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398)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398화(398/466)
여덟 번째 인피니티 서클이 내 몸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앞선 고리들과는 또 다른 형태의 고리.
무(無)의 고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명확한 형태를 지니지 않은 무형의 서클.
그것이 내 신체를 터로 삼았다.
‘존재하지 않기에,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고리.’
마치 내 몸 전체가 하나의 서클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몸 곳곳을 돌아다니는 서클이 탄생했다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내 몸이 하나의 서클이 된 듯한 느낌.
마치 내 신체 구조가 거대한 고리의 형태로 변화한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 바이테너식의 여덟 번째 경지는 심의와 어느 정도 부합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생각의 힘 심의.
심의는 자유롭다.
인간의 상상은 무한대이기에,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두 고리의 차이점은 작용 범위.’
첫 번째 인피니티 서클.
심의의 고리는 내 몸을 베이스로 삼아, 내 몸에 작용을 일으키는 서클이다.
심의를 통해 일으킬 수 있는 현상은 내 ‘신체’ 내에서 발생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여덟 번째 인피니티 서클, 무의 고리는 다르다.
‘심의의 고리는 내 신체 내부에서만 작용하지만, 무의 고리는 내 신체 밖에서도 그 힘을 펼칠 수 있어.’
무의 고리는 내 신체를 베이스로 두고 있지 않다.
심의의 고리와 달리 내 신체를 돌거나 하지 않는다.
‘무의 고리는 세계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무의 고리는 내 몸에 서클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서클로 만드는 힘을 지녔다.
내 몸을 서클로 삼아.
이 세계를 몸으로 삼아.
세계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게 바로 ‘무(無)의 고리’다.
‘느껴져.’
나는 무의 고리를 느끼며 생각했다.
‘무의 고리는 빠른 속도로 내 몸에 자리 잡고 있어. 이 속도라면 앞으로 20분. 그 시간 내에 완전히 내 몸에 자리를 잡을 거야.’
내 몸이 서클처럼 예민하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까.
평소라면 느낄 수 없던 감각들이 느껴진다.
‘자리를 잡은 후, 무의 고리가 안정화되기까지 약 5분. 다른 고리와 어우러질 때까지 2분.’
서클과 서클 사이의 마찰.
내 몸과 서클의 부딪침.
서클들마다 선호하는 속도, 싫어하는 움직임.
그런 것들을 모조리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작업들을 모조리 처리하고 나면…….’
서클과 서클 사이의 관계를 알 수 있기에.
서클의 모든 것을 100% 이해할 수 있기에.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남은 시간은 30분.’
남은 작업 시간은 30분.
그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는 어엿한 8서클 마법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 * *
동해.
속초 부둣가는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드래곤과 베일 스톨이 쏘아낸 마법이 속초 앞바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왜 그러지? 벌써 지친 건가?”
파괴된 부둣가의 상공.
베일 스톨이 세인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아직 5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세인을 비웃는 것이었다.
“…….”
세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저딴 비아냥에 대꾸할 바에는 조금이라도 숨을 가다듬는 게 낫다.
“역시 스테미너가 약점인가.”
베일이 눈을 빛냈다.
이전 전투들을 보고 혹시나 싶었는데. 예상이 맞았다.
세인 비노슈는 그 압도적인 힘에 비해, 체력이 다소 뒤떨어진다.
아니, 뒤떨어지는 수준이 아니라, 처참한 수준이다.
“검사의 힘을 갑작스레 흡수하며 발생한 부작용인가.”
강한 힘을 받아들이는 덴, 그에 따른 리스크가 동반되는 법.
세인 비노슈의 체력 부족은 검사의 힘을 무리하게 받아들이다가 발생한 부작용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쯤 되면 조금 불쌍하군. 진화를 위해 흡수한 힘들이, 하나 같이 하자를 지니고 있었으니.”
베일이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흑마법을 흡수해서 금제를 얻고.
검사의 힘을 흡수해서 체력을 잃었다.
그에 준하는 힘은 얻었을지언정, 잃은 게 너무 크다.
“다시 생각해도 참으로 멍청한 선택을 했어.”
이러니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베일이 아주 기분 좋다는 듯이 웃었다.
“이쯤 됐으면 너도 깨달았겠지.”
눈앞의 광대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미소를 짓는다.
“너는 날 이길 수 없다. 이전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는 더욱더.”
이미 승부는 났다.
세인 비노슈는 베일 스톨을 이길 수 없다.
“너는 나를 막을 수 없다.”
드래곤을 대동하고 움직이는 베일 스톨을 막을 방법이 없다.
“……고기 방패 노릇이나 하고 있으면서, 잘도 지껄이는군.”
드래곤은 몇 마리가 몰려와도 막을 수 있다.
100%의 힘을 되찾은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세인의 앞에선 한낱 도마뱀일 뿐이다.
드래곤이 ‘검’에 약한 성질을 타고난 이상, 세인에겐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
“고기 방패라는 말엔 어폐가 있군. 고기 방패란 말 그대로 버림패로서 이용되는 방패라는 의미다. 내 몸이 네게 베였을 때나 허용되는 말이지. 허나 네 검은 내 피부에도 스치지 못했다.”
베일 스톨이 비웃음을 지었다.
“어디가 고기 방패라는 거지?”
“…….”
맞는 말이다.
베일 스톨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고기 방패라고 보긴 힘들다.
“이건 그냥 전략적인 선택일 뿐이다. 비하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베일은 최선의 선택을 한 것뿐이다.
이 작전을 행동으로 옮김에 있어 베일 스톨에겐 일말의 거리낌도 없다.
“아니, 비하하고자 한 말이 아니라. 패배자의 아우성인가?”
답이 없는 상황에 상대에게 무작정 욕설을 쏟아내는.
실질적 자포자기 상태가 된 걸까.
“왜 대답이 없지? 세인 비노슈. 내 주적이여.”
베일이 오른손을 들어,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는 드래곤 얼굴을 쓰다듬었다.
“흠. 더 할 말이 없다 이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 순간, 드래곤 아가리가 쩌억 벌어졌다.
입 안에 집속되는 마나.
브레스를 쏘기 위한 준비에 들어 간 것이다.
“나도 대화 같은 건 그만두고, 무력행사를 시작하는 수밖에.”
순식간에 준비가 끝난 브레스.
드래곤 아가리에서 뿜어진 붉은색 브레스가 속초 너머, 서울을 향해 날아들었다.
“자, 이번엔 이 나라의 심장을 노릴 거다. 어떻게 막을 거지?”
세인이 입술을 짓씹었다.
평소라면 저딴 브레스.
몇 번이던 막을 수 있지만.
지금은 얘기가 좀 다르다.
‘체크메이트다. 지금의 우리에게 저 공격을 막을 수단은 없다.’
‘……흑마도왕. 조용히 있으라고 했을 텐데.’
저 브레스를 막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베일 스톨.
놈이 사이에 끼어드는 게 문제다.
‘아까처럼 베일 스톨이 사이에 끼어들거나 하면, 네 목숨이 위험하다.’
‘……시끄럽다고 했다.’
베일 스톨이 중간에 끼어들면, 세인의 심검은 그대로 무력화된다.
그럼 그대로 끝.
드래곤 브레스에 직격을 맞고, 서울과 함께 소멸하게 될 것이다.
‘포기해라. 놈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브레스에 대응하는 심검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다음 일격은 100% 무력화될 거다.’
앞선 두 번의 심검을 보고, 베일 스톨도 나름의 데이터를 쌓았을 터.
이쪽이 대응할 수 없는 순간에 끼어들어, 이쪽의 공격을 방해할 게 분명하다.
‘신하율이 제때 도착하지 못한 순간, 우리의 패배는 결정된 거나 다름없어.’
신하율이 늦은 이상, 모든 게 끝난 거나 다름없다.
이쪽이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세인 비노슈. 포기해라. 지금 우리가 택해야 할 건, 서울을, 한국을 포기하고 도주하는 것이다.’
지금 남은 수단은 도주뿐.
‘지금 네가 여기서 죽고 나면, 그거야말로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한다. 지금은 모든 걸 버리고 도주하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야 한다.’
다른 모든 걸 버리고, 홀로 살아남아, 미래를 대비한다.
그것만이 현재 남은 유일한 수단이다.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지?’
세인 비노슈가 인상을 찡그렸다.
‘시끄럽다. 그렇게 말했을 텐데.’
흑마도왕의 잔소리는 귀에 울린다. 아주 듣기 싫은 소리로 요란하게 울린다.
‘제 목숨이 아까울 뿐인 놈이. 대의를 지껄이지 마라.’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궤변이 자아내는 잔소리는 딱 질색이다.
‘네놈은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세인 비노슈. 정상적으로 사고해라. 지금은…….’
세인이 귀를 닫았다.
아니, 귀가 닫혔다.
‘내가 베고자 하여, 벨 수 없는 것은 없다. 그 말은…….’
집중력이 극한까지 치솟아.
모든 집중력이 검과 브레스에 쏠린 것이다.
‘확신은 없다. 해 본 적도 없다. 허나.’
세인 비노슈의 검이 천천히 움직였다.
‘나라면 할 수 있을 터.’
심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무런 궤도도 남기지 않고 휘둘러지는 검.
마음의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궤도가, 브레스를 일도양단하고자 날아들었다.
“가소롭군.”
그 순간, 베일 스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전투를 통해 쌓은 데이터와, 이번 전투를 통해 쌓은 브레스에 대응하는 심검의 데이터를 이용해, 심검의 궤도를 100% 간파.
그 길목으로 자신의 몸을 옮겼다.
베일 스톨이 싸늘하게 웃었다.
여기서 굳이 도주를 택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는 멍청한 선택을 한 세인을 향한, 비아냥의 웃음이었다.
‘인정에 발목을 잡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군.’
과거 레이 벨 바이테너의 실수들을 떠올리며, 가까워지는 심검을 지그시 응시했다.
‘끝이다.’
이제 곧, 저 검은 멈춘다.
그리고 그걸로 모든 게 끝난다.
드래곤 브레스는 세인 비노슈와 서울을 그대로 불태워 버릴 것이다.
베일은 그렇게 확신했다.
허나.
“내 검은 멈추지 않는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그리하고자 마음먹었으니.”
멈춰야 할 검이, 멈추지 않고 그대로 계속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상태라면 심검이 베일의 신체를 베고 지나갈 터.
베일의 눈이 찌푸려졌다.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심검을 보고, 당황한 것이다.
‘설마. 모든 것이 설계였던 건가?’
세인 비노슈는 금제에 걸리지 않았던 게 아닐까.
금제 따위 처음부터 없었고, 자유로운 몸이었던 게 아닐까.
‘금제에 걸린 척해서 내 방심을 이끌어 내려고…….’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애초에 세인 비노슈와 현재 자신의 힘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
굳이 금제에 걸린 척을 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흑마법의 기척을 확인까지 했지 않은가.
세인 비노슈는 확실히 금제에 속박되어 있는 상태다.
‘근데 왜…….’
빠르게 가까워지는 심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마음의 검은 베일이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베일을 베고 지나갔다.
베일을 베고 지나간 심검은 그대로 베일의 뒤쪽에 자리 잡은 브레스를 베었다.
키이이이이이이잉-!
심검이 브레스를 일도양단 내며, 브레스를 구성하고 있던 마나가 천지로 쏟아져 나갔다.
집속되어있던 마나가 사방으로 흩날리며, 공명음이 울렸다.
“…….”
귀를 찢는 공명음 사이.
세인이 비아냥대듯이 웃었다.
베일 스톨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세인을 노려보았다.
“나를 베지 않고, 브레스만을 벤 건가?”
베인 줄 알았으나, 베이지 않았다.
베일 스톨의 신체는 멀쩡하다.
세인의 검은 베일의 신체를 관통했으나, 베일의 신체엔 그 어떠한 상처도 남지 않았다.
그 말인 즉슨.
“……그렇군. 네 검은 네가 베지 않고자 하면, 베지 않을 수도 있는 건가.”
세인 비노슈의 심검은 베고자 하는 대상을 취사선택하는 게 가능하다.
이런 말이었다.
“무얼 그리 놀라지?”
세인이 검을 다시 납도한 뒤에, 여유롭게 웃었다.
“심검은 마음의 검. 생각이 곧 힘이 되는 검이다. 베는 것도, 베지 않는 것도, 내 마음이다.”
물론 여유로운 건 표정뿐.
내심 꽤나 놀라고 있다.
‘위험한 도박을 하는군. 만약 실패했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흑마도왕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검으로 하고자 하는 것에, 불가능은 없으니.’
세인 비노슈의 검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진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