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75)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75화(75/466)
다음날 아침.
로비에 모인 우리는 간단하게 조식을 먹은 후, 곧바로 현지 적응 훈련을 진행했다.
“환경이 달라진 만큼, 무리한 훈련은 안 할 겁니다. 다들 뭐 몸에 이상이 느껴진다 싶으면 바로바로 말하세요.”
몸이 시차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가볍게 신체 단련을 하고, 현지 마나 농도에 적응하도록 마나 순환을 실시했다.
“간단하게 몸이랑 서클도 풀었겠다. 남은 시간은 아티팩트 적응 훈련을 하겠습니다.”
이 두 훈련을 끝낸 후에 아직까지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대회용 아티팩트의 숙달을 위한 훈련에 몰두했다.
“그럼 다음은…….”
그렇게 차례차례 적응 훈련을 진행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오후 6시 반.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 됐다.
“다들 고생많으셨습니다. 하나도 안 힘드셨죠?”
“안 힘들었으~”
“힘들긴커녕 안락했다, 야.”
선배들이 편안하다는 얼굴로 허허 웃었다.
얼굴이 아주 뽀송뽀송하다.
한국에선 이 시간쯤엔 땀에 쩔어 죽어가고 그랬는데.
“앞으로 경기가 시작될 때까진 이런 가벼운 훈련만 할 예정입니다. 내일부턴 그마저도 반으로 줄일 거고요.”
“훈련이 반으로 줄면, 남은 시간엔 뭐하게?”
“뭘 하긴요. 작전 회의해야죠. 한국에선 일정이 늦춰지는 바람에 못 했잖아요.”
“아. 맞네.”
백령도 사건의 여파로 작전 회의는 하지도 못 했다.
“하는 김에 시뮬레이션 훈련도 할 예정입니다.”
“오오.”
내가 구상해 온 정보를 토대로 올림피아드 경기를 구현한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이를 모두에게 학습시킴으로서 실수를 최대한 제거하고, 작전의 요지를 100% 이해시킬 생각이다.
“그리고 8시부터 10시 반까지는 자유 시간입니다. 물론 훈련처럼 몸에 부담이 가는 건 모두 금지입니다. 뭐, 이 자유 시간에 대해선 따로 설명 안 하겠습니다. 다들 어떻게 쉬셔야 하는지 아시죠?”
선배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OK사인을 보냈다.
뭐, 이런 컨디션 관리 측면에선 다들 생각하는 바가 있을 테니 어련히 잘 할 거다.
“뭐, 추가로 공지할 게 더 있긴 합니다만. 다들 배가 고프실 테니, 나중에 단톡을 통해 공지하겠습니다.”
“오오!”
선배들의 눈이 빛났다.
우리가 묵는 호텔은 시설만큼이나 식사도 맛있어서, 다들 이 시간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럼 해산하겠습니다. 내일 아침 9시에 뵙겠습니다.”
“수고!”
“내일 보자!”
“밥 먹으러 가즈아!”
선배들이 후다닥 식당 쪽으로 달려갔다. 다른 건 참 어른스러운데, 이런 면은 참 학생답다.
“우리도 가자.”
순찬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 뒤로 아델라가 따랐다.
“어. 가자.”
그렇게 식당 쪽으로 이동하려는 와중.
“신하율 님.”
정수아가 다가왔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인다.
“적색 마탑 방문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오.”
“와.”
나와 아델라가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언젠가요?”
“방문일은 내일. 시간은 오후 2시 반입니다. 여기서 1시에는 출발해야 할 것 같으니, 점심을 최대한 빨리 먹고 준비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함께 와도 된다고 하셨으니, 다른 분들에게도 공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 말은 모두 했다는 듯, 정수아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몸을 돌려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떠나가는 뒷모습조차 아주 쿨하다.
“적색 마탑이라……. 벌써부터 기대되네.”
“네. 저도요.”
현존하는 12개의 마탑 중에서도 가장 넓고 시설이 좋다고 알려진 적색 마탑.
그 안은 과연 어떤 이상향이 펼쳐져 있을까.
* * *
그날 오후 10시.
모두가 각자의 방에서 쉬며, 컨디션 조절에 힘쓰고 있을 시간.
나는 잠시 산책을 나왔다.
‘여기도 매일매일 관리하시는 건가?’
호텔 부지 내에 존재하는 정원.
정원사가 잘 다듬어 놓은 화단과 수목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있다.
잘린 나뭇가지의 단면부를 보니, 당장 오늘 아침에 잘린 듯하다. 우리가 왔다고 신경 써서 관리를 한 건지. 아니면 매일 하는 건지.
매일 하는 거라면 참 힘들겠다.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 감탄하기는커녕 나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만 잔뜩 하고 있었다.
나도 참 풍류가 없는 성격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정원의 중심에 준비되어 있는 정자에 도착하자, 예상 밖의 선객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아델라.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자기 전에 산책이라도 하고 있던 건지. 잠옷 위에 겉옷만 걸친 상태로 정자에 앉아 있다.
“뭐 고민이라도 있어?”
아델라의 옆에 걸터앉아 넌지시 물었다.
“아뇨. 고민이랄 게 있나요.”
아델라가 내게 힐끔 시선을 돌리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호텔 인근에 별다른 주거지가 없어, 빛이 없기 때문일까.
별빛이 유독 환하게 비춘다.
“고민 있잖아.”
아델라는 고민이 있을 때 산책을 하는 습관이 있다.
뭐가 잘 안 풀려서 기분 전환삼아 산책을 할 때도 있긴 한데.
오늘처럼 조용힌 밤거리를 걸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면 100% 고민이 있는 거다.
“…….”
아델라가 다소 센티한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말해 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중요한 경기가 일주일도 채 안 남았는데. 우리 팀의 주요 전력인 아델라가 괜히 고민에 잠겨서 본래의 힘을 100% 발휘하지 못 해서야 쓰겠는가.
그게 아니더라도, 친구로서 친구의 고민 정도는 들어주고 싶다.
“……정말 별거 아니에요.”
아델라가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봐도 별거 있는 표정이다.
“뭔데? 마법적으로 뭐 문제 있어? 아니면 좀 불편한 선배가 있다던가?”
“아뇨. 그런 건 전혀 아니구요.”
아델라가 손사레를 치며 부정했다. 확실히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아니면 뭐, 순찬이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보니까, 조바심이 난다거나 그런 거야?”
요즘 순찬이의 상승세는 어마무시하다. 그런 만큼 아델라도 조급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요? 친구가 성장하는 데 왜 조바심이 나요?”
아델라가 내 말을 아예 이해하지도 못 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됐어.”
얘한텐 질투라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질투에 갈 능력치까지 모두 마법으로 가서 그런가?
“그럼 대체 뭔데?”
마법에 대한 고민도 아니고.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아니고. 그럼 대체 뭘까.
“……안 웃으실 거죠?”
아델라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안 웃어. 내가 사람의 진지한 고민을 듣고 웃을 사람으로 보여?”
“…….”
아델라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두 눈동자에 묘한 처량함과 절망감이 엿보인다.
확실히 뭔가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 믿고 말할게요.”
“어. 말해 봐.”
나는 진지한 얼굴로 아델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거 아세요? 미국에는요…….”
아델라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바나나 우유가 없대요.”
“……뭐?”
순간 벙쪘다.
내가 뭘 들은 거지?
“뭐가 없다고?”
혹시 잘못 들은 건가?
“바나나 우유요.”
“…….”
잘 들은 거 맞네.
“어쩌면 좋죠? 그게 없으면…….”
“크흡.”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아델라.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 안 웃으신다고 하셨잖아요!”
아델라가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저는 진지하다고요. 그게 없으면 마법 활용력이 14.7% 정도 줄어들어요.”
“……아, 그, 크흠. 그래?”
나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답했다. 굳이 15%도 아니고 14.7%인 게 웃음 포인트였다.
아델라의 표정이 한층 더 뾰로통해 졌다.
“됐어요. 저 갈 거예요.”
아델라가 삐진 듯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너무 예상치 못한 고민이었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
아델라가 치뜬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난 이렇게 심각한데, 웃음이 나와요?’라는 표정이다.
“아니. 잘 들어 봐. 일단 아델라. 미국에도 바나나 우유 팔아.”
“……네?”
아델라가 눈을 부릅떴다.
한껏 확장된 동공이 파르르 떨린다.
“파, 팔아요?”
“어. 미국에도 한인마켓이란 데가 있어서, 거기 가면 어지간한 건 다 있어.”
아델라가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말을 잃었다. 그러다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나나 우유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안도한 것이다.
“아.”
그러나 안도도 잠시.
아델라의 표정은 곧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희윤 언니……!”
딱 보니, 아델라에게 미국에 바나나 우유가 없다고 말한 건 진희윤 선배인 모양이다.
아델라가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짓씹고는 몸을 돌렸다.
“……저, 먼저 가 볼게요.”
“어. 들어가.”
귀까지 시뻘게진 아델라가 거친 발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아마 진희윤 선배의 방으로 가는 거겠지.
“큭큭.”
아델라의 허당스러운 모습에 다시금 웃음이 나왔다.
간만에 실컷 웃었네.
* * *
다음날 점심.
우리는 예정된 시간에 적색 마탑에 도착했다.
“와…….”
“뭐야 여기.”
적색 마탑 내부에 들어서자, 일행의 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뭐야 여기. 우주선이야?”
“이게 적색 마탑이구나……. 대박이네.”
최첨단 시설도 시설인데, 인테리어부터가 독보적이다.
마치 SF영화 속에 직접 들어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다들 감탄하는 것도 당연하다.
나도 엄청 놀라고 있는데 뭐.
“그럼 잠시 대기해 주시길. 가서 방문 서류를 작성하고 오겠습니다.”
“네.”
정수아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방문자 서류 작성용 컴퓨터로 향했다.
참고로 적색 마탑 로비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있는 건 10대의 컴퓨터와 안내 AI 로봇 뿐.
누가 인공지능 마도학 최고 권위자를 마탑주로 두고 있는 시설 아니랄까 봐, 모든 게 다 자동화되어 있다.
“지수야. 언니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런 장난 안 할게.”
그렇게 주위 전경을 관찰하고 있다 보니, 문득 아델라와 진희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만 봐 주라. 응? 언니가 잘못했어.”
“선배님께서 잘못하신 게 있나요. 다 제가 진지한 잘못이죠.”
아델라의 표정이 아주 차갑다.
하물며 호칭도 언니가 아니라 선배. 아주 삐져도 단단히 삐진 것 같다.
“……둘이 왜 저래?”
순찬이가 슬쩍 내게 다가와 속삭이듯이 물었다.
“희윤 선배가 아델라한테 장난을 좀 쳤나 봐.”
“장난? 아델라가 고작 장난으로 저런다고?”
순찬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바나나 우유라도 뺏어 먹으셨나?”
“음. 그것보다 더한 짓을 하셨더라고.”
“오우야…….”
순찬이가 순간 몸을 떨었다.
“오늘 저 둘한텐 가까이 가지 말아야겠다. 괜히 스플뎀 받을라.”
순찬이가 그렇게 몸을 떨며 아델라와 진희윤에게서 시선을 뗐다.
나도 마지막으로 진희윤이 아델라에게 애교부리는 모습을 힐끔 바라본 뒤, 완전히 관심을 껐다.
괜히 휘말리면 골치 아프다.
“그나저나 여기 인테리어 진짜 미쳤다. 최첨단 수준이 아니네.”
“요즘은 마법의 기계화, 자동화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계시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이런 인테리어가 됐다나.”
“그래서 이렇게 메카메카 하구나.”
“그치.”
순찬이의 말마따나 아주 기계틱하다.
“근데 이제 와서 묻는 것도 웃긴 말이긴 한데. 지금 이 타이밍에 여기와도 되는 거야?”
“왜?”
“아니, 여기 달리아 살렌티아의 본거지잖아.”
달리아 살렌티아.
미국팀에 소속되어 있는 5서클 유저로, 적색 마탑의 차기 마탑주로 명성이 자자하다.
즉, 여기는 따지고 보면 적진이라는 말이다.
“뭐 어때. 우리가 여기서 마법을 쓸 것도 아니고. 단순한 견학인데.”
“하기야. 별로 상관없기야 하겠다.”
순찬이가 금세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참 재미있는 구도가 됐네.”
“뭐가?”
“이번 올림피아드. 사실상 세 마탑의 대리 전쟁처럼 돼 버렸잖아.”
카일 벤티아를 차기 마탑주 후보로 두고 있는 녹색 마탑.
달리아 살렌티아를 차기 마탑주 후보로 두고 있는 적색 마탑.
그리고 청색 마탑의 대대적인 후원을 받고 있는 나.
순찬이 말처럼 이번 올림피아드는 청, 녹, 적의 삼파전 체제가 되었다.
“이거, 마탑주님들끼리 내기라도 하고 그러시는 거 아냐?”
“글쎄. 김강인 님께서 내기 같은 걸 할 거라곤 생각이 안 드는데?”
“음. 그런가? 하긴.”
그때였다.
“세 분 다. 이미 내기 거셨어.”
입구가 마치 아이언맨 변신하는 것처럼 요란하게 열리더니.
그 안에서 한 여성이 나왔다.
나와 동년배로 보이는 붉은 장발의 여성.
“덕분에 지금 실시간으로 갈굼 받고 오는 중이야. 못 이기면 가만 안 두시겠대.”
마치 정열을 전신에 두른 것 같은 분위기의 여성
“제자한테 너무하시지? 청색 마탑주님도 제자한테 막대하고 그래?”
달리아 살렌티아.
그녀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와 함께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