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493
2부 225화
늦었다니까
마라대주(魔羅隊主) 한성관은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렇지, 이 많은 인원이 단 한 명을 막기 위해 천마궁(天魔宮)을 지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것도 사흘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말이다.
총단이 시끄러워지고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오자 마치 광대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더 나빠졌다.
‘빌어먹을. 사흉대(四凶隊) 놈들은 천마궁 안에서 편히 있는데 이게 무슨 꼴인지 원.’
놈들이 강하긴 하나 마라대도 위명을 떨치는 무력대.
자존심이 상해 당장 때려치우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불만을 품은 것도 잠시.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천마궁에도 화시(火矢)가 쏟아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혼!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구나!’
자존심 때문에 억지로 무시하고 있던 마음에 경각심이 들었다.
총단에, 그것도 천마궁에까지 불을 지르는 미친놈이 무슨 짓을 못 할까?
안쪽에 있는 사흉대 놈들이 불을 끄느라 동분서주하는 꼴을 상상하며 고소해할 겨를이 없었다.
진혼이 오면 정문을 뚫으려 할 터.
지금 천마궁 정문을 지키고 있는 건 마라대였고 그 책임자는 자신이었다.
‘혹시라도 뚫리면…….’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한성관은 전신을 부르르 떤 뒤 수하들에게 외쳤다.
“마라대!”
“네, 대주!”
“방심하면 안 된다! 목숨을 걸고 정문을 사수하라!”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던 대원들이 일제히 외쳤다.
“존명!”
다른 무력대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을 다잡고 전의를 불태웠다.
반면 이른 아침부터 총단에 들어와 구경하고 있던 일반 교도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빨리 일이 터지기만을 기다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저건!”
“뭔가 달려오고 있…….”
미처 말을 끝낼 새도 없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뛰어오는 인영이 향하는 곳은 마라대 쪽이었다.
마라대 선두에 서 있던 마라대주 한성관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름대로 고수라 자부하는 그로서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빠른 신법이었다.
‘진혼! 그리고…….’
육포?
이렇게 많은 인원이 버티고 있는데 육포를 씹으며 달려와?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어이없어하거나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분노할 시간도 없었다.
진혼이 급격히 확대됐다.
그리고 목소리까지!
“실례합니다! 잠시 지나갈게요!”
“……!”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온 애도(愛刀)를 뽑고 내공을 끌어 올린 것이다.
‘와라!’
부단히 익혀온 마라잔살도(魔羅殘殺刀)를 펼쳐 적을 갈가리 찢어놓으리라 다짐하는 순간!
‘웃어?’
정광은 육포를 꿀꺽 삼키고 싱긋 웃었다.
한성관을 보자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미욱하기는.’
자세만 봐도 보였다.
전생에 있던 허점을 여전히 못 메우고 있는 꼴이라니.
예나 지금이나 실력도 성품도 쓸모없는 녀석.
그런 녀석들이 한둘도 아니고 도처에 널려 있었다.
정광의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
‘최소한의 피로 최대한의 효과를.’
앞을 막으면 죽음뿐!
마혼(魔魂)의 일부를 개방했다.
오른쪽 주먹에 검은 화염이 맺혔다.
그 화염이 사납게 떨어져 내리는 한성관의 도와 충돌했다.
쩌엉!
도신이 박살 나고 파편이 튀었다.
한성관은 도병(刀柄)을 움켜쥐고 있던 손아귀가 찢어지고 온몸에 파편이 박혔는데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천마신교 정예 무력대인 마라대의 대주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당한 수법에 경악해 그럴 틈이 없어서였다.
선혈이 낭자한 그의 손아귀처럼 두 눈 역시 찢어질 듯이 커졌다.
‘이, 이것은!’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인데도 생생했다.
본인도 마인이면서 그 누구보다 많은 마인을 죽인 자.
네놈들을 때려잡기 딱 좋은 수공(手功)을 만들었다며 두 손을 매만지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천하의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두려운 자였다.
‘진천마!’
그의 진전을 이었다는 소문이 돌더니 과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거기까지였다.
진천마가 창안했던 절기 참마수(斬魔手).
활짝 열린 한성관의 가슴을 검은 화염이 때렸다.
콰앙!
육신이 폭발하며 수많은 살점과 골편, 투명한 뇌수와 붉은 핏줄기가 정면으로 쏘아졌다.
한낱 인간의 잔해들이었으나 어찌나 매섭게 날아가는지 어느 하나 암기가 아닌 게 없었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마라대원들은 대경실색하며 도를 휘둘렀다.
정예답게 전면을 물샐틈없이 방어하여 핏방울 하나조차 놓치지 않고 모조리 쳐냈다.
허나 그 대가는 참혹했으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사신이 덮쳐왔다.
바로 정광이었다.
양떼 속에 뛰어든 호랑이의 모습이 이럴까.
검은 화염이 양들을 잔인하게 물어뜯었다.
폭음이 터질 때마다 양들은 처절하게 울며 터져 나갔다.
그리고 날카로운 암기로 화해 동료들에게 쏘아졌다.
마라대를 구원하기 위해 몰려들던 무력대들은 병기를 어지러이 휘두르며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양떼를 유린하던 호랑이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느새 정문까지 다다른 것이다.
‘슬슬 들어가 볼까.’
공포에 질려 얼어붙은 부대주에게 손을 뻗었다.
놈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이를 악물고 발악했다.
전신이 폭발해서 비참하게 죽게 될 판국에 뭘 못 할까.
거센 도격이 허공을 매섭게 가르며 정광에게 쏟아졌다.
정광도 손을 뻗었는데 활활 불타오르고 있던 검은 화염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부대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면 그렇지! 내공을 다 소모했구나!’
하늘이 내린 자질이 있고 천하제일 무공을 익혔어도 나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순 없는 법.
짧지만 엄청났던 격전을 치르며 단전이 텅텅 비어버렸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쾌재를 불렀으나.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정광은 손을 가볍게 돌려 팔을 베어오는 매서운 도격을 피한 뒤 손등으로 도면을 때렸다.
까앙!
도가 깨끗이 부러지며 잘린 부분이 날아가 옆에서 달려들던 마인의 미간을 뚫고 뒤통수로 삐져나왔다.
허나 부대주는 그 광경을 볼 겨를이 없었다.
손아귀가 찢어지며 반 토막 난 도마저 놓친 것이다.
‘위험!’
급히 뒤로 물러나려고 하는데.
악귀가 쇄도했다.
부대주는 독한 눈빛을 흘리며 주먹을 내질렀다.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 악귀의 안면에 꽂혔다.
‘해치웠어!’
기쁨도 잠시.
잔영이 사라졌다.
‘이형환위(移形換位)!’
가슴이 서늘해졌다.
눈알만 재빨리 움직여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느새 다가온 악귀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어깨를 내밀고 있었다.
그 어깨와 등이 부대주의 가슴을 때렸다.
흔하디흔한 초식인 철산고(鐵山靠)였다.
펑!
그러나 그 위력은 범상치 않았다.
“끄악!”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천하의 마라대원이 비명을 지를까?
가슴이 함몰된 부대주가 입에서 핏물을 토하며 맹렬히 날아가 정문에 부딪혔다.
콰앙!
엄청난 소음과 함께 거대한 문이 산산이 조각났다.
파편과 먼지가 비산하여 안쪽이 안 보였는데, 정광은 그 속으로 주변에 있던 시체들을 던져 넣었다.
슈슈슉-
콰악! 서걱-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기관이 작동하는 소리가 났다.
잠시 뒤, 흩날리던 것들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사두마차 두 대가 나란히 통과할 만큼 널따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관 장치에 당했는지 온몸이 암기와 화살에 꿰여 곤죽이 되어버린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건너편에는 털이 굉장히 긴 늑대의 형상을 한 흉수(凶獸), 혼돈(混沌)이 수놓인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보였다.
그 선두에 선 노인이 거친 목소리로 힐난했다.
“정문이 깨지다니! 밖을 지키는 이들은 무엇 하는 것이냐! 부끄럽지도 않은가!”
“……!”
정광의 악랄한 수법 때문에 마라대를 돕지 못했던 무력대들은 이를 갈며 병기를 고쳐 쥐었다.
‘오만한 사흉대 새끼들!’
‘같은 대(隊)인 주제에 말을 저따위로 해?’
실력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 건 인정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모욕을 감수할 의향이 있을 리 있나.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유할 방법은 단 하나였다.
“죽여!”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외치며 적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당사자인 정광은 그들과 다툴 생각이 없었다.
“그럼 이만.”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 정문 통로로 달렸다.
분노한 마인들이 줄줄이 신형을 날렸다.
통로를 돌파하는 시늉을 해놓고 안쪽에서 기다리던 정광이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다.
“반가워라.”
“……!”
안쪽에서 정광을 기다리던 혼돈대도, 정광을 따라 들어온 무력대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두 눈을 부릅떴다.
오직 정광만 태연했다.
제일 앞서 들어온 마인을 노렸다.
마인이 날카로운 못이 삐죽삐죽 박힌 낭아봉(狼牙棒)을 내려치며 반항했으나 소용없었다.
정광의 손이 마인의 팔꿈치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파고들어 왔다.
단 한 수로 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천하마도의 종주라 할 수 있는 천신혁련가(天神赫連家)에서 전해 내려오는 금나술이 팔만 잡고 끝날 리 있나.
파골금나수(破骨擒拿手).
그 이름에 걸맞게 마인의 겨드랑이에 손등을 대고 힘을 주자 팔꿈치와 어깨는 물론이오, 팔 자체가 박살 났다.
빠가가각!
“크흑!”
마인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토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불구가 되어버린 와중에도 마기를 미친 듯이 쏟아내며 각법으로 반격했다.
허나 정광이 더 빨랐다.
마인의 팔을 잡고 신형을 회전했다.
그 원심력을 이용해 마인을 천마궁 안쪽으로 던졌다.
선두에 서 있던 노인, 혼돈대주(混沌隊主)가 호통을 치며 대월(大鉞)을 내려쳤다.
“이따위 얕은수를!”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마인이 수직으로 쪼개졌다.
혼돈대주가 바닥에 침을 뱉고 공격을 명하려고 하는 그때.
“……!”
또 다른 마인이 날아왔다.
혼돈대주는 밤송이처럼 빳빳한 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이놈이 감히!’
천만다행하게도 생포령이 척살령으로 바뀐 상태.
반드시 죽이겠노라 맹세하며 암기 노릇을 하는 마인을 분쇄했다.
그런데 한둘이 아니었다.
적은 바깥쪽에서 달려드는 마인들을 잡아 끊임없이 던졌다.
혼돈대주는 계속 쪼개고 날리다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통로에 있는 자들은 즉시 뒤로 물러나라! 놈에게 덤비지 말고 퇴로만 막아!”
다른 무력대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후퇴했다.
그러자 역으로 정광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벌써 가시면 정 없죠.”
“……!”
정광은 제일 가까이 있던 자를 제압해 혼돈대주에게 던졌다.
혼돈대주는 분노를 가까스로 삭이며 대월을 휘둘렀다.
날아온 마인이 두 동강 나며 내장과 핏물을 흩뿌렸다.
그것들 사이로 또 다른 마인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혼돈대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앞으로 뛰며 대월을 내려쳤다.
“이것 다음은 네놈이다!”
마인이 허공에서 신형을 뒤집어 대월을 피하며 대꾸했다.
“다음은 없는데요.”
“……!”
미처 반응할 틈도 없었다.
정광은 왼손을 빳빳이 세워 내질렀다.
그 손으로 혼돈대주의 가슴을 뚫고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퉁방울처럼 커진 그의 눈을 응시하며 나직이 속삭였다.
“성질머리 안 고치면 내 손에 죽는다고 했을 텐데.”
혼돈대주의 눈에 극심한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행여나 치병에 걸린다 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말이었다.
“서, 설마 진…….”
“늦었다니까.”
정광은 왼손에 힘을 줬다.
쥐고 있던 심장이 터지고 혼돈대주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맺혔다.
폭렬마공(爆裂魔功)을 펼칠 때 나타나는 징조였다.
정광은 눈살을 찌푸리며 왼손을 뽑았다.
‘그새 쓸데없는 걸 익혀서 귀찮게 하네.’
그럼 유익하게 쓸 수밖에.
혼돈대주의 붉어졌던 눈동자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정광은 수도(手刀)로 그의 목을 쳤다.
목이 깨끗이 베이며 머리통이 허공에 떴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혼돈대를 향해 걷어차며 양해를 구했다.
“어찌하여 머리만 오셨냐고 이죽거리지 마세요.”
눈뿐만 아니라 머리 전체가 새빨갛게 변해 포탄처럼 날아갔다.
조조는 관우의 수급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중병을 앓다가 죽었으나 혼돈대는 달랐다.
혼돈대주의 수급이 그들 앞에서 폭발했다.
콰아앙!
“끄아악!”
혼돈대원들은 전신에서 피를 흘리며 분분히 물러났다.
대주가 폭렬마공을 펼친 것을 눈치채고 있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 피해로 그친 것이었다.
반면 정광은 혼돈대주의 대월을 똑바로 세우고 그 뒤에 숨어 모조리 피했다.
‘애는 별로인데 병기는 쓸 만하단 말이야.’
허나 지금은 엉망이 된 상태.
대충 던지고 천마궁 안으로 들어갔다.
마인들이 새까맣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정광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자욱했으나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다소 낯선 광경에 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생각보다 많이 바뀌었네.’
전생의 정광을 지우려고 노력한 흔적이었다.
‘하여간 취향하고는.’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 존중해 주는 게 도리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이번엔 내 차례야.’
현생의 정광은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