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Mythical Archmage RAW novel - Chapter (96)
신화 속 대마법사의 재림-96화(96/466)
경기장을 청염과 돌풍이 가득 채웠다.
달리아 살렌티아가 다루는 청염.
카일 벤티아가 다루는 돌풍.
그리고 신하율이 다루는 청염과 돌풍의 융합체.
세 명의 마법이 격돌하며 사방에 마나의 잔해가 흩날렸다.
화염이 이글거리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카아아아앙-!
그 사이로 무언가가 물리적으로 격돌하는 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카일의 세검과 신하율의 주먹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너, 정말 강하구나!”
카일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일단 뒤로 물러나서 소리쳤다.
조금 전까지 만해도, 말끔했던 카일의 신체와 제복은 그을리고, 베어져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물론 경기장의 보호 설정 덕분에 상처는 그리 깊지 않다.
“카일. 넌 뭐가 그렇게 좋다고 그렇게 신나있어……!”
옆에서 청염을 두르고 있는 달리아가 변태를 보듯이 카일을 째려봤다.
카일보다는 낫지만, 마찬가지로 피부와 옷가지가 그을려서 엉망이다.
“좋지. 얼마나 좋아?”
카일이 자신의 세검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짐승처럼 웃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불꽃과 바람을 옷처럼 두르고 있는 신하율을 바라본다.
“전력을 다해도 찰과상조차 입힐 수 없는 강적. 이런 상대를 또 어디서 만나 보겠어!”
카일, 달리아와 다르게 신하율의 신체나 옷가지는 말끔했다.
당연했다. 신하율은 경기 시작 이후로, 단 한 번도 공격을 맞은 적이 없으니까.
“아 정말, 못 참겠네.”
숨을 고르고 있는 이 시간도 아깝다. 조금이라도 더. 한 번이라도 많이 신하율과 검을 나누고 싶다.
카일의 신체를 감싸고 있는 돌풍이 한층 더 격해졌다.
카일의 들뜬 마음에 동조한 것이다.
카일이 신체 중심을 낮췄다.
흡사 고탄력의 스프링을 한계까지 압축시킨 것 같은 허벅지와 종아리.
다음 순간, 카일의 신체는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달리아의 눈에 잔상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다.
눈 깜빡할 사이에 신하율의 지근거리까지 도달한 카일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아아앙-!
카일의 세검이 신하율의 주먹과 부딪치는 소리가 한층 더 크게 울렸다.
“하하하! 역시 막는구나!”
세검을 쥐고 있는 손에 전해져 오는 묵직한 충격.
그 충격이 기분 좋았다.
“저 멍청이…….”
달리아가 곧바로 청염을 움직였다. 청염은 쏜살 같이 움직여, 카일을 감쌌다.
그 직후.
카일을 향해 신하율의 마법이 들이닥쳤다.
청염을 품은 날카로운 돌풍.
청염의 태풍이라고 불러야 할 그것이 카일을 갈아 버릴 기세로 사방팔방에서 날아든다.
화륵, 화르르륵!
그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달리아의 청염이 삽시간에 소멸해 가고 있다.
“……읏.”
그 광경을 바라보던 달리아가 침음을 흘렸다.
‘분명 품고 있는 마나량은 내 청염이 더 많은데……!’
마나량. 마법의 출력이란 면에선 달리아의 청염이 신하율의 청염을 웃돌고 있다.
정면에서 격돌한다면 달리아가 압도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재 압도하고 있는 건 신하율이 발한 청염.
정확히는 신하율이 발한 청염과 돌풍의 융합체다.
“카일 이 멍청아! 빨리 피해!”
달리아가 소리쳤다.
소멸 직전의 상태인 청염.
이대로면 카일이 탈락하고, 이어 달리아도 탈락하게 될 테지.
그건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카일!”
문제는 카일이 물러날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청염과 청염의 소용돌이가 격돌하는 격전지의 중심.
카일은 마치 태풍의 눈에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후우…….”
깊은 날숨.
카일이 쥐고 있는 세검이 그 숨을 품었다.
그 광경에 달리아의 눈이 한껏 확장되었다.
‘저 자세는…….’
저 자세.
저 표정.
기억에 있다.
과거 제임스와 전투할 때의 민가연의 자세와 표정과 판박이다.
‘설마 그 기술을 익힌 거야?’
그 순간 달리아의 청염이 완전히 소멸했다.
잠시 후면 신하율의 마법이 카일의 전신을 갈기갈기 찢고, 불태워 버릴 테지.
‘간다.’
청염의 폭풍이 카일의 전신을 둘러싼 바로 그때.
카일의 세검이 움직였다.
아주 느긋하게.
하지만, 세련되게 움직이는 세검.
명백하게 횡 베기로 느릿하게 시작된 그 검격은 이내 가속하여.
‘사라졌…….’
바람을 베었다.
풍신검 제 3형.
산들바람.
공기와 공기의 마찰력을 베어, 그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고 상대의 목을 베어 버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
그 고요한 참격은 신하율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어느새 신하율의 배후로 이동한 카일.
검을 휘두른 직후의 자세로 가만히 서 있다.
카일의 가쁜 호흡만이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대단한 일격이야.”
신하율이 진심으로 감탄한 듯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신하율의 신체를 감싸고 있던 초열지옥과 풍신의 결합체가 빠르게 소멸하기 시작했다.
‘……이겼어?’
카일의 검이 신하율을 베고.
그 결과 신하율의 마법이 사라지고 있는 듯한 풍경.
제 아무리 신하율이라고 해도 방금 전 카일의 산들바람을 초견에 막을 순 없었다는 것일까.
카일이 검을 허리춤으로 되돌리고, 똑바로 섰다.
“완벽하게 막아 놓고서는 그렇게 말해 봐야……. 비아냥으로밖에 안 들리는데.”
신하율은 카일의 세검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겨우 막은 거야. 보면 알잖아?”
카일의 산들바람을 막기 위해선 모든 걸 다 동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일격이었다.
“내가 산들바람에 대한 걸 모르고 있었거나, 풍신의 마법식을 모르는 상태였다면 내가 졌을 거야.”
“……하하. 왜일까.”
카일이 마지막으로 세상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 말. 분명 기분 나빠야 하는데. 별로 기분이 나쁘지가 않네.”
그렇게 한참을 웃더니, 달리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뭔가 찝찝하다는 표정.
“미국이 이기는 것도 솔직히 아니꼽긴 한데…….”
카일의 신체가 갸우뚱 흔들렸다.
“여기까지 해 줬으니까, 이겨…….”
그리고 이내 지면을 향해 자유낙하하기 시작했다.
“힘은…… 많이… 빼…… 뒀으니까.”
털썩-!
카일은 마지막에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카일 벤티아 데미지 오버! 세 에이스 중 카일이 먼저 퇴장합니다!
심판은 카일 벤티아의 탈락을 알렸다.
“…….”
“…….”
카일의 신체가 두둥실 떠서 경기장 밖으로 날아가고.
영역에는 신하율과 달리아만이 남았다.
* * *
한편, 한국의 영역.
여섯 명의 남녀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두 번째 격전지.
―카일 벤티아 데미지 오버! 세 에이스 중 카일이 먼저 퇴장합니다!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카일 벤티아의 탈락 소식이 전해졌다.
“……카일이 졌어?”
그 소식에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건 마이아였다.
설마 카일이 패배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는 표정.
“후우. 우리 리더가 참 대단하긴 해?”
땀에 흠뻑 젖은 마진석이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휘파람을 불었다. 격렬한 전투로 한층 펌핑된 근육이 오늘 따라 도드라져 보인다.
“이제 어쩔 거지?”
그 옆에서 마찬가지로 땀에 흠뻑 젖은 상태의 강신우가 날카로운 안광을 뿜어냈다.
현재 격돌하고 있는 미국팀 둘과 영국팀 둘을 천천히 노려본다.
“카일이 탈락한 이상, 너희가 계속 동맹을 맺을 이유는 없을 텐데.”
카일이 탈락한 이상 영국이 승리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영국이 미국과 계속해서 동맹을 맺고 있을 이유가 없다.
“……미국 좋은 일은 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이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것보다야 미국이 이기는 게 나아.”
마이아가 세상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정말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차라리 미국이 우승하는 게 낫다.
“그런가. 아쉽군.”
강신우가 픽 웃으며 다시 자세를 취했다.
태권도의 자세.
그저 자세를 취한 것뿐인데. 다른 네 명의 긴장감이 팽창했다.
“그럼 계속 하도록 하지.”
“……아. 피곤해라. 오늘 돌아가면 최소 12시간은 기절하겠네.”
마진석도 강신우를 보조하는 위치에서 자세를 취했다.
“…….”
“…….”
마이아와 사라.
각 영국과 미국의 참모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그러지? 안 올 건가?”
강신우가 날카로운 기세를 유지한 채 물었다.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강신우와 마진석. 그리고 먼 곳에 있는 신하율과 달리아를 번갈아가며 바라볼 뿐.
“그렇군. 달리아 살렌티아 쪽으로 지원을 보낼까 고민하고 있는 건가.”
“…….”
정곡이었다.
2:1로 싸웠음에도 카일이 패배했다. 즉, 달리아가 1:1로 신하율을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면 지금 지원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아까 전의 너희였다면, 달리아가 쓰러지기 전에 우리를 쓰러트리겠다고 의지를 다졌을 텐데. 생각이 변했나?”
강신우의 비아냥에 네 명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어서 덤비도록. 우리 둘만 상대하면 한국의 영역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굳이 우리 리더를 쓰러트리지 않아도 너희가 이긴다. 나라면 지원을 고민할 시간에 공격을 할 것 같은데.”
“……시끄러워.”
마이아가 진심으로 짜증 난 표정으로 이를 까드득 갈았다.
“설마 네 명이서 우리 둘을 못 이기겠다. 이런 말은 아닐 테고.”
강신우의 입꼬리가 한쪽만 치켜 올라갔다. 그 모습에 이번엔 사라가 이를 갈았다.
“진짜 그 대표에 그 부하라고……. 얄밉기 짝이 없네…….”
얄밉기가 신하율이랑 판박이다.
둘 다 즉사해 버렸으면.
“인정할 건 인정할게. 우리는 너희를 뚫을 수 없어.”
“호오.”
사라의 말에 강신우가 의외라는 듯이 탄성을 내뱉었다.
“신무강가의 강신우. 지역 수호에 한해서는 무적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신무강가의 비전 마법은 가문의 호(號)와 같은 이름이다.
신무(神武).
신과 같은 무술을 자랑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효과는 신체 강화.
물론 단순한 신체 강화가 아니다. 시전자의 근육은 물론, 뼈와 내장, 혈관, 거기에 신경 조직까지 강화해 준다.
이 마법에 신무강가가 자랑하는 고류 무술이 합쳐져, 대인전에 한해선 괴물 같은 힘을 자랑한다.
“거기 거체도 그렇고. 대체 2달 동안 어떤 훈련을 했길래 그렇게까지 성장한 거야?”
마진석이 큭큭 소리를 내서 웃었다.
“우리 리더는 사람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천부적이거든.”
“…….”
사라의 표정이 다시금 찌푸려졌다. 교수법 만큼은 신하율보다 자신이 위라고 생각했는데. 그 마저도 밀린다니.
“그보다 계속 그렇게 있을 거야?”
마진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가만히 있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 서로 피곤할 필요 없잖아?”
저 네 명은 강신우와 마진석을 뚫을 수 없다.
전력으로선 네 명이 우위지만, 한국이 방어에 접어든 순간부터 호각이다.
그렇다고 달리아 쪽에 지원을 보낼 수도 없다.
지금은 호각이지만, 만약 달리아 쪽에 지원을 보내면 전세는 저쪽으로 기운다.
강신우, 마진석의 합공은 두 명으론 막을 수 없다.
‘지원을 한 명만 보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거야 말로 의미가 없다.
카일과 달리아의 합공으로도 쓰러트릴 수 없었던 상대다.
여기서 지원을 한 명 보낸다고 뭐가 달라질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도움은커녕 달리아의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뭘 할 수 있는 게 없어.’
이번 경기의 승패는 이들의 손을 떠난 지 오래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달리아가 승리하는 걸 기원하는 것과.
“……싸우게?”
“싸워야지.”
이번 전투를 통해 강신우와 마진석의 데이터를 확실히 수집하는 것뿐이다.
아직 다섯 개나 남은 경기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 * *
고요한 경기장.
달리아는 피폐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지친 걸 증명하듯, 청염 또한 시작 직후와 비교했을 때 10%도 남지 않았다.
“힘들어 보이는데. 포기하는 게 어때?”
“……힘들어 보이나 봐? 그럼 내 연기가 잘 통하고 있나보네.”
거친 숨을 필사적으로 삼키며, 여유를 가장한다.
그 모습이 꽤나 애처로워 보였다.
“그러는 너야 말로 힘들어 보이는데. 아까부터 제대로 된 마법도 쓰지 못 하고 있잖아.”
“…….”
지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풍신과 초열지옥을 동시에 발동시켜 융합한 것으로 인해 꽤나 많은 정신력을 소모했다.
거기에 마지막 카일의 일격.
산들바람을 막는 데 거의 모든 힘을 다 썼다.
오히려 마법적으로는 내가 더 피폐했다고 봐도 될 테지.
“뭐, 인정할게. 지금 나는 정신력 고갈 직전이야.”
“……되게 쉽게 인정하네.”
“의미가 없는 페이크를 거는 타입은 아니라서.”
“나를 돌려서 까고 있는 거지, 그 말?”
“좋을 대로 생각해.”
지금 상황에 페이크는 통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마법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굳이 이렇게 전투를 길게 이어갈 필요가 없다.
내가 달리아의 공세에 대해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않는 시점에서 내 정신력 고갈은 기정사실화 됐다고 봐도 좋다.
“아무튼. 마법으로 싸우면 네가 이길 거야. 그만큼 내 상태는 좋지 않아.”
나는 쿨하게 인정했다.
그만큼 내 정신력 상태는 좋지 않다.
“그럼 포기한다는 거야?”
“아니. 그럴 리가.”
나는 자세를 취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세.
마법의 사용을 완전히 배제한 순수 무술을 위한 자세.
“그 자세…… 신무강가의…….”
달리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맞아. 고류 무술. 태권도.”
수박 겉핥기로 배운 무술이지만, 어느 정도 태가 나게 쓸 수는 있다.
“그렇다면 설마…….”
하지만 흉내를 내는 건 신무강가의 무술 뿐이다.
신무강가의 비전 마법은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니다.
신무강가 비전 마법.
“신무(神武).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공명(共鳴)의 고리.
강화.
내 신체가 강신우 이상의 굳건함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