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꽤 큰 변수
두 노인은 후위진에게 말을 빌려 정광 일행을 쫓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도끼 두 자루를 허리에 차고 말을 몰던 호리호리한 노인이 중얼거렸다.
“영 안 내켜. 자네는?”
옆에서 긴 창을 등에 메고 말달리던 작은 노인이 되물었다.
“꼭 말해야 알겠나?”
두 노인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사파무림 최강자인 팔사(八邪) 중 둘이 애송이를 척살하려고 나섰다.
같은 팔사인 도사(刀邪) 가균을 잡은 놈이라 해도 합공을 하라니.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말하네만. 가균 그놈이 애송이에게 졌다는 것도 믿기지 않아.”
부사(斧邪)의 말에 창사(槍邪)도 동의했다.
“마찬가질세. 허나 어쩌겠나. 가균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는데.”
천랑대(天狼隊)와 함께였는데도 그렇게 됐다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별수 있나.
그냥 믿어야지.
“방심하지 말자고. 우리까지 개망신당하면 안 돼.”
“알고 있네. 그래서 제자 녀석들도 끌고 온 것이고. 자네는 막내만 데려왔군.”
창사의 제자 둘, 부사의 제자 하나가 함께 달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기도를 지닌 창사의 제자들과 달리 부사의 제자는 아둔해 보였다.
부사는 자신의 제자를 흘깃 본 뒤 중얼거렸다.
“좀 멍청해서 그렇지, 저 녀석 홀로 자네 제자 둘 몫은 할 수 있어.”
창사의 제자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항의하지는 못했다.
부사의 말대로 도끼 두 자루를 허리에 차고 대월(大鉞)까지 멘 덩치는 대단한 고수였다.
오히려 항의는 그 덩치가 했다.
“사부. 나 바보 아니다.”
“…….”
부사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다 저 꼴이 났는지…….”
“내 꼴?”
“시끄럽다!”
겁먹은 덩치가 목을 자라처럼 집어넣었다.
“내가 잘못했다. 화내지 마라, 사부.”
창사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넘치는 전력이지.’
그의 제자 둘과 저 덩치라면 무혈단이라는 핏덩어리들쯤은 금방 해치울 터.
창사와 부사는 정광에게만 집중하면 됐다.
배분이고 뭐고 없다.
인적 없는 곳에서 합공으로 척살한다.
이게 사마련주가 내린 명이었다.
부사도 그의 얼굴을 떠올렸는지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음침한 새끼.”
“말조심하게.”
“내 말이 틀렸나? 그 새끼가 사파무림을 망치고 있어. 성향이 그렇게나 다른데도 하나로 뭉치게 강제하고 있잖아.”
“…….”
창사는 대답 없이 말을 몰았다.
련주가 맘에 안 드는 건 마찬가지였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놈은 강해.’
사파무림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팔사 중 다섯을 차례로 꺾은 자였다.
창사와 부사가 그 다섯에 속했다.
그의 강함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것이다.
‘무공뿐만이 아니야. 냉정하고 잔혹한 데다 비열함까지 갖추고 있지.’
권모술수에 능했고 마음먹은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냈다.
그런 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누굴 두려워하랴.
‘벗어나고 싶구나.’
창사나 부사나 권력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자유였다.
자유롭게 천하를 질주하며 마음에 안 드는 놈의 멱을 딴다.
그래서 사파에 몸담았고 무공을 수련해 온 삶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련주에게 매인 상태.
‘갑갑해.’
련주는 정광을 은밀하게 척살하면 한동안이나마 여유를 준다고 했다.
그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정광을 반드시 죽여야 했다.
‘말까지 타고 먼저 떠난 놈이다. 쫓으려면 꽤 애먹겠지만 가균의 말대로라면…….’
정광은 아무 곳에서나 먹고 자는 이가 아니었다.
하북성에서 산서성으로 가는 내내 식도락을 즐겼다는 건 가균의 증언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혹시 이번에도?’
역시였다.
사마련의 정보를 총괄하는 서조각(鼠鳥閣).
척후로 먼저 떠났던 그들 중 한 명이 관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놈들을 찾았느냐?”
성격 급한 부사가 묻자 서조각 무인이 부정했다.
“아닙니다. 대신 을급(乙級) 암어(暗語)를 발견했습니다.”
“가균이 말했던 대로군. 또 자오라는 놈을 먼저 보내서 식도락을 즐길만한 곳을 암어로 남기는 건가?”
부사는 황당해했으나 창사는 침착하게 물었다.
“반점이나 객잔들을 일일이 찾아갈 생각은 없다. 놈들의 흔적을 알아볼 수는 없는 게냐?”
“죄송합니다. 관도(官道)에 말발굽 자국이나 수레바퀴 흔적이 워낙에 많은지라…….”
서조각 무인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적 드문 곳에서야 미세한 흔적을 발견하고 쫓을 수 있으나 수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관도에서 무슨 흔적을 찾을 수 있으랴.
‘암어를 남겨줘서 다행이라 해야 할 판이군.’
창사가 생각하는데 부사가 물었다.
“뭐라고 적혀 있지?”
“온향반점(溫香飯店). 온화한 할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깃든 맛.”
“……가지가지 하는구나.”
어쨌든 가봐야 했다.
밥시간도 됐겠다, 배도 채우고 놈들의 행적도 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바로 옆에 있는 마을로 향했다.
워낙 작은 마을인지라 반점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들어가자.”
“존명!”
그들은 온향반점 안에 들어갔다.
먼저 온 손님들도 있었기에 작은 반점이 꽉 차게 되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파가 나타나 그들을 반겼다.
아주 걸쭉한 욕설로.
“이놈의 화상들이 어딜 그리 쏘다녀? 밥은 먹고 다니냐?”
“……!”
부사의 눈에 스산한 살기가 맺혔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오줌을 지렸을 테지만 노파는 아니었다.
“뭐! 비리비리한 늙은이가 노려보면 어쩔 건데! 앙?”
부사가 노파의 머리를 박살 내려는 순간, 창사가 전음으로 말렸다.
-죽여서 소란이 나면 안 되네. 이번 일은 비밀을 요하는 것 아닌가. 놈의 죽음에 련이 관여돼 있다는 걸 숨겨야 해.
“……후우우…….”
부사가 한숨을 쉬자 노파가 걸걸하게 물었다.
“뭐 처먹으려고 여기까지 기어왔어?”
“……무엇이 있지?”
“그냥 주는 대로 먹지 말이 많네. 아무 데나 퍼질러 앉아서 기다려.”
“…….”
부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창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리는 의외로 금방 나왔는데…….
소면과 채소 무침뿐, 특별한 점은 없어 보였다.
‘일단 밥부터 먹자.’
한 젓가락 먹었다.
눈이 저절로 커졌다.
‘이, 이건!’
온화한 할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은 개뿔!
욕쟁이 할멈이 거친 손길로 막 만든 맛 아닌가!
팔사쯤 되면 좋은 것만 먹을 수밖에 없는 신분이다.
부사는 그대로 뱉어낸 뒤 노파에게 따졌다.
“이걸 지금 요리라고 내왔는가!”
“이놈의 영감탱이가! 지금 밥투정하는 거야? 응?”
“투정이 아니라…….”
그때, 부사의 제자가 소면을 들이켜듯 먹으며 감탄했다.
“맛있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맛이다.”
부사의 눈썹이 치솟았다.
“시끄럽다!”
노파도 가만있지 않았다.
“잘 먹는 애한테 왜 그래! 그러니까 그 나이에도 객지 생활이나 하지! 입이 짧으면 말이라도 곱던가! 딱 볼 때부터 느꼈지만 이놈의 늙은이는 생긴 것부터가 개차반에다가…….”
노파의 입에서 화려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부사는 하도 어이가 없어 잠자코 듣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번에도 창사가 그를 말렸다.
-참게. 아까도 잘 해내지 않았나?
“후우우…… 후우우…….”
부사는 깊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창사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우리가 쫓는 걸 알고 있나 보군. 대체 어떻게?’
게다가 가균 때와는 다르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정광은 분명 미식가였다.
이런 욕쟁이 할멈이 하는 뭣 같은 반점에 들를 이가 아닌 것이다.
‘더 있을 필요가 없어. 전력으로 추격하는 것이 낫겠군.’
창사가 눈짓하자 서조각 무인이 노파에게 다가갔다.
은자 몇 개를 쥐여주자 야차 같던 노파가 관세음보살처럼 온화하게 변했다.
“어이구. 감사합니다요. 무엇이 필요하신지? 요리를 더 내올까요?”
“……됐소. 내 물음에 답이나 해주시오.”
“물론입지요. 말씀만 하십시오.”
노파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자오로 추정되는 평범한 얼굴의 중년인만 봤다고 했다.
‘일부러 형편없는 곳을 고른 건가.’
이런 식으로 물을 먹일 줄이야.
창사 일행은 반점을 나가 추적을 재개했다.
그리고 한동안 달리다 또 암어를 발견했다.
[환취루(環翠樓). 가인(佳人)들의 아름다운 음률에 취하다.]엉망진창인 연주에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화용객잔(花茸客棧). 꽃이 무성해 눈도 코도 즐거운 후원.]이제 후원을 조성 중이라 거름 냄새만 가득했다.
“……도발하는 건가?”
창사가 중얼거리자 부사가 살기를 토했다.
“애송이 놈! 내 반드시 오체분시(五體分屍)를 해주마!”
그들은 다시 말달렸다.
암어를 무시하고 빨리 쫓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암어를 따라가다 보면 정광 일행의 행적을 알 수 있었으니까.
대신 방법을 좀 바꿨다.
“거짓 암어를 뿌릴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빨리 쫓아간다.”
“존명!”
모두 말을 재촉해 달렸다.
방향으로 보면 정광 일행은 사천성(四川省)으로 향하고 있었다.
섬서성과 사천성의 경계쯤.
그곳이 정광의 묏자리가 되리라.
그들은 그렇게 확신했다.
* * *
관도에서 조금 떨어진 야산.
자오가 말고삐를 끌며 올라와 정광에게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암어는 많이 뿌렸어요?”
“그렇습니다. 중간부터는 되는 대로 막 썼으니 짜증이 좀 날 겁니다.”
“하하. 수고했어요. 자오도 어서 드세요.”
“네.”
자오는 작은 천막들을 지나 커다란 솥에 둘러앉은 무혈단원들 틈에 끼었다.
그들은 이미 대접에 든 고기죽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냄새 한번 기가 막히는구나.”
자오가 감탄하자 장이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고기죽이 가득 담긴 대접이 들려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맛은 별로지만 많이 드십시오.”
“별로라니. 겸양이 지나치오, 장 소협.”
자오의 말대로였다.
장이의 요리 실력은 범상치 않았다.
쌀과 육포만으로 이런 맛을 내다니.
며칠째 먹고 있는데도 질리지 않을 정도였다.
먼저 먹고 배를 두드리던 유정풍이 장이에게 물었다.
“아우. 토끼라도 잡아올까?”
“그렇게 드시고도 배가 고프십니까?”
“그런 건 아니고. 아우의 고기 굽는 솜씨가 일품이라 그러지.”
장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유정풍이 신법을 펼쳐 사라졌다.
말이 토끼지, 사슴이라도 잡아 올 기세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우가 정광에게 물었다.
“사마련에서 사제를 쫓는 게 확실한 것이냐?”
“아마도요. 제가 사마련주면 그랬을 거예요.”
“망신을 준 사제를 척살하려고 할 것이란 거군. 가균이 공개적으로 사과하지는 못할망정 자객을 보내다니. 사파는 어쩔 수 없구나.”
정우가 고개를 가로젓자 정현이 덧붙였다.
“그래도 창피한 줄은 알 테니 눈에 안 띄려고 소수만 오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고수겠지.”
“음. 그렇겠네요. 사제, 누굴까?”
정현이 궁금해하자 정광이 웃었다.
“글쎄요. 팔사 중 둘쯤 되려나.”
“……둘이나?”
“전에 하나를 이겼으니 최소 둘은 보냈겠죠. 수하도 몇 있을 테고.”
“……사제가 한 명을 잡는다 해도 나머지가 문제군.”
어느새 식사를 마친 무혈단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안색이 별로 좋지 못했는데 팔사 중 하나와 그 수하들을 막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정광이 그들을 안심시켰다.
“우리는 잘 먹고 잘 자면서 갈 거예요. 그들은 우릴 쫓아오는 것만으로도 벅찰 거고요.”
“점점 속도를 높이겠다는 말이야?”
“네. 지금처럼 관도를 따라 달리며 근처에서 먹고 자면서요.”
“최대한 빨리 가면서 목격자들을 최소화하겠다는 거지?”
“그렇죠. 그들은 암어가 계속 눈에 띄어 근처 마을들을 뒤질 테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우리가 사천성으로 계속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겠죠.”
“사제 말대로 허겁지겁 쫓아오느라 죽어나겠군. 몸 상태가 좋진 않겠어.”
정광이 씩 웃자 정현도 따라 웃었다.
“사실 제일 좋은 건 사제의 예상이 틀린 건데. 그럴 리는 없겠지. 아니면 그냥 빨리 간다 치면 되고.”
“그렇죠.”
“좋아. 사제가 만든 무혈진(無血陣)도 있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정현이 호기롭게 말했으나 무혈단원들은 알고 있었다.
정말 팔사 중 둘과 그 수하들이 추적하고 있다면 그들의 몸 상태가 아무리 안 좋아도 승산 없는 싸움이 되리라는 것을.
오직 정광만이 태연했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갈 군사한테 전서구를 보냈었잖아요. 잘 처리했을 거예요.”
그 일을 했던 정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우리는 너와 제갈 군사를 믿는다. 설령 일이 잘못되더라도 최선을 다하마.”
다른 이들도 모두 동의했다.
무혈단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그때, 유정풍이 나타났다.
“이거 분위기가 왜 이래?”
그는 토끼가 아니라 사슴 한 마리를 짊어지고 있었다.
“설마 내가 숲을 헤매는 동안 다른 걸 먹었소?”
유정풍이 눈을 가늘게 뜨자 무혈단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장이가 활짝 웃으며 사슴을 건네받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솜씨를 부려보지요.”
솜씨 정도가 아니었다.
장이가 구운 사슴은 무슨 수를 썼는지 입에서 살살 녹았다.
무혈단의 사기가 충천했다.
그리고 이런 날들이 반복됐다.
* * *
“자오 이 새끼! 암어로 계속 장난질을 쳐!”
부사가 씨근덕거리며 말을 채찍질했다.
“진옥룡 그놈은 또 뭐야! 왜 반점에도 안 들리고 객잔에도 안 묵는 건데!”
창사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상대의 목적이 대충 보여서였다.
‘우리가 시간을 허비하며 지치길 바라는 건가.’
정광이 사천성으로 향하는 듯하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관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쫓고는 있었으나 언제 다른 길로 샐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래서 자오가 남기는 암어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최소한 자오가 가고 있는 방향은 알 수가 있어서였다.
‘차라리 암어를 신경 쓰지 않고 관도를 따라 쭉 달리는 게 나을지도.’
사천성에는 구파일방 중 셋이나 되는 문파가 모여 있다.
깊숙이 들어가기 전에 정광을 잡아야 했다.
‘진옥룡이 예상보다 빨리 섬서성을 떠난 게 문제야. 우리가 제대로 준비를 못 한 채 쫓고 있다는 건데.’
그래도 건량과 육포 정도는 챙겼으니 노숙을 하며 달리면 안 될 것도 없었다.
‘힘든 건 서로 마찬가지. 전력으로 쫓아서 척살한다.’
그의 생각과 달리 정광과 무혈단은 잘 먹고 잘 자며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차이는 꽤 큰 변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