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472
2부 204화
네 말대로 그랬을지도 몰라
‘이 새끼, 나한테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거야?’
섬랑은 혹시 상대에 대해 놓친 게 있는가 싶어 암기하고 있던 정보를 다시 떠올렸다.
오경. 십이 세.
탑극랍마간 사막 남부에 있는 소도시 허톈 출신.
오경의 본가 화전오가(和田吳家)는 허톈을 대표하는 가문이었으나 도시 자체가 워낙 낙후된 곳이었기에 대대로 궁핍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곳이 원래부터 깡촌이었던 건 아니었다.
아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 수많은 상인이 드나드는 천산남북로(天山南北路)처럼 중원과 서역을 잇는 서역남도(西域南道)에 속해 번영을 누렸는데 그 길은 혹독한 자연환경 변화 때문에 사장된 지 오래.
백가상단(白家商團)이라는 정파 상단이 각고의 노력 끝에 서역남도를 복구했으나 그 경로가 기존과 완전히 같을 리 있나.
설령 같다 해도 천마신교에 속한 도시를 이용할 순 없는 노릇인지라 자연히 허톈은 그 길에서 빠진 상태였다.
‘그나마 천지(泉地)는 남아 있어 식수 걱정은 없고. 다른 도시로 나가 이런저런 일을 해서 곡식이나 면포 같은 생필품을 구한다고 했지.’
섬랑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밖에 없잖아. 이걸 자랑하려고 내게 동정심 운운한 거야?’
하도 어이가 없어 쏘아붙였다.
“네가 가난하게 큰 건 알겠는데 나도 편하게 자란 건 아니야. 근데 누가 더 힘들었는지 비교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건 조금 아닌 것 같지 않냐?”
오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뭐가 얼마나 복잡하길래?”
“직접 느껴라. 싫어도 그렇게 될 거야.”
“그냥 말로…….”
섬랑이 받아치려고 하는데 예기주(禮旗主) 양방이 끼어들었다.
“서로 인사는 끝난 것으로 봐도 되겠지?”
예기주씩이나 되는 고위 인사가 아무리 중요한 행사라 해도 어린아이들 싸움을 감독하며 승패를 판정하고 싶겠는가.
그 마음을 내비치는 것처럼 음성에 짜증과 살기가 스며 있었기에 눈치 빠른 두 소년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양방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 그래. 잘 판단했다. 누군가에겐, 또는 너희 둘 모두에게 최후의 승부가 될 수도 있으니 최선을 다해라.”
둘 중 하나는 죽거나 양패구상해서 둘 다 죽을 수도 있다.
양방의 경고에 아이들은 서로를 향해 살기를 일으켰다.
양방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뒤로 물러나 크게 외쳤다.
“상대가 더 이상 싸우지 못하거나 항복할 때까지다!”
섬랑과 오경은 아무런 말 없이 서로를 노려봤다.
“어떤 수를 써도 좋다! 시작해라!”
탐색전 따윈 없었다.
두 소년은 양방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경의 병기는 수수한 철곤(鐵棍), 섬랑의 것은 거무튀튀한 쌍단봉(雙短棒).
날붙이가 아닌 둔기와 둔기의 충돌, 쇠와 쇠가 부딪치는 공평한 격돌이었다.
까앙-
귀가 아픈 소음과 함께 불똥이 튀었다.
시작은 대등해 보였으나 결과는 달랐다.
섬랑의 벽안이 빛났다.
‘나보다 내공이 약해!’
근력도 그랬다.
오경이 힘에 밀려 한 걸음 물러나는 것 아닌가?
힘을 아낀 것이든 함정이든 상관없었다.
‘승기를 잡는다.’
섬랑은 한 걸음 나아가 쌍단봉을 내려쳤다.
힘과 힘의 대결을 강요한 것이다.
오경이 거부했다.
간결한 보법으로 섬랑의 측면을 점했다.
철곤을 횡으로 휘둘러 척추를 부수려 했다.
허나 섬랑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묵영보(黙影步)를 밟아 오경의 뒤로 돌아갔다.
종아리와 허리를 향해 쌍단봉을 내질렀다.
오경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나려타곤(懶驢打滾)의 수법으로 바닥을 뒹굴었다.
섬랑이 쫓아가 걷어차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오경은 구르는 와중에도 단도를 던지고 방향을 바꿔 다른 쪽으로 굴렀다.
그리고 단도를 쳐낸 섬랑이 쇄도하기 직전 재빨리 일어섰다.
섬랑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녀석. 역시 나와 비슷해.’
머릿속에 암기하고 있던 것을 몸으로 직접 겪게 되자 뚜렷하게 느껴졌다.
오경은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 했다.
물론 섬랑과 다른 점도 많았다.
철곤은 쌍단봉에 비하면 장병기.
섬랑이 달려들었으나 오경의 공격이 먼저 닿았다.
철곤이 섬랑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섬랑이 쌍단봉으로 막아내고 공세를 펼치려 했지만 오경은 제자리에 굳건히 선 채 철곤을 연달아 내려쳤다.
까앙! 깡-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섬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쌍단봉을 움켜쥔 두 손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르르 떨렸다.
반면 오경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섬랑을 죽일 듯 쏘아보며 철곤을 계속 내려쳤다.
힘이 약한 쪽이 강한 쪽을 우직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섬랑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 손아귀를 얼마나 단련했길래 전혀 흔들림이 없는 거야?’
아니, 악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내구력과 인내심도 대단했다.
기본기가 탄탄하다더니 이 정도일 줄이야.
기본에 충실한 걸 넘어 대체 얼마나 갈고닦은 건지 일격, 일격이 위력적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초를 제대로 다질 틈이 없었다.
‘관 숙수가 말하길 부실한 기초가 발목을 잡을 거라 했지.’
언젠가 극복할 것이지만 그 시기는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렸고, 늦추면 늦출수록 네 무공은 사상누각(砂上樓閣)으로 굳어져 언젠가 쓰러질 거라더니 과연.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제대로 익힌 상대를 만나자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가?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철곤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질 줄이야.
오경이 끊임없이 해왔을 수련의 무게가 쌍단봉을 쥔 양손을 통해 들어와 뼈저리게 느껴졌다.
섬랑은 쌍단봉을 고쳐 잡고 이를 악물었다.
‘그래. 네가 잘난 건 인정하마.’
이제 자신이 잘난 걸 보여줄 차례였다.
대인이 육신에 새겨준 경로를 따라 내공을 끌어올려 철곤을 거칠게 밀어냈다.
오경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반보 밀려나더니 튼튼한 하체를 이용해 지면을 단단히 디디고 철곤을 내질렀다.
그 순간, 섬랑은 제일 자랑스럽게 여기는 묵영보를 펼쳤다.
소리도 낌새도 없이 오경의 옆으로 돌아갔다.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며 빈틈을 노렸다.
오경은 당황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회전했다.
될 수 있는 한 섬랑을 정면으로 대하며 선공을 유도했다.
섬랑은 기꺼이 뛰어들었다.
쌍단봉을 휘두르는 힘에 신형을 움직이는 힘을 더했다.
오경이 막으면 옆으로 이동해 다시 공격하고 공격을 흘리면 따라붙어 괴롭혔다.
오경의 손발이 조금씩 어지러워졌다.
기본기는 훌륭했으나 그것만으론 한계가 있어서였다.
병기의 차이도 컸다.
섬랑이 쌍교(雙蛟)라고 이름 붙인 쌍단봉은 충돌에 충돌을 거듭해도 멀쩡했으나 오경의 철곤은 조금씩 휘어졌다.
이녕임가가 제작한 명품과 단단하긴 하나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병기의 격차였다.
게다가 쌍교는 섬랑의 삼신기(三神器) 중 하나일 뿐이었다.
섬랑은 바짝 붙어 싸우는 접근전으로 전환했다가 오경이 수도로 손목을 베려 하자 주먹을 쥐고 맞섰다.
섬랑의 권갑 투혼(鬪魂)과 오경의 수도가 부딪혔다.
수도를 아무리 단련해 봐야 이녕임가의 권갑보다 강할까.
오경이 재빨리 손을 당겼으나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투혼에 덧댄 날카로운 철편에 긁혀 핏물이 튀었다.
오경이 눈살을 찌푸리는데 허공을 붉게 수놓은 핏물을 가르며 무언가가 날아왔다.
삼신기 중 마지막 하나, 날이 시퍼런 비수 비섬(秘閃)이었다.
섬랑은 속으로 외쳤다.
‘끝났어!’
소문은 달리는 말보다 빠르니 섬랑이 비수로 암습하는 걸 즐긴다는 사실을 오경이 모를 리는 없었다.
허나 알면 뭐 하는가?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펼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경의 가슴이 길게 갈라졌다.
하지만 핏물이 튀고 내장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오경의 반사신경과 무게중심을 잡는 능력은 출중했다.
즉시 철판교(鐵板橋)의 수법으로 허리를 젖혀 피했다.
지면을 박차 뒤로 재주를 넘으며 암기를 뿌렸다.
그리고 섬랑이 암기를 피하는 사이 바닥에 착지했다.
두 소년은 생사투를 시작할 때처럼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호흡을 골랐다.
“후욱. 후욱.”
“후우우. 후욱.”
하얀 입김이 연이어 흘러나와 차가운 공기를 뚫고 피어올랐다.
그리고 완전히 흩어져 사라지자 섬랑이 히죽 웃으며 놀렸다.
“운이 좋네. 옷만 찢어지고.”
“너야말로. 용케 베었구나.”
“선객(先客)이 꽤 많은걸.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옷이 베여 활짝 드러난 가슴은 수많은 상처 자국으로 덮여 있었다.
오경이 차갑게 답했다.
“돈을 벌면서 생긴 흔적이다.”
“좀 쉬운 일을 하지 그랬어.”
“주린 배를 움켜쥐고 기다리는 동생들이 없었다면 그랬겠지.”
“그래서 좀 나아졌어?”
“그럴 리가.”
오경은 철곤을 들어 정면을 보호했다.
“본가의 터전인 허톈은 죽은 땅이다. 지금도 더 죽어가고 있고.”
섬랑은 비섬을 소매 속에 넣고 다시 쌍단봉을 쥐었다.
“그냥 이사를 하지 그래? 듣자 하니 내가 살던 쿠차가 조금 나은 것 같은데.”
오경의 전신에서 살기가 일어났다.
섬랑도 살기를 일으키며 사과했다.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 나는 홀몸이었는데도 못했으니까. 미안.”
오경은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뜻밖의 말을 했다.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도 안 할 거다.”
“응? 왜?”
“본가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라다가 묻힌 곳이니까.”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어?”
“교주가 되어 천하를 오연하게 굽어보는 건 무슨 의미가 있지?”
섬랑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서로 다른 거겠지. 그럼 어떡하려고?”
“허톈을 다시 번영하게 할 거다.”
“이미 죽은 땅이라며.”
“내가 소교주가 되면 그 작은 땅을 못 살릴까.”
“…….”
섬랑은 오경이 목숨을 걸고 멸혼생사투에 참가한 이유를 깨달았다.
왜 그렇게 적대감을 드러냈는지도.
오경이 직접 그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나는 칠대가문 녀석들이나 너처럼 자기 자신의 야망을 위해 온 게 아니다. 내 가족과 내 고향을 짊어지고 있어.”
“…….”
“그딴 눈으로 보지 마. 나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야.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
오경이 한 걸음 내디뎠다.
섬랑도 한 걸음 나아가 물었다.
“별로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지 않은데. 정말 그러면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잖아.”
“내가 너를 싫어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야.”
“뭔데?”
섬랑의 짧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경이 전질보(箭疾歩)를 펼쳐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대비하고 있던 섬랑은 묵영보를 밟아 옆으로 돌았다.
오경은 직선으로 쇄도하고 섬랑은 원을 그려 거리를 벌리는 양상이 계속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본기가 아무리 뛰어나도 적이 제대로 펼치는 절기를 따라잡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할 수 있어!’
언제는 안 이랬던가?
오경은 포기하지 않고 투지를 불태웠다.
끈기와 인내로 계속 압박했다.
목숨을 걸고 얻은 수많은 경험을 토대로 상대를 흔들었다.
허나 섬랑은 넘어오지 않았다.
개싸움으로 가려고 하면 귀신처럼 빠져나가고 일격필살을 노리면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반격했다.
다른 건 몰라도 승부사의 감각과 보법만큼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
오경의 눈이 붉게 변했다.
감각이야 타고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제대로 된 무공을 익혔으면!
하다못해 병기라도 좋은 것이었으면!
이 녀석처럼 늦게라도 뛰어난 사부를 만나 둘 다 얻었으면!
정말 그랬다면.
이렇게 헛손질하며 체력만 소모하지는 않을 텐데…….
오경은 거대한 좌절감에 매몰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눈을 부릅뜨고 깨끗이 날려 버렸다.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데 여기서 꺾인단 말인가?
한순간이나마 무기력해진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어차피 더 버틸 힘도 없어! 여기서 지면 끝이야!’
그간 꾹꾹 눌러 온 분노를 해방시켰다.
불안정한 마공 때문에 쌓인 부작용은 컸다.
지독한 악의(惡意)가 오경을 집어삼켰다.
“끄아아아!”
처절한 비명 같은 기합을 지르며 섬랑을 핍박했다.
섬랑은 냉정하게 대응했다.
생전 처음 보는 악랄한 수법도 있었으나 더러운 수는 거기서 거기인지라 어떻게든 피했다.
개싸움은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했지만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 때문에 철저히 거부했다.
그 대신 틈이 보일 때마다 꾸준히 상처를 입혔다.
생채기는 물론이오, 중상이라 할 만한 상처도 점점 늘어났다.
이대로만 가면 승리는 시간문제였으나…….
오경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칠갑을 하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쉼 없이 전진하며 실수를 유도하는 한편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까지 종종 펼쳤다.
섬랑은 감탄했다.
‘대단한 놈이구나!’
마(魔)에 잡아먹히는가 싶었는데 완전히 휘둘리지는 않고 있었다.
대인이 중단전 옥당(玉堂)에 심어준 것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겠지만 의지가 얼마나 강하기에 저게 가능하단 말인가?
오경은 천재라고 불릴 만한 인재였다.
어쩌면 섬랑 자신보다 더.
‘이 녀석이 나처럼 늦게라도 훌륭한 스승을 만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기연이란 게 그렇게 쉽게 찾아올 리 있나.
부질없는 가정이었다.
허나 섬랑은 그것을 잡은 상태.
그래서 그런지 오경의 놀라운 재능과 치열한 노력, 그로 인해 더 아팠을 좌절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너는 이미 늦었지만 앞으로는 다를지도 몰라.’
쿠차에 있는 아이들에게 상노(商奴)를 통해 길을 열어줬다.
소교주가 되고 교주 자리에 오르면 더 많은 녀석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구천에서 헤매고 있을 네게도 소식이 가려나.’
섬랑은 입술을 깨물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오경은 죽여야 했다.
살린 상태로 이길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빈틈을 노려 멸살법(滅殺法) 일식을 펼쳤다.
갈비뼈가 박살 나고 양어깨가 부서졌다.
무릎까지 깨버리고 배를 뚫어버리자 오경은 그제야 쓰러졌다.
마(魔)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오경은 입을 벌려 기침을 토했다.
그때마다 부서진 내장 조각과 핏물이 흘러나와 비무대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섬랑은 오경의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아 더러워진 입가를 오경의 옷으로 닦아줬다.
“잘 가. 배웅은 안 할게.”
“……너 이 새끼. 강하구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이 노력했으니까.”
오경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 내게도 너 같은 기회가 있었으면…… 너보다 더 강해질 수 있었…… 크윽.”
“그래, 네 말대로 그랬을지도 몰라.”
“……!”
“직접 싸운 내가 인정할게.”
섬랑의 진심 어린 말에 오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웃는 것인지 화내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든 묘한 표정이었다.
오경은 뭔가 더 말하려다가.
“끄륵. 끄르륵…….”
그대로 굳어 싸늘히 식어갔다.
아무리 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오경의 표정이 섬랑의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됐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예기주 양방이 크게 소리쳤다.
“섬랑 승! 오경 패! 멸혼생사투 본선 첫 번째 대결의 승자는 묵영권가를 대표해 출전한 섬랑이오!”
피로 물든 비무대 위로 뜨거운 환호성이 쏟아져 내렸다.
정광도 손뼉을 치며 중얼거렸다.
“얼마나 배가 부른지 깨달았을 테니 실컷 부려먹어도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