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448)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448화(448/466)
베일이 허공을 걸어 내려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계단이라도 있는 것처럼, 우아하게 걸음을 옮긴다.
“네가 그렇게 예상 밖의 움직임을 연달아 보여 준 덕에 드디어 결심이 섰다.”
베일의 오른손에는 묘한 물건이 쥐어져 있었다.
‘……뿔?’
정확하진 않지만, 일단 뿔처럼 생겼다.
악마라는 존재가 있고, 그 악마에게 뿔이 있다면 저런 형상이 아닐까 싶은.
그런 외견의 뿔이었다.
“결심이 섰다는 게 무슨 의미지?”
다시 흑마도왕과 위치를 바꿔, 세인이 겉으로 나왔다.
간부들의 처리는 끝났다.
흑마도왕과 위치를 바꿔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말 그대로의 의미다.”
베일은 세인과 비슷한 높이에서 걸음을 멈췄다.
“너는 레이와 똑같다.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법이 없어.”
둘 사이의 거리는 약 20미터.
서로가 서로의 사거리에 들어 서 있다.
“그래서 마음을 정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너를 처리하기로.”
베일이 손에 쥐고 있는 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어느 정도 무리를 하더라도. 지금 너를 처리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
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베일의 말에 담긴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세인…….’
‘알고 있다.’
베일은 진심이다.
진심으로 지금 모든 것을 끝내고자 하고 있다.
‘저 뿔. 뭔가 있다.’
흑마도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뿔에 뭔가가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베일이 지금 이 타이밍에 아무 의미도 없는 물건을 가져오진 않았을 터.
저 뿔에 분명 뭔가가 있다.
‘아니. 정황상 뭔가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뿔의 구조가 기형적이라는 의미다.’
흑마도왕의 목소리가 한층 더 경직되었다.
‘저 뿔.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어.’
뿔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무슨 의미지?’
아마도 저 뿔은 아티팩트의 일종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티팩트를 활성화시키지 않은 상태일 테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걸까.
‘모르겠나? 베일이 저렇게 마나를 불어넣고 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단 말이다.’
흑마도왕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티팩트고 뭐고, 저 정도 마나면 뭐라도 반응이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저 뿔에선 아무런 힘도 감지되지 않아.’
흑마도왕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마치 이 세상의 물건이 아닌 것처럼…….’
‘이 세상의 물건이 아니면. 뭐라는 거지?’
‘모른다.’
모르겠기에 등골이 오싹한 것이다.
‘아무튼. 저 뿔은 위험하다. 지금 놈과 싸워선 안 돼.’
‘……싸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세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도왕이 대체 뭘 보고 저렇게까지 불안해하는 건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싸워서 안 된다는 말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베일과 싸워선 안 된다.
저 뿔이 아니더라도, 지금 베일과 싸우면 무조건 진다.
세인의 컨디션이 최악인 지금은 0.0001%의 승기도 없다.
어떻게든 도주해야 한다.
‘헌데 도주를 한다고 해도 어떻게…….’
문제는 도주할 방법이 없다는 것.
다섯 간부를 상대할 때도 도주할 방법이 없었는데. 베일을 어떻게 따돌리란 말인가.
세인이 입술을 짓씹었다.
“그쪽의 세 명에게도 감사를 전해야겠군.”
그렇게 세인이 생각에 잠긴 바로 그때.
베일이 한쪽에 몰려 있는 아델라, 지순찬, 스텔라를 향해 말을 걸었다.
“너희가 흑성에서 내 일을 방해해 준 덕분에. 확실하게 결심할 수 있게 됐다. 너희가 모라를 처리하지 않았다면 지금 움직이진 못했을 거다. 십중팔구 모라의 힘에 기대고자 한 번 더 몸을 웅크렸을 테지.”
베일은 제나린과 호데리암의 눈을 통해 흑성 내부의 상황을 모두 지켜보았다.
모라는 저 셋이 처리했다.
저 셋이 모라를 챙겨 간 이후로, 모라의 기척이 사라졌으니, 확실하다.
“보답으로 고통 없는 죽음을 선사해 주겠다. 기뻐하도록.”
베일이 쥐고 있는 뿔을 한층 더 꽈악 쥐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노려보며, 살기를 끌어올린다.
“……윽.”
지독한 살기.
지순찬과 아델라의 신체가 흔들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살기에 일순 다리의 힘이 풀린 것이다.
“마지막 인사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베일이 쥐고 있는 뿔을 아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 지긋지긋한 싸움도 오늘로 끝이다.”
푸욱!
그리고 그 뿔을 그대로 자신의 가슴팍에 박아넣었다.
베일의 심장에 박힌 뿔에서 검붉은빛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다시 신이 되어, 너희를 심판하겠다.”
베일의 심장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팽창하기 시작한 마나.
“크윽……!”
에너지가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그 여파로 인해 세인도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꺄악!”
“아델라!”
지순찬이 아델라의 앞에 자리 잡고 팔각문을 최대 출력으로 펼쳤다.
“스텔라 양도 이쪽으로……!”
스텔라도 곧바로 지순찬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콰아아아앙-!
직후, 막대한 에너지가 지순찬의 팔각문을 덮쳤다.
엄청난 힘이다.
‘너무 강해. 못 버티겠어……!’
단순히 힘의 잔상일 뿐인데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대체 저 힘은 뭐란 말인가.
지순찬이 입술을 꽉 짓씹고 팔각문에 한층 더 힘을 집중시켰다.
“기뻐하거라. 인간들이여.”
그러나 그런 지순찬의 노력은 곧바로 수포로 돌아갔다.
“너희들의 신이 돌아왔노니.”
안 그래도 강력했던 에너지가 한층 더 강해진 것이다.
“끕……!”
얼마나 입술을 꽉 깨물었는지, 지순찬의 입술에서 핏줄기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팔각문을 지지하고 있는 양팔이 바들바들 떨린다.
이제 정말 못 버틴다.
‘무너진……!’
그렇게 팔각문이 파괴되기 시작한 바로 그때.
“지원할게요.”
세인이 지순찬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지순찬과 손을 포개, 지순찬의 마법을 보조한다.
‘이건……소피아 님의……?’
소피아 아네체프리 특유의 마나 유동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소피아가 제격이라 판단하고 세인과 주체를 바꾼 것이리라.
쿠구구구구구궁-!
소피아의 도움 덕에 한층 더 견고해진 팔각문.
베일이 쏘아내는 에너지와 격돌하며 삐걱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지순찬과 소피아가 힘을 합쳤음에도, 버티는 게 고작이다.
‘힘의 잔상만으로 이 정도 위력이라니.’
그렇게 소피아가 베일의 힘에 경악하고 있던 바로 그때.
“갈채하라. 찬양하라. 경배하라.”
에너지가 돌연 반전했다.
이 세상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듯이, 흩어져 나가던 에너지가 그대로 반전해, 베일에게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저 힘을…… 전부 흡수할 수 있다는 거야?’
소피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만약 저 힘을 모두 온전히 흡수하는 게 가능하다면.
베일이 저 힘을 모두 흡수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길 수 없어.’
저건 사람이 아니다.
인지의 영역을 벗어난 괴물이다.
사람이 제 얼마나 힘을 합친다고 한들 이길 수 없다.
스으으으…….
돌연 모든 게 멈췄다.
마치 죽기 직전에 주마등을 보는 것처럼.
세계가 완전히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신의 귀환이다.”
베일 스톨.
아니.
인신(人神).
그가 가슴에 박힌 뿔을 어루만지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 * *
베일이 심장에 박아넣은 뿔은 신물의 일종이다.
만여 년 전에 손에 넣은 신화시대의 신물.
막대한 힘을 품고 있지만, 그 힘의 근간을 알 수 없기에 지금껏 사용하길 꺼리고 있었다.
“……흠. 몸에 이상은 없나.”
무작정 사용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때문에 과거 베일은 이 뿔을 엄중히 봉인해 두었다.
나중에라도, 상황이 많이 불리해질 경우에 비장의 한 수로 사용하고자, 혹여라도 레이에게 넘어갈 일이 없도록 엄중하게 봉인을 실시했다.
어차피 저런 뿔을 이용하지 않아도 이기는 건 자신이 될 거라 확신했기에.
레이가 울며 겨자 먹기로 뿔의 힘을 이용할 것만을 경계해, 봉인할 것을 택했었다.
“기분 좋군. 지금껏 왜 사용하지 않았나 후회가 될 정도로.”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이렇게 아무런 부작용도 없는 힘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때 바로 흡수했을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싸움이 길어질 일도 없었을 텐데.
후회스럽다.
“아무래도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해야 할 것 같군.”
베일이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며 세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감사하지. 네 덕에 나는 다시 신이 되었다.”
아까 전의 비아냥과는 다른, 진짜 감사 인사였다.
뿔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준 세인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있다.
“보답으로 네게 한 가지 좋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쥐었다, 폈다 반복하던 손을 그대로 꽈악 쥐고, 다시 천천히 펼친다.
그리곤 세인에게 그대로 손을 내민다.
“세인 비노슈. 내 것이 돼라.”
“…….”
지순찬의 팔각문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건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너를 죽이고자 한 이유는 네가 지닌 바이테너식에 깃들어 있는 신력을 흡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베일의 목적은 다시 신으로 되돌아가는 것.
스스로의 기억과 인격을 지닌 채, 다시 인신의 힘을 얻는 것이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레이와 싸운 것이다.
다시 신이 되기 위해선 레이가 지닌 신력을 빼앗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이미 신이 됐다. 이 뿔에 담긴 신력을 흡수하는 것으로 내 목적을 이루었다.”
베일이 환희에 찬 표정으로 웃었다.
“나는 온전한 나라는 개체로서, 신의 자리에 복귀하였다. 지금의 내게 네가 지닌 쥐꼬리만 한 신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베일은 이미 목적을 이뤘다.
바이테너식에 깃들어 있는 신력을 빼앗을 이유가 없다.
즉, 세인을 죽일 이유가 사라졌다.
“만약 네가 나의 것이 된다고 약속하고, 영혼을 바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그 힘도 그대로 보존시켜 줄 것을 약속하지.”
만약 상대가 레이였다면, 무조건 죽였을 것이다.
필요가 없고 있고를 떠나, 레이 같은 얄미운 남자를 살려 둘 이유가 없다.
“기뻐하거라. 내가 널 인정한 것이니.”
하지만 세인은 다르다.
세인 비노슈도 얄밉지 않은 건 아니나, 레이와는 얄미움의 방향성이 조금 다르다.
레이 같은 꼴보기도 싫은 얄미움이 아니라, 보고 있으면 은근히 즐거운 얄미움이라고 해야 할까.
곁에 두고 있으면 썩 즐거울 것 같았다.
“물론 살려주는 건 너뿐이다. 다른 놈들은 이 자리에서 모두 지울 것이다. 과거의 불순물을 그대로 남겨 둘 만큼, 나는 성격이 좋지 못해. 모두 하나부터 다시 만들 것이다. 예외는 없다.”
세계를 초기화시키고, 그 후에 다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든다.
그게 지금 베일이 새롭게 세운 목적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모두 지워야 한다.
예외는 세인 비노슈 하나면 족하다. 다른 예외는 인정할 수 없다.
“무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네 동료들 모두 지금 네가 알고 있는 성격 그대로 재현해 줄 테니. 죽는 건 일순간일 뿐이다.”
베일이 세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거절은 불가하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둘 사이의 거리는 10미터 까지 줄어들었다.
“네가 거절하든 말든, 나는 네 영혼을 취할 것이다. 네 영혼을 취하고, 내게 복종하게 만든 뒤, 멸망하는 세계와 새로 탄생하는 세계를 지켜보게 할 것이야.”
죽어가는 세계를 보며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새 세계의 탄생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또, 얼마나 매력적일까.
새 세계에 아무런 죄가 없다는 걸 알면서, 원래 세계의 멸망을 담보로 탄생한 세계이기에 마냥 좋게 볼 수 없는.
그런 괴리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번민하는 모습은 필히 한 폭의 그림 같을 테지.
그 모습은 지켜보기에 충분한 가치가 존재한다.
“너는 내 것이다.”
베일이 세인의 코앞에 섰다.
“……흑마법사란 놈들은 왜 하나같이 나한테 사랑 고백을 하는 거지?”
세인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답했다.
“바퀴벌레한테 고백을 받은 기분이야. 아주 기분이 나빠.”
세인은 과거, 흑마도왕한테도 저런 비슷한 제안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의 일이 오버랩되며, 한층 더 기분이 언짢아졌다.
“역시 거절하는가.”
그런 세인을 보며 베일이 작게 웃음을 지었다.
“너답군.”
베일의 표정이 살벌하게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강제로 취하겠다.”
베일이 세인에게 손을 뻗었다.
이대로 세인의 영혼을 취해, 강제로 복종하도록 만들 것이다.
“내가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베일이 움직임과 거의 동시에 세인도 움직임을 개시했다.
검을 뽑아, 그대로 베일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지금 네 힘으론 내 옷깃조차 건들 수 없다.”
베일이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세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다른 간부들의 눈을 통해 확인했다.
흑마법을 멈추는 묘한 기술을 사용해서 어떻게든 간부들을 쓰러트리긴 했지만, 그뿐이다.
검 실력엔 확실히 문제가 있다.
아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걸 테지.
“보아라.”
세인의 검은 베일의 목에 막혀,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세인의 검은 베일의 피부에 생채기도 입히지 못했다.
“네게 희망은 없다. 포기해라.”
베일이 목에 느껴지는 검의 감촉을 느끼며, 여유롭게 손을 뻗었다.
“너무 방심하는 거 아닌가?”
세인이 검으로 베일의 목을 후려치면서 말했다.
“방심할 수밖에. 이토록 힘의 차이가 역력하니.”
베일이 여유롭게 답했다.
세인의 머리에 손이 닿기까지 앞으로 1cm.
이제 곧 세인의 영혼이 손에 들어온다.
베일이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손에 신경을 집중했다.
“감사한다. 오만한 신.”
그때, 세인이 씨익 웃었다.
“네 방심 덕분에,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순간, 세인의 검에 깃든 마나가 팽창했다.
방금 전까지의 나약한 마나와는 차원이 다른 고강한 마나.
이전, 헤킬과 사빈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검기가 검에 깃들었다.
서걱-!
세인의 검이 그대로 베일의 목을 베었다.
베일의 목이 신체와 분리되어 하늘을 날았다.
“탓할 거라면 흑언까지 풀어버린 네 오만방자함을 탓하도록.”
세인의 몸을 억제하던 흑마법의 금제, 흑언.
세인은 방금 전에 그 족쇄에서 해방되었다.
부작용을 극복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되찾았다.
‘흑언을 풀어?’
베일이 그건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