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친숙한 기운
정광이 경악하자 상소운은 눈을 빛냈다.
자신이 정곡을 찔렀다고 오해한 것이다.
“과연. 좌우광명사자쯤은 되어야 역천회귀멸혼대법(逆天回歸滅魂大法)을 깰 수 있겠지. 그럴 수 있는 자가 천하에 몇이나 있겠소?”
정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름하고는.
아주 개나 소나 역천이다.
꽤 쓸 만했지만 그래 봐야 사술이요 환술(幻術) 아닌가.
“하늘의 이치를 어겨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혼을 멸하게 하는 대법이라고?”
“그렇소. 살아오며 겪었던 힘든 일들 중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을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오. 그리고 혼은 물론 육체까지 말살시키는 대법이지.”
정광은 헛웃음을 흘렸다.
‘겨우 그걸로 혼과 육체를 어째?’
정광을 정말 말살시키려면 천마신교에서의 기억으론 불가능했다.
곤륜에서 도경을 읽었던 시간을 다 합쳐서 나타내도 될까 말까 하거늘, 이게 웬 헛짓거리란 말인가.
정광은 그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의 소유자였다.
‘뭐 그 양반 얼굴을 본 건 좀 타격이 됐지만.’
정광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아까 봤던 아비의 얼굴을 털어냈다.
그 모습을 본 상소운은 내심 갈등했다.
정광이 타격을 받고도 참고 있다가 견디지 못하고 드러낸 것이라 오해한 것이다.
‘칠까?’
갈등은 짧았다.
만약 정광이 타격을 받았다 해도 그를 이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상소운은 도를 치켜드는 대신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대체 귀교는 어디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이오?”
“뭐?”
“철혈장에서 귀교의 사람을 만났었소. 감시하던 수하가 말하길, 그가 곤륜의 진옥룡이라 하더이다. 그대가 내 도를 알아본 건 그에게 들었기 때문 아니오?”
뭐 이런 헛발질이 다 있을까.
정광이 마기가 안 느껴지는 역용술을 펼치고 있어서 착각하는 것이리라.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으니.
“진옥룡을 감시하던 수하에게서 연락이 끊긴 지 오래요. 발각되어 제거당한 것이겠지.”
자오라면 좀 전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퍼먹고 있었는데 제거는 무슨.
상소운의 오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곤륜에 스며든 것도 놀랍거늘, 그대처럼 팽가는 물론 황태손과도 관계를 맺은 마인이 있을 줄이야…… 귀교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소.”
“그게 유언이야?”
“……귀교에서 노리는 것을 말해주시겠소? 사부님께 말씀드려 최대한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해보겠소이다. 귀교와 본련이 구태여 다툴 이유가 없지 않소이까?”
천마신교의 행보에 방해가 되지 않게 사마련이 양보하겠다는 말이었다.
“어떻소? 나쁘지 않은 제안 아니오?”
상소운의 구구절절한 말에 정광은 짧게 되물었다.
“그러니까, 살려달라고?”
“…….”
“솔직히 말하지 혀가 왜 그리 기냐.”
“……그래줄 마음이 있소?”
정광이 피식 웃었다.
“네가 련주를 설득할 힘은 있어?”
“……물론이오.”
“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네가 마도(魔道)를 잘 모르는구나.”
“……?”
“진짜 마인(魔人)은 없던 적도 만들어서 싸우지, 그런 타협은 안 해.“
“……!”
게다가 현생의 정광은 천마신교가 아닌 곤륜의 제자였다.
하지만 이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는 일. 정광은 손바닥을 비볐다.
“죽을 준비 됐지?”
“……나는 꽤 쓸모 있는 사람이오. 사마련주의 둘째 제자고…….”
“그럼 뭐해. 막내보다 못한데.”
“……후 사제를 아시오?”
“약간.”
“……더 이상 놀라지도 못하겠군. 허나 내가 그 녀석보다 못하지는……”
“네가 살짝 더 강하지만 그 외에는 그 녀석이 더 나아. 옥기린이란 별호는 말도 안 되지만.”
정말 그랬다.
옥기린이 상소운이었다면 정광이 술법을 깨자마자 달려들었을 터.
필사즉생(必死卽生).
생명을 걸 용기가 상소운에게는 없었다.
대신 말은 제법 많았다.
“후우. 내가 부족한 걸 인정하겠소이다. 그런데 혹시 몰라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날 쫓아온 것이오?”
“잘.”
“더 자세히 알려줄 순 없소? 내 심히 궁금해서 그러외다.”
정광이 피식 웃었다.
“그만 좀 해라.”
“……갑자기 왜 그러시오?”
“시간 끌만큼 끌었잖아. 자리까지 다 잡았으면서.”
“……!”
“이번에도 네놈이네. 너 사(四)라는 숫자를 꽤 좋아하는구나?”
순간 상소운의 기세가 변했다.
겁먹었던 기색은 사라지고 사악한 기운이 뭉클뭉클 쏟아져 나왔다.
“진작 이러지.”
“죽어!”
상소운의 구환도가 허공을 갈랐다.
칼등에 달린 아홉 개의 고리가 요란한 소음을 냈고 붉은빛을 띤 사기가 정광을 조여갔다.
요사한 음공으로 균형감각에 혼란을 주며 사악한 사술로 시야까지 가리는 술법!
동시에 정광의 주변 땅이 터지며 네 명의 복면인이 튀어나왔다.
은신한 채 다가와 사방을 점한 무인들이 살수를 전개한 것이다!
‘오호!’
피할 방위까지 막으며 요혈을 노리는 것이 상당한 수준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대가 나빴다.
정광은 느긋한 얼굴로 운룡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여차.”
눈부신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운룡이 금룡이 되어 비상한 것이다!
콰아아아아-
장엄한 창룡후가 장원을 뒤흔들었다.
금룡은 그 소리와 함께 거침없는 기세로 세상을 휩쓸었다.
* * *
정광은 자신의 옷을 살피며 한숨을 쉬었다.
“휴우. 이게 무슨 꼴이야. 아직도 너무 약하네.”
상소운은 담벼락에 처박힌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약하다고? 겨우 옷 몇 군데 찢어져 놓고?’
그의 주변에는 아까 죽은 네 노인과 방금 죽은 네 중년인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형편없이 우그러진 구환도도.
‘……말도 안 돼. 사혼사로(邪魂四老)와 밀환사살(密幻四殺)이 이렇게 죽다니…….’
그들의 합공이면 구파일방의 장로 몇 명쯤은 손쉽게 격살할 수 있거늘.
사파무림을 제패한 사마련에서도 인정받는 고수들이 단 한 명에게 당한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정광이 상소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패를 다 썼네. 이제 어쩔 거야?”
“……살려주시오. 아까도 말했지만 난 쓸모가 많소이다.”
“어떤?”
상소운이 희망 어린 눈빛으로 입술을 핥았다.
“내가 사술을 심어놓은 건 팽강웅만이 아니오. 다른 백도문파에도 여럿 있소이다. 날 살려주면 그들이 누군지 말해주겠소.”
“그들을 협박해서 이용해라?”
“그렇소이다.”
정광은 어이가 없었다.
“귀찮게 뭐 하러.”
“……아, 아니면 그들의 사기를 조종해 그대를 돕겠소.”
“팽가에서 한 것처럼 지체 높은 이를 죽이게 하겠다고?”
“바로 그것이오.”
“너, 그런 분란을 일으키려고 여기저기 그 허접한 심법을 뿌렸지?”
“…….”
상소운이 무언으로 긍정했다.
정광은 턱을 매만지며 무림맹을 떠올렸다.
‘이놈 기색을 보니 거짓말은 아니군. 그러면 맹에도 몇 있을 텐데.’
팽가에서 보니 제법 괜찮은 사술이긴 했다.
그런데 그러면 뭐 하는가. 정광과는 관계없는 일인데.
곤륜의 심법은 정심했고, 정광이 또 손봤기에 그런 유혹에 흔들릴 이는 곤륜에 없었다.
게다가 무림맹에 푼 체조법에는 곤륜의 선기(仙氣)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꾸준히 수련하면 그런 사기(邪氣)가 담긴 심법에 안 흔들리고, 설령 이미 익혔다 한들 벗어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뭐 익히지 않는 놈들까지 챙길 필요는 없고.’
게다가 그 심법을 익힌 자를 조종하려면 보통 술법으론 힘들었다.
그런 수법을 펼칠 수 있는 자는 사마련에도 몇 안 되리라.
‘늙은이들은 죽였고 얘만 죽이면 되겠네.’
정광이 빙그레 웃자 상소운은 직감했다.
‘이놈이 결국 날 죽이려 드는구나.’
이 판국에 더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상소운은 가슴을 폈다.
“죽이시오.”
“그전에 왼팔 좀 내밀어봐.”
“……?”
“더 맞을래?”
“……!”
정광에게 반죽음 될 정도로 얻어맞은 상소운이었다.
더 맞을 거냔 말에 경기를 일으킨 그는 재빨리 왼팔을 내밀었다.
스으윽-
빛이 번쩍이나 싶더니 팔이 가벼워졌다.
‘응?’
잠시 뒤, 절단된 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크악!”
비명을 터뜨린 그는 오른손을 들어서 잘린 부위에 점혈을 했다.
서서히 피가 멈췄으나 고통은 아니었다.
상소운은 신음을 억누르며 정광을 노려봤다.
“대체 뭐 하는…… 아!”
정광은 상소운의 잘린 팔에 채워져 있던 것을 빼고 있었다.
그것은 서른여섯 개의 구슬이 꿰어진 단주(短珠)였다.
그 구슬들은 보통의 밋밋한 것들이 아니었는데, 하나하나마다 요귀와 부처의 형상이 번갈아 새겨져 있었다.
단주를 유심히 살펴보던 정광이 불쑥 물었다.
“이게 네 사기를 감춘 기물이지? 이름이 뭐야?”
상소운은 이를 갈았다.
그냥 풀어가면 될 것을 왜 팔을 잘라 버리느냔 말이다!
자연히 독기가 치솟았다.
“내가 말할 것 같으냐!”
“응.”
정광이 손가락으로 몇 군데 찌르자 상소운의 눈이 툭 불거졌다.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악!”
“어? 대답이 아니라 비명이 먼저 나오네. 약했나?”
그럴 리가 있나.
상소운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사불주(邪佛珠)! 사불주라 하오! 크흐흑!”
“간사한 부처 구슬? 누가 그딴 이름을 지은 거야?”
“나, 나도 모르오! 내 요기가 너무 강하다며 사부께서 주신 것이외다!”
“이야. 너 옥기린과 달리 사부에게 이쁨 좀 받는구나.”
“어, 어쨌든 제발! 이, 이제 그만 죽여주시오! 아아악!”
상소운이 간절히 청했으나 정광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흐음. 뭐 이름이야 내가 다시 지으면 되지. 뭐가 좋을까.”
그는 새로운 이름을 고민했다.
상소운의 원독과 애원에 가득 찬 시선을 받으며.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아. 반불(半佛)로 가자.”
“……!”
감각하고는!
상소운은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죽음에 대한 갈망이 더 컸다.
“크아악! 제, 제발 날 죽여주…… 엉?”
정광의 손이 흐릿해지나 싶더니 어느새 고통이 멈춰 있었다.
상소운은 황당한 얼굴로 정광을 바라봤다.
“가, 갑자기 왜…….”
“그냥 죽이긴 아까워서.”
“……!”
“언젠간 네 사부를 볼 것만 같단 말이야. 그 전에 인사를 좀 해놔야지.”
“……?”
정광은 상소운을 노려보며 마령제혼술(魔靈制魂術)을 펼쳤다.
-돼지야.
“……!”
정광의 공포스러운 목소리가 상소운의 혼을 울렸다.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어.
정광은 마령제혼술로 상소운의 이지를 흩트렸다.
그리고 지배하게 되었다.
-……이해했지?
“네.”
-좋아. 그럼 조심히 가. 안부 꼭 전하고.
상소운은 혼탁한 눈을 끔뻑이며 건조하게 대답했다.
“네. 주인님.”
* * *
상소운이 떠난 뒤 정광은 장원을 둘러봤다.
그야말로 시산혈해(屍山血海).
상당히 외곽에 있는 곳이라 지금 당장은 문제없겠으나, 얼마 안 가 누군가에게 발견될 것이 뻔했다.
분명 난리가 날 터.
다른 이라면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불이라도 지르겠지만 정광은 달랐다.
‘고생 좀 하겠네.’
상소운으로부터 연락이 끊겨 확인하러 달려올 사마련의 무인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뭐 그건 그거고.’
정광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마음에 드는 옷이었는데. 그냥 도복을 입고 다녀야 하는 팔자인가.’
고개를 젓던 정광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도 헛걸음한 건 아니니 다행이지.’
그는 손목에 반불을 찬 뒤 처마 밑의 그림자를 바라봤다.
“마기 안 느껴지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정광은 반불을 풀며 다시 말했다.
“이제 느껴지고.”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거야 원.”
정광은 반불을 다시 찬 뒤 그림자를 노려봤다.
“나와요. 안 그럼 죽일 거예요.”
-…….
“이런. 인사 나눈 사이라 살려주려 했는데. 아니지, 어쩔 수 없구나.”
-…….
“무량수불. 잘 가시길.”
정광은 그림자를 향해 장력을 뻗었다.
콰앙!
굉음과 함께 땅이 크게 파였다.
“어라? 생각보다 빠르시네.”
그림자는 어느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정광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진작 그쪽과 싸울걸.”
순간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림자를 따라붙은 그는 수없이 많은 장력을 뻗어냈다.
지금 있는 곳은 물론, 앞으로 움직일 곳까지 예상해 공격한 것이었다.
콰콰콰콰쾅!
하지만 그림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정광의 시선이 뒤로 돌았다.
그의 눈에 아름드리나무가 들어왔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정광은 운룡을 뽑았다.
진기를 불어넣자 찬란한 황금빛이 흘러나왔다.
“그럼 나도 제대로 갈게요.”
정광이 질주했다.
그의 손에 들린 운룡이 나무는 물론 허공까지 갈라 버렸다.
사아악-
소리는 한 번이었으나 바람이 불자 수십 조각으로 나뉜 나무가 쓰러졌다.
쿠쿠쿵!
정광은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나직한 기합을 내질렀다.
“합!”
피처럼 끈적한 마기가 폭발했다.
파천혈검(破天血劍)!
넓은 공간을 한순간에 제압한 검기는 핏빛 환영을 일으키며 모든 것을 베어버렸다.
“크흑!”
순간 허공이 찢어지며 한 인영이 바닥에 내려섰다.
검은색 경장을 입은 중년인이었다.
분을 바른 듯 하얀 얼굴과 이상하리만치 붉은 입술이 눈에 띄었다.
정광이 그를 보며 감탄했다.
“역시 고우시네. 환관(宦官)은 다 그렇다더니 사실이었구나.”
“……!”
“근데 어쩌나. 보면 안 되는 걸 보셔서.”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하겠다는 말에 중년인의 눈빛이 암울해졌다.
뭔가 고민하는 듯 잠시 망설이던 그는 내공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어두운 기운이 피어올랐다.
어둡지만 햇빛이 투과하는 묘한 어두움.
그것을 본 정광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이놈은 또 뭐야?’
사람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친숙한 기운이었다.
‘이게 왜 여기서 나오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