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집단지성(集團知性)
무당 제자들은 애써 담담한 얼굴로 대진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걱정은 되나 어쩌겠는가.
무당은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봐야 했다.
“……대진아.”
마지막 인사를 건넨 건 선우였다.
“진옥룡이 제시한 방법만이 옳은 건 아닐 게다. 다른 길도 있을 터. 힘겨우면 언제든지 돌아오거라. 이해했느냐?”
“장문인. 소질은 해낼 겁니다. 어떻게든 본문을 일으키고야 말겠습니다.”
“무량수불…….”
선우는 깊이 탄식했다.
사질의 결연한 맹세에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 너는 언제나 기대를 뛰어넘는 아이였지. 너를 믿으마.”
정광이 옆에서 씩 웃었다.
“저도 믿으세요.”
“……그보다 말일세.”
“네?”
선우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자씩 끊어 말했다.
“무.당.마.검.만은 안 되네.”
“그게 딱인데.”
“어쨌든 안 돼.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일세.”
선우는 정광에게 신신당부한 뒤 제자들을 이끌고 떠났다.
말을 탈 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사마련의 말에 몸을 실었다.
달리다가 계속 낙마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저러다가 몇 군데씩은 부러져서 무당산에 도착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무공을 익혔으니 뼈마디가 단단할 터.
정광은 신경을 끊고 무혈단에게 출발을 명했다.
“우리도 가죠.”
“네! 단주!”
그들은 당양(當陽)을 향해 말달렸다.
잠도 자지 않았다. 식사는 말 위에서 건량과 육포로 때웠다.
사람도 말도 지칠 대로 지칠 수밖에 없는 강행군!
마침내 당양에 도착하자 정광은 지나다니는 이들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리고 일행을 이끌었다.
“어디로 가는 것이오?”
당오군의 물음에 정광이 답했다.
“장판파(長板坡)요.”
“장판파?”
“네.”
정광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장판파라면…….’
‘촉한(蜀漢)의 조운이 조조의 대군을 헤집고, 장비가 호통만으로 하후걸을 죽이고 조조가 퇴각하게 만들었다는 곳 아닌가?’
‘거길 대체 왜?’
잠시 뒤, 그들은 깨달았다.
‘아! 그들이 그랬듯이 만약 사마련이 또 몰려오면 그곳에서 일전을 겨룰 생각이구나!’
‘소수로 다수를 막을 수 있는 곳이겠지. 과연 단주!’
‘흥! 눈빛을 보아하니 이제야 깨달았군. 하여간 전부 멍청하다니까.’
무혈단은 의욕에 가득 차 장판파에 이르렀다.
그리고 깊은 실망에 빠졌다.
‘뭐야 이거.’
‘이렇게 별 볼 것 없는 곳에서 그런 전투가 있었다고?’
‘소수로 다수를 이기기는 무슨. 이득 볼 게 하나도 없네.’
정광도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 괜히 왔네. 다음으로 가죠.”
다음?
‘역시 단주.’
‘생각해 둔 곳이 또 있구나!’
‘어디지? 그럴 만한 데가 어디야?’
그다음은 머리가 잘린 관우의 시신이 묻혀 있는 관릉(關陵)이었다.
정광은 그곳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도 볼 게 없는 건 마찬가지네. 차라리 멀더라도 번화한 무한(武漢)으로 갈걸.”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단원들을 정광이 위로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숙소는 괜찮은 곳이 있겠죠.”
“……!”
깊은 뜻이 있어 당양으로 온 줄 알았는데.
겨우 그거였다고?
심지어 자칭 진천뇌(震天腦), 타칭 사뇌(邪腦)인 위진홍조차 상상도 못 했던 일!
대진은 무당의 명운을 건 판단을 잘못한 건 아닌가 고민했다.
오직 백승무와 자오만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 자. 다들 허리 좀 세우세요. 어깨도 펴시고.”
정광은 일행을 질책한 뒤 두 사람을 불렀다.
“자오. 정현 사형.”
“네!”
“어? 나?”
정광이 두 손을 모으며 정중히 말했다.
“무량수불. 되도록 좋은 곳으로 부탁드릴게요.”
* * *
자오와 정현은 정광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당양에서 최고를 다투는 고급 객잔들 중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곳을 바로 알아냈다.
무혈단원들은 객잔의 현판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안객잔(平安客棧)이라.
이름부터 지치고 꾀죄죄한 그들에게 딱 어울리지 않는가!
다음은 백승무의 차례.
오랜만에 활약할 기회를 얻은 그는 정광을 흡족하게 했다.
주인과 치열한 격전 끝에 저렴한 가격으로 객잔을 통째로 빌린 것이다.
이미 묵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나 곧 나갈 계획이었고, 방이 비면 무혈단이 순차적으로 돈을 지불하여 전부 쓰는 방식이었다.
“단주. 이건 너무 과하지 않나?”
고급 객잔에 처음 온 대진이 당황해서 물었으나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부님과 무림맹의 선배들이 찾아오실 테니 미리 준비해 놔야죠. 우리만 이런 곳에 묵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애초에 왜 이렇게 비싼 곳을 고른 거냔 말일세.”
힐난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광이 오히려 궁금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이게 비싼 건가요?”
“…….”
대진은 화려한 별채와 아름다운 후원을 바라보다가 그렇지 않냐는 듯 정광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나쁘지 않은 가격인데.”
“……그런가.”
정광은 대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지치셔서 헷갈리셨나 봐요. 방에 들어가셔서 따뜻한 물로 씻으신 뒤 푹 쉬시죠. 때 되면 나오셔서 식사하시고요. 아. 방으로 고기랑 술 좀 넣어드릴까요?”
“……괜찮네. 이따 보세나.”
무혈단원들은 깨끗이 씻고 푹 잤다.
대체 얼마 만에 침상에서 자는 건지. 잠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반나절을 꼬박 잔 그들은 식당에 모여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철월은 어찌나 많이 먹는지 객잔의 요리 재료들을 동낼 기세였다.
객잔 주인은 잔뜩 신이나 숙수와 점소이들을 지휘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칼질하랴, 접시 나르랴 인상을 찌푸릴 법도 하건만.
숙수도 점소이도 싱글벙글한 얼굴로 최선을 다했다.
백승무가 섭섭지 않게 은자를 쥐여준 것이다.
마음이 기쁘니 맛도 접대도 훌륭해질 수밖에.
무혈단은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광도 피식 웃으며 요리와 술을 즐겼다.
‘사제는 역시 사람을 다룰 줄 안단 말이야. 그에 비해 이놈은…….’
정광의 옆자리에서 조용히 깨작거리던 위진홍이 인상을 썼다.
“왜 그러시오?”
“뭐가요?”
“단주의 눈빛이 영…….”
“기분 탓이겠죠.”
사람 대하는 건 엉망인 주제에 눈치는 제법 빠르다.
‘머리도 나름 괜찮긴 하지.’
정광은 생각 난 김에 물었다.
“군사. 사마련주가 어떻게 나올 것 같아요?”
위진홍의 눈이 빛났다.
마치 언제 물어볼지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모습 아닌가.
정광이 안타까운 얼굴로 두 손을 모았다.
“무량수불. 우리 군사님, 외로우셨구나.”
“외, 외로웠냐니! 누가? 설마 날 말하는 것이오?”
“힘내요.”
“아, 아니라니까!”
무혈단원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물론 철월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무뇌는 외롭다! 외톨이다!”
“네 녀석도 그렇지 않느냐!”
위진홍이 버럭 화를 내자 철월이 으스댔다.
“철월은 친우가 있다! 자장이, 안 그런가?”
“……그, 그렇습니다.”
장이가 벌게진 얼굴로 마지못해 답하자 단원들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위진홍은 주먹을 쥐고 바들대다가 나직이 투덜댔다.
“구룡이니 사봉이니 하더니만 개뿔. 하나같이 가벼운 자들뿐이구나.”
“철월은 무겁다!”
“너만 조용히 하면 돼!”
위진홍이 벌떡 일어나 삿대질하자 정광이 말렸다.
“자. 자. 그만. 군사, 하던 얘기나 마저 하죠. 단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말해주세요.”
정광은 객잔 주인과 점소이들에게 잠시 물러나 달라고 청했다.
그들이 나가는 사이, 위진홍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에 다시 오만함이 담겼다.
“련주는 총단에 거의 도착했을 것이오. 전서구가 됐든 도주한 자가 돌아가서 보고하든 제갈세가와 무당파의 일이 잘못됐다는 걸 곧 알게 되겠지. 화풀이로 몇 명 정도는 목을 날릴 테고.”
여기까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
그다음이 문제였다.
“이렇게 된 이상 황제의 중재를 바랄 수는 없게 되었소. 황제가 나서더라도 한참 뒤가 되겠지. 지금도 열세인데 앞으로는 어떻겠소? 련주는 무척 초조할 것이오.”
팽강휘가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사마련주는 무척 냉정하고 잔인한 자라 들었네. 막다른 골목에 갇히기 전에 큰일을 벌일 거라 예상하는 건가?”
“흥. 팽가치고는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군.”
“어허. 편견일세, 편견. 본가 사람들은 무척 똑똑한 편이야. 그래서, 어떤 사고를 칠 것 같나?”
“그야…….”
무혈단원들의 시선이 위진홍의 입에 집중됐다.
그런데 위진홍이 뜸을 잔뜩 들이는 것 아닌가.
‘어서 말해봐.’
‘궁금하잖아.’
위진홍은 그들의 시선을 잔뜩 즐기다가 오만하게 말했다.
“그대들에겐 말 안 하겠소.”
뭐?
단원들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위진홍은 정광에게만 말했다.
그것도 알아듣지 못할 표현으로.
“튀어나온 날카로운 못을 때리고 나무가 쪼개지게 할 것이오. 이제 됐소?”
“확신해요?”
“물론.”
위진홍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련주는 바보가 아니오. 뭔가 더 있을 수도 있지. 허나 그걸 알아내기엔 정보가 너무 없소.”
“그 정도까지 생각한 것만 해도 훌륭해요. 군사는 더 크겠어요.”
정광이 대견하다는 듯 칭찬했다.
살짝 자신 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위진홍의 눈이 커졌다.
“그, 그렇게 보이오?”
“네.”
“……하하. 하하하하.”
위진홍의 웃음소리는 작았으나 진한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가 천하에서 유이(唯二)하게 인정하는 이들 중 한 명에게 칭찬을 받자 가슴이 터질 정도로 만족감이 들어찼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도 모르게 솔직한 말이 나왔다.
“……고맙소.”
“뭘 그런 걸 가지고. 정말 외로우셨구나.”
“……아니라 했잖소이까!”
정광은 위진홍의 고함을 대충 흘리며 단원들에게 말했다.
“궁금하더라도 잠시 참으세요. 아셔서 별로 좋을 게 없거든요.”
“아하!”
언의진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물었다.
“무뇌가 그래서 일부러 우리에게 안 알려준 거군요?”
“그건 그냥 성격이 나빠선데.”
“……아하.”
“어쨌든 절 믿고 기다려 주세요. 때가 되면 알려 드릴게요.”
단원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정광을 그만큼 믿기 때문이었다.
“군사의 의견은 잘 들었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죠. 이번 건 모두의 힘이 필요해요. 집단지성(集團知性)이라 할까?”
“사제, 무엇이길래?”
정우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정광이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대진 도장님의 별호를 지어드려야죠. 듣기만 해도 무당에 입문하고 싶어지는 것으로.”
* * *
단원들은 흥미로운 얼굴로 한 탁자에 둘러앉았다.
정광은 그들 중 한 명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다른 이도 아닌 바로 대진!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대진의 눈에 어린 혈광이 잠깐이나마 흩어졌다.
“……당사자인 나를 왜 빼는가?”
“도장께서는 산에만 계셔서 감각이 없으시잖아요.”
“……자네도 강호에 나온 지 얼마 안 됐다고 들었네만.”
“하산하신 지 칠주야도 안 되셨으면서 어딜 비교하세요.”
“……그래도…….”
“무엇보다 당사자시니까 안 돼요. 어린아이들에게 먹히려면 살짝 유치하게 지어야 하거든요. 들으시면서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대진의 눈이 커졌다.
살짝 유치하게라니.
말이 살짝이지, 말도 안 될 정도로 괴이한 것들이 나올 것 같지 않은가.
“……꼭 그런 것으로 해야 하는가?”
“더 좋은 방법이 있으시면 제시해 주시던가요.”
그런 게 있을 리 있나.
대진은 어깨를 늘어뜨린 채 방으로 들어갔다.
껄끄러운 당사자가 없어지자 단원들은 열정적으로 나섰다.
본래 별호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천천히 퍼지는 것.
이렇게 계획적으로 만들어 퍼뜨릴 생각을 하자 재미를 느낀 것이다.
시작은 당오군이었다.
“강하게 인상을 주려면 짧고 굵게 두 글자로 가야 하오. 무림의 최고수들도 그렇고. 십존 어르신들을 생각해 보시오.”
“오오.”
“역시 부단주.”
“그럴듯한데?”
하지만 정광은 아니었다.
“아뇨. 진짜 강자는 세 글자죠”
“……단주가 그러니까?”
“네.”
“……그럼 옥기린은?”
“세상만사 예외는 있는 법. 어쨌든 대진 도장은 무조건 무당이 포함된 네 글자로 가야 해요. 무당이란 이름을 강조해야 하거든요.”
앞엣것은 미심쩍었으나 뒤엣것은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음. 무당마검이 딱인데. 장문인께서 하도 반대를 하셔서 아쉽네.”
정광이 중얼거리자 정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럼 무당검마는 어때? 입에 아주 착착 감기는걸.”
“말장난이잖아요. 기각요.”
“크윽. 내가 질쏘냐.”
수도 없이 많은 별호가 쏟아져 나왔다.
이런 일에 흥미가 없을 줄 알았던 당예지와 혜진은 물론 점잔빼던 공우마저 몇 개씩은 말했을 정도.
자오 역시 진지하게 참전했다.
“꼭 짧은 별호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조금 길어도 뜻만 인상적이면 먹힐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요?”
“천상천하유아독존천지진동무당진혈극무검존(天上天下唯我獨尊天地震動武當眞血極武劍尊)…….”
“중간에 까먹겠네요. 기각.”
위진홍은 무혈단의 군사가 된 죄로 그것들을 모두 종이에 적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나마 나은 것들도 가관 아닌가.
무당혈혼(武當血魂).
무당혈검(武當血劍).
무당혈로(武當血路).
무슨 놈의 혈(血)이 그리도 많은지.
복수의 화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런 것이었으나, 하나같이 무당 제자였다가 악행을 저지르고 변절한 망종 같은 느낌이었다.
‘……차라리 정파란 걸 드러내고 애들이 동경할 만큼 유치하게 하려면…….’
위진홍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무당혈선(武當血仙)? 아!”
스스로 말했지만 뭐 이런.
정말 유치하다 못해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느끼는 사람도 있었으니…….
정광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위진홍을 칭찬했다.
“이야.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