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금지와 정지
도박에서 사기는 능력이다.
하지만 걸리는 그 순간 대역죄가 되어버린다.
천마신교에서는 그런 경우 사지를 잘라낸 뒤 살점을 저몄다.
다음 판이 급하면 바로 목을 쳐버렸고.
말년에 심심했던 정광에게 덤볐던 놈들은 그 용기가 가상해 온몸의 뼈를 부러뜨려 이삼 년 침상에 누워 있게 했지만, 보통은 죽였다는 말이다.
그러니 사파라면 어깨쯤은 자르는 게 격에 맞을 터인데…….
현실은 달랐다.
‘뭐가 이렇게 물렁해.’
정광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다른 이들은 정광을 이해할 수 없어 입만 떡 벌렸다.
겨우 손목이냐니.
무슨 놈의 도사가 이렇게 살벌한 말을 한단 말인가.
모두가 황당해하며 정광을 바라보는 그때.
백승무가 재빨리 나섰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내공을 모아 외쳤다.
“사형의 말씀은 사마련의 독한 손속을 이해할 수 없어 역설적으로 따지는 것이오!”
“사제. 지금 무슨…….”
“무슨 백주 대낮에…… 아니, 이런 화기애애한 곳에서…… 후우. 어쨌든 사람을 이리도 쉽게 해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만행이냔 말이오!”
정광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 반면, 노름꾼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도신이라 하셔도 본질은 신선. 이런 모습은 보기 좀 그러실 테지.”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장난치다 걸리면 손목을 날린다는 것은 이곳에선 국법이나 마찬가지인데.”
대부분 백승무의 말을 믿는 눈치.
순간의 기지로 상황을 수습한 백승무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다행이군. 아. 자오 대협도 이미 나서셨구나.’
어느새 자오는 극심한 출혈로 비틀거리는 신기도수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의 잘린 손목 부근의 혈도를 눌러 지혈을 한 뒤 금창약을 바르는 모습이 여간 정성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 또한 정광의 평판을 지키기 위한 것.
잠깐이지만 두 사람의 시선이 뜨겁게 얽혔다.
헌데 더 뜨거운 눈빛이 느껴지는 것 아닌가.
천천히 돌아보니 송훈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금권검협이라 불린다는 백승무냐? 검협은 모르겠으나 돈은 제법 있더구나. 혀도 놀릴 줄 알고.”
백승무의 얼굴이 붉어졌다.
금권검협이라는 과한 별호를 송훈 같은 고수가 꺼내자 더 부끄러워져서였다.
그래도 정정해야 할 게 있었다.
“……돈도 사형의 것입니다.”
그의 말에 노름꾼들이 웅성거렸다.
송훈을 의식해 극도로 낮춘 목소리들이었으나 무공을 익힌 이들에겐 또렷이 들렸다.
“사형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내 돈이지. 허어. 듣던 대로 겸손하시군.”
실로 노름꾼다운 생각이었으나 그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게다가 정말 혀를 놀릴 줄 아시는 분은 따로 계시잖는가.”
“아암. 저기 계신 다설범협이시지.”
“예끼. 말만 많으신 줄 아나? 지금 사기꾼마저 치료하는 모습을 보시게. 진정한 협객, 그 자체야.”
자오의 평범한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과거를 아는 송훈은 속으로 장탄식했다.
‘저놈이 협객이라…… 이거야말로 진짜 사기군.’
련을 배신하고 정파에 붙은 쥐새끼에게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대체 무엇을 받아 처먹었길래 배반을…… 흥. 도법인가.’
자오의 등엔 천으로 둘둘 감은 도가 메여져 있었다.
곤륜은 검법으로 명성 높은 문파이거늘 련을 배반한 대가로 도법을 받았다?
자오 저놈의 앞날이 빤히 보였다.
‘분명 이용만 당하다 버려질 터. 제법 똑똑한 줄 알았거늘,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나?’
그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지만 억지로 풀었다.
‘냉정해야 해.’
부련주인 가균이 놈을 쫓아 산서성으로 들어왔다가 실종된 상태다.
자오는 물론 놈이 붙은 진옥룡에게도 가균을 해할 능력이 전무했기에 참았지, 안 그랬으면 처음 보자마자 제압하여 고문을 가했을 것이다.
‘분명 부련주님께 사정이 있을 터. 지금은 기다릴 때다.’
가균이 찍은 놈을 손댈 수는 없다.
연락이 끊겼다 하나 믿고 버텨야 한다.
그가 지금 천랑대와 함께 행하고 있을 일을 끝내고 나타날 때까지.
그때가 오면 가균에게 청하여 자오 저놈의 목을 직접 베어버리리라!
“근데요.”
정광의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도박, 마저 해야죠.”
“……!”
폐인이 된 신기도수 대신 좌중의 박수를 받으며 떠났던 쾌수가 다시 끌려왔다.
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정광에게 간청했다.
“조, 종목이라도 바꿔보심이…….”
“사마련이 관리하는 도박장은 사마련이 권하는 종목으로 해야 하나요?”
이 또한 도박장의 율법에 어긋나는 일.
“아, 아닙니다. 그저 지루하시진 않을까 싶어 여쭌 것뿐입니다.”
쾌수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 박살 났다.
결국 도박장은 탈탈 털린 채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정광에겐 새로운 별호가 생겼다.
노름꾼들이 끊임없이 연호한 세 글자.
바로, 도신선(賭神仙)이었다.
* * *
늦은 밤.
석우완은 화려한 집무실 의자에 앉아 앓는 소리를 냈다.
“하아아.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소.”
원굉도 동의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잠시 뒤, 두 사람은 마주 본 채 빙그레 웃었다.
“하하. 대사께선 어이 웃으시오?”
“장주와 비슷한 이유일 것입니다.”
“이런. 나는 속 좁은 생각을 하며 웃었는데 설마 대사도 그러실 줄은 몰랐소.”
“아미타불. 부처께서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으하하하!”
원굉의 말에 석우완이 대소를 터뜨렸다.
송훈의 완전히 구겨졌던 얼굴에 통쾌함을 느낀 건 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동시에 의아함이 솟았다.
“이런 말씀드리긴 실례가 될 듯하나…… 궁금해서 도저히 못 참겠구려.”
“말씀하십시오.”
“흠. 흠. 대사를 뵌 게 처음이 아니어서 말이오. 전보다 좀 부드러워지신 것 같소이다.”
원굉의 강퍅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보기 무척 불편했지만 그로선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바로 보셨군요. 진옥룡을 만나고 변했습니다.”
“허어.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잠시 고민하던 원굉은 정광과 있었던 일을 간단히 말했다.
장문인, 불존, 현오와 관계된 얘기나 십팔나한진으로 싸웠던 것은 뺀 내용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석우완은 원굉의 말이 끝나자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까 진옥룡과 범 얘기를 나누시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만. 그런 일이 있었구려.”
“아미타불. 그간 소승과 소림은 대의를 위한다는 틀에 갇혀 선량하고 힘없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진옥룡 덕분에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요.”
“그래서 무림맹의 청을 수락하고 와주신 것이오?”
“그렇습니다. 강호동도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으나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
석우완은 오늘 겪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정광의 거침없는 언행만 생각났다.
그가 어릴 적 꿈꿨던 시원시원한 협객의 모습이었다.
그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처럼 될 수 없소.”
“소승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정광을 만나고 많은 걸 깨달았으나 사문과 가문을 도외시하고 세상의 잘잘못을 따질 용기는 없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따라가고 싶소이다.”
“소승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아까처럼 서로를 마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진옥룡은 배불리 먹고 잠자리에 들었으니 우리도 그만 잡시다. 심력을 꽤 소모했는지 지치는구려.”
“그러시지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내일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럼 편히 주무시길. 아침 일찍 바로 봅시다.”
원굉은 집무실을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그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정광의 황당한 협객행을 떠올리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였다.
‘이런. 이러다간 끝이 없지. 빨리 자야겠군.’
원굉은 잠자리에 들었다.
해가 뜨면 사마련의 부련주가 정광을 공격한 사실을 석가장주에게 말하고 무림맹에도 소식을 보내달라 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석가장주를 찾아가 마주 앉자마자 밖에서 시끄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장주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냐?”
석우완이 방문을 열고 묻자 그의 아우인 석우현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지, 진옥룡 일행이 조금 전에 장을 나갔습니다.”
“무어라? 어디로?”
석우현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답했다.
“사, 산서성의 사마련 도박장들을 모두 털어버리겠다고 말했다 합니다.”
“……모, 모두 털어버리겠다?”
“어, 어떻게 할까요?”
석우완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털기만 하면 다행이지.’
정광이 또 어떤 짓을 벌일지, 송훈이 어떻게 대응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진옥룡이 아무리 고수라 해도 위험해.’
석우완은 정광의 경지를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미타불. 가봐야겠구나.’
원굉은 십팔나한진으로 몇 번이나 상대해 봤기에 정광의 대단함을 알았지만, 뒤에서 찔러오는 칼은 피하기 힘든 것 아닌가.
그래서 경험이 부족한…… 사실 십팔나한진과 싸울 때 정광이 보여준 수많은 꼼수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어쨌든 정광이 걱정됐기에 따라가야 했다.
“다들 모아! 진옥룡이 있는 곳으로 간다!”
“아미타불. 소림도 함께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 *
정광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도박장들의 위치를 알아냈다.
그리고 질풍처럼 달려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침 그곳을 지키는 이중엔 아는 얼굴이 있었다.
어제 봤던 송훈의 수하들 중 한 명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지, 진옥룡!”
“들어가도 되죠?”
“그, 그건 절대로…….”
“되죠?”
정광의 짧은 말과 살기에 사마련 무인은 굴복했다.
“……들어가십시오.”
“네. 수고하세요.”
정광이 들어가자마자 사마련 무인은 송훈을 찾았다.
“지, 지부장님! 진옥룡이 도박장에 나타났습니다!”
콰앙!
“무어라?”
송훈이 아침상을 박살 내며 묻자 무인은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감히 이놈이 본련을 우습게 봐?’
송훈은 분노를 참지 못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후우우. 내가 놈을 우습게 본 건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어제 그 난리를 치고도 바로 다음 날 또 도박장들을 털려고 할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찌 됐든 가봐야 했다.
“다들 모아! 그곳으로 간다!”
“조, 존명!”
송훈은 수하들과 함께 달리다가 석우완 무리를 만났다.
두 무리는 서로를 경계하며 대치하게 되었다.
“……장주.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오? 사람들이 놀라지 않소.”
“……별문제는 없는지 돌아보던 참이었소. 지부장께서야말로 왜 그리 뛰고 계셨소? 다들 두려워하고 있잖소이까.”
길가의 사람들은 두려움보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두 무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 형국이 마음에 안 든 건 두 무리 모두 마찬가지.
결국 송훈이 먼저 나섰다.
“이만 가겠소. 다음에 또 봅시다.”
“허허. 그럽시다. 그럼…….”
두 무리는 동시에 경공을 펼쳤다.
같은 방향으로!
돌담 위로 달리고 민가의 지붕을 뛰어넘는 등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그러다 관도가 나왔다.
길이 너무 좁다 보니 양측 사람들의 몸이 부딪힐 지경이었다.
“이 더러운 사파 놈이 감히!”
“뭐? 정파 위선자 놈아! 혀를 뽑아줄까?”
다툼이 생기지 않을 리가 있나.
이대로 가다간 피를 보고야 말 터.
송훈과 석우완의 시선이 얽히며 빠른 합의가 이루어졌다.
“멈춰라!”
“정지!”
수하들도 생각이란 게 있기에 주먹질 몇 번으로 끝난 상황.
한숨을 내쉰 두 수장은 각자의 수하들에게 명했다.
“석가장과 안 부딪히게 천천히 간다!”
“존명!”
“사마련과 다투지 말아라!”
“네! 장주님!”
두 무리는 좁은 길의 양쪽에 붙어 신법을 펼쳤다.
그렇게 서로의 눈치를 보며 달리던 그들은 길이 넓어지자 눈을 빛냈다.
전음 따위 없이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이다!’
내공을 일으킨 그들은 일제히 달렸다.
그리고 길이 또 좁아지자 여기저기서 주먹질이 오갔다.
“역시나 더러운 짓을 하는구나!”
“이 위선자야! 네놈이 먼저 그래놓고 무슨 말이냐!”
송훈과 석우완은 탄식했다.
원굉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시 합의를 한 그들은 똑같은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며 정광이 갔다는 도박장에 도착했다.
그곳은 이미 털려 있었다.
“이…… 이……!”
분노한 송훈이 외쳤다.
“진옥룡은 어디로 갔느냐!”
정광은 이미 다른 도박장을 털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소문을 듣고 왔는지 노름꾼들이 ‘도신선’을 연호하며 정광을 경배했다.
이날 정광은 도합 네 개의 도박장을 털었다.
마지막 도박장을 털고 나오자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의 송훈, 석우완, 원굉이 보였다.
“어? 노름하시려고요?”
“…….”
“여긴 망했어요. 다른 데 가시죠.”
“……!”
정광은 백승무, 자오와 함께 석가장으로 돌아갔다.
석우완과 원굉의 잔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배를 가득 채운 뒤 푹 잔 그는 날이 밝자마자 석가장 담을 넘었다.
백승무의 뒷덜미를 잡고 펼친 칠야마영(漆夜魔影)의 한 수였다.
뭐 자오는 알아서 은신술을 썼고.
정광 일행은 점찍어둔 다른 도박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 고개를 꺄우뚱했다.
“어? 뭐지?”
입구에 ‘진옥룡 출입금지’라고 쓰인 큰 현판이 달려 있는 것 아닌가.
정광은 입구를 지키는 사마련 무인에게 물었다.
“저기요. 저, 왜 출입금지예요?”
송훈의 명으로 잠도 못 자고 도박장을 지키던 무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것이…….”
“네.”
“도, 도신선께서 들리시는 곳마다 하나같이 망해서…….”
“우와. 지금 사람 가려서 받으시겠다는 거예요? 사마련씩이나 되는 곳에서 운영하는 도박장이?”
“아, 아닙니다. 어제부로 본련은 도박장 사업에서 손을 뗐습니다. 모두 다른 분들에게 넘긴 뒤 보호만 해드리기로 했지요.”
“손을 뗐다?”
“그, 그렇습니다.”
“그럼 저를 출입금지 시킨 건 그 새로운 주인들이시겠네요. 무공을 모르는 보통 분들이실 거고.”
“그렇지요. 바로 그 겁니다.”
정광이 이해하는 듯하자 사마련 무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정광이 씩 웃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
“대, 대체 왜 그러십니까?”
“사람을 가려 받는다. 도박장의 율법에 어긋나죠.”
“……네? 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긴 양민이 운영하는…….”
“율법을 어기는 데 고수든 양민이든 무슨 상관이에요.”
“……!”
“내가 출입금지면…….”
정광은 내공을 일으켜 오른손 주먹에 모았다.
그리고 태청신권(太淸神拳)의 일초를 펼쳐 그대로 내질렀다.
콰아아앙!
도박장 한쪽 벽면이 폭발하더니 무너져 내렸다.
경악하는 사마련 무인의 귀로 정광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럼 여긴 영업정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