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Talented Monopolist is Special RAW novel - Chapter (177)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177화(177/320)
빙글!
그가 몸통을 뒤틀며 연검의 중앙부를 강하게 내려쳤다.
그러자 연검의 궤도가 일순 복잡한 흐름에서 일자로 쫙 펴졌고, 후속 공격은 이어지지 못했다.
“……!”
블레어가 바닥에 착지하며 눈을 부릅떴다.
“……네놈이 8성 후반이라고?”
방금은 유진에게 분명한 위기였던 만큼, 블레어에게도 회심의 일격이었던 모양.
어지간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유진을 노려보던 녀석이 이내 피식 웃었다.
“경지를 숨기고 있는 건가.”
정답이었다.
블레어는 실린이라는 가문을 20년 넘게 이끌어온 백전노장답게, 유진의 수를 꿰뚫어 보았다.
혹자가 보기에 블레어라는 인물은 매번 말이나 끊기는 병신 호구로 느꼈겠지만, 그 나름대로도 통찰력과 지혜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유진! 지금 로베르 가가 위험해! 당장 돌아와……!”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모르는 여자라기엔 너무 익숙한…….
어머니, 릴리안의 목소리였다.
유진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틀었다.
관람석에는 발타르와 록타르를 비롯한 중소 가문들의 관계자들이 즐비할 뿐, 릴리안은 어디에도 없었다.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야?
체첸이 유진의 표정을 읽고 물었으나, 그는 대답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로베르가 위험하다고?’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위기라는 말이 귀에 너무나 선연했다.
블레어는 유진이 당황한 모습을 보며 연검을 더욱 꽉 쥐었다.
“내가 반드시 오늘, 네 놈을 죽여주마.”
블레어가 오늘 이 자리에서 펜첼의 소가주를 죽이고 1위를 차지하면 남는 게 아주 많다.
유니온의 대장 자리.
펜첼의 전력 약화.
대장전 1위에게 주어지는 태신석까지.
지체할 시간은 없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보아하니 녀석의 수준은 9성까지도 넘볼 수 있는 수준이다.’
유진으로부터 스무 발자국 정도 떨어진 블레어가 망설임 없이 연검을 쏘아냈다.
촤르륵!
길게 뻗어진 연검이 출렁이며 허공을 갈라 유진의 몸통으로 도달한다.
유진의 반응이 늦었다.
-유진! 정신 차려라! 공격이……!
크지직!
체첸의 경고가 그의 귀에 닿기도 전에, 연검이 유진의 옆구리를 거칠게 찢었다.
오러 수준을 8성 후반까지만 꺼낸 까닭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꾸 귀를 울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옆구리를 무시하고 유진은 청각에 집중했다.
‘어머니가 내게 전음을 보내는 건가, 아니면 화룡검에 통신 장치를 심어놓으셨던가?’
하나, 둘 다 가능성은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릴리안은 근처에 보이지 않았고, 화룡검에 무얼 심어놨다는 말은 들은 적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혹시.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던 참.
“““여태껏 내 말을 잘도 끊어먹더니, 어째서 지금은 아무 말도 못 하지?”””
블레어의 목소리가 여러 겹으로 겹쳐 들렸다.
귀가 멍멍해지며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안개가 잔뜩 낀 듯, 눈앞마저도 빙글빙글 돌며 정신이 혼미해진다.
심지어는.
“마지막이다.”
블레어가 연검을 다시 한번 내질렀는데, 그 모양과 형태는 뒤틀려 있고, 치달아오는 연검의 개수는 어느새 하나가 아닌 십여 개로 변해 있었다.
더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또 메아리쳤다.
“유진, 제발 당장 기권하고 나와……! 로베르가……!”
‘빌어먹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릿속이 너무나 혼란스러워 목석처럼 굳은 유진에게 지크와 체첸이 무어라 소리를 질러댔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집중해야 했다.
이 찰나가 그의 운명을 가르는 순간임은 틀림없었으니까.
‘블레어를 우습게 본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았다. 뭔가가 이상했다.
‘어머니가 우리 가문을 <로베르>라고 표현하다니, 너무 어색하잖아.’
이질적인 느낌이 너무 강했다.
이 점을 짚어내자, 연결되어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상대가 예상외로 강하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처음부터 전력을 숨겨왔던 거고, 하나는 속임수다.
제이드의 가르침.
그의 가르침은 때로는 수수께끼처럼 모호했으나, 이처럼 명료한 답을 줄 때도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었기에, 이 가르침을 불에 덴 듯 번쩍 떠올려 곧바로 결론을 냈다.
‘저 수십 개의 연검은 환각이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환청이고.’
그 깨달음을 얻자마자, 명경지수가 발현됐다.
번쩍!
그와 동시에 유진의 머릿속이 맑은 물로 씻어낸 것처럼 깨끗해지며 환각과 환청이 사라졌다.
까아앙!
제정신을 찾은 그가 재빨리 뒤로 빠지며 연검의 특정 중심부를 가격하여 궤도를 비틀었다. 계산하고 일부러 그곳만을 노린 것.
여전히 오러는 8성 후반의 수준으로 유지한 채였다.
“……!”
블레어의 표정이 간만에 일그러졌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유진이 조용히 내뱉었다.
“권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블레어의 얼굴에 추가로 균열이 일었다.
그는 배니커 아힌과는 다르게 침착함을 유지할 줄 아는 인물이었으나, 유진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블레어가 군소리 않고 연검을 다시 쏘아냈다. 하지만 다소 다급한 기색이 엿보인 공격이었다.
왜일까.
“당신의 권능이 간파당했으니까.”
타닷!
어떠한 환각에도, 환청에도 시달리지 않게 된 유진은 다시 제 속도를 되찾아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네놈이 감히……!”
블레어는 멀찌감치에서 연검을 휘두르며 원거리 공격을 가했지만.
캉! 카강! 까앙! 깡!
뱀처럼 휘어지고 꺾여 들어오는 연검을, 유진은 유령곡예보를 밟아 어느새 죄다 쳐내며 블레어의 지척까지 당도했다.
블레어는 코앞까지 다다른 유진을 보며 이를 뿌득 갈았다.
휘익!
유진의 검격이 그의 뱃가죽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감과 동시에.
“끝까지 귀찮게 구는구나……!”
별수 없단 듯, 블레어가 혀를 차며 연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러더니.
화아악!
별안간 유진의 시야가 온통 순백의 공간으로 물들었다.
그 안에는…….
수백, 수천 명의 블레어가 유진에게 연검을 쏘아내고 있었다.
* * *
가주들의 전용 관람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고장 났나? 이게 왜……!”
그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수정 구슬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한창 유진과 블레어의 전투를 관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면이 순백색으로 물들어 버린 것이다.
관람실 한쪽에는 어느새 들어와 있는 제롬 실린이 보였다.
“블레어, 저 개자식이 무슨 짓거리를 벌인 거야! 옳지, 실린의 가주인 자네는 알고 있을 거 아니냐!”
참다못한 크로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롬 실린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당장이라도 놈을 찢어 죽일 기세였다.
하나, 제롬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릅니다만.”
전말은 유진이 말한 대로 간단했다.
제롬은 블레어와 모략을 꾸몄다.
가주의 자리에 제롬이 앉고, 제롬의 자리에 블레어가 앉음으로써 대장 선발식의 참여 자격을 갖춘 것이었다.
따라서 현 가주인 제롬 실린이 가주 전용 관람실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분을 참지 못한 크로센은 결국 제롬의 멱살을 잡아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가주들마저 이 경기의 진행 상황을 보지 못하게 만든 뒤, 유진 경을 어떻게 해보려는 술수냐?”
크로센은 어울리지 않게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눈동자에 강한 분기가 일었다.
블레어가 속임수를 써서 선발식에 참여한 것까지는 어떻게 넘어갔다. 이미 유진과 놈이 맞붙고 있었으니.
애초에 따지고 보면 블레어는 가주 자리에서 내려왔으니 참여하는 게 문제가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펜첼의 사람인 유진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순백색의 공간 속에 갇히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바른대로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명문가 전체가 네놈 실린 가문을 몰살시켜버릴 테니.”
제롬은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비죽 웃었다.
“그렇게는 어려울 텐데요.”
크로센이 주위를 잠깐 둘러봤다.
수십의 중소가문 가주들이 이를 깨물며 크로센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무력에서는 뒤처질지언정, 상업이나 무역에 있어서는 명문가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졌다.
만약 이들이 작정하고 명문가를 배제한다면, 결과적으로 명문가는 말라 죽게 되어있다.
심지어.
“태양신교가 가만히 있을까요?”
태양신교는 교지의 수많은 가문을 상대로 세금을 거두어들인다.
한데 명문가가 중소가문들과의 마찰로 궁핍해지면 세금을 제때 내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명문가들은 태양신교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명문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외통수였다.
“네놈이, 이딴 식으로 머리를 굴려……?”
“일단 결과를 보고 신사적으로 이야기 나누시죠. 이것부터 좀 놓으시고요.”
제롬이 빙긋 웃어 보이자 크로센은 분한 표정으로 놈의 멱살을 놔주었다.
하나,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나가서 직접 보자고! 이 빌어먹을 수정 구슬로는 보이는 게 없으니. 그래도 될까요, 제이드 경?”
크로센은 자연스럽게 제이드의 의사를 물었다.
사실상 이 자리에서 우두머리 위치에 있는 인물은 제이드였으니까.
“그러지.”
제이드가 긴말 않고 일어나 밖으로 나서자, 크로센을 비롯한 모든 가주들이 일어났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리처드와 로렐리아가 긴장된 침을 삼켰다.
“리처드 경,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유진 경은 늘 그랬던 것처럼 잘 이겨낼 거니까요.”
리처드가 설핏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누구 아들인데.”
유진은 걱정되지 않았다. 녀석은 지금껏 숱한 위기를 넘겨왔으니, 이번에도 잘 해낼 것이라 확신했다.
다만, 그의 눈에 어쩐지 왜소해진 장인어른의 뒷모습이 눈에 걸렸다.
* * *
순백색의 공간 안.
‘이것도 환각인가.’
유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천 명의 블레어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이 공간은 환각은 아니다. 정말로 블레어가 경기장 내부를 순백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거야.’
스릉!
유진에게 연검을 휘두를 준비를 하는 수천의 블레어마저도 환각은 아니었다. 실체화된 블레어의 하위 형체였다.
-권능이라고 했지? 맞느냐?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색욕의 권능.’
색욕의 권능.
명칭은 색욕이지만 권능을 유지하는 데에 색욕이란 욕망을 이용할 뿐, 실제 권능의 효능은 색욕과는 조금 다른 결이었다.
주요 효과는 상대방의 환각, 환청, 환통 등을 유발하며.
‘권능이 익숙해지면 저렇게 수천 개의 분신을 부릴 수 있게 된다.’
색욕을 탐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쾌락을 빼닮은 효과였다.
‘이제 알겠군. 왜 회의실에서 놈의 그릇이 작다고 생각했는지.’
유진은 그제야 왜 블레어의 오러 수준이 9성 후반치고 약하게 느껴졌는지 깨달았다.
「애초에 9성 후반이 아니었던 거군요. 색욕의 권능을 보유한 덕분에 오러의 수준이 높아 보였던 것에요.」
‘정확해. 아마 블레어의 진짜 오러 수준은 9성 초반 정도 되겠지.’
저렇게 많은 분신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그간 블레어가 색욕의 권능에서 비롯한 영혼 흡수 원리를 이용하여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부리는 것이었다.
전생에 색욕의 권능을 부리던 자를 잡아 연구한 경험이 있기에 아는 정보였다.
저벅.
수천의 블레어가 유진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뎠다. 오러의 파동이 땅을 타고 유진의 발치를 건드린다.
단 한 발자국이었음에도, 그 진한 오러의 파동은 뼈에 사무칠 만큼 웅혼했다.
그도 그럴 게, 저 블레어의 분신들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본체인 블레어의 힘을 일부 나눠 받은 하위 격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녀석들이 사방에 수천씩이나 있으니 기운이 거셀 수밖에.
유진의 무릎이 휘청였다.
재능 독식자의 회귀는 특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