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일도양단(一刀兩斷)
“황제가 내게 무림맹을 치라고 했다. 무림맹이 사마련과 싸운 뒤 다시 배에 탔을 때.”
수왕의 말에 정광이 눈을 크게 떴다.
“황제라뇨! 어찌 그런 불경한 말씀을! 황제 폐하 아닌가요?”
“그의 마음이 떠난 지 오래다. 그가 벽에 썼던 글이 훼손됐을 때, 나도 그를 떨쳐냈지.”
“저런. 생각보다 상처가 크셨네요.”
“시끄럽다.”
“넘어가 드리죠. 그나저나 황제 폐하, 진짜 음흉하신 분이네. 이이제이(以夷制夷)라. 사마련을 무림맹으로 치고, 무림맹을 장강수로연맹으로 치겠다는 거잖아요.”
무림맹이 이번 싸움에 전력을 동원한 건 아니었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장강을 넘어 올라왔던 사파인들이 대부분의 성에 남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
그들을 대비하기 위해 대다수의 가문과 문파 수장들은 본거지에 남아야 했다.
허나 이곳에 모인 힘도 대단한 게 사실.
만약 이들이 모두 장강에 수장된다면?
“무림사가 백 년 이상 후퇴하겠네. 과욕을 부리시는 걸 보니 오늘내일하시나 보네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많이 안 좋아졌다더군.”
“황태자 전하도요?”
“그렇다. 황제가 죽으면 얼마 안 가 아직 어린 황태손이 제위에 오를지도 몰라.”
“그러니 눈엣가시 같은 무림을 제대로 한번 밟아놓고 물려주겠다?”
“바로 알아듣는구나. 헌데 왜 놀라지 않느냐?”
정광이 피식 웃었다.
“황제 폐하께선 그러고도 남을 분이시니까요.”
“……인물은 인물이지.”
수왕도 인정했다.
비록 그의 도움을 받았었다곤 하나, 별다른 병력도 없이 황군(皇軍)에게 쫓기면서도 모든 것을 이겨내고 제위(帝位)에 오른 효웅(梟雄) 아닌가!
“아니, 그 정도로는 부족해. 위험한 자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가 이렇게 나오리란 것을 예상하고 있었느냐?”
“혹시나 했죠.”
“그럼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겠구나.”
정광은 상체를 살짝 기울이며 수왕의 눈을 들여다봤다.
“사마련과의 싸움에서 최대한 적은 피해로 승리한다. 이것뿐이죠.”
전력을 보존한 무림맹을 원래부터 열세인 장강수로연맹이 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되면 수왕도 황제에게 변명할 말이 생길 터.
똑똑한 황제이기에 불가능한 일을 가지고 책잡지는 않을 거란 얘기였다.
“할 수 있겠느냐?”
수왕의 무거운 물음에 정광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그러려고 했는데요, 뭐.”
자신이 주도하다시피 해서 커진 싸움이었다.
그래놓고 사람을 헛되이 소모시킬 리 있나.
“…….”
수왕은 정광을 한참 노려보다가 일어섰다.
“똑바로 해야 할 것이야.”
“그런데 이런 뻔한 일을 왜 굳이 알려주신 거죠?”
정광이 떠나려는 수왕에게 묻자.
그는 등을 보인 채로 답했다.
“네게 원한을 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서지.”
* * *
다음 날 아침.
정광은 푹 자고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믿음이 조금이나마 생긴 건가.’
어제의 저녁 식사 덕분인지 무림맹 무인들은 장강수로연맹 수적들이 주는 식재료를 거부하지 않고 있었다.
‘다들 고생이 많구나.’
무혈단원들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들도 무척 바빴다.
심지어 십존조차 제갈문형의 화술에 말려 이런저런 일들을 떠맡아 뛰어다니고 있을 정도.
‘저놈들만 한가하네.’
백기돈과 왕팔의 시선이 느껴졌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으나 정광의 감을 속일 수는 없었다.
‘수왕이 시켰겠지.’
수왕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해 오며 공포심을 가슴에 새겼을 장강쌍위(長江雙衛)가 황제 쪽으로 배를 갈아탔을 확률은 낮았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황제의 간자에게 보여주려고 저러는 것이리라.
‘그건 그거고.’
정말 불쾌한 시선은 따로 있었는데.
환존의 것이었다.
그다음으로 불쾌한 건 권존의 것이었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주시하다니.
‘정파 세력의 서열 정리도 할 겸, 저 둘부터 손봐줘야지.’
그때, 일반 무인 한 명이 급히 달려왔다.
“진옥룡, 운기조식이 끝나신 겁니까?”
“네? 아.”
정광은 몸을 돌려 천막 입구에 붙어 있는 종이를 떼어냈다.
[진옥룡 운기조식 중. 출입금지.]제갈문형이 이른 아침부터 일거리를 떠넘길까 봐 자기 전에 붙여놓은 것이었다.
“네. 지금 막 끝났어요.”
“그러시군요. 군사께서 찾으신 지 오래됐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그보다 밥부터 먹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정광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식사를 준비하던 이들이 크게 외쳤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어서들 오십시오!”
정광은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어젯밤처럼 장강수로연맹이 제공한 고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무량수불! 역시 이상 없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
이렇게 누구보다 빠르게 식사를 마쳤는데.
환존이 못마땅한 눈으로 노려보며 나무랐다.
“도인(道人)의 몸으로 저렇게 고기를 탐하다니. 말세로군, 말세야.”
어쩌라고.
세상이 말세 아니었던 적이 있나?
매 세대마다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아닌가?
‘어쨌든 시비를 먼저 걸어줬으니 받아줘야겠지.’
정광은 가볍게 대꾸했다.
“다른 분들을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서 그런 건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곤륜도 문제로다. 제자를 저렇게 키워서야 쓰겠는가.”
정광이 받아치기 전에, 허청이 몸을 일으켰다.
“본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요?”
“알 만한 사람이 왜 묻는가?”
“몰라서 여쭙는 것입니다만.”
환존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자네는 자네 제자의 행실이 옳다고 보는가?”
“그건 아닙니다.”
“결국 내 말이 맞다는 이야기지 않나?”
“그것도 아니지요.”
허청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먼저 제자 자랑 좀 하겠습니다.”
그는 정광이 이제껏 해온 일들을 늘어놓았다.
사비를 털어 어려운 이들을 돕고, 힘겨워하는 민초들을 만날 때마다 빠짐없이 축원했으며, 악한 이들을 징치하여 세상을 편하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근래에 이런 공을 세운 이가 또 있는지요?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만.”
“공을 세웠으니 허물이 있어도 상관없다는 얘기인가?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그 허물은 세상에 해를 끼치는 게 아닌, 본인의 수양에 방해가 되는 것들뿐입니다. 본디 육식과 음주를 금하는 것은 맑은 신체와 정신으로 도를 닦아 등선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
“허나 정광은 이미 세속에 깊이 관여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본인의 수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천하의 안녕을 위해, 민초들을 위해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궤변일세!”
“무량수불. 자신의 도가 아니라 천하의 도를 위해 정진하는 와중에 부딪히는 시련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이게 정광을 바라보는 저의, 곤륜의 시각입니다.”
환존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궤변을 이리도 매끄럽게 말하다니!
제자나 사부나 한통속 아닌가!
‘고얀 녀석 같으니. 감히 나를 요설로 가르치려 들어?’
하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불존이 반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진옥룡과 곤륜의 도가 높고도 높구나. 고맙네, 허청. 좋은 얘기 잘 들었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남궁학이었다.
“저 녀석이 난 녀석이긴 하지. 자네가 사부였나? 잘 키웠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당기황, 걸존, 창존도 나서서 역시 내 제자의 사부답다, 누가 감히 내 제자를 욕하는 것이냐며 눈을 부라렸으나…….
‘노망났다더니 과연.’
‘천하의 우환이로구나.’
‘눈을 마주치면 안 돼.’
모두 못 들은 척하며 허청과 정광에게 정중히 포권했다.
허청의 말을 인정함과 동시에 정광의 삶에 예를 표한 것이다.
‘이놈들이!’
환존은 분노한 눈초리로 사람들을 쓸어봤다.
권존은 알 수 없는 눈으로 정광을 보고 있었고.
정광은 가슴 벅찬 감동에 몸을 떨었다.
‘이제 마음껏 먹고 마셔도 되겠구나!’
강제로 모시게 된 사부였으나 과연 사부다웠다.
천형(天刑)이나 다름없는 족쇄를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끊어주지 않았는가!
‘언제 한번 좋은 곳에 모셔야겠어.’
기분이 좋아지니 마음도 넓어졌다.
이게 도가 아니면 무엇이 도겠는가?
‘혼 좀 내주려고 했는데 개망신만 주고 끝내자.’
정광은 더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갈문형에게 물었다.
“군사님. 곧 시험 운행 해보실 거죠?”
정광의 말뜻을 알아챈 제갈문형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야겠지. 배를 처음 타보는 이들이 많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제가 시범을 보여 드릴게요.”
“호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그래, 누구와 함께하려고?”
정광은 환존을 슬쩍 봤다.
환존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지금 나를 지목한 게냐?”
“아뇨. 그냥 둘러보다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요.”
“헌데 계속 보고 있구나.”
“마주친 김에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감히…….”
환존이 이를 가는데 남궁학이 중얼거렸다.
“상대를 보는 눈이 없군.”
환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을 알아줘서 고맙네.”
“아니, 네 눈이 그렇다는 말이다.”
“무어라?”
남궁학은 오만한 눈빛으로 환존을 쏘아봤다.
“환존이라는 허명에 매몰된 건가. 네가 저 녀석의 상대가 될 것 같으냐?”
“하! 치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강호 출입을 안 했나 보군. 자네부터 상대해 줄까?”
정광이 끼어들었다.
“아뇨. 저부터 하셔야죠.”
“…….”
“빨리 드세요. 바로 시작하게.”
“……내 오늘 네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마!”
잠시 뒤.
강물 위에 떠 있는 배에 두 사람이 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갈문형이 외쳤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비무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나 시범을 보이기 위한 것! 내공을 쓰지 않고 대결하는 겁니다! 배를 다 부수면 수왕께 죄송한 일 아닙니까?”
그의 말대로 병기의 유불리도 없애기 위해 두 사람 모두 평범한 검을 차고 있는 상태였다.
환존이 정광을 노려보며 속삭였다.
“내공을 안 써서 다행이구나. 네게 조금이나마 유리해졌어.”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마찬가지인데요, 뭐.”
“…….”
분노가 극심해지면 오히려 냉정해지는 걸까?
환존은 머리가 차가워졌다.
‘이런 천둥벌거숭이를 봤나. 제정신이 아니로다.’
하늘이 내린 기재라 해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
쌓아온 세월에 따라 내공의 깊이가 달라질 수밖에 없거늘, 어차피 마찬가지라니?
‘지금껏 들어온 소문이 모두 사실이어도 내가 질 리 없다.’
이번 폐관수련에서 적지 않은 것을 얻은 참이었다.
까마득하게 어린놈에게 그걸 시험하는 게 아까웠으나 도를 넘는 도발을 당하자 마음이 바뀌었다.
“사지 중 하나만 자르고 끝내주지.”
“어? 그럼 맹 전력이 약해지는데. 비무의 취지와도 안 맞고요. 다른 분들이 납득할까요?”
“……후우우. 하루 이틀 정도 침상에 누워있게 해주마.”
“안 그래도 푹 자고 싶었는데 자상하셔라.”
환존의 차갑게 식었던 머리가 폭발했다.
“와라! 삼초를 양보하마!”
“조금만 더 쓰시죠.”
“…….”
“할 수 없죠. 그럼 갈게요. 일초!”
정광은 검을 뽑으며 달려들었다.
평범한 청강검의 검첨(劍尖)이 여러 개로 불어나 상대를 향해 쏘아졌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검식이었으나.
“흥!”
상대는 환존이었다.
그의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와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화산파 진산 절기 칠절매화검(七絶梅花劒)!
‘향류천리(香流千里)!’
화려한 변초가 쭉 이어지며 정광의 검을 계속 쳐냈다.
“오오. 이초!”
정광이 검으로 삐딱한 원을 그리며 환존의 검을 잡아당기자.
환존의 눈이 빛났다.
‘매화난영(梅花亂影)!’
그의 검이 정광의 원에서 벗어나 수많은 매화를 그리며 어지럽게 떨어져 내렸다.
“좋네요. 삼초!”
정광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그대로 내려쳤다.
환존의 눈에 어처구니없는 빛이 떠올랐다.
‘마지막 삼초를 이렇게 무식한 검초로 쓴다고?’
아니, 단순한 공격일 리가 없다.
혹시 모를 변초를 대비해 최선을 다해 막아야 했다.
‘만화성막(萬花成幕)!’
수많은 꽃송이가 환상처럼 피어났다.
환존(幻尊)이라는 별호에 걸맞는 아름다운 초식!
그것들로 머리 위는 물론 전신을 감싸는데.
정광이 노리는 건 그의 천령개뿐이었다.
그대로 무식하게 떨어져 내렸다.
쩡!
‘이런 미친!’
환존은 입을 떡 벌렸다.
천하의 어떤 검수(劍手)가 검을 이따위로 쓴단 말인가!
검이란 생각보다 부러지기 쉬운 병기다.
내공을 불어넣어 보호하는 한편, 절대적인 자신이 있지 않은 이상 상대의 병기를 비스듬히 밀어내거나 흘려버리는 게 보통이건만.
대체 얼마나 세게 내려쳤는지.
두 검이 동시에 뚝 부러져 버렸다.
“이런. 아까워라.”
정광은 동강 난 검을 던지고 양손을 매만졌다.
“적수공권으로 겨뤄야겠네요. 괜찮죠? 십존씩이나 되시니까.”
환존이 이를 갈며 자세를 잡았다.
화산 절기, 비형권(飛刑拳)이었다.
“내가 비록 검에 치중해 왔으나 권으로 덤빈다고 될 것 같으냐?”
“물론이죠.”
정광은 맑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검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치중해 왔거든요.”
환존이 얼굴을 구기고.
정광은 신형을 날렸다.
“갑니다!”
곤륜 비전 뇌운권(雷雲拳)!
곤륜 비전 섬전수(閃電手)!
곤륜 비전 태청신권(太淸神拳)!
곤륜 비전 옥심인(玉心印)!
곤륜 비전 추운권(追雲拳)!
기타 등등의 잡기와 임기응변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경쾌한 타격음이 장강을 울렸다.
빠바바바바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