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진짜에 가까운 자
투웅은 담담한 얼굴로 서신을 건네받았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런 소란을…… 음?’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두 눈이 점점 크게 떠졌다.
“으음…….”
생사투(生死鬪)를 벌일 때만 제외하면 항상 침착한 그였으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마련주가 반전을 꾀하리라 예상은 했건만, 이런 엄청난 짓을 벌일 줄이야.
투웅은 한 번 더 내용을 확인한 뒤 수하에게 물었다.
“자네만 읽었는가?”
“그렇습니다.”
“당분간 함구하게.”
“가주, 숨기기엔 너무 큰…….”
걱정스러운 얼굴로 반대하던 심복이 입을 다물었다.
투웅의 눈이 너무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다들 겨우 마음을 다잡은 상황일세. 그 와중에 이 일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큰 혼란이 일어나겠지요.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되었네. 잠시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 물러나 있게나.”
“네! 가주!”
수하가 사라지자 투웅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바뀌어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그에겐 자문을 구할 만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적이란 건 불행했지만.
투웅은 우뚝 선 채 서신을 펼쳐서 보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진옥룡. 큰일이 터졌네. 련주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어.”
“그러게요.”
“…….”
투웅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왼쪽 어깨 위에 정광의 얼굴이 불쑥 올라와 있었다.
‘……내 감각을 속이고 이 거리까지 다가왔다고?’
정광이 마음만 먹었으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터.
분노와 두려움이 몰려왔다.
투웅은 정광의 눈을 노려보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내 뒤에서 보고 있는 건가?”
“제 키가 더 크잖아요.”
“…….”
투웅은 어이가 없었다.
너무 없어서 분노와 두려움이 사라질 정도였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야. 어떻게 내 뒤에 다가왔냐는 말일세.”
“아. 은신술을 유지한 채 걸어 왔는데요.”
“……자네 은신술이 그렇게 높단 말인가?”
“뭐 그것도 있고. 가주께서 너무 놀라셔서 알아채지 못하신 것도 있죠. 그보다 얼굴 좀 다시 돌려주실래요? 너무 가까운 감이 있네요.”
“…….”
투웅은 묵묵히 고개를 돌리며 정광에게 서신을 줬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화려한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의 입에서 힘 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련주가 상식적인 사람은 아니네만, 총단 고수들을 이끌고 무당파(武當派)로 직접 달려갈 줄은 몰랐네. 무당을 멸할 테니, 자네를 죽이고 사천성을 반드시 먹으라니…….”
“전서구가 날아온 시간을 생각하면 얼마 안 가 도착해서 치겠네요.”
“그래. 아무리 무당이라 하나 무당산은 청성산처럼 잿더미가 될 걸세.”
“그건 아닐 걸요.”
정광은 계속 서신을 보며 말을 이었다.
“현 황조는 민심을 얻고 무림문파 간에 반목을 일으키기 위해 무당과 소림에 과도한 혜택을 줬죠. 황제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면 사람은 죽이더라도 건물은 남겨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정신이 없긴 없나 보군. 예를 들면 현 황제가 칙명을 내려 세운 태화궁(太和宮) 같은 것 말인가?”
“네. 무당산 천주봉(天柱峰) 정상에 있다는 그거요. 동(銅)으로 만들고 그 위에 금박을 입혀서 금전(金殿)으로 불린다고 들었는데, 그 비싼 걸 불태워 버리면 황제가 가만히 있지 않겠죠.”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체면 때문에 화를 내겠지만 결과는 같았다.
“무당산엔 현 황조가 하사한 것들이 무수하니 사마련도 조심 좀 할 거예요. 참배객을 건드리지 않고 도사들만 치면 도관인 무당이 아니라 무림 문파인 무당을 쳤을 뿐이라는 명분도 세울 수 있고요.
“……무당 도사들을 죽이는 거야 황실에서도 좋아할 만한 일이지.”
“그렇죠.”
역대 모든 황조는 무림을 탐탁지 않아 했다.
아니, 쓸어버릴 수만 있으면 진작 그랬을 것이나 여러 가지 사정상 못 했을 뿐이다.
헌데 사마련이 무당을 친다?
소림과 함께 정파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인 무당을?
무당을 질시하던 정파무림은 속으론 고소해할지언정 겉으론 복수를 외치며 치열히 싸워야 했다.
일을 저지른 사마련 또한 마찬가지. 끝을 보자는 각오로 싸움에 임해야 했다.
정광은 서신을 탁자에 내려놓은 뒤 어깨를 으쓱했다.
“천자(天子)에게 두 개의 패가 주어졌네요.”
“……백성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정사무림(正邪武林)에 제약을 가하거나,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적절한 순간에 중재하겠지.”
“아마 후자겠죠. 정파나 사파나 민초들을 안 건드리려고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무림의 힘도 빼놓을 수 있겠다, 결국엔 황실의 체면도 세우고 무림에서 뭐라도 뜯어내려 들겠죠.”
“…….”
한동안 침묵하던 투웅이 중얼거렸다.
“련주가 꼭 무리수를 둔 것도 아니군. 나쁘지 않은 수야.”
천자의 입장에선 정(正)과 사(邪)가 공멸하는 것이 가장 좋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무림이 그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거니와 그 지경에 이르면 악에 받친 무인들이 어떤 일을 벌일지 몰랐다.
그렇기에 최선의 결과는 양측의 힘이 대폭 깎이는 것.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이겨선 안 된다.
되도록 비등한 세를 유지하며 앞으로도 계속 반목해야 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봤을 때 현재 열세인 사마련주로서는 괜찮은 수를 썼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결단을 내리고 실행까지 한 건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자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음…….”
정광으로서도 의외의 일이었기에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마련의 세력권인 강서성(江西省), 절강성(浙江省)과 인접한 안휘성(安徽省)의 남궁세가를 칠 줄 알았는데. 아니면 호북성(湖北省)에서도 남쪽에 있는 제갈세가나…….’
허를 찔러 제갈세가와 같은 호북성에 있으나 더 멀리 있는 무당을 칠 줄이야.
그냥 제갈세가를 지나쳐 무당으로 달려간 것이다.
‘왜 전력을 집중하기 쉬운 남궁세가가 아니라 무당이지? 남궁세가를 치면 황실이 끼어들기 전에 세를 더 넓힐 수 있을 텐데.’
사마련이 생각보다 안 좋은 상황일지도.
머릿속에 몇 개의 가정이 떠올랐으나 확실하진 않았다.
직접 일이 흘러가는 추이를 보고 판단해야 했다.
‘다시 무당으로 돌아와서. 무림맹에서 논의했던 대로 제갈문형이 주의하라고 경고했겠지만…….’
머리 좋은 제갈문형의 본가인 제갈세가나 탐욕이 넘쳐서 제 가문을 끔찍이 아끼는 남궁세가와 달리, 도도하기 그지없는 무당이 말을 들어먹었을 것 같진 않았다.
중요한 것들만 챙겨서 튈 준비를 하거나, 위험해지면 구원하러 갈 때까지 몸을 피하라는 충고를 그들이 듣겠는가?
고고하게 우뚝 서서 올 테면 오라며 손짓하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사마련주가 창사와 부사의 죽음을 숨긴 것도 결국 이 이유였구나.’
우선 사마련 무인들의 사기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최고수들이 죽어나갔다는 걸 알게 되면 누가 싸울 맛이 나겠는가.
두 번째는 정파무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가균의 일도 사과 안 하고, 팔사 중 둘이 내게 죽었는데도 숨긴 사마련주다.’
아무리 체면이 중요하다 한들 무척 옹졸해 보이는 짓들이었다.
‘다들 그가 내게 또 다른 자객을 보내거나 사천성이라는 대마(大馬)를 잃지 않기 위해 원군을 투입할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체면을 지킬 거라고 말이야.’
정광이 사천성으로 온 건 이미 전 중원에 소문이 퍼졌고 창사와 부사를 죽인 건 전서구로 무림맹에 소식이 전해진 상황.
무림맹의 원로들이 가만히 있을 리 있나. 자신들의 가문과 문파에 사실을 흘렸을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정파무림의 눈은 사천성에 쏠려 있을 터.
사마련주는 이렇게 될 걸 간파하고 허를 찌른 것이다.
‘거참. 만의 하나를 예상하긴 했어도 손발이 모자라니 답이 없네. 왜 하필 무당이야?’
그렇다고 열이 받거나 하진 않았다.
그에 맞게 수정해서 박살 내주면 되니까!
정광은 투웅에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해 준 뒤 물었다.
“가주. 사석(捨石)으로 던져지신 거, 이제 확신하시죠?”
“……련주는 창사와 부사 두 분의 죽음을 여전히 숨기고 있네. 그 의중이 너무 뻔히 보여서 불쾌할 정도야.”
진옥룡은 별것 아니니 겁먹지 말고 싸워라.
황실이 개입하기 전에 사천 지부 무인들의 피를 밟고 최대한 많은 이권을 먹겠다는 수작이었다.
“내막을 다 알게 됐네. 이 판국에 련주가 참 열심이군, 지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어. 이런 헛소리를 할 순 없지 않나. 헌데 자네, 왜 웃고 있지?”
“기분 탓이시겠죠.”
“아니. 분명 웃고 있어. 무당에 안 좋은 감정이 있었나?”
“아뇨. 사마련주가 남궁세가를 쳤으면 나쁘지 않은데…… 아니, 애통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다른 곳도 많은데 하필 무당이라니 감탄해서 그래요.”
“……자네, 소문대로 남궁세가와 사이가 안 좋았군.”
정광은 두 손을 모으며 상관없는 이를 찾았다.
“원시천존. 그런 헛소문은 자제 좀 부탁드립니다. 그보다 빨리 움직여야겠어요. 준비되셨나요?”
“서신의 내용은 당분간 숨길 테지만 다른 쪽에서 연락이 또 올 걸세. 수하들이 동요할 게야. 련주의 힘을 다시 느끼게 될 테니까.”
“그 전에 끝내야죠.”
“그렇게 안 되면?”
“단속 잘하시고 계실 거라 믿을게요. 제가 연락을 드리면 바로 움직이실 수 있을 만큼요.”
“후우우…….”
투웅이 한숨을 깊게 내쉰 뒤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의 전신에서 꺾이지 않을 의지가 일어났다.
“련주가 어느 쪽으로 움직일 것 같은가? 제갈세가? 남궁세가?”
“이제 와서 안휘성에 있는 남궁세가로 가면 무림맹에서 사마련 총단으로 가는 길이 뻥 뚫리죠. 어차피 돌아가는 길이니 제갈세가를 마저 먹고 총단으로 가려고 할 거예요. 만약 기책(奇策)을 부린답시고 다른 곳으로 가면 정말 바보죠.”
“이해했네. 무운을 비네.”
투웅이 진지한 얼굴로 포권하자 정광도 싱긋 웃으며 두 손을 모았다.
“안녕히 계세요. 연락드릴게요.”
“그래. 기다리고 있겠…… 엇?”
정광은 바로 잠행술을 펼쳐 사마련 사천 지부를 벗어났다.
무척 바쁜 하루였다.
* * *
정광은 당가에 도착하자마자 당영중, 대정, 청유를 찾았다.
날이 밝으면 사마련 사천 지부로 향할 계획을 논의 중이던 세 사람은 침착한 얼굴로 정광을 맞았다.
“고생했네. 어찌 됐는가?”
당영중의 물음에 정광이 답했다.
“사마련주의 서신이 왔는데요, 그 내용이…….”
세 사람은 얼마 듣지도 않고 깜짝 놀라 말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당을 치러 갔다고?”
“아미타불. 사마련주가 기어코 일을 벌이는구나!”
“무량수불. 본문에 이어 무당까지…….”
“저기요, 이제 시작인데.”
세 사람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고, 정광은 자신의 생각까지 더해 전부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됐어요. 아직 무림맹에서는 소식 안 왔죠?”
“무당으로 움직이면서 연락한 사마련보다는 늦게 알고 보낼 수밖에 없겠지. 헌데 믿을 만한 얘기인가?”
당영중이 묻자 정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렇겠지. 그래, 어쩔 생각인가?”
정광은 당영중, 대정, 청유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일단 움직일게요.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무당은 이미 늦었을 테고. 제갈세가로 가겠다는 말이군.”
“네. 세 분은 원래 계획대로 사마련 사천 지부를 포위하고 시간을 끌어주세요. 상황 변화에 따라 논의했던 대로 움직여 주시고요.”
정광의 요청에 대정이 의문을 표했다.
“이보게, 진옥룡. 그럴 게 아니라 우리 중 일부는 자네와 함께 가서 제갈세가를 돕는 게 낫지 않겠나?”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투웅을 견제해야죠. 그의 마음이 언제 변할지 모르니까요.”
“그도 그렇구먼. 사람의 마음은 부처께서도 모르시니. 아미타불…….”
잠자코 있던 청유가 입을 떼었다.
“진옥룡, 부디 조심하게나. 본문은 자네의 도움을 잊지 않을 걸세.”
“걱정하지 마세요, 장문인. 영원히 기억할 테니까요.”
“…….”
정광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서신을 쓴 뒤 당영중에게 건넸다.
“무림맹에 소식 전하실 때 이것도 함께 부탁드려요.”
“제갈 군사에게 말이지? 그렇게 하겠네. 그 전에 읽어봐도 되겠나?”
“물론이죠.”
당영중은 서신을 읽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에 놀란 대정과 청유가 다급히 다가갔다.
“가주. 같이 봅시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당영중은 말없이 서신을 줬고 두 사람은 그 내용을 읽다가 입을 떡 벌렸다.
내용도 놀라웠으나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게 또 있었다.
그들은 정광에게 시선을 돌리며 동시에 말했다.
“자네, 정말 악필이었구먼.”
“자네도 못하는 게 있었나?”
사천성을 대표하는 세 거두(巨頭)가 놀랄 만큼 정광의 필체는 형편없었다.
아니, 놀랄 일이 아닐지도.
글씨는 마음의 거울이라더니 과연.
옛말이 틀린 게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정광은 당당했다.
“글씨라도 이래야 좀 인간적인 면이 있죠.”
“…….”
“그럼 주무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정광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당영중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바로 안 가고?”
“네.”
“급한 일 아닌가?”
당영중으로선 타당한 의문이었으나 정광의 지론은 항상 같았다.
“최상의 몸 상태로 출발해야 더 빨리 가고 뭐라도 할 수 있죠. 단원들이 푹 자고 일어나면 바로 떠날게요.”
* * *
다음 날 아침.
정광은 무혈단원들을 불러 모았다.
영문도 모르고 포함된 철월과 강제로 단원이 된 위진홍도 함께였다.
“어제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정광의 얘기가 이어질수록 무혈단원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철월은 알아듣지를 못해 담담했고, 위진홍은 체력 단련이 무척 힘들었는지 비틀거리면서도 두 눈을 번뜩였지만…….
몇 차례의 질문과 대답이 오간 뒤, 정광이 물었다.
“꽤 위험할 것 같은데. 빠지고 싶으신 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무혈단에 겁쟁이는 없었다.
물론 철월은 아무 생각 없이 눈만 끔뻑거렸고, 위진홍은 사석으로 던져진 것에 분노하여 당장 달려가 복수하고 싶은지 안절부절못했다.
정광은 빙긋 웃은 뒤 위진홍에게 물었다.
“대충 그림 나와요?”
위진홍이 이글거리는 눈과 달리 퉁명스러운 어조로 답했다.
“어느 정도는. 가보면 확실히 나올 것 같소.”
“기대할게요. 장이 소협, 보급 준비는 돼 있죠?”
장이가 가슴을 활짝 폈다.
“네, 단주. 명하신 대로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육포는 물론 명주(名酒)까지 말입니다.”
“역시. 자오, 생포된 사마련 무인들은요?”
자오도 허리를 바로 세웠다.
“우이정에게 맡기고 가면 됩니다. 목숨 소중한 줄 아는 자이니 제대로 할 겁니다.”
“좋아요. 반 시진 후에 다시 모이죠. 부단주, 단원들을 챙겨주세요.”
당오군이 믿음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소, 단주. 최선을 다하리다.”
“아. 사제, 사천성에 투자할 만한 곳은 찾은 거지?”
“사, 사형. 그, 그게…….”
오직 백승무의 얼굴만 시커멓게 죽어갔다.
그리고 정확히 반 시진 후.
무혈단은 정파 무인들의 환송을 받으며 말에 올라 당가타를 떠났다.
항상 그랬듯이 예비마도 함께였기에 무척 빠른 질주였다.
“…….”
한동안 묵묵히 달리던 언의진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악연이지만 연이 깊은 제갈린의 가문이 걱정돼서였다.
“단주. 제갈세가는 괜찮을까요? 이미 늦은 건 아닐지…….”
“지봉(知鳳) 제갈 소저 때문에 그러세요? 맹에 있으실 텐데 왜 걱정하세요?”
“…….”
왜 걱정하냐니.
친우의 가문을 걱정하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 아닌가.
하지만…….
‘……뭐, 단주니까.’
언의진은 정광과 지내며 어느 정도 성정을 파악했기에 놀라지 않았다.
그는 그런 것에 서툰 사람이었다.
‘정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 자각을 못 하니…… 뭐라 해야 알아들을까?’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런 걸 설명하는 데 서툴렀다.
“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걱정돼요.”
정광은 언의진을 이해하진 못했으나 대답은 해줬다.
“생각하시는 것보다 사정이 나을지도 몰라요.”
“……네?”
정광은 무림맹에서 학창의(鶴氅衣)를 입은 채 백우선(白羽扇)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을 제갈문형을 떠올렸다.
그는 천하에 몇 안 되는 말이 통하는 자.
진짜 모사에 가까운 자였다.
‘그 가문 사람들도 그런 면이 있겠지.’
정광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마련이 제갈세가를 치려면 고생깨나 할걸요. 별 재미도 없을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