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411)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411화(411/466)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머리가 굳어버렸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내가 진짜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놈이 진짜 베일이 아니라면, 진짜 베일은? 그놈은 대체 뭐지?’
기존에 알고 있던 진실 위로, 새로 덧입혀진 진짜 진실.
진실이었던 것과 진실이 충돌하며, 내 머리를 강타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려온다.
“왜 아무 대답이 없지?”
베일이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며 말을 걸었다.
“죽여라. 나를 죽이면, 이 공간은 소멸하고, 너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아니, 애초에 눈앞의 베일이 ‘진짜 베일 스톨’이 맞긴 한 걸까.
지금 이 베일이 가짜고 밖에 있는 베일이 진짜일 가능성은?
‘……아니, 그럴 가능성은 없어.’
없다.
그럴 일은 결코 없다.
스승님께서 굳이 가짜를 준비해 두셨을 리가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베일은 진짜야.’
이건 확실하다.
‘그럼 역시 지금 새로 부활한 베일은 가짜라는 말이 되는데…….’
마나라는 건 지문과도 같아서, 바꾸려고 해도 결코 바꿀 수 없다.
마나가 다르다는 건, 서로 다른 존재라는 방증이다.
바깥의 베일과 지금 눈앞의 베일은 다른 존재다.
즉, 바깥의 베일은 가짜라는 말이 된다.
‘아니, 100% 가짜일 리는 없어.’
바깥의 베일은 아스란 님과 엘레나 님을 알고 있었다.
제국과 사국의 전쟁에 대한 기억 또한 온전히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100% 진짜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제국과 사국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수 있는 건,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뿐이니까.
‘흑언도 그래.’
바깥의 베일이 가짜가 아니라는 증거는 더 있다.
흑마도왕에게 걸려 있는 금제, 흑언.
흑언을 다룰 수 있는 자는 베일 스톨뿐이다.
흑언의 존재야말로, 바깥의 베일이 진짜라는 증거나 마찬가지다. 흑언을 생각하면 바깥의 베일이 가짜일 수가 없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눈앞의 베일과 바깥의 베일.
확연히 다른 마나를 지니고 있는 두 존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가 진짜임을 증명하고 있다.
상황이 이해의 범주를 넘어섰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흠. 이대로 계속 가만히 있는 것도 나쁘진 않지. 어차피 네 시간만 낭비될 뿐이니.”
베일이 여전한 무표정으로 말했다.
“내 말을 못 믿겠다면 그대로 계속 있어라.”
베일이 마나를 이용해 검은색 의자 하나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완성된 검은색 왕좌.
베일이 왕좌에 앉아 주먹에 턱을 기댔다.
“……계승자.”
미미르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상황은 모르겠지만, 지금 눈앞의 베일은 바깥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베일의 시선은 오직 나만을 향하고 있었다.
혹시 전성기 시절의 베일이라면, 미미르의 존재를 감지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저 말에도 따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다.
“지금이라면 어느 정도 정보를 캐낼 수 있을 거야.”
베일은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100%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모른다는 건, 정보의 중요도에 대한 관점이 어긋나 있을 확률이 높다는 말과 같다.
여러모로 정보를 캐내기 좋은 상황이다.
나는 미미르에게 동의의 의사를 전하고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천천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째서 저를 죽이려 하지 않으시는 거죠?”
처음부터 본론으로 넘어가면 눈치챌 확률이 높다.
일단, 지금 당장 내가 궁금해할 법한 것들부터 천천히 물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움직이는 건 그 후의 일이다.
“말했을 텐데. 내게는 제약이 걸려 있을 거라고.”
“제약이 걸려 있을 ‘지도’ 모른다. 가정이잖습니까. 저를 죽일 수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텐데요.”
베일이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레이가 아무런 방비도 해 두지 않은 채, 나를 여기에 던져 넣었을 리가 없다. 100% 내게 제약을 걸어 두었을 것이다.”
베일의 눈은 신뢰라는 이름의 빛으로 검게 빛나고 있었다.
내 라이벌, 주적이 고작 이 정도도 준비 안 해 뒀을 리가 없다. 그렇게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죽겠다는 겁니까?”
“그러하다.”
베일이 턱을 괸 채로 다리를 꼬았다.
“어차피 나는 가짜. 내가 죽는다고 하여, 이 시대에 다시 강림할 내게 해가 될 일은 없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네게 아무런 정보도, 경험도 주지 않는 것. 레이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뿐이다.”
거만한 왕좌 같은 자세로, 절대자 특유의 분위기를 뿜어내며,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해했다면 죽여라. 미래의 내 득을 생각하면 네 시간을 빼앗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베일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레이의 꼭두각시가 된 거나 다름없는 지금 이 상황은……. 불쾌해도 너무 불쾌해서 말이지. 내가 가짜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쾌감을 억누르기가 힘들어.”
베일이 턱에서 손을 떼고, 반대쪽 다리를 꼬았다.
“그러니 죽여라. 너도 굳이 가짜를 불쾌하게 만들기 위해, 이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을 테지.”
완벽한 논리이자, 완벽한 화법이었다.
‘……베일의 말은 전부 진실이야. 베일은 진짜로 나와 싸울 생각이 전혀 없어.’
싸워봐야 손해밖에 없다고. 베일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손해밖에 없을 거다.
베일의 말마따나, 스승님이 아무런 방비도 없이 여기에 베일을 준비해 뒀을 리가 없으니까.
‘베일이 무슨 수를 써도 감지할 수 없는 제약을 준비해 두고, 내게 고위 마법을 보이도록 준비해 두신 걸 테지만…….’
베일의 상황 판단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다.
베일이 이렇게 냉정한 대응을 보일 거라곤 스승님도 예상하지 못하신 걸 테지.
“이해했습니다. 반박할 여지가 없네요.”
지금 이 상황에 대한 파악은 얼추 끝났다.
화제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마무리되었고.
화제를 전환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당신 말대로, 여기서 굳이 의미도 없이 시간을 낭비하긴 싫으니, 지금 바로 죽여드리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이군.”
“다만, 그 전에 하나만 묻겠습니다.”
베일이 눈살을 찌푸렸다.
“말했을 텐데. 네겐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을 거라고. 거절한다.”
지금껏 베일이 한 말들은 모두 지금 상황에서나 도움이 되는 말들뿐이다.
앞으로의 일들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일절 없었다.
정보가 될 수 있는 것 같은 대답은 절대 하지 않을 테지.
“딱히 대답하기 싫다면 안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정보가 되지 않을 만한 질문이라면 어떨까.
“질문하겠습니다.”
내게 정보를 줄 여지가 적으며, 베일 스스로도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라면?
제아무리 베일이라고 해도 대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스승님과 당신이 원래, 하나의 존재였다는 건, 스승님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베일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처음으로 베일의 감정이 흔들렸다.
“스승님과 당신. 둘이 아직 하나의 신이였을 때…….”
나는 그런 베일의 표정을 보며, 베일이 결코 무시하지 못할 만한 키워드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종말신이라 불리던 시절의 일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종말신.
스승님도 알지 못하였던 이름.
스승님이 모르고 있었다면, 베일 또한 모르고 있을 터.
베일은 절대 내 말을 무시할 수 없다.
무조건 반응할 거다.
“종말신……?”
예상대로, 베일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내가 종말신이었다니. 그건 무슨 헛소리지?”
역시.
자신의 과거가 ‘종말신’이라는 건 모르고 있는 듯했다.
“모르십니까? 당신이 아직 신이었던 시절. 당신은 종말신이라는 이름으로…….”
“뭘 모르는 건 너다. 바이테너식의 계승자.”
베일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내 말을 끊었다.
“누가 그딴 헛소리를 한 거지? 레이인가? 만약 그렇다면, 레이의 기억에 치명적인 장애라도 생긴 모양이로군.”
베일이 꼬았던 다리를 풀고, 세상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지간해선, 무시하려 했지만, 그 말만큼은 무시할 수가 없군. 하필 우리를 종말신이라 착각하고 있다니.”
베일이 한껏 찌푸린 눈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들어라. 바이테너식의 계승자. 나와 레이가 아직 하나였던 시절, 사람들은 우리를 이렇게 불렀다.”
내 모든 신경이, 베일의 입가로 고정되었다.
“인신(人神). 인간들의 신이라고.”
베일의 입에서 처음 듣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인신. 인간들의 신?
“다른 이름으론 마지막 희망. 영웅신이라고도 불렸지.”
“마지막 희망…….”
“그래. 지금의 나로선, 본의가 아닌 호칭이다만. 실제로 그렇게 부르는 놈들이 많았다.”
베일이 작게 혀를 차곤 말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호칭이었다. 신계를 멸하고, 이어 인간계까지 멸하려 하였던 미치광이 신. 그놈과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신이 바로 우리였으니.”
“신계를 멸하고, 인간계까지 멸하려던 미치광이 신……?”
세 음절 명사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불릴 만한 신은 딱 한 명뿐이다.
“종말신 말이다. 멍청한 것.”
종말신.
“종말신은 우리가 아직 신이던 시절. 우리가 모든 힘을 다해서, 쓰러트리고자 발악하였던, 미치광이 신의 이름이다.”
상상치도 못한 말에 순간적으로 머리가 굳어버렸다.
종말신이 아니라 종말신과 대적하였던 신이라고?
“그딴 쓰레기와 나를 착각하다니. 실로 불쾌하다.”
베일이 이 이상 불쾌할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종말신과는 연관이 없다는 겁니까?”
베일의 인상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말귀를 못 알아듣나? 연관은 있다. 우리가 상대한 신이라고 했을 텐데.”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말이 잘 나오질 않는다.
머리가 굳어서,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쯧. 다시 생각해도 불쾌하군. 하필 우리를 종말신과 착각하다니. 그 오만하기 짝이 없는 미치광이 따위와……. 그딴 패배자 놈과 우리를…….”
“……잠시만요.”
지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이 나왔다.
“지금 패배자라 하셨습니까?”
패배자? 종말신이 패배자라고?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군.”
베일이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레이는 대체 뭘 가르친 거지? 이해할 수가 없어.”
베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른다면 알려주지. 종말신은 우리에게 패배했다. 신계에서 태어난 신은 인간계에서 태어난 신인 우리를 이기지 못하였다.”
“……그 괴물 같던 신이…… 졌다고요?”
탄생과 동시에 신계를 멸망시킨 괴물을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고?
어떻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하나? 다른 건 레이에게 직접 들어라.”
베일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덕분에 불쾌감만 늘었군. 이 이상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겠다. 죽여라.”
베일이 왕좌에 눕듯이 기대앉아 세상 불쾌하다는 눈초리로 말했다.
이 이상 너와 할 얘기는 없다.
앞으로 네가 무슨 말을 하던, 더 이상 아무런 답도 하지 않겠다.
그러니 그냥 죽여라.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었다.
“…….”
나는 그런 베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베일과 종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종말신은 이미 소멸했다.’
머릿속이 하나의 거대한 의문으로 가득 찼다.
‘그럼 지금의 베일은 뭐지?’
종말신의 기운을 풍기고 있는 바깥의 베일.
그놈은 대체 누구일까.
‘가짜라기엔, 진짜의 기억과 힘을 계승하고 있고. 진짜라기엔, 진짜와 마나가 다르며, 느껴져선 안 되는 종말신의 기운을 품고 있는, 스스로 베일 스톨이라 자칭하는 남자……. 그는 대체 뭐지?’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