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510
2부 244화
정마대전(正魔大戰)
“크흑. 더는 버티기 힘듭니다!”
봉두난발(蓬頭亂髮)에 행색이 더럽기 짝이 없는 중년인이 핏물이 솟구치는 어깨를 감싸 쥐며 처절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투지는 꺾이지 않았는지 손에 쥔 타구봉(打狗棒)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에게 상처를 입힌 마인의 가슴에 박혀 있던 타구봉이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내며 뽑혔다.
꽈드드드-
창날처럼 뾰족하게 잘린 봉 끝이 드러나며 마인의 가슴에서 핏물이 튀어나왔다.
중년인은 그걸 전부 뒤집어쓰면서도 주위를 급히 둘러봤다.
욕이 절로 나왔다.
‘빌어먹을!’
마인을 죽이기 전보다 사정이 더 안 좋았다.
각양각색의 복색을 한 동료들이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수많은 마인들이 진법이 설치된 돌담을 결국 무너뜨리고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중년인은 동료들을 도우러 가기 전에 피를 토하듯 부르짖었다.
“남서방(南西方)은 더 버티기 힘듭니다! 어서 지원을!”
“숙이기나 해!”
위쪽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년인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뭔가가 뒤통수를 세차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심장을 꿰뚫었던 마인이 수도(手刀)를 휘두른 것이다.
고개만 살짝 틀어서 그 모습을 확인한 중년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안 죽었어?’
그 순간, 꼬질꼬질한 몽둥이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려 마인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콰직!
그리고 그 몽둥이의 주인이 착지했다.
키는 작달막하지만 그 누구보다 드높은 의기(義氣)를 발산하는 노인이었다.
중년인은 상체를 재빨리 세우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 걸존(乞尊) 어르신, 정말 감사…….”
걸존 윤희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시끄러워! 개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게 본방의 전통인데 마졸(魔卒)과 싸우는 와중에 방심을 해? 너 이 자식. 어느 분타, 어떤 놈의 제자야?”
중년인이 황당한 얼굴로 부정했다.
“저는 개방 사람이 아니라 남궁기윤입니다.”
“뭐? 그런데 왜 우리처럼 입고 타구봉을…… 망할.”
걸존은 말을 끝맺지 않고 욕설을 내뱉었다.
자세히 보니 값비싼 푸른 장포가 피에 절고 찢어져 넝마처럼 변한 것 아닌가?
타구봉을 들고 있는 건 검이 망가지거나 부러져서일 터.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교 놈들과 이렇게 장기전을 치를 수 있는 요인들 중 하나가 압도적인 물량 차이였거늘. 금권검협(金權劍俠) 그놈이 물자를 그토록 많이 준비했는데도 벌써 이 꼴이 될 줄이야.’
곤륜파가 다시 속가를 세우겠다고 선언하며 받아들인 첫 번째 속가제자 백승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이없어할 만큼 끊임없이 물자를 끌어모았다.
덕분에 배를 곯긴커녕 잘 먹고 잘 입고 잘 들고 싸워왔다.
더구나 장이라는 걸출한 숙수가 있었기에 맛까지 즐기며 싸워왔건만 어느덧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미친. 거지 주제에 아주 배가 처불렀구나. 언제부터 그렇게 살았다고.’
의기 하나만 있으면 된다.
마인들에게 밀리고 있는 정파 무인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따라와!”
“이미 가고 있습니다!”
걸존은 마인들을 개 잡듯 때려잡았다.
남궁기윤도 분투했다.
전신에서 피를 흩뿌리며 혈투를 벌였다.
허나 결국 마인이 휘두른 도끼에 찍혀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걸존과 정파 무인들이 대노했다.
“이놈들이 진짜! 진흙으로 빈틈없이 싸서 구워주마! 죽여!”
“으아아아아!”
살기가 치솟는 만큼 사기도 올라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며 적들을 분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황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천마신교 팔대호법(八大護法) 중 셋이 나타난 것이다.
“크하하하! 먹음직스러운 놈들이 가득하군!”
“그간 쌓인 분을 풀 시간이다! 뼈를 잘근잘근 씹어주마!”
마정호법(魔定護法)과 마념호법(魔念護法)이 정파 무인들을 쓸어갔다.
걸존이 다급히 구원하려 하는데 팔대호법에서 수위를 다투는 마명호법(魔命護法)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담담히 도발했다.
“어딜 도망가려 하느냐? 네 상대는 나다.”
걸존은 퉁명스럽게 이죽거렸다.
“또 너야? 침상에 누워 골골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할 소리다, 거지. 잘도 살아 있구나.”
거지라는 호칭은 걸존을 화나게 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것이 비위를 건드렸다.
“같잖기는. 개만도 못한 마졸 주제에 뭐가 이렇게 차분해?”
개에게도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는데 마졸은 오죽하랴.
바로 머리부터 후려갈겨서 꾸짖어야지.
걸존의 손에서 개방 무공의 정수가 펼쳐졌다.
타구봉법(打狗棒法)의 절초(絶招), 견두봉갈(犬頭棒喝)이었다.
높이 올라갔던 타구봉이 무지막지한 파공음을 내며 떨어졌다.
마명호법은 피하지 않았다.
소름 끼치는 마기를 줄기줄기 쏟아내며 곤봉을 올려 쳤다.
두 병기가 허공에서 충돌했다.
콰앙!
귀가 찢어질 것 같은 폭음이 터지고 마명호법의 양발이 땅바닥을 두 치 정도 뚫고 들어갔다.
걸존은 우세를 거뒀는데도 눈살을 찌푸렸다.
위에서 내려친 그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였다.
‘지긋지긋한 놈. 타구봉법을 이렇게 간단히 막아?’
봉(棒)과 봉의 싸움에서 이런 긴장감을 주는 상대는 흔치 않다.
그것도 몇 번이나.
새삼스레 등골이 서늘해졌다.
동시에 울화와 함께 호승심이 치솟았다.
‘한번 놀아보자!’
강한 충격 때문에 손에서 벗어나려는 타구봉을 힘주어 잡고 다음 초식을 펼쳤다.
아침 하늘을 향해 개를 쏘아 올리는 웅장한 일격, 발구조천(發狗朝天)이었다.
마명호법이 차가운 눈을 빛내며 대응했다.
이번 역시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타구봉과 곤봉이 부딪쳤다.
조금 전보다 더 큰 소음이 나며 흙먼지가 비산했다.
콰아앙!
평소라면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몇 걸음 물러났으련만.
지금은 달랐다.
걸존은 억지로 참으며 오히려 한 걸음 내디뎠다.
‘네놈 면상과 더러운 작대기를 보는 것도 질렸어!’
상대라고 다르랴.
마명호법도 마찬가지.
이를 악물고 한 걸음 전진했다.
‘이러다간 끝이 없다! 오늘은 기필코 죽여야 해!’
상대가 자신과 똑같이 행동할 줄 몰랐던 두 사람은 두 눈을 부릅떴다.
‘이놈의 마졸이!’
‘이 거지 새끼가!’
무인들이 갖가지 병기를 쓰는 건 살상 거리를 늘리거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둘 다 봉치고는 짧은 타구봉과 곤봉을 사용했지만 이렇게까지 가까워지면 병기가 아닌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승기를 빼앗기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들은 병기를 잡지 않은 손으로 상대를 공격했다.
개방이 자랑하는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과 천마신교 총단 고위직에 올라야 익힐 수 있는 혈수인(血手印)이 자웅을 겨뤘다.
퍼엉-
거대한 북을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걸존의 꾀죄죄한 뺨이 가늘게 경련했다.
‘또 동수라니!’
마명호법의 이마에 여러 개의 주름이 잡혔다.
‘역시 쉬운 놈이 아니다!’
그야말로 백중지세(伯仲之勢).
허나 더 초조한 쪽은 걸존이었다.
마명호법에게 발이 묶인 사이, 마정호법과 마념호법이 정파 무인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곤륜산에서 다 함께 수련한 절진(絶陣)으로 대항하고 있었으나 몇 명만 무너져도 삽시간에 모래알처럼 갈려버릴 게 분명했다.
걸존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 정도면 살 만큼 살았지. 아해들보다 늦게 가면 쓰나.’
마음을 굳히고 생명의 원천인 진원진기(眞元眞氣)까지 남김없이 끌어올리려는 순간!
“아미타불!”
우렁우렁한 불호(佛號)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운이 마명호법을 덮쳤다.
마명호법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기운이 무엇인지 알아서였다.
걸존과 싸우기도 벅찬데 소림 백보신권(百步神拳)을 무슨 수로 견디겠는가?
마명호법의 신형이 귀신처럼 흩어지더니 삼 장 떨어진 곳에서 합쳐졌다.
걸존은 겨우 한숨 돌리고 불존(佛尊)을 힐난했다.
“야 이 땡중아!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다른 곳도 사정이 좋지 않소.”
걸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가지가지 하네. 이놈의 마졸들이 오늘 아주 끝장을 보려고 하는 건가. 몰래 산을 내려가 개고기라도 실컷 먹어둘걸.”
“이 와중에도 농을 하는 걸 보니 아직 여유가 있으신 것 같소.”
“여유는 개뿔. 죽더라도 마명(魔命) 저놈은 데려갈 거다.”
그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
마명호법은 물론이오, 정파 무인들이 펼친 진을 두들기고 있던 다른 두 호법까지 다가와 걸존과 불존을 둘러쌌다.
불존 현강이 한 손을 들어 올려 반장(半掌)했다.
그 단순한 움직임에도 엄청난 근육이 꿈틀거리며 그가 걸친 승복이 ‘찌직, 찌지직’ 비명을 질렀다.
“아미타불.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가리오.”
“땡중 옷이 먼저 갈 것 같은데.”
걸존은 가볍게 쏘아붙이고 타구봉을 고쳐 잡았다.
승산은 희박했다.
불존이 십존 중 최강을 다투는 고수라곤 하나 마교 팔대호법 중 둘을 이길 순 없었다.
그래도 의기는 꺾이지 않았다.
“와라! 마졸들아!”
삼 대 이의 격전이 시작되려고 할 때.
기름이 잔뜩 낀 느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머릿수를 맞춰야 더 재미있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풍채가 당당한 노인이 뛰어와 마명호법을 향해 장창을 내질렀다.
마명호법이 옆으로 움직여 피하자 노인은 포위망 안으로 들어가 장창을 멋스럽게 휘돌렸다.
후우우웅-
맹렬한 바람이 일어나 흙먼지를 사방으로 날렸다.
옆에 있던 걸존은 손바람으로 그것들을 밀어내며 투덜거렸다.
“악가(岳家)야. 멋은 다른 데 가서 부려.”
창존(槍尊) 악만춘은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술을 혀로 핥았다.
“팔대호법 중 셋이라. 죽이기 딱 좋은 날씨야.”
걸존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질했다.
“너나 죽지 말아라. 등에 메고 다니던 두 자루는 어디에 흘리고 왔어?”
“오다가 썼네.”
걸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불존도 그랬는데 창존까지. 곳곳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어쨌든 잘 왔다. 며느리들한테 쫓겨난 영감탱이야.”
창존이 느물거렸다.
“나라도 도와야지. 외톨이 거지를 누가 도울까.”
“거지는 원래 혼자야!”
“나도 내 발로 나왔네!”
두 사람이 다투기 시작하자 불존이 끼어들었다.
“이럴 시간이 없소.”
그게 신호였다.
세 사람은 미리 정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상대를 골라 공격했다.
호법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반격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흐름은 얼마 안 가 깨졌다.
새로운 검존(劍尊)으로 추앙받는 남궁세가 태상가주 남궁학이 나타나 제왕검형(帝王劍形)을 펼쳤다.
환존(幻尊) 자성 역시 달려와 자하검결(紫霞劍訣)을 줄줄이 풀어냈다.
거기에 권존(拳尊) 언패호까지.
철갑신공(鐵甲神功)으로 전신을 두른 채 묵직한 권격을 연달아 쏘아냈다.
호법들은 피를 토하며 도주해 정파 무인들을 치고 있던 수하들과 합류했다.
걸존은 하도 어이가 없어 소리를 빽 질렀다.
“전부 몰려오면 어떡해!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계책일 수도 있잖아!”
남궁학이 차갑게 대꾸했다.
“군사가 이쪽으로 가라고 했다.”
걸존은 바로 화를 풀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뇌(無腦)가? 그럼 이러는 게 맞겠지.”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수많은 마인들이 무너진 돌담을 넘어 몰려왔다.
성동격서가 아니라 그 역을 찌른 것이다.
창존이 장창을 곧추세우며 입맛을 다셨다.
“계산이 틀린 건가? 고수 수는 할 만한데 아래 애들 숫자가 딸리는군.”
아니었다.
허청이 천룡단(天龍團)을 이끌고 왔다.
사천당가 대원로 당기철도 식솔들과 함께 오고 있었다.
창존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역시 군사야. 내 이럴 줄 알았지.”
걸존이 비웃었다.
“역시는 무슨. 무뇌에게 일러야지. 앞으로 힘든 곳에만 배치될 거다.”
“자네가 먼저 그래서 지금껏 그 고생을 하고 있지 않나?”
“시끄러워!”
천마신교와 무림맹이 부딪혔다.
어느 누가 유리하다고 할 수 없는 팽팽한 접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상자가 늘어났다.
크게 개의치 않는 천마신교와 달리 무림맹은 부상자들을 틈날 때마다 뒤로 던져 버렸다.
땅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다치는 사람이 속출했으나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후방에서 사람들이 달려와 그들을 챙겼다.
팽수빈과 곤륜파 성(成) 자 배 제자들이었다.
나이를 따질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만큼 무림맹은 치열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팽수빈이 아이들을 지휘했다.
“성오 사형과 성윤 사제는 남궁세가 분을! 성한 사형과 성주 사제는 개방 분을 구하세요!”
소년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부상자들을 날랐다.
그리고 산양이 끌고 온 큰 수레에 실었다.
수레가 부상자들로 꽉 차자 팽수빈이 외쳤다.
“그만 돌아갑니다! 유모! 부탁해요!”
메에에에-
산양이 콧김을 뿜으며 네 다리를 움직였다.
아이들이 수레를 뒤에서 밀고 옆에서 끌었다.
수레바퀴가 빠르게 구르며 수레가 쭉쭉 나아갔다.
콰르르르-
무림맹 무인들과 싸우던 마인들이 분분히 욕설을 지껄이며 암기를 던졌다.
“저것들, 또 저 지랄이야?”
“염병할 꼬마들 같으니! 전부 죽여 버려!”
팽수빈도 소리쳤다.
“철월 아저씨! 장이 소협에게 밥 더 드리라고 말씀드릴게요!”
“철월만 믿어라!”
팽수빈과 함께 왔었으나 이제껏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던 철월이 대월(大鉞)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너무 먼 거리에서 던져 힘을 잃은 암기들이 대월이 일으킨 폭풍에 휘말려 튕겨 나갔다.
팽수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를 흘깃 봤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졌다.
“……!”
불존의 머리 위로 눈처럼 하얀 경장(輕裝)을 입은 사람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곤륜산에서 정마대전(正魔大戰)이 벌어진 이래로 무림맹 무인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인물이었다.
‘폭양마검(曝陽魔劍)!’
마도칠대가문 가주들 중에서 유일하게 참전한 고이륵단가주(庫爾勒段家主) 단가휘.
그의 별호처럼 그의 손에 들린 검이 뜨거운 햇볕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