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83)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83화(83/466)
“오랜만이야 친구. 정확히 183시간하고도 47분 34초만이네.”
카일 벤티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 시간이 맞는진 모르겠는데. 오랜만이긴 하네.”
대충 7~8일 만이니까, 맞긴 한 거 같은데.
“정확할 거야. 너랑 만난 뒤로, 하루도 널 잊어 본 적이 없거든.”
날 바라보는 카일의 눈빛이 한층 더 강렬하게 빛났다.
전의와 호승심으로 활활 타오르는 찬연한 눈동자였다.
“내가 대전을 거부했다고 마음에 담아 둔 건 아니고?”
“어……. 그런 이유가 없진 않지.”
카일이 하하 웃으면서 솔직하게 긍정했다. 솔직함이 기사의 미덕이라고 했던가.
그 말에 걸맞게 굉장히 솔직한 성격인 듯하다.
“인사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카일이 허리춤에서 검을 천천히 뽑아, 그대로 자세를 잡았다.
속도 중시형 세검.
돌풍의 기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검을 내게 내밀었다.
“더는 못 참겠어. 싸우자.”
카일 벤티아.
강자와의 대련을 그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전투광.
그가 강렬한 미소를 지었다.
휘이이이잉-!
동시에 바람이 불었다.
카일의 신체를 감싸듯이 부는 바람. 그것이 카일의 전신과 검을 코팅하듯이 응집되었다.
그 이명에 걸맞게, 돌풍을 갑옷처럼 입은 듯한 기사의 모습이 되었다.
‘저게 풍신(風神)이구나.’
풍신.
말 그대로 바람의 신.
녹색 마탑에 전해지는 일인 직계 비전 마법으로, 현재 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민가연과 카일 벤티아 둘 밖에 없다.
효과는 바람의 코팅을 통한 가속화.
저 마법을 사용해 속도로서 상대를 번롱하는 것이 카일 벤티아의 주된 전투 스타일이다.
“내게 6서클의 벽을 느끼게 해 줘.”
카일이 이보다 즐거울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세를 낮췄다.
지금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 들 것 같은 자세.
나도 곧바로 인피니티 서클을 회전시키며 반격을 준비했다.
“…….”
“…….”
찰나의 눈 맞춤.
“간다.”
고요한 세상 속에서 카일의 목소리만이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카일의 신체를 감싸고 있는 돌풍이 한층 더 높은 밀도로 응집되었다.
‘온다.’
그렇게 실감하고 생각한 직후.
“……!”
카일은 어느새 내 코앞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너무 빠르다.
나는 곧바로 실드를 사용해 카일의 검을 막았다.
카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전력을 다한 실드이기에 깨지는 일은 없었지만, 충격은 고스란히 남아 내 실드를 흔들었다.
“이걸 초견에 이렇게 깔끔하게 막은 건 네가 처음이야.”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간 카일이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이게 그 유명한 풍격이야?”
“맞아. 역시 아는구나.”
풍신검(風神劍) 제 1형.
풍격.
돌풍을 검에 집중시키는 것으로 검격의 위력과 속도를 대폭 증가시키는 검법.
녹색 마탑주 이전 세대의 마탑주가 창시한 검법이라고 들었다.
‘그나저나, 방금 그 일격…… 제대로 안 보였어.’
나는 방금 전 카일의 모습을 완전히 놓쳤다.
카일의 풍격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빠르고 예리했다.
‘역시 사전에 준비해 온 카일 벤티아의 데이터 분석값은 크게 쓸모가 없을 것 같네.’
카일 벤티아의 정보는 3달 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집한 것들이다.
누가 천재 아니랄까 봐 3달 사이에 상당한 진화를 이룬 모양이다.
‘뭐, 그럴 것 같아서 내가 1:1로 카일을 마킹한다는 전략을 들고 나온 거긴 하지만.’
현재 카일을 마킹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팀에 나뿐이다.
“이번엔 연속으로 간다!”
카아아아아아앙-!
카일이 다시 몸을 날렸다.
아까와 똑같은 속도의 신속 베기였지만, 이번엔 그 검격의 궤도와 카일의 신영을 놓치지 않았다.
마나를 품은 것들은 그 무엇이든 간에 내 눈을 피할 수 없다.
‘신안(神眼).’
내 시야가 변했다.
제 6감이 활성화되어, 시각만으론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나의 흐름이 보인다.
마나가 내게 자신의 행선지를 알려주는 듯했다.
‘목, 오른팔, 오른쪽 대퇴부, 복부, 그리고 등.’
검이 물을 벨 수 없듯이.
내 몸은 물처럼 부드럽게 움직여 카일의 검을 완전히 피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다섯 번째 베기를 끝내고 다소 무방비해진 카일에게 가볍게 플레어 볼을 선물했다.
플레어 볼은 카일에게 완벽하게 적중하였다.
그러나.
“와우. 이걸 다 피해? 너, 진짜 대단하구나!”
카일은 멀쩡했다.
플레어 볼은 카일이 몸에 두르고 있는 돌풍의 갑주, 풍신을 뚫지 못 했다.
3서클 마법 정도론 카일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근데……. 플레어 볼은 나를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카일이 다소 자존심이 상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반격의 기회를 잡았음에도 플레어 볼 수준의 마법을 사용한 게 아주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다.
“글쎄. 널 얕본 적은 단 한번도 없는데.”
나는 적당히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카일을 얕봤다면 이렇게 내가 직접 움직이지도 않았겠지.
“그렇다면 전력으로 덤벼. 이탈리아 팀들에게 했던 것처럼. 압도적인 파워로!”
카일이 광소했다.
진짜 전투에 미친놈다운 웃음이었다. 솔직히 조금 무서울 정도.
“글쎄.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나를 상대론 전력을 다할 필요도 없다. 이런 말이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야수가 으르렁댔다. 당장이라도 날 찢어발기겠다는 듯 험악한 기세가 일렁인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는 조금 전 회피 기동 중, 빠져 버린 인이어를 다시 귀에 꽂았다.
“이번 경기는 1:1이 아니라, 5:5 공성전. 굳이 널 쓰러트릴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저쪽 본대만 쓰러트리면 끝나는 거니까.”
이건 공성전.
상대를 쓰러트리는 게 아니라 상대 진지를 점령하는 게 승리 조건인 경기다.
카일이라는 거대 전력을 굳이 용써가며 쓰러트릴 이유가 없다.
“……우리 애들을 그렇게 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어. 생각해.”
지직 거리던 인이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적군 3인 지정된 위치까지 유인 성공!
순찬이의 밝은 목소리.
작전 성공에 기뻐하는 환호성이었다.
“3:3은 모르겠지만, 3:4 아니, 3:5라면 무조건 우리가 이길 테니까.”
“3:5……?”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찡그리는 카일을 보며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48-77! 33-123!
그 순간, 인이어에서 순찬이의 목소리. 작전 지시가 들렸다.
과거 선배님들과 붙었을 때 사용했던 전술.
‘마법 고정을 통한 원거리 마법 지원.’
그 전술이 먼 미국 땅에서 다시 한번 펼쳐졌다.
“……뭐?”
카일 벤티아가 인이어에 손을 얹고 눈을 부릅떴다.
아마도 인이어 너머의 누군가에게 내 마법에 대한 정보를 들은 거겠지.
영국팀의 면면을 보면 십중팔구 마이아의 무전이겠지.
“신하율은 분명히 내 앞에 있는데…….”
대충 예상하자면 ‘카일! 신하율 제대로 묶고 있는 거 맞아!? 여기에 신하율의 마법이……!’ 정도가 되려나.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카일이 날 노려봤다.
나는 그런 카일을 바라보며 한층 짙은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짓.”
카일의 표정이 한층 더 구겨졌다.
* * *
VVIP관객석.
녹색 마탑주 민가연은 현재 코가 막히고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 상태였다.
“……뭐야 저게.”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기는 영국팀의 패배로 끝났다.
카일을 제외한 팀원이 모두 리타이어 되어, 그대로 진지를 점령당하고 끝.
압도적인 패배였다.
카일은 제대로 된 힘 한번 써 보지 못했다.
너무 일방적인 경기라 아쉽지도, 분하지도 않다.
현재 민가연의 어이가 가출한 이유는 영국팀이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다.
“강인아. 쟤 지금 무슨 마법을 쓴 거야? 어떻게 저 위치에서 저기까지 마법을 쏘는 건데?”
신하율이 사용한 마법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
2km는 떨어져 있는 위치에서 저렇게까지 정확하게 마법을 사용해 지원을 하다니.
저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러게요.”
놀란 건 김강인도 마찬가지였다. 김강인도 신하율이 저런 식으로 마법을 쓰는 건 처음 본다.
신하율은 대체 어떤 식으로 저런 초 장거리에서 마법을 사용한 것일까.
“저도 추후 영상 분석을 해 봐야 알 것 같네요.”
홍옥의 눈으로 현장을 직접 봤다면 뭔가를 알아 챌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이번엔 모니터 너머로 경기를 관전했다.
신하율이 한 행위가 어떠한 것인지, 지금 당장은 알 방도가 없다.
“너도 모른단 말이지…….”
민가연이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했다.
“적색 마탑주. 너는 뭐 눈치챈 거 없어?”
민가연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적색 마탑주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물론 없지.”
적색 마탑주가 상쾌하게 웃으면서 모른다고 답했다.
민가연이 ‘그럼 그렇지.’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법에 대한 건 모르겠고. 신하율 저놈의 뱃속에 구렁이가 수천 마리는 들어 있을 거라는 건 알겠어.”
그것도 천년 묵은 구렁이가.
라고 덧붙이며 적색 마탑주가 손으로 구렁이 묘사를 했다.
“퍼포먼스와 이탈리아팀과의 첫 경기를 이용해 상대팀에게 신하율이 6서클 유저라는 의심을 품게 하고. 그 의심을 통해 카일을 다소 먼 거리까지 유인. 상대팀의 최대 전력을 본진 밖으로 끌어낸 후에, 정작 신하율 본인은 초 장거리 마법을 통해 본진을 지원. 이게 진짜 18살짜리 머리에서 나온 전략이고, 18살짜리 핏덩이가 실현한 작전이라고?”
제임스가 자기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심지어 카일이랑 제대로 붙지 않은 것으로 자신이 진짜 6서클 유저가 아니라는 진실까지 완전히 감췄어.”
만약 신하율이 카일과 진심으로 싸웠다면, 카일이 신하율의 6서클이 아니라는 걸 단박에 눈치 챘을 것이다.
신하율은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쓴 듯, 카일을 상대로 ‘나 설렁설렁 싸우고 있어요.’라는 뉘앙스를 계속해서 보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다.
영국팀은 패배를 통해 그 무엇도 얻지 못 했다.
영국팀에게 신하율은 여전히 6서클 유저이고, 가늠할 수 없는 위협이다.
“……이거, 달리아도 많이 위험하겠는데.”
제임스가 끄응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게. 너네 사라도 우리 마이아랑 성향이 상당히 비슷하니까, 우리랑 똑같은 계획을 짜 뒀을 텐데. 어쩌려나.”
민가연이 짜증 반, 고소함 반의 표정으로 제임스에게 말했다.
짜증은 신하율에게 패배한 것으로 인한 감정이었고.
고소함은 제임스도 똑같이 당할 걸 생각했기에 나온 감정이었다.
“우리 애들이니까, 어련히 마땅한 전략을 구상해 내겠다만…….”
현재 판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모든 승리의 무게추가 한국 쪽으로 기울어 있다.
“제임스. 말했지만, 내가 오늘 말한 건 대외비야.”
“알아! 내가 마나에 맹세를 하고도 그걸 어기겠냐? 달리아한텐 말 안 해.”
제임스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릴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통탄스러웠다.
“에휴. 우리 애들이 어떻게든 해 주길 바라야지…….”
제임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모니터 너머, 8강 마지막 경기를 치르러 모습을 드러낸 미국팀을 바라봤다.
* * *
그날 밤.
우리는 오늘 세 차례에 걸친 소모를 회복하기 위해, 곧바로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마 다들 자신의 방에서 수면을 취하거나, 전문 컨디션 관리사에게 케어를 받고 있거나 할 테지.
“뭐, 요약하자면 순조롭다. 이거네.”
“그치. 지금까진 이 이상 없을 만큼 순조로워.”
나도 미미르의 서에서 책을 읽으며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다.
원래라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이런 피로감이 쌓이는 행위는 금물이지만, 나한텐 관계없는 얘기다.
나에겐 상시 베스트 컨디션 유지라는 사기적인 효과를 지닌 ‘레이 벨 바이테너의 로브’가 있으니까.
스승님의 로브 만만세다.
“문제는 카일을 상대하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울 것 같다는 거야.”
“그 전투에 미친 또라이가 그렇게 강해?”
“그야 5서클이니까 강하지.”
“그래도 지금의 계승자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아? 4서클 마스터면 5서클의 출력은 가뿐히 낼 텐데.”
4서클 마스터 격 경지인 융화 또한 확장의 고리처럼 극적인 효과는 없다.
그저 모든 고리를 통합하는 것으로 전체적인 스테이터스를 끌어올려 주는 패시브적인 효과만 있을 뿐.
이 효과에 의해 현재 내 마법의 출력은 5서클에 준한다.
공진을 사용하면 5서클과 6서클의 중간 같은 묘한 위력의 마법을 쓸 수 있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상성이 안 좋아.”
“상성?”
“어. 카일은 속도 중시형 근접전 타입이잖아. 거기에 풍신이란 상시 유지형 방어막을 두르고 있고.”
속도 중시형.
근접전 타입.
여기에 단단한 갑주까지.
자유로운 마법을 통한 마법전이 특기인 내겐 가히 최악의 상대라 할 수 있겠다.
“그래도 공진을 쓰면 압도하지 않나?”
“공진을 쓰면 이기지.”
공진을 쓰면 이긴다.
이건 확실하다.
“문제는 상대가 카일만이 아니라는 거야.”
“아. 달리아 살렌티아도 있구나.”
하지만 공진은 만능이 아니다.
달리아와 카일 두 명과 연달아 붙게 될 경우, 둘 중 한명을 상대할 땐 공진 없이 싸워야 한다.
그래도 내가 유리하긴 하겠지만, 가능하다면 이 일말의 변수조차 없애고 싶다.
“요컨대 또 그놈의 완벽 대비 증후군이 발병하셨다~ 이거구만.”
미미르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완벽 대비 증후군?”
“어. 매사에 철저하게 준비를 안 해 두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병. 대체로 신하율이란 인물에게 발병하는 병이지.”
미미르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뭔가 말에 뼈가 있는 듯한데, 착각이겠지.
“뭐, 좋아. 그렇게 매사에 진취적인 건 좋은 거니까.”
미미르가 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근처의 서재에서 적당한 책을 한 권 꺼내 내게 건넸다.
“다 읽었지? 자. 여기 다음 책.”
내가 현재 읽고 있는 책의 남은 페이지가 얼마 안 되는 걸 보고, 새로운 책을 미리 꺼내 와 준 것이다.
“땡큐.”
미미르의 배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나는 다 읽은 책을 덮었다.
“어때? 좀 이해가 돼?”
“어. 조금은.”
나는 조금 전 읽던 책의 겉면을 어루만지며, 표지를 다시 확인했다.
[다섯 번째 인피니티 서클, 진리의 고리]“되게 재미있는 고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