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412)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412화(412/466)
그 후, 나는 베일의 목을 베어냈다.
가능하다면 조금 더 정보를 캐내고 싶었지만, 베일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 이 이상 대화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판단, 곧바로 베일의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베일은 소멸했다.
참으로 허무한 마무리였다.
“……미미르. 어떻게 생각해?”
베일의 소멸과 함께 안개처럼 흩어져가는 세상의 중심에서 나와 미미르만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모르겠어. 아무것도…….”
미미르가 멍한 듯, 분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보조로서 제대로 된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확실해진 건 딱 하나뿐이야.”
미미르가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우리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다 틀린 것들이었다는 것.”
지금까지 얻어 온 정보들과 그 정보를 기반으로 세웠던 가설들은 모두 쓸모없는 것들이 되었다.
첫 숫자를 기입하는 것부터 틀려먹은 수식처럼.
우리가 해 왔던 모든 것들이 하나 같이 의미를 잃었다.
“내가 너무 멍청했어.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바마마와 베일의 과거가 종말신이라고 확정 지어 버렸어.”
미미르가 입술을 짓씹었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결론을 너무 섣부르게 내 버렸다.
스스로 너무 부끄럽다.
그렇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미안해.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하는데…….”
미미르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던 탓에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연구에 몰두하느라, 다른 데 너무 소홀했다.
연구가 중요한 게 아닌데, 우선순위를 잘못 정했다.
그런 의미가 담긴 사죄였다.
“아니. 미미르. 네 실수가 아니야.”
하지만 이는 미미르의 잘못이 아니다.
“이번 일은 내 실수야.”
이번 일의 책임은 내게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딱딱 들어맞아서, 당연히 이게 정답일 거라고 확신을 해 버렸어.”
아니, 냉정하게 생각하면 마냥 실수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도 그럴 게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혔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우리가 세운 가설이 정답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누구든 우리의 상황이었다면, 우리와 같은 결론을 냈을 거다.
이번 일은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단, 천재지변의 일종이었다고 봐야 한다.
“아니. 이건 내 실수야. 가면의 신이 한 말에서 생긴 의문들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다면…….”
페르소나와 대화를 하며 얻은 정보들에서 파생된 의문.
아마 미미르도 나와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그니스, 팩티오. 그 외에 다양한 신들이 어째서 스승에게 힘을 양도했는가.’
움브라와 페르소나.
두 신과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의문.
어째서 종말신의 분신체인 스승님에게 신들이 힘을 양도하였는가.
이 의문에 대해 조금 더 깊게 고찰해 보았다면 조금 더 빨리 진실에 도달했을 지도 모른다.
“너무 자책하지 마. 거기서 눈치를 챘다고 해도. 고작해야 이틀 차이야.”
하지만 그래 봐야 이틀 차이다.
그때 눈치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책할 때가 아니야.”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자책하는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진실을 알았다는 데 감사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부로, 모든 전제는 깨졌어.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계획을 수립해야 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되기 전에 실수를 만회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안도하며, 새 방침을 정해야 한다.
“……맞는 말이야. 그게 우선이지.”
미미르가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답했다.
자책할 시간도 아깝다.
그렇게 생각을 전환한 듯하다.
“근데……. 그,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지금 당장 계획을 짜긴 힘들어. 미지수인 정보가 너무 많아.”
“……그렇지.”
행동 방침, 향후의 계획을 짜기 위해선, 어느 정도 확실한 정보들이 필요하다.
상대가 누구이며, 어떤 힘을 지녔고, 목적이 무엇인가.
적어도 이 세 가지 정보가 없으면,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 저 세 가지 정보는 미지수가 되었다.
‘상대는 정체불명. 정체가 불명이기에 어떤 힘을 지녔는지도 불명. 정체도, 힘도 알 수 없기에 어떤 목적을 지녔는지도 불명.’
방금 전을 기점으로 모든 게 미지수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계획을 세우는 건 불가능하다.
“계획을 세우려면, 지금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칭 베일 스톨……. 그 남자가 누구인지. 그것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해.”
“그렇지.”
정론이다.
베일 스톨이며, 종말신인 정체불명의 남자.
그 남자의 정체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문제는 정보를 얻을 수단이 없다는 건데…….”
미미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이미 바깥의 베일 스톨은 종적을 감추었다.
지금 추가로 정보를 얻을 방법은 없다.
“하나. 떠오르는 방법이 있기는 해.”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얻을 ‘수도’ 있을 만한 방법은 하나 존재한다.
“무슨 방법인데?”
“……사실 방법이라 하기에도 뭐하긴 한데.”
나는 아에스를 꺼내, 두 개의 성유물을 꺼냈다.
검은색 돌과 새하얀 가면.
각각 움브라와 페르소나의 성유물이었다.
“이 둘에게 물어보면, 뭔가 정보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신화시대를 살아 온 이 두 신이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뭘 묻고 싶어도……. 둘 다 그 후로, 무슨 말을 해도 따로 반응을 안 보인다며?”
“그렇긴 한데…….”
문제는 이 둘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이번엔 대답해 주지 않을까?”
일이 일이니만큼, 이번엔 대답해 주지 않을까 싶다.
종말신에게 복수심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서, 패배했다는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이 둘은 친구였다고 하니까.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진 않을 거야.”
셀 수도 없을 만큼 긴 세월을 건너, 다시 친구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종말신에 대한 게 아니더라도, 대답해 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럴까?”
미미르가 아리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지금이라면 대답해 줄 가능성이 높다 뿐이지.
이 둘이 진짜 대답을 해 줄지, 말지는 나도 모른다.
“일단 해 봐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해 봐야지.”
해 보고, 반응하면 좋은 거고, 반응이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하긴.”
미미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미미르에게서 시선을 떼고, 두 성유물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두 분. 다 들으셨죠?”
두 성유물에 일정하게 마나를 쏟아부으며 물었다.
“대충 이런 상황입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성유물이 내 마나를 다리로 연결되었다.
“만약 저와 대화를 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마나를 뿜어주세요.”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두 성유물 모두 조용하다.
마나를 뿜어내기는커녕, 일말의 떨림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이래도 반응이 없어?’
이러면 두 명이 스스로의 의지로 나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내게 힘을 양도하고, 잠에 들어 있는 상태라던가.
아니면 연결이 일시적으로 끊겨 있는 상태라던가.
“안 되나보네.”
뭐가 됐던 대화는 무리일 것 같다.
나는 그대로 성유물로 쏟아붓던 마나를 회수하였다.
아니, 회수하려 하였다.
“……큭.”
비틀.
갑자기 어지럼증이 닥쳐오지 않았다면, 그리했을 테지.
어지럼증과 함께,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잠도 제대로 못 자게 하네.”
어두워지는 시야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림자가 속삭이는 듯한 고혹적인 목소리.
“그거 알아? 지금까지 내 잠을 방해한 사람들 중에 사지 멀쩡히 돌아간 사람들은 없다는 거.”
어둠에 잠식되었던 시야가 천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음. 그랬던가?”
흐릿한 시야 너머, 두 명의 실루엣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랬어. 왜, 기억 안 나? 그때. 꼴에 단장이라고 설치던 쓰레기 하나 있었잖아. 나한테 양쪽 팔 잘린 놈.”
“……그런 사람이 있었나?”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
익숙한 목소리만큼이나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는 두 명.
“있었어. 넌 왜 기억을 못하니?”
“쓸데없는 건 금방 잊는 성격이라서.”
움브라와 페르소나.
두 명이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어휴. 그 매사에 대충대충인 성격은 여전하다니까. 그 정도면 내 이름도 까먹은 거 아니야?”
움브라가 웃고 있다.
만면의 미소까진 아니었지만, 확실히 웃고 있다.
“기억하고 있어.”
페르소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었다.
가면의 신답게, 무표정이란 이름의 단단한 가면을 쓰고 있다.
“그래? 의외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니까. 시간이 이렇게 흘렀으면, 다 잊어버릴 줄 알았는데.”
“내가 기억 못하는 건, 쓸데없는 것들뿐이야. 중요한 건 절대 잊지 않아.”
하지만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 표정뿐이다.
목소리에선 확실한 감정의 변화가 느껴진다.
“오랜만이야. 움브라.”
그리움. 기쁨.
“오랜 내 친구.”
그리고 슬픔.
페르소나의 목소리는 다양한 감정으로 떨리고 있었다.
“어휴. 너는 진짜……. 말하면서 안 부끄럽니?”
움브라가 픽 웃으며 답했다.
“왜 부끄러워?”
“원래는 부끄러워해야 하는 법이야.”
“그래?”
페르소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한결같다니까.”
“움브라. 너도.”
오랜만에 만난 친우와의 재회를 서로의 방식으로 기뻐하고 있다.
“뭐, 왜. 구경이라도 났어?”
움브라가 내 시선을 느낀 듯,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거 알아? 나를 그런 눈으로 본 사람들 중에서도, 살아 있는 사람은 없는 거.”
뭐뭐한 사람들 중에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
저 말만 벌써 3번째 들은 거 같은데.
말버릇인가?
“……그랬나?”
내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페르소나가 먼저 답했다.
“말만 그렇게 하고, 대부분은 다 살려줬던 것 같은데…….”
“페르소나. 시끄러워.”
움브라가 페르소나를 째려보았다. 아주 무서운 미소였다.
“크흠. 아무튼. 조심해. 나 되게 무서운 여신이니까.”
“……아, 네.”
분명 무서운 표정이고, 무서운 미소인데.
뭔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허당이 억지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뭐, 이번까진 봐줄게. 이렇게 좋은 자리도 마련해 줬으니까.”
움브라가 팔짱을 낀 채 ‘엣헴’하며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더더욱 허당처럼 보인다.
“그래서. 용건은 뭔데?”
움브라와 페르소나가 동시에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둘 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다.
“……못 보셨나요?”
“뭘?”
“방금 있었던 일이요.”
“못 봤지.”
“못 봤어.”
움브라와 페르소나가 동시에 답했다.
“너한테 힘을 양도한 후로 지금까지 잠들어 있었으니까.”
움브라가 대표로 말하고 페르소나가 자기도 마찬가지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뭔 일 있었어?”
움브라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단 이렇게 우리 둘을 동시에 불렀을 정도면, 뭔가 일이 있긴 했겠다만……. 심각한 일이야?”
“예. 심각한 일입니다.”
내 칼 같은 대답에 움브라의 표정이 한층 더 굳었다.
“표정만 봐도 심각해 보이네.”
움브라가 한 차례 뜸을 들이고 다시 말했다.
“말해 봐. 무슨 일인데?”
“혹시 인신(人神)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인신?”
움브라가 페르소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눈으로 ‘넌 알아?’라고 묻는 듯했다.
“처음 들어.”
페르소나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나도. 인신이란 이름은 처음 들었어.”
움브라도 곧이어 모른다고 답했다.
“인신이란 이름은 처음 듣는다……. 그럼 당연히 인신이 종말신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는 것도 모르시겠네요.”
“……뭐?”
움브라의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누가 누굴 죽여?”
페르소나도 이번엔 진심으로 놀란 듯, 그 철옹성 같던 무표정에 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