로서는 추측해 볼 수도 없는 존재들이기에 더더욱 공포스럽다.
“자비가 어떠한 감정인지도 모르는 인형들이 자비를 논하다니. 신들의 인형답게, 광대 짓에도 재능이 있어.”
내 비아냥에도 천사들의 표정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다.
지독한 무표정.
그 무감각이 송곳이 되어 나를 찌르는 듯했다.
“선택해라. 결의로 다져진 죽음인가. 납득과 굴욕의 생존인가.”
남자의 비아냥 따윈 들리지도 않았다는 듯이 천사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런 천사를 올려다보며 꿈속의 나는 조소했다.
“우습군. 참으로 우스워.”
크게 대소하고 싶었으나 내 몸은 크게 입을 벌릴 수도, 크게 목소리를 내뱉을 수도 없을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선택해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선택지를 주고, 선택을 하라고 하는 지금 이 상황도 우습고.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내 상황도 우스워.”
“선택해라.”
내 조소는 이내 실소가 되었다.
지금 이 상황이야말로 세계 제일의 희극이며, 지금 이 상황에 놓여있는 나야말로 세계 제일의 광대가 아닌가.
“인형. 묻겠다. 네가 제시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허락되지 않았다.”
“네 주인의 의사가 아닌, 네 의사를 묻고 있는 거다.”
“…….”
남자가 침묵했다.
내 말을 곱씹고 있는 모양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이니만큼 특별히 답해주마. 너와 네 종족의 명운이 달라진다.”
내 표정이 경직됐다.
몸이 너무 엉망진창이라, 표정 근육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놀란 표정처럼 보이진 않겠지만.
이보다 더 놀랄 수 없을 만큼 크게 놀라고 있었다.
“……처음으로 대답다운 대답을 듣는 것 같군.”
천사. 신의 인형과 10년 만에 처음으로 대화가 통했다.
“너희에게도 의사라는 게 있다는 건가.”
아무런 의지도, 감정도 없는 인형들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함은 역시 내 예상대로. 너희들도 일개 신의 장난감이었을 뿐이라는 건가.”
입가에 씁쓸함이 번졌다.
지금껏 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들은 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역시. 너희는 미래의 우리였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남자가 여전한 무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내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
“잡소리를 할 시간이 있다면, 선택이나 해라. 이제 유예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악랄하게만 보였던 살인 인형.
허나 지금의 내 눈에는 불쌍한 누더기 인형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불쌍한 인형이여. 네 모습을 보고 더더욱 확신을 얻었다.”
춥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일까.
눈꺼풀이 무겁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나는 결의로 다진 죽음을 택하겠다.”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 천사의 얼굴만이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너희처럼 될 바엔, 죽음을 택하겠다.”
“우리처럼…… 된다?”
천사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무언가 떠오를 것 같다는 표정.
“그렇다. 비굴하게 삶을 이어 나가, 신의 꼭두각시가 되어 평생을 부려질 바엔. 우린 우리로서 죽는 걸 선택하겠다.”
“…….”
천사의 무표정에 금이 갔다.
“꼭두……각시……? 큭!”
천사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 머릿속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던 기억을 강제로 풀어헤치는 듯.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부릅떴다.
“생각해 내라. 너희들에게도 이전, 너희들의 삶이 있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소리쳤다고 보기엔 너무나도 미약한 울부짖음일 뿐이었지만.
내 앞의 남자에게 닿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우리의…… 이전의 우리……. 이전? 이전이라는 게…… 크아아악!”
남자가 한층 더 큰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희망을 품었다.
만약 저들이 본연의 모습을 자각한다면. 천사들이 아군이 된다면, 이 상황을 뒤집을 수도 있으리라.
“기억해 내라!”
나는 마지막 염원을 담아, 피를 토해내며 소리쳤다.
제발 내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남은 힘을 모두 쥐어 짜냈다.
“흐음. 이번 반란분자는 상당하군.”
그러나.
“설마 거기까지 눈치챘을 줄은.”
그런 내 희망은 곧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어떻게 눈치챈 거지?”
천사들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던 무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져.
세상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우리의 제안을 받아, 생존을 택하는 게. 우리의 인형으로 전락하는 거라고. 어떻게 눈치챘느냐.”
표정만이 아니라, 말투, 몸짓, 눈빛 하나하나 모든 게 변했다.
“너는…….”
이 남자는 방금 전까지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천사장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 소개가 아직이었군.”
남자가 뒷짐을 진 채로, 나직하게 말했다.
“신. 나는 너희가 그렇게 부르는 자다.”
일그러진 초승달 같은 눈웃음이 내 망막을 가득 채웠다.
“그럼. 소개도 끝났겠다. 다시 묻겠다.”
내 심장을 떨리게 하는, 소름 끼치는 눈빛이었다.
“어떻게 눈치챘지?”
공포가 공기처럼 내 전신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 * *
“……!”
눈을 뜨자, 익숙한 얼굴이 나를 반겼다.
“계승자?”
미미르.
그녀가 세상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 그래? 어디 아파?”
안절부절못하는 표정.
내 신체를 이리저리 살피며, 손만 폈다, 쥐었다. 뻗었다, 접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계승자? 계승자! 왜 말이 없어?”
내 몸을 이리저리 만지며 내 몸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도, 미미르는 신체를 지니지 못했기에 그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손만 뻗었다, 접었다 반복한 것이다.
“으……. 진짜 몸에 문제 생긴 거 아냐? 씨이……. 이럴 때 몸만 있었으면…….”
미미르가 지금 신체를 지니지 못한 게 이토록 통탄스러울 수 없다는 듯이,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짓씹었다.
“계승자! 계승자아아!”
미미르가 유일하게 내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
목소리를 이용해 내 정신을 깨우려 안간힘을 썼다.
“……듣고 있어.”
사람은 자신보다 더 불안해하는 사람을 보면, 반대로 침착해 진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미안. 조금 머리가 멍해서.”
세상 안절부절못하는 미미르를 보고 있다 보니, 반대로 내가 침착해졌다.
“머리가 멍해? 심각한 거야? 사람 부를까?”
미미르가 다급한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내 정신은 반대로 맑아져 갔다.
“괜찮아. 그냥, 그. 악몽 때문에 그런 거라서. 어디가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야.”
“악몽?”
미미르가 조금 침착한 표정이 됐다.
“그래. 그래서 그렇게 식은땀을 흘린 거구나.”
듣고 보니, 전신이 축축하다.
옷을 입은 채, 욕조에 들어갔다 왔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그럼 몸엔 아무 이상도 없는 거지?”
“어. 조금 멍하긴 한데, 문제랄 것까진 아니야.”
“그래? 다행이다.”
미미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몸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진심으로 안도한 것이리라.
“진짜…… 마침 다들 밖에 나간 타이밍에 그래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계승자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어서 진짜…….”
미미르가 투덜대듯이 말했다.
신체가 없는 미미르로선 내게 뭔가를 해 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켜만 봐야 했을 테니.
가슴 졸였을 만도 하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
“아니, 계승자가 미안해할 건 아니구. 계승자가 알고 악몽을 꿨나 뭐…….”
미미르가 머쓱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냥. 내 몸이 너무 원망스러웠다는 거지…….”
자신의 손가락을 이리저리 만지며, 씁쓸하게 웃는다.
자신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건 자신의 홀로그램 신체뿐이라는 게, 씁쓸한 것이리라.
“하루라도 빨리……. 연구를 궤도에 올리던가 해야지…….”
“연구? 무슨 연구?”
궤도에 올릴 만한 게 있나?
연구소 복구를 궤도에 올린다고 표현했을 리는 없고.
“어? 아, 그. 음. 그런 게 있어. 계승자는 신경 안 써도 돼. 안 그래도 머리 아픈 일 많을 텐데.”
“…….”
머리 아픈 일이라…….
“그렇긴…… 하지.”
많긴 하다.
안 그래도 이번에 하나 더 늘었고.
“……?”
미미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렇게 쉽게 물러날 줄은 몰랐다는 표정.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니만큼, 한참 달려들 줄 알았는데.
너무 쉽사리 물러나니, 반대로 불안해진 모양이다.
“왜 그래?”
“왜 그러냐니?”
“계승자답지 않게 왜 그렇게 쉽게 물러나냐고.”
“별 이유가 있는 건 아니야. 그냥. 미미르 네 말대로.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서. 다른 데 신경 쓸 만한 겨를이 없어서.”
“드래곤한테 들은 말들 때문에 그래?”
“그것도 있고…….”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꿈에서 본 게 좀 걸려서…….”
“꿈? 깨기 직전까지 꿨다는 악몽?”
“응.”
“거기서 뭘 봤는데 머리가 아파?”
“……드래곤의 마지막을 좀 봤어.”
“드래곤의…… 마지막?”
미미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
“아마 나한테 힘을 양도해 준, 레드 드래곤의 기억을 본 게 아닐까 싶어.”
“레드 드래곤의 기억?”
미미르가 이제 좀 알겠다는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그니까, 그 드래곤의 기억을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봤고. 그 꿈의 내용이 드래곤의 마지막 날에 관한 거였단 말이야?”
“맞아.”
정확하다.
“꿈속에서 나는 레드 드래곤이 돼서 죽어가고 있었어. 그런 내 앞에는 천사들이 무수히 자리하고 있었고.”
“전쟁의 끝. 천사들에게 죽임을 당한 드래곤. 서적에 기록된 대로네.”
“그 장면만 보면 그렇지.”
“……그 장면만?”
천사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멸망한 드래곤.
이건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다.
허나 같은 건 이게 끝.
디테일적으로 파고들면 많은 게 다르다.
“일단, 드래곤들은 오만함에 사로잡혀 끝까지 항전하다 죽음을 택한 게 아니야.”
단편적인 기억밖에 없기에, 뭐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내가 꿈에서 본 레드 드래곤의 성격으로 봤을 때, 그럴 확률은 매우 낮다.
애초에 드레이크에 빙의된 상태의 레드 드래곤의 성격도 오만과 거만이랑은 거리가 멀기도 했고 말이다.
“드래곤들이 멸망한 덴 다른 이유가 있어.”
“다른 이유라니?”
“거기까진 모르겠어. 말했듯이 내가 본 건 드래곤의 최후. 전쟁이 끝날 때의 일 뿐이라서.”
나는 천천히 꿈에서 본 것들을 되뇌었다.
“꿈속에서 레드 드래곤은 말했어. 신들의 꼭두각시가 될 바에는 죽음을 택하겠다고.”
“신들의…… 꼭두각시?”
“응. 천사들처럼 될 바엔 정당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그렇게 말하더라고.”
“천사들이 꼭두각시야?”
“나도 잘 모르겠는데……. 표정이나 행동거지가 인형 같긴 했어.”
실제로 꿈속에서 본 천사들은 꼭두각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좀 자세히 설명해 봐.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그래. 아예 처음부터 천천히 설명해 줄게. 그게 낫겠다.”
나는 천천히 내가 꿈에서 본 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천사와의 대화.
천사의 갑작스러운 변화.
그 후, 그 천사의 몸을 빌려 모습을 드러낸 신.
“그렇게 레드 드래곤에게 어떻게 눈치챈 거냐고 묻던 신은, 레드 드래곤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이렇게 말했어.”
나는 꿈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대답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착한 신이라서. 피조물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사람이니.”
전신에 닭살이 오돌토돌 솟아난다.
다시 생각해도 소름 끼치는 웃음과 말이었다.
“대신, 조금 짜증나니까. 벌을 좀 줄까 하는데. 뭐가 좋을까……. 아, 그래. 이게 좋겠군.”
존중한다면서, 벌을 준다는 상반된 말을 읊조리며.
“너희 드래곤이라는 종의 결의를 한번 짓밟아 볼까.”
섬찟한 미소를 지었다.
“중간계. 이 대륙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없애 버리는 거지.”
길가의 개미를 짓밟는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아주 가벼운 어조였다.
“그러면 너희가 우리의 비밀을 어떻게 알았는지 따위 알아낼 필요도 없어질 테니까. 일석이조잖아?”
자신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한 세계를 지운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 직후, 그 말과 함께 천사의 몸 뒤로 신으로 보이는 인물의 실루엣이 떠올랐어.”
“실루엣?”
“어. 아마…… 힘을 사용하면서 그의 진짜 모습이 영체 너머로 비춰진 거겠지.”
“영혼의 투영 같은 건가? 흠……. 아무튼 그 실루엣이 왜?”
배후령처럼 떠오른 정체불명의 실루엣.
나는 그 실루엣을 다시금 떠올리며 천천히 말했다.
“그 실루엣이……. 닮아도 너무 닮았어.”
“닮았다니? 누구랑?”
눈, 코, 입.
그리고 얼굴의 형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스승님이랑.”
“아바마마랑…… 그 신이라는 작자의 얼굴이 닮았다고?”
“어.”
레이 벨 바이테너.
신이라는 작자의 얼굴은 스승님의 얼굴과 판박이였다.
“머리카락 색이 검은색이라는 것만 빼고 다.”
딱 하나, 머리카락 색만 제외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