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29
29화
비무(比武)
정광은 전생에 여러 무공을 창안했다.
그의 성격에 맞게 많은 상대를 몰살시키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의외의 것들도 있었으니, 다수에게 동시에 전음을 보내는 ‘다전음(多傳音)’, 그가 명명한 이 전음술도 그중 하나였다.
이런 것들은 그가 젊었을 때 창안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적들은 강했고, 많았으며, 끝없이 달려들었다.
얼마 안 되는 충성스러운 수하들만으로 그들을 이기려면 신속하고 비밀스럽게 지시를 내려야만 했다. 그를 위해 창안했던 것이 바로 다전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처절한 창안 배경을 가지고 있는 전음술을 주환설이 알 수도, 막아낼 수도 없는 게 당연한 일. 정광은 지시에 따라 훌륭하게 해낸 표사들에게 만족하지 않고 채찍질을 가했다.
-저놈은 정말 나쁜 놈입니다!
“저놈은 정말 나쁜 놈입니다!”
-뒈질 때까지 두들겨 패고 싶을 정도로요!
“…….”
-어라? 말 안 해요? 그렇게 한 번 맞아보실래요?
표사들은 즉각 혼신의 내공을 끌어올려 외쳐댔다.
“뒈질 때까지 두들겨 패고 싶을 정도로 나쁜 놈입니다!”
“무림공적에 당당히 낄 만한 새끼지요!”
“강호의 도리를 지켜야 합니다! 죽이는 게 세상을 위하는 일이에요!”
“주환설, 이 개새끼야! 하늘이 네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청정한 곤륜산에서 수양해 온 곤륜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름 강호에서 구른 주가장과 백가상단의 이들도 무척 놀랐는데, 당사자인 주환설은 이마에 핏줄이 돋을 정도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정광이 그의 속을 뒤집었다.
“우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셨길래…….”
“아닐세!”
“그렇다는데요?”
“아니라고 했잖나!”
정광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듣자 하니 저 사람들, 도적이었다가 개과천선했다면서요? 주가장이 그걸 보증했고.”
“……그렇네.”
“그래서 주연표국 표사가 됐고요.”
“……그렇지.”
“주연표국은 주가장의 사업이죠?”
“……그래서?”
“백가상단도 아니고 그쪽 사람들이 토설했는데 부인하시면 어떡해요. 저들이 심장이라도 갈라서 속을 보여주면 믿으실 거예요?”
표사들의 얼굴이 노래졌다.
그들이 경험해 본 정광은 그러고도 남을 이 아니던가.
그들의 표정을 살펴본 주환설은 확신했다.
“……자네가 저들을 협박해서 거짓을 말하게 한 게 맞군.”
정광이 정색했다.
“제가 사기를 치고 있다고요? 그 말, 책임지실 수 있나요?”
주환설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가문이 명성 높은 무가요, 그의 무명도 높으나 구파일방의 하나인 곤륜이 사기를 치고 있다고 말할 배짱은 없는 것이다.
결국 곤륜을 상대하려면 공동이 나서야 했다.
마침 영추자의 전음이 들려왔다.
-쯧쯧. 그리도 자신 있게 말하더니 이게 무슨 꼴인가?
-……죄송합니다, 사백.
-이 일이 어찌 매듭지어지든 자네는…… 후우. 나중에 얘기하지.
영추자는 소매를 털며 일어섰다.
그의 섬전 같은 눈빛이 정광을 향했다.
“무량수불. 이 일은 주가장과 백가상단의 일이다. 곤륜이 끼어드는 건 말이 안 되지.”
영추자의 칼칼한 목소리는 무척이나 듣기 거북했다.
전생의 정광이었다면 순간적으로 턱을 날려 버렸을 정도로.
물론 지금도 그러려 했는데 운학의 말이 더 빨랐다.
“주연표국이 본문의 제자를 암습했으니 우리 일이 되었소이다.”
“암습? 내가 그걸 믿을 것 같소?”
“계속 얘기가 엇나가는구려. 성내에서 그 모습을 목격한 이들을 데려오겠소이다. 그리고 다시 얘기합시다.”
“그들도 믿을 수 없소.”
“허허. 그럼 어찌해야 믿겠소? 아니, 그보다 하나 물읍시다. 공동은 지금 무슨 명분으로 이 일에 나서는 것이오?”
“속가무문의 일을 본산이 어찌 모르는 척할까.”
“공동은 그 많은 속가무문들을 다 챙길 정도로 여력이 많나 보오.”
“지금 본문을 무시하는 것이오?”
운학이 빙그레 웃었다.
“진심으로 감탄한 것이오. 머나먼 감숙성에서 이곳까지 일이 터진 지 하루 만에 온 공동파 아니오? 누가 감히 무시하겠소이까?”
“……마침 일이 있어 지나가다 소식을 듣고 들린 것이외다.”
“무슨 일이길래 여기까지?”
“대답할 만한 일이 아니오.”
운학의 얼굴이 굳어졌다.
주가장이 백가상단을 칠 때 혹시라도 변수가 생기면 해결하려고 온 게 뻔히 보이거늘 계속 거짓말을!
그의 입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준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증인이 있소. 주가장 소속인 표사들이 토설까지 했소. 귀파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건 무엇이오?”
있을 리가 있나.
영추자는 평생의 절학을 펼쳤다.
바로 우기기였다.
“허어. 서로의 주장이 이리도 첨예하게 부딪히니 쉬운 일이 아니군. 다시 처음부터 되짚어봅시다.”
정광이 정정했다.
“첨예하게 부딪히는 게 아니라 그쪽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데요?”
“……정 자 배분이면 본도보다 한 참 아래이거늘 감히 어딜 끼어드느냐!”
“우와! 공동파는 옳은 말에도 배분을 따지나요? 요즘 세상에?”
“네가 지금 감히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그렇게 들리셨어요? 아아. 이제 알겠네.”
“이런 고얀! 똑바로 말해라!”
“찔려서 많이 아프셨나 봐요.”
“…….”
영추자에게서 강렬한 살기가 쏟아져 정광에게 향했다.
이에 대로한 운학이 기를 모아 일갈했다.
“갈! 지금 뭐 하는 짓이오!”
영추자의 살기가 사라졌다.
운학의 무거운 기에 그의 호흡이 흐트러진 것이다.
‘이자의 내공이 이렇게 깊었던가!’
영추자는 놀란 마음을 숨기며 날카롭게 따졌다.
“버릇없지 않소! 대체 사손(師孫)을 어찌 가르친 게요?”
“내가 배우고 있소이다!”
“그러게 사문의 어른이 똑바로 가르쳐야…… 지금 뭐라 했소이까?”
“마음뿐만이 아니라 귀도 막혔소? 내가 배우고 있다 했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되었소. 그대도 사손과 똑같군. 더는 할 말이 없소이다.”
“그럼 답이 나왔군.”
“무슨 말이오?”
“강호의 시비는 말로 안 통하면 비무(比武)로 가리는 법.”
잠시 말을 끊은 운학이 시선을 주환설에게 옮겼다.
“당사자끼리 풀면 될 일, 준비하시게.”
“당사자라 하심은…….”
“자네와 정광밖에 더 있나?”
시비는 당사자끼리 해결한다.
이것만큼 공정하고 확실한 게 없지만 의외로 무림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방법이었다.
무공이란 누군가에게 배우고 가르치는 것. 무인은 복잡한 사승관계에 얽혀 있기 마련이고 자연히 은원을 함께하게 된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기 부지기수다. 한번 잘못 얽히면 끊임없는 복수가 반복되는 것이다.
“……정말 저와 진옥룡만의 비무로 이 일을 끝내실 겁니까?”
“물론일세. 곤륜의 이름으로 보증하지.”
“……!”
사문의 이름까지 걸었다면 안심해도 될 일.
하지만 주환설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렇게나 자신 있다는 건가.’
진옥룡에 대한 풍문을 전부 믿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대단한 후기지수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 봤자지.’
그는 곧 마음을 추슬렀다.
‘약관도 안 된 애송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무공을 익혔다 해도 내 상대는 안 돼.’
안타깝게도 정광은 전생에서부터 무공을 익혔고 천하제일인이었던 존재였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그는 영추자를 흘깃 바라봤다.
-죽이지만 않으면 뒷일은 수습해 주겠네. 무슨 뜻인지 알겠나?
최소한 병신으로 만들라는 말.
-……알겠습니다.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여기서 물러났다간 평생 쌓아온 명성도 공동파라는 배경도 물거품이 될 터였다.
주환설로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광을 이겨야 했다.
“비무. 하겠습니다.”
운학에게 공손히 말한 그는 시선을 정광에게 돌렸다.
어느새 주환설의 얼굴에는 소름 끼치는 한기가 맺혀 있었다.
‘태어난 걸 후회하게 해주마.’
공동속가제일고수라 불리는 그의 별호는 냉면잔검(冷面殘劍)!
‘냉면’이 되었으니 ‘잔검’을 보여줄 차례였다.
*
주환설은 처음부터 잔인한 검술을 펼쳤다.
정광은 간결하게 피하며 그의 무공을 살펴봤다.
전생에 천마신교에서 보았던 공동파의 기록과 비교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진짜네. 이것들, 정파 맞아?’
악랄했다.
그의 숨통을 끊기 위한 살초(殺招)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파와 비견되는 잔인한 무공을 사용하는 명문정파라더니 과연!
‘근데 뭐가 이렇게 지저분해.’
꼴에 정파랍시고 쓸데없는 격식에 갇힌 이도 저도 아닌 검법이었다.
한동안 지켜보니 그 궤가 머릿속에 정리되었다.
동시에 호기심도 사그라들었다.
정광은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주환설은 잔인하게 처맞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든 말든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였다.
‘대단한 무공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두들겨 패는 것 같은데?’
‘안 보이는 오묘한 무리가 숨겨져 있는 걸까? 곤륜의 비전무공?’
그럴 리가.
그저 정광은 주환설의 빈틈을 귀신같이 찾아 마귀처럼 패고 있을 뿐이었다.
검이 아니라 검집째로.
어찌나 찰지게 때리는지 때릴 때마다 ‘쩍’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럴 수가! 막아야 한다!’
영추자가 정신을 차렸을 땐, 문어처럼 흐물흐물해진 주환설이 바닥에 구겨진 뒤였다.
“이, 이런 악독한! 어린 녀석이 어찌 그리 손속이 독한 것이냐!”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죠.”
“뭣이! 내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순간 정광이 눈을 빛내며 두 손을 모았다.
“곤륜 제자 정광, 비무 요청을 받겠습니다.”
“비무 요청? 내가 언제…….”
“조금 전에 하셨잖아요. 다 들었는데. 이봐요, 표사님들. 안 그래요?”
정광의 무서움을 직접 경험했고, 주환설이 어떤 꼴이 됐는지 지켜본 그들이 어찌 아니라 하겠는가?
“그렇습니다!”
“분명히 비무 요청이었습니다!”
영추자의 볼살이 푸들푸들 떨렸다.
엄청난 분노가 솟아올랐지만 머리만큼은 냉정하게 움직였다.
‘별다른 무공을 사용하지도 않고 주환설을 쓰러뜨리다니. 보통 놈이 아니구나.’
정광의 무공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직접 싸워보니 어땠나? 혹시 암수에 당한 건가?
“끄으으으…….”
-어서 대답하게. 빨리!
“으흐흐흑…….”
주환설에게는 전음 따위를 할 여력이 없었다.
영추자가 그의 상세를 걱정하긴커녕 정광에 대해서만 추궁하자 서러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가장 무인들이 주환설을 수습했다. 극심한 고통에 요란한 비명을 지르는 그를 보며 영추자는 혀를 찼다.
‘끌끌. 쓸모없는 녀석 같으니. 이런 놈이 어찌 공동속가제일인이라고 불린단 말인가.’
남 말 할 때가 아니었다.
정광이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무하자 해놓고 안 하실 거예요? 일구이언이라. 구파일방 공동파 맞으세요?”
“어디서 그런 망발을!”
“그러고 있으시잖아요.”
“본도가 까마득하게 어린 너와 어찌 싸우겠느냐? 너를 꺾는다 한들 무엇이 바뀐다고!”
분노한 그의 귀에 운학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사자끼리 시비를 가렸으니 이만 끝냅시다.”
“사람을 저리 만들어놓고 끝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오?”
“정당한 비무였소. 생명에도 지장이 없어 보이오만.”
영추자도 알았다.
그에겐 명분이 없음을.
‘그렇다면…….’
실리라도 챙겨야 했다.
우겨서라도!
“이제는 본문의 일이 되었소!”
“허어. 무슨 의미요?”
“보시오. 본문의 속가제자가 불구가 되었소이다. 그런데 어찌 물러나겠소?”
운학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당사자 간의 비무로 결과가 나왔거늘, 일을 키우잔 말이오?”
“키우다니! 당연한 일이외다!”
운학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중후한 기세에 영추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운학이라……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 같다만…….’
반드시 이겨서 이 일을 어떻게든 봉합해야 했다.
운학과 영추자가 서로를 쏘아보며 기세를 일으키는 그 순간.
정광이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빨리 하자니까요.”
“……운학! 그대의 버릇없는 사손이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떠들어대는데 그대는 어찌…….”
“무량수불. 정광이 비록 어리다 하나 그 도가 낮지는 않소이다.”
“하! 사문 제자라고 높이시는군.”
“높인 건지 아닌 건지는 겪어보면 알 일. 어디 한번 해보시오.”
“……?”
“그대와 정광의 비무로 이번 일을 끝내자는 말이외다.”
뜻밖의 좋은 제안에 영추자는 속으로 웃었다.
“곤륜의 이름으로 맹세하시오.”
“맹세하지. 그대도 공동의 이름으로 맹세하시오.”
영추자의 입가에 가는 선이 그어졌다.
정광이 대단하긴 하나 그를 이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비록 까마득하게 어린 배분과 투덕거렸다는 비아냥을 피할 순 없겠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결과였다.
“맹세하겠소.”
공동파와 주가장 사람들의 입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제일 크게 웃고 있는 건 정광이었다.
‘냉면 놈으로는 모자랐는데 이게 웬 떡이냐. 간만에 손맛 좀 보자.’
그는 한쪽 다리로 삐딱하게 서서 한 손을 우아하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검지를 펴 까닥거렸다.
“오세요.”
“……!”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도발이!
마치 시정잡배 같은 모습 아닌가!
많은 이들이 경악했지만 곤륜 제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이것은 엄연한 곤륜의 무공.
정광이 재정립하여 하북팽가의 팽강휘를 도발했던 추운권의 기수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