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404)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404화(404/466)
종말신.
이름은 딱히 없다고 한다.
“놈은 신계의 하늘에서 태어났어.”
먼 과거, 신화시대.
신들은 탄생 과정에 따라, ‘격’이 정해진다.
인간계의 대지에서 탄생한 신은 하급.
인간계의 상공, 구름에서 태어난 신은 중급.
그리고 그런 인간계의 위에 존재하는 신계의 대지에서 탄생한 신은 상급.
이런 식으로 높은 곳에서 탄생한 신일수록, 타고나길 높은 신격을 지니고 태어난다.
“신계의 하늘에서 탄생한 신. 한 마디로, 신계의 다음 지배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 신이라는 말이군요.”
신계의 하늘에서 탄생했다는 건, 신계를 아우를 수 있을 만큼 높은 격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라는 말이다.
“그래. 신계의 정상에 설 지도자. 신들의 신. 그런 운명을 타고난 놈이었지.”
움브라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종말신에 대한 걸 다시 떠올리며, 분노를 곱씹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종말신을 향한 원망과 살의는 조금 더 적나라했다.
지금 움브라가 품고 있는 살의는 종말신을 향한 살의가 아니다.
‘신계에 대한 원망.’
움브라는 신계라는 장소 자체를 증오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서열이 정해지는 신계의 시스템을 혐오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인간계 지하 깊숙한 곳. 짙은 그림자에서 탄생한 신 움브라. 신계의 시스템에 따르면, 그녀의 격은 하 중의 하. 실질적으로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되었을 테니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태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상급에 가까운 신격을 습득한 움브라이니만큼, 신계의 시스템은 눈엣가시였으리라.
‘여신 움브라가 악신의 진영으로 넘어간 이유도 신계의 시스템……. 선민사상 때문이었고.’
움브라가 저 말을 하며, 인상을 찡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계가 탄생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어. 유구한 신계의 역사에서도 신계의 하늘에서 탄생한 신 같은 건 없었거든.”
“……신화 속의 신화네요.”
“그렇지.”
신화시대에서도 신화라 불릴 법한 일이었다.
“그놈이 탄생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지니고 태어 날 신계의 지도자의 탄생. 그가 무사히 성장을 마친다면, 악신들에게 희망은 없다.
악신의 진영에서 난리가 나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이대로는 모든 게 끝난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우리는, 그 즉시 모든 전력을 끌어모아 신계로 쳐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렸어.”
이대로 있어 봐야,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
모든 힘을 다 짜내서라도, 놈을 처리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 걸 테지.
“그렇게 신계로 쳐들어가기로 결정되고, 10분 만에 모든 준비를 끝마쳤어.”
10분. 경악스러운 속도였다.
고작 그 시간 사이에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행동으로 옮기다니.
악신 측의 절실함이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놈이 눈을 뜨면 모든 게 끝난다. 그 생각이 모든 악신을 움직일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리라.
“그렇게 우리는 신계에 강제로 잠입했고……. 그 일이 일어났어.”
움브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종말신이 종말을 선언한 거야.”
“……종말신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거 아니었습니까?”
얘기를 들은 바에 따르면, 악신 진영이 신계로 쳐들어간 건, 종말신이 탄생한 직후.
최소 30분 이내라는 말이 된다.
“맞아. 태어난 지 20분도 안 됐을 때지.”
“……근데 종말을 선언했다고요?”
태어난 지 20분밖에 안 된 갓난아이가 종말을 선언했다니.
도통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높은 격을 지니고 태어난 신은 유아기라는 게 없어. 신계에서 태어난 신들은 보통 며칠 이내에 성인으로서의 신체를 지니게 돼.”
“아.”
단테로아의 서에서 읽은 적 있다. 신계에는 아이라는 존재가 없었다고.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놈은 태어난 지 20분 만에 모든 성장을 끝마치고, 성인으로서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어. 그리고…… 다짜고짜 신계의 종말을 선언했지.”
책에서나 나올 법한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태어난 지 20분 만에, 성인이 된 신이 다짜고짜 세상에 종말을 고하다니.
“처음에는 모두 믿지 않았어. 신계의 머리가 딱딱한 놈들도. 우리도. 제아무리 대단한 격을 가지고 태어난 놈이라고 해도, 혼자서 신계를 멸망시킨다는 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예. 그렇죠.”
아마 나였으면, 코웃음까지 쳤으리라.
“근데…….”
움브라의 동공이 아주 살짝 떨렸다.
“그 얼토당토않은 말이…… 현실이 됐어.”
“……신계가 멸망했다는 건가요?”
“그래.”
후회라는 물결이 동공이라는 연꽃잎을 흔드는 듯했다.
“놈이 종말을 선언한 직후. 신계는 흔적도 없이 소멸했어. 아무 전조도 없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신계 전체가 사라졌어.”
내 눈이 천천히 커졌다.
아무 전조도 없이, 그냥 소멸해 버렸다고?
“그건 또 무슨…….”
대체 얼마나 강하길래.
신계를 일순간에 지워버릴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먼지로 변해 흩날리는 신계를 바라보면서, 멍하니 서 있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만약 내가 그 광경을 눈앞에서 봤다면 어땠을까.
말할 필요도 없겠지.
나도 움브라처럼,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우리의 앞에 그놈은 모습을 드러냈지.”
그놈.
종말신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말했어.”
움브라가 눈살을 찌푸린 채로, 잠시 입을 닫았다.
혐오감을 곱씹는 듯한 표정.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직 날벌레들이 남아있었네.”
“…….”
움브라의 표정이 점점 더 험악해져 간다.
“놈은 신계에서 태어난 신 특유의 느끼한 얼굴로, 악신들이나 지을 법한 천박한 미소를 지었어. 그리고 천천히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지.”
움브라의 두 눈에, 아주 작은 공포가 깃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내 몸을 강하게 밀쳤어.”
두려워하면서, 슬퍼했다.
“당시 머리가 완전히 굳어 버렸어서 날 민게 누구였는진. 지금도 모르겠지만……. 나를 지키고자 하는 그 의지만큼은 기억하고 있어.”
그 인물의 목소리에 담긴 절박함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덕분에, 나는 목숨을 부지했어.”
움브라가 고개를 숙였다.
“혼자 살아남았지.”
“……혼자?”
“그래.”
움브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놈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모두가 죽었어. 나도 누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거야.”
“…….”
악신들이 아무런 반항 한번 못해보고, 일제히 목숨을 잃었다.
대체 종말신이란 놈은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혼자 남은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서…… 그놈을 올려다봤어. 올려다보며 물었지.”
그때의 무력함을 떠올리는 듯.
움브라가 입술을 짓씹었다.
“왜 이런 짓을……. 하고. 겁에 질려서, 벌벌 떠는 목소리로 말이야.”
움브라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랬더니…… 놈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예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태어난 지 20분 만에, 신계를 멸망시키고자 마음먹은 정신 나간 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네?”
순간 넋이 나갔다.
“그냥이래.”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신계를 멸망시킨 거라고요?”
“그래.”
“뭔 미친…….”
정신 나간 신이라곤 생각했지만, 내 상상 이상으로 더 미친 신이었다.
“뭐, 말만 그렇게 했지 이유가 없진 않았을 거야. 그 후에 이어서 이런 말을 했었거든. 이렇게 내 머리에 손을 얹고서…….”
움브라가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어차피 이 세상은 내 거니까. 부수든 말든 내 마음이잖아?”
저 촐랑거리는 말투.
이전, 드래곤의 기억을 꿈으로 엿보며 들었던 ‘신’의 목소리가 오버랩 된다.
“나는 누군가가 만든 조형물 위에 뭔가를 더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일일이 새로 만드는 걸 더 좋아하거든. 그래야 내 것 같잖아?”
말이 안 나온다.
“그래서 종말을 선언한 거야. 다 지우고 새로 만들려고.”
너무 애 같아서.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라서.
이해가 가질 않는 말이라서.
뭐라 반응할 수도 없었다.
“그는 그냥,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신계를, 신계의 신들을, 우리를 죽인 거야.”
“…….”
종말신.
신들의 배신자.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라그나로크 같은 걸 떠올리고 있었다.
신들에게도 신들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들이 서로 격돌하며 뒤섞이다가, 멸망으로 치닫게 된 거라고.
그 멸망의 시발점이 종말신이었을 거라고.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냥……. 미친놈이었네요.”
“맞아. 미친놈이야.”
근데 아니었다.
종말신은 모종의 이유로 종말을 선언할 수밖에 없던 사연 많은 신이 아니라.
그냥 또라이였을 뿐이었다.
힘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안 될 놈이, 힘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이었다.
“내가 왜 그놈을 증오하는지 알겠지?”
“……예.”
종말신은 그녀를 죽인 원수이자, 그녀의 동료들을 죽인 원수다.
심지어 그 죽음에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종말신의 살인 행위는 일종의 쾌락 살인과도 같다.
그런 존재에게 모든 걸 잃었다.
움브라의 증오는 당연하다.
“그런 놈이……. 본체는 아니라곤 하나, 그놈의 힘을 품은 인간이 눈앞에 있어.”
움브라의 눈이 또다시 변했다.
흰자는 검정색으로, 검은자는 붉은색으로.
감정이 격하게 요동칠 때, 저렇게 변화하는 모양이다.
“네가 내 힘을 강제로 빼앗은 개새끼고 뭐고 무슨 상관이겠어. 안 그래?”
종말신에 대한 원망에 비하면 나에 대한 복수심은 태양 앞의 반딧불이만도 못하다.
종말신에게 한 방 먹일 수만 있다면, 나에 대한 복수심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으리라.
“이해했어?”
“……네. 이해했습니다.”
움브라가 내게 대화를 하자며, 친절하게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아주 잘 이해했다.
“이해했다는 건, 날 믿어 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지?”
“물론입니다.”
베일 스톨이 상대인 이상, 움브라가 내 뒤통수를 칠 일은 없다.
악신이고 뭐고, 지금의 움브라는 믿어도 된다.
“……그래. 기껏 시간을 투자해서 설명해 준 보람이 있네.”
움브라가 픽 웃었다.
“그럼 자.”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계약하자.”
움브라의 근원이자, 근간.
그림자가 그 손에 한가득 맺혔다.
“나는 네게 내 모든 힘을 양도할게. 대신 너는…….”
“예. 저는 베일 스톨을 처리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움브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전력을 다하는 걸론 안 돼. 놈을 반드시 죽여. 죽여서 그 영혼을 내게 가져 와.”
영혼을 가져오는 건 미호가 있는 이상 문제 될 게 없다.
죽이는 것도 문제없다.
내가 죽건, 놈이 죽건, 결과는 둘 중 하나일 뿐이니까.
“좋습니다. 그 조건으로 계약하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움브라의 손을 잡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하는 걸로, 움브라의 힘을 얻을 수 있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다.
“쿨한게 마음에 드네.”
맞잡은 움브라의 손바닥으로부터, 힘이 흘러들어온다.
익숙한 힘.
그림자라는 이름의 마나가 내 신체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큽.”
순간, 비명이 새어 나왔다.
막대한 힘이 일제히 유입되며, 전신에 통증이 발생한 것이다.
“엄살 부리지마.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움브라가 내게 힘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 힘의 모든 권한을 네게 이양할 거야.”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듯이, 힘이 유입되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전신이 비틀리는 것처럼 아프다.
“정신 꽉 다잡고 버텨. 조금…… 아니, 많이 아플 테니까.”
“……큭!”
경고와 동시에, 통증이 더욱 거세졌다.
악신이 아플 거라 경고한 만큼, 지독한 통증이었다.
‘그래도…… 버틸 수 없을 정도는 아니야.’
나는 그 통증을 참아내며, 움브라의 힘을 수습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응. 나쁘지 않네. 그놈을 상대할 거면, 이 정도는 가볍게 버텨 줘야지.”
움브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있기에, 표정을 볼 수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호의적인 반응임은 확실했다.
“그대로 끝까지 잘 버텨 봐.”
그런 움브라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그러고 보니…….’
움브라가 증오하는 종말신의 영혼은 내 스승님, 레이 벨 바이테너도 지니고 있다.
그 말은 즉, 움브라가 증오하는 대상에는 나 또한 포함되어 있어야 정상이라는 말이 된다.
바이테너식은 종말신의 잔재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하지만…….’
헌데, 움브라는 딱히 나를 증오하는 기색이 없었다.
‘눈치를 못 챘을 리는 없는데.’
움브라는 성유물 너머 베일 스톨을 보고, 바로 종말신의 힘을 감지 해 냈을 정도로 예민한 감을 지니고 있다.
그 정도 감각이면 내 마법에서도 종말신의 힘을 감지해 냈어야 정상이다.
‘눈치채고서,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야.’
이건 확신할 수 있다.
저 정도 증오를 품고서, 저렇게까지 완벽하게 속내를 감추는 건 불가능하다.
아예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움브라는 사이사이 종말신을 향한 맹렬한 증오를 뿜어내고 있었다.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나에 대한 감정은 완벽하게 갈무리한다?
그런 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럼 내 마법에서 종말신의 힘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말인데…….’
바이테너식에는 종말신의 신격이 깃들어 있다고, 스승님은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움브라는 내 힘에서 종말신의 기척을 일절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어째서 움브라는 내게서 종말신의 힘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뭔가가 있어.’
무언가가 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 스승님도 모르고 있는 무언가…….’
스승님과 베일 스톨.
그리고 종말신.
그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
‘종말신이 둘로 분열된 이유에 그 비밀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