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42)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42화(42/466)
드레이크가 내뿜는 살기가 내 온몸을 옥죄였다.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 내 전신을 짓눌렀다.
도망치려고 해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마치 내 몸이 아닌 것만 같았다.
크르르…….
드레이크가 살짝 콧김을 뿜었다.
그 가벼운 숨만으로 공기 중의 마나가 소용돌이친다.
드레이크의 콧바람이 내 신체를 훑고 지나갔다.
“커헉!”
단지 그것뿐인데, 내 전신이 뒤틀렸다. 마나가 역류한 듯한 무지막지한 통증.
그 순간, 다시금 확신했다.
‘이놈은 드레이크다.’
가벼운 콧바람만으로 마나의 폭풍을 만드는 괴물.
그런 괴물은 드레이크 말곤 없다.
“허억, 허억.”
드레이크의 마나에 짓눌려, 엉망이 된 서클을 필사적으로 다독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도망칠 수 있을까?’
싸운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랭크 외 재해종 드레이크.
놈은 지금의 내가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도주뿐이다.
‘아니, 도주도 무리야.’
하지만 곧바로 도주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도망가려고 해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드레이크가 내뿜는 살기는 내게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애초에 다리가 움직인다고 해도, 저놈에게서 도망칠 순 없다.
‘지금의 내 속도로는 드레이크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저놈이 달려드는 순간, 그걸로 끝이다.
‘……잠깐만.’
그 순간, 묘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저 드레이크. 왜 저기서 더 움직이질 않지?’
드레이크가 저 위치에서 더 이상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나를 극상의 먹이라고 생각하는 듯. 입맛을 다시며 침을 흘리곤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다가오질 않는다.
‘마치 놈의 코앞에 보이지 않는 결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가오고 싶어도 더 이상 다가올 수 없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훌륭합니다.”
“!”
그 순간,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규격 외의 몬스터를 눈앞에 두고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 패닉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은 냉철함.”
청아한 고음.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라는 게 딱 이러할까.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어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내 몸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다.
“합격입니다.”
내 어깨에 손이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이제 움직이실 수 있을 거예요.”
내 신체가 자유를 되찾았다.
아직 조금 떨리긴 하지만, 그래도 제대로 움직인다.
나는 그 상태로 내게 말을 건 정체불명의 여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녕하세요.”
자연을 상징하는 듯한 청아한 녹색 머릿결.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굳건한 눈빛.
그 모든 걸 자아내는 듯한 우아한 미소.
그리고 평범한 사람보다 반뼘 정도 긴 귀와 몽환적인 분위기.
“……요정?”
바야흐로 요정 그 자체였다.
여유로움을 옷처럼 입고 있는 정체불명의 여성이 싱긋 웃었다.
“자세한 얘기는 저것을 쫓아 낸 뒤에 하지요.”
그렇게 말하곤 내 앞으로 걸어 나가,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는 드레이크를 향해 똑바로 노려본다.
“욕망에 눈이 멀어 제 영역 내로 들어오지 않은 건 칭찬해 드리겠습니다.”
단조로운 한 마디 말.
그 말 한 마디에 내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그 인내심을 높이 사, 특별히 제 정원을 엉망으로 만든 건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숲이 포효하고 있다.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동조하듯이 분노하며 요동친다.
“조용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세요. 몰락한 귀족의 잔재여. 그렇지 않으면…….”
바람이 불었다.
녹색빛을 품은 마나의 바람.
그것이 드레이크의 주위로 휘몰아쳤다.
“오늘 당신의 비원은 무(無)로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드레이크의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뭘 한 거지?’
소리도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드레이크를 훑고 간 듯한 잔상이 보였고.
눈치 채고 보니 드레이크의 전신이 헤진 걸레짝처럼 넝마가 되어 있었다.
“경고는 한번 뿐입니다. 떠나세요.”
드레이크의 피부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드레이크는 비명 한번 지르지 않았다.
싸울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구나 하는 안도감만 느껴졌다.
쿵, 쿵.
드레이크가 몸을 돌려 빠르게 멀어져 갔다.
멀어져가는 드레이크의 피부가 순식간에 재생되고 있다.
‘진짜 규격 외 괴물이긴 하구나.’
평범한 몬스터였다면 즉사를 면치 못했을 치명상이었음에도, 드레이크는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상처를 수복하고 있다.
과연 랭크 외 몬스터답다.
‘그보다 저 규격 외 괴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지고 논 이 여성은 대체 뭐지?’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여성을 바라봤다.
내 시선을 느낀 듯, 여성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곤 천천히 내 전신을 훑었다.
“역시 좋네요. 레이의 계승자다워요.”
그리곤 약 10초 정도 내 눈을 뚫어져라 노려보더니, 다시 미소 지었다.
뭔가에 만족한 듯한 미소였다.
“……당신은?”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소개도 제대로 안 했네요.”
여성이 치맛자락을 작게 들어 올리며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
“제 이름은 엘레나 로 그린우드.”
그 상태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숲의 수호자라 불렸던 대마법사이자, 레이의 오랜 지기입니다.”
마치 숲 속에 부는 싱그러운 바람 같은 미소였다.
“잘 부탁드려요. 계승자님.”
* * *
그 후, 나는 엘레나의 안내를 받아 그녀가 살고 있는 작은 오두막으로 이동했다.
“드세요. 레이가 좋아했던 허브티에요.”
“감사합니다.”
나는 엘레나가 건넨 차를 받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
그 순간, 눈이 확 맑아졌다.
흔들리던 정신이 순식간에 평온해 졌다.
나는 다시금 차를 들이켰다.
한입, 한입. 차를 홀짝일 때마다 머리가 계속해서 맑아진다.
태풍이 불어오며 요동치던 바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잔잔해 지듯이, 내 마음도 빠르게 가라앉아갔다.
“잘 마셨습니다.”
그렇게 허브티를 모두 마셨을 때쯤, 내 정신은 이 이상 없을 만큼 냉정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입에는 좀 맞았나요?”
“네. 지금까지 먹어 본 차 중에 가장 맛있었습니다.”
허브티에서 이런 맛이 날 수도 있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뭔가 새로운 지평선을 연 느낌이다.
“마음에 들어 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한 잔 더 드릴까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엘레나가 쥐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찻주전자를 들었다.
찻잔이 가득 차며, 허브티의 싱그러운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질였다.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차를 한입 홀짝였다.
두 번 마시는 것임에도 그 감동은 처음 마실 때와 다르지 않았다.
“후우.”
한층 더 냉정해진 머리.
나는 반쯤 비운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다 뒀다.
“이제 좀 진정되셨나요?”
“예. 볼품없는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부끄럽긴요. 드레이크를 앞에 두고 자포자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예요. 유약한 사람들은 피어를 쐰 것만으로도 숨이 멎기도 하거든요.”
엘레나도 나를 따라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역시 그건 드레이크였군요.”
“네. 이 숲을 지배하는 제왕. 폭군 드레이크입니다.”
내 예상대로 놈은 드레이크가 맞았다.
“숲의 왕이라곤 해도, 원래 제 영역 내에는 접근도 하지 않는 놈인데. 아무리 그래도 이번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에요.”
“참을 수 없다니요?”
“당신이 품고 있는 고 밀도, 고 순도의 마나는 드레이크에겐 극상의 먹이나 다름없거든요. 식욕이 저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나마 잊게 한 거겠죠.”
“……식욕. 그렇군요.”
침을 줄줄 흘리고 있기도 했고.
엘레나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는 다시 차를 홀짝였다.
드레이크를 떠올리며 아주 살짝 흐트러졌던 마음이 순식간에 평온해 졌다.
“궁금한 건 그게 끝인가요?”
엘레나가 싱긋 웃었다.
‘궁금한 건, 고작 드레이크에 대한 게 아닐 텐데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더 질문해도 될까요?”
“그럼요.”
“여긴 대체 어딘가요?”
여기는 이드레드의 서 안에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이 맞는 걸까.
그게 가장 궁금했다.
“이드레드의 서 214페이지부터 232페이지를 아우르는 대규모마법진으로 만든 가상 세계. 세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요.”
“그럼 여기가 진짜 책 속이라고요?”
“네.”
“저희, 드레이크를 처리한 뒤로 15분은 걸어 온 것 같은데요?”
“그런데요?”
“…….”
책 안에 이런 방대한 공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그게 말이 되는 건가?
“그럼 그 드레이크도 마법으로 만든 가짜라는 말인가요?”
그게 마나 인형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
그것이 내뿜는 살기는 마나 인형 따위에 견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음. 엄밀히 따지면 가짜는 아니에요.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짜도 아니고요.”
“……무슨 의민가요?”
가짜도 아니고 진짜도 아니다.
굉장히 난해한 설명이었다.
“이 공간은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진 별천지거든요. 진짜는 아니지만, 가짜도 아니죠.”
“과거의 기록? 별천지?”
뭔가 이해하기 힘든 설명이었다.
“음……. 과거에 존재하던 그린우드 숲을 통째로 복사해서 만든 또 다른 세계. 복제된 세계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우실까요.”
“복제 세계…….”
나는 잠시 설명을 곱씹었다.
뭔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과거의 기록을 그대로 재현한 세계를 만들어 이드레드의 서 안에 집어넣었다. 이런 말인가요?”
“예. 맞아요.”
“……말도 안 되네요.”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도 놀라운데, 과거의 기록을 그대로 복제라니.
무슨 세계가 게임 속 데이터도 아니고. 복사, 붙여넣기가 가당키나 한 말일까.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죠?”
대체 어떤 마법을 어떻게 썼기에 이런 터무니없는 짓이 가능한 걸까.
“자세한 건 저도 몰라요. 저는 바이테너식을 계승한 게 아니니까요.”
엘레나가 쓰게 웃었다.
“이 마법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레이 본인이나, 레이의 마법을 이은 유일무이한 계승자. 당신뿐일 거예요.”
“……이해는커녕 아예 감도 안 잡히는데요?”
엘레나가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당연히 지금은 무리겠죠. 나중에 당신이 레이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거란 말이었어요.”
“9서클이 돼도 이해할 수 없을 거 같은 데요…….”
이런 터무니없는 마법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솔직히 상상이 안 된다.
“분명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엘레나가 자애롭게 웃었다.
“당신은 레이의 계승자. 바이테너식의 두 번째 정통 계승자니까요.”
“……음.”
아무리 그래도 전혀 상상이 안 가는데 말이지.
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며 엘레나가 다시 활짝 웃었다.
“그럼 스승님께서 이 세계를 만드신 이유는 뭔가요?”
이 세계가 과거의 기록을 100% 재현해 만든 카피 월드라는 건 알겠다.
그렇다면 이 세계를 만든 이유는 뭘까.
“제가 당신에게 어떠한 마법을 전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떠한 마법이요?”
“네.”
그 순간, 엘레나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부드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위압감이 차지했다.
“바이테너식 마법의 3서클 마스터격 경지 파훼(破毁)를 익히기 위해 꼭 필요한 마법.”
엘레나의 눈이 빛났다.
숲을 연상케 하는 녹안이었을 터인 엘레나의 눈동자가 지금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눈이 마치 내 모든 걸 꿰뚫어보는 듯했다.
“바이테너식이 자랑하는 마나의 본질을 꿰뚫는 눈. 신안(神眼).”
마나의 색을 보고, 마법의 단편적인 구조를 보는 눈.
그것을 바이테너식에선 신안이라고 표현하는 모양이다.
엘레나의 눈동자가 한층 밝은 금빛으로 빛났다.
“저는 그 눈을 일깨워 줄 것을 레이에게 부탁받아, 이렇게 기록으로나마 존재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