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44)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44화(44/466)
오감이 사라진 세계.
시각이 없기에 보이는 것도 없고, 청각이 없기에 들리는 것도 없다.
촉각이 사라졌기에 내가 서 있는지, 아니면 앉아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그에 이어 후각과 미각의 소실로 내 신체는 그 어떠한 외부적 자극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내 몸은 지금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걸까?’
‘나는 살아있는 건가?’
무섭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완벽한 무간 감옥.
‘지금 나는 서 있는 건가? 아니면 쓰러져 있는 건가?’
‘고개는 들고 있는 건가?’
모르겠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심장이 제대로 뛰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만약 제대로 뛰고 있다면, 지금 분명 세차게 두방망이질 치고 있을 테지.
‘무섭다.’
‘두렵다.’
만약 심해에 혼자 방치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우주에 혼자 고립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아니, 단언할 수 있다.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이건, 지옥이야.’
오감을 잃는다.
상상해 본적은 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이 상태로 어떻게 훈련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일단 오감을 지운 엘레나에게 괜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후.’
하지만 그 분노는 곧 사라졌다.
‘이건 훈련이다.’
잘 생각해 보면, 이건 화를 낼 게 아니다.
오감을 지우고 오로지 육감에만 몰두할 수 있는 획기적인 훈련법.
이런 건 엘레나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훈련이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해 보자.’
엘레나는 말했다.
신안의 마나를 보는 눈은 오감과는 상관없는 여섯 번째 감각이라고.
‘그 말은 이 어둠 속에서도 마나만은 볼 수 있다는 말이야.’
마나를 보는 눈.
여섯 번째 감각.
과거 마나의 색을 볼 때를 떠올렸다.
과거 마법의 단편적인 구조를 볼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나는 어떤 감으로 마나를 보고 있었는가.
그때의 나는 무엇에 의지하고 마법식을 읽고 있었는가.
‘무섭다.’
공포심이 내 집중력을 갉아먹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때의 감각을 되뇌기 위해 노력했다.
공포심을 억누르고, 의지를 다졌다.
‘이곳은 숲속이다.’
‘감각만 사라졌을 뿐이지, 나는 살아 있다.’
‘살아 있다면 두려워할 것은 없다.’
그렇게 다짐하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을 한 건지 안 한 건지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조금은 나아진 걸 보니 심호흡을 한 게 맞겠지.
‘마나를 본다.’
아주 조금 침착해진 머리로 다시 과거의 기억을 되뇌었다.
마나의 색을 처음 본 날.
그 선명한 붉은색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름다운 빨강.’
‘상냥한 노랑.’
‘따사로운 초록.’
‘포근한 파랑.’
내가 봐 왔던 마나의 색은 무슨 색이었나.
나는 스멀스멀 고개를 들어가는 공포심을 억누르며, 마나의 감각을 떠올렸다.
* * *
“…….”
엘레나는 현재 실시간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일단 맛만 보여주고, 곧바로 해제할 생각이었는데…….’
신하율에게 건 오감 봉인은 원래 곧바로 풀 생각이었다.
오감이 사라진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이 마법에 당해 본적 있는 엘레나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1분이면 사람이 미쳐가고, 2분이면 죽음을 떠올리며, 3분이면 자살을 택한다.
그게 오감 봉인 마법에 걸린 자들의 최후였다.
‘10초. 그 정도만 맛보여주고 일단 봉인을 푼 뒤, 숲의 마법으로 트라우마를 억제하는 작업을 하며 훈련을 진행할 생각이었는데…….’
엘레나가 사용하는 숲의 마법은 사용자의 심신을 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특히나 엘레나 정도가 되면, 대상의 트라우마를 없애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기에 엘레나는 신하율에게 말도 없이 오감 봉인 마법을 건 것이다.
그래야 트라우마가 생길 테고, 그래야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엘레나가 다시금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상태면, 숲의 마법은 필요 없을 것 같네.’
공포에 사로잡힌 듯, 신체는 떨리고 있고, 식은땀도 비 오듯이 흐르고 있지만.
신하율은 아직 멀쩡하다.
‘3분이 지났는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살을 택할 만큼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신하율은 여전히 정신을 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점점 좋아지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심은 배가되어야 하는데, 신하율은 점점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심호흡을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를 텐데, 심호흡을 할 때마다 호흡이 정돈되고 있다.
‘대단해.’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올수록 내부의 서클 회전도 천천히 정상화되고 있다.
‘그래도 아직 몰라. 오감 봉인의 공포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엘레나가 일단 감탄을 삼키고, 신하율의 상태에 집중했다.
오감 봉인의 공포는 여차하면 사람을 광인으로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신하율의 신변을 위해선 한시라도 눈을 떼선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엘레나의 주의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옅어져갔다.
‘이 정도면 진짜 숲의 마법은 필요 없겠어.’
10분.
20분.
엄청난 시간이 흘렀음에도, 신하율의 정신은 흐트러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떨림마저 사라졌다.
신하율은 완전한 평온 상태에 접어들었다.
‘아무리 레이의 계승자라지만…….’
설마 이 훈련을 이렇게 태연하게 극복해 낼 줄은 몰랐다.
‘레이는 이걸 알고 있었던 걸까?’
엘레나가 신하율의 훈련에 오감 봉인 마법을 사용한 건, 레이가 그렇게 해 달라 부탁했기 때문이다.
만약 레이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엘레나는 이런 위험한 마법을 훈련에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대단해.’
엘레나가 그렇게 혀를 내두를 때였다.
“……듣고 계시죠?”
돌연 신하율이 입을 열었다.
“듣고 계시다면 오감 차단 좀 풀어주시겠어요?”
두려움 따윈 이제 모두 잊었다는 듯이 태연한 목소리였다.
엘레나가 빠르게 오감 봉인을 풀었다.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가는 감각들.
“……후. 이제야 좀 살겠네요.”
신하율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신체를 움직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몸이 멀쩡하단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
태연하게 스트레칭을 하는 신하율을 보며 엘레나가 입을 살짝 벌렸다.
어쩜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그, 괜찮았나요?”
“아뇨. 안 괜찮았어요.”
신하율이 스트레칭을 계속 하면서 적당히 답했다.
“오감이 봉인된 세계…….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네요.”
“그래도 극복하신 거죠? 어떻게 극복하신 건가요?”
“별거 있나요. 계속 이건 안전한 훈련이라고 되뇌면서 필사적으로 저 자신을 세뇌했죠 뭐.”
자기 세뇌.
그것이 최초의 공포를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것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공포가 아니었을 텐데…….”
“네. 그래서 실제로 도중에 포기할 뻔했어요. 근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든 스트레칭을 마친 신하율이 정자세로 서서, 엘레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래도 지금이 1년 전보단 낫다.”
“……네?”
신하율이 쓰게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1년 전. 제 모든 걸 잃은 그날. 그날의 제가 겪었던 절망으로 가득 찬 어둠 속 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다.”
“오감 봉인이……나아요?”
“네.”
신하율이 부적합자로 판정 나, 모든 걸 잃게 된 그날.
그날의 절망적인 상황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나은 편이 아닐까.
신하율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오감 봉인은 제가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시련이니까요. 모든 걸 잃고 하루하루 썩어가며 절망에 구렁텅이 앞을 서성이던 1년 전과 비교하면, 한참 낫죠.”
“…….”
엘레나가 할 말을 잃었다.
대체 1년 전에 무슨 일을 겪었길래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대체 얼마나 절망적인 과거였기에 오감 봉인이 낫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눈으로 보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다 지난 일이니까요.”
신하율이 이미 다 지난 일이라며 웃어 넘겼다.
“그보다 엘레나 님. 저 성공했어요.”
“그렇…… 네?”
신하율의 과거에 대한 걸로 정신이 팔려 대충 대답하던 엘레나가 화들짝 놀랐다.
“성공이요?”
“네.”
“설마 마나를 봤다……는 건가요?”
“네.”
신하율이 세상 행복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 주위의 마나는 굉장히 상냥하네요. 엘레나 님에게 감화된 걸까요.”
“상냥…하다….”
그 말은 엘레나에게 있어 아주 감회가 새로운 말이었다.
“그 말을 또 듣게 될 줄은 몰랐네요.”
‘엘레나. 네 주위의 마나는 언제나 상냥해. 너를 닮아서 그런가?’
레이 벨 바이테너.
그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엘레나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 * *
“나 왔어!”
“뭐야. 되게 빨리 돌아왔네.”
미미르의 샘에 들어서자, 평소와 똑같이 소파에 늘어져 있는 미미르가 날 반겼다.
“어. 내일 등교 시간도 있고, 조금 일찍 나왔어.”
미미르가 그대로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나는 그런 미미르의 옆에 앉았다.
미미르가 그런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의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훈련 받고 온 거 맞아?”
“받았어.”
“그럴 리가 없는데. 그 훈련을 받고 그렇게 멀쩡할 리가…….”
미미르의 의심스러운 기색이 더욱 짙어졌다.
설마 세 번째 시험의 페이지에 안 들어갔으면서 들어갔다 왔다고 하는 거 아니냐는 듯한 표정이다.
“받고 왔다니까. 내가 왜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그린우드 숲에 가서, 엘레나 님과 만난 뒤에 오감 봉인 훈련까지 제대로 받고 왔어. 오케이?”
“……오케이.”
미미르가 곧바로 납득했다.
“그럼 오감 봉인 훈련을 받았는데도 그렇게 멀쩡한 상태라는 거야?”
“어.”
“……엘레나가 마음이 약해서 좀 봐 줬나? 아니면, 숲의 마법이 효과가 좋았나?”
미미르가 손가락을 턱에 얹고 중얼거렸다.
“숲의 마법은 받지도 않았는데?”
“……뭐?”
미미르가 눈을 크게 떴다.
“트라우마 순화 치료 안 했어?”
“어.”
“왜?”
“그야 트라우마가 안 생겼으니까?”
“……그 미친 마법에 걸리고도 트라우마가 안 생겼다고?”
“어.”
“왜?”
미미르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음. 그니까…….”
나는 엘레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해서 말해 줬다.
미미르라면 아, 그렇구나 하고 반응할 거라 생각했는데.
“……1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어?”
아주 예상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1년 전 얘기를 안 했구나. 어. 그런 일이 있었어.”
당연히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을 안 했네.
뭐, 이제라도 말했으니 됐겠지.
“고생했겠네.”
“조금?”
“그래.”
뭔가 미미르의 반응이 이상했다.
평소 미미르의 성격을 생각하면 지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표정이 심각하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쿨한 척 하려는 게 한층 더 이상했다.
“아무튼 그래서 어찌어찌 극복은 했다고 치고. 훈련은 어떻게 됐어? 신안. 남은 기간 내에 어떻게든 될 거 같아?”
언제 심각했냐는 듯이 금세 평소의 유쾌한 모습으로 돌아 온 미미르가 훈련 결과를 물었다.
“될 거 같아.”
김강인과 약속한 날까지 어떻게든 신안을 마스터하고, 파훼를 마스터할 수 있을 것 같다.
“오. 그래? 감을 좀 잡았나 봐?”
“아주 제대로 잡았지.”
20시간 같은 20분 동안.
인고의 시간을 겪어가며 마나를 보려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어느 정돈데?”
“마나를 볼 수 있는 정도?”
“……뭐라고?”
미미르가 뭘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마나를 볼 수 있게 됐다고.”
“그게 이렇게 단시간에 볼 수 있는 게 아닌데. 농담이지?”
미미르가 못 믿겠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진짠데.”
“진짜면 내 주변의 마나도 보이겠네?”
“그럼. 아주 잘 보이지.”
“그럼 한번 맞춰 봐. 내 주위의 마나는 어떤 느낌이야?”
제법 많아진 책들 사이로 노니는 마나들이 눈에 들어왔다.
“네 주위의 마나는 굉장히 게으르네. 너한테 제대로 감화된 것 같아.”
“……뭐 인마?”
미미르의 표정이 한순간에 험악해졌다.
“농담이야. 농담. 의외로 네 주위 마나는 냉정하고 차갑네.”
“……그래?”
“어. 신기하네.”
냉정함과 미미르.
꽤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네가 아니라 책이라는 매체에 감화돼서 그런가?”
“글쎄.”
미미르가 픽 웃었다.
“사실은 내가 엄청 차가운 사람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
뭔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