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511
2부 245화
급보
고이륵단가는 마도칠대가문에 속하는 명가답게 훌륭한 가전무공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속도를 중시하는 검술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현 태상가주 단철후는 섬광마검(閃光魔劍)이라 칭송받을 만큼 쾌검의 달인이었건만 그의 아들이자 가주인 단가휘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타고난 재능에 치열한 수련을 더해 쾌(快)로 환(幻)을 일으켰다.
폭양마검(曝陽魔劍)이라는 별호가 말해주듯, 그가 지금 쏟아낸 뜨거운 햇볕은 쾌검을 연달아 떨쳐 만들어낸 검광들이었다.
불존은 그 장관을 침중한 눈으로 올려다봤다.
금강부동신법(金剛不動身法)을 펼치면 피할 수 있겠으나 그랬다간 주위에 있는 무림맹 무인들이 횡액을 당할 터.
제자리에 굳건히 선 채 내공을 끌어 올렸다.
달마역근경(達魔易筋經)으로 쌓아온 심후한 내공이 용솟음쳤다.
후우우웅-
전신에 힘을 줬다.
안 그래도 우람한 근육이 급격히 부풀어 오르고 승복 이음매를 간신히 붙잡고 있던 실밥들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전부 터져버렸다.
파파파팍-
살계(殺戒)는 이미 활짝 열고 있는 상태.
막대한 내공이 경락(經絡)을 질주했다.
비좁은 승복 안에 갇혀 있던 거대한 육신이 구속에서 벗어나 마음껏 꿈틀거렸다.
불존은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향해 장력을 쏘아 올렸다.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
소림칠십이종절예(少林七十二種絶藝) 중에서 강맹하기로 이름 높은 장법이 단가휘의 폭양(曝陽)과 충돌했다.
콰콰콰콰앙!
‘……!’
불존은 전신이 찌그러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미련하게 버티지 않고 쿵쿵 뒷걸음질 쳐서 해소했다.
단가휘도 마찬가지.
충격을 거스르지 않고 날아오른 뒤 연달아 재주를 넘어 모조리 떨쳐냈다.
그리고 가볍게 착지하여 중얼거렸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군.”
정마대전(正魔大戰)이 시작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불존이 나이가 많은 만큼 지치지 않았을까 기대했는데 아니라는 얘기였다.
불존도 그랬다.
“시주도 대단하시구려.”
그간의 전투들을 통해 아무리 낮게 잡아도 자신보다 반 수는 높다고 판단했었다.
헌데 이순(耳順)을 갓 넘은 단가휘의 내공이 이렇게 깊을 줄이야.
그래도 굴하지 않았다.
불존은 이미 그에게 바짝 다가가 기이하게 구부린 손가락들을 내려찍고 있었다.
소림이 자랑하는 절기 용조수(龍爪手)였다.
쐐애애액-
용의 날카로운 발톱들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단가휘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십존 중 최강이라 할 수 있는 불존을 먼저 없앨 계획이었으나 힘이 여전한 걸 보니 단시간에 해치우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손쉬운 놈부터 숫자를 줄인다.’
미리 정해둔 다른 표적이 있었다.
불존과 맞서 싸우지 않고 긴 휘파람을 불며 날아올랐다.
삐이이익-
혈전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훌쩍 뛰어넘어 고풍스러운 검으로 마인들을 몰아치는 한 도사를 노렸다.
별동대로 활약하며 천마신교에 큰 손해를 끼치고 있는 천룡단(天龍團)의 단주 허청이었다.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불존이 다급히 신형을 날리려 했으나.
단가휘의 휘파람 소리를 들은 마견호법(魔見護法)과 마어호법(魔語護法)이 앞을 가로막았다.
불존은 크게 탄식하며 그들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길(吉)보다 흉(凶)이 많겠구나.’
천마신교 팔대호법(八大護法) 중 셋을 상처 입혔지만, 아직 살아 있는 또 다른 세 명이 굵직굵직한 마인들과 몰려와 정파무림 최고수들의 발을 묶고 있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 폭양마검 단가휘가 홀로 벗어나 활개 치면 어찌 될까.
시간문제일 뿐, 그 결과는 자명했다.
단가휘는 허청의 뒤에서 떨어져 내리며 검을 움직였다.
추광묵검(追光默劍) 제오초 천지일선(天地一線).
한 줄기 빛이 적의 정수리를 향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내리꽂혔다.
허청은 마인들을 연이어 베고 가쁜 숨을 고르다가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암습!’
그것도 엄청난 고수였다.
반사적으로 돌아서며 검을 치켜올렸다.
유룡검(遊龍劍) 제십이초 용요미파(龍搖尾巴).
고풍스러운 검이 몸을 부드럽게 흔들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맞이했다.
콰카카카-
빛이 검신을 세차게 긁으면서 내려오다가 밀려나 허청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서걱-
‘윽!’
다친 건 다친 거고.
허청의 검이 기다렸다는 듯이 검첨(劍尖)을 꼿꼿이 세워 빛의 주인을 노렸다.
용요미파에서 용대기두(龍擡起頭)로 이어지는 깔끔한 연환식이었다.
단가휘가 눈살을 찌푸리며 왼손바닥으로 검면을 후려쳤다.
쩌엉-
‘크윽.’
충격을 받은 검이 부러질 것처럼 크게 휘었다.
허청은 손에서 벗어나려는 검을 힘줘서 달래며 검신이 휘어지는 방향으로 용형보(龍形步)를 펼쳤다.
간발의 차이로 그가 서 있던 자리에 깊은 구덩이가 파이고 단가휘가 내려섰다.
그사이 고풍스러운 검이 탄성에 의해 다시 꼿꼿이 섰다.
허청은 그 모습을 슬쩍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두 눈을 부릅떴다.
검면은 괜찮지만, 검날의 이가 듬성듬성 빠져서 톱날처럼 변한 것 아닌가!
‘감히 내 제자가 준 선물을!’
조금 전의 격돌로 어깨를 다치고 내상까지 입었으나 눈에 보이는 게 있을 리 있나.
노호성을 지르며 단가휘를 치려고 하는데.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뒤에서 담담한 음성과 함께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허청을 비껴가자마자 성난 폭풍이 되어 단가휘를 덮쳤다.
단가휘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갑자기 몰아친 지독한 풍압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일으킨 노도사를 알아봐서였다.
‘덕성(德聖) 운후!’
이미 수차례 만났지만 볼 때마다 어이가 없었다.
이런 고강한 무공을 지닌 무인이라면 검성(劍聖)이라 불려야 마땅하거늘 덕성은 무슨!
지금만 봐도 그렇지, 이 무시무시한 일격에 무슨 덕(德)이 실려 있단 말인가!
단가휘는 쾌검을 연달아 펼쳤다.
눈부신 섬광이 번쩍거리며 성난 폭풍을 조각조각 갈라버렸다.
폭풍은 잔잔한 바람으로 변해 단가휘가 걸친 눈처럼 하얀 경장(輕裝)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운후는 그 광경을 보고 내심 감탄했다.
‘대단한 인재로다. 벌써 저런데 십존의 연배가 되면. 아니, 십 년만 지나도 얼마나 강해질까.’
동시에 뿌듯함도 느꼈다.
단가휘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자신의 사손인 정광에 비할 바는 아니어서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험한 신강에서 악독한 마인들을 상대하느라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있을 사손 생각에 가슴이 납덩이라도 든 것처럼 무거워졌다.
‘소식이 없어 걱정되긴 하나 잘하고 있겠지.’
자신도 사조의 임무를 다해야 했다.
그것은 정광이 돌아올 때까지 곤륜과 정파무림을 지키는 것.
허청에게 손짓해 다른 마인들을 상대하게 하고 단가휘를 치려고 하는데.
단가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소리를 질렀다.
“전투 지휘자로서 명하겠소! 퇴각하시오!”
난데없는 말에 십존과 싸우고 있던 호법들이 반발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요?”
“오늘만큼 깊이 뚫은 적이 없는데 물러나자니!”
“조금만 더 하면 승기가 완전히 넘어올…….”
단가휘가 차갑게 설명했다.
“곤륜 장문인 운적이 나머지 인원을 이끌고 오고 있소! 계책이 완전히 실패했단 말이오!”
그의 말대로였다.
다른 곳들을 방비하고 있던 정파 무인들이 날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호법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무뇌(無腦) 새끼! 뒤를 생각조차 안 하는 건가? 전부 이쪽으로 보낼 줄이야!”
“병기주(兵旗主)는 뭐 하는 거야? 놈보다 항상 한 걸음씩 늦어서 손해를 보잖아!”
평소라면 성질대로 날뛰며 계속 싸우련만.
이 전쟁은 교주가 선포한 성전(聖戰)이었다.
명을 어겼다간 그가 전력을 동원해 가문까지 멸하려 할 터.
아무리 분통이 터져도 어쩔 수 있나.
마인들은 뒤를 방어하며 천천히 물러났다.
정파 무인들은 악착같이 따라붙어 소소한 전과를 올리다가 뒤쪽에서 큰 북소리가 세 번 울리자 추격을 멈췄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걸까?
걸존(乞尊) 윤희구가 땅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삭신이야. 정말 죽는 줄 알았네.”
빈말이 아니었다.
그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남궁학조차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거친 숨결에 미세한 핏방울이 섞여 나왔다.
“후욱. 후욱. 군사가 시기적절하게 신호를 보냈다.”
이렇게 다들 힘겨워하고 있었지만.
창존(槍尊) 악만춘은 달랐다.
꼿꼿이 서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혀를 찼다.
“많이 다쳤구먼. 하긴,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하지. 그간 수고했네.”
“……뭐?”
걸존과 남궁학이 어이없는 얼굴로 창존을 바라봤다.
엇비슷하게 다친 주제에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창존은 한술 더 떠 후방을 향해 외쳤다.
“수빈아! 이 늙은이들 좀 실어 가서 침상에 눕혀주어라! 이젠 전력 외이니라!”
“……!”
걸존과 남궁학이 이런 무시를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리 있나.
난리가 났다.
운후는 살기를 쏟아내며 생사결을 치르려는 그들을 무시하고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무량수불. 쓰러진 이들을 챙깁시다. 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 하지 않겠소.”
한두 번 했던 일이 아닌지라 모두 그의 말에 따랐다.
그리 오래지 않아 얼추 정리가 끝났다.
운후는 부상자들을 응급처치하고 우두커니 서서 시신들을 둘러보고 있는 제자에게 다가갔다.
“괜찮느냐?”
허청이 침울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답했다.
“아닌 것 같습니다. 수없이 되풀이된 일이거늘, 아직도 적응이 안 됩니다.”
“그나마 다행이구나. 적응됐으면 그게 더 큰 문제 아니더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꾸나.”
먼저 떠나 버린 이들을 한곳에 모아 화장했다.
매캐한 연기에 혼백을 싣고 귀천하는 동료들을 올려다보며 열과 성을 다해 축원했다.
허청은 그것마저 끝나자 허리춤에 찬 검을 어루만지며 제자의 무사 귀환을 축원했다.
‘정광아. 이 사부가 부족해서 네가 선물한 귀중한 검을 망가뜨렸구나. 더 좋은 것을 주겠다고 했지? 문서로 남겨서 수결까지 두었고. 녹슨 철검이라도 좋으니 제발 무사히 돌아와 못난 사부에게 안겨다오.’
* * *
천마신교 숙영지에 있는 한 거대한 천막.
그곳에 모인 호법들과 마두(魔頭)들이 한 노인을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둘러싸고 고성을 질렀다.
“병기주! 대체 계책을 어찌 짜는 것이오? 또 무뇌 놈에게 당했잖소!”
“오늘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아오? 내 식솔들이 몇 명이나 죽었는지 아냐고!”
“입이 있으면 말해보래도!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천마신교 행정 조직들인 육기(六旗) 중에서 외적의 침입을 방비하고 전쟁에 관한 제반 사항을 책임지는 병기주가 참다못해 항변했다.
“나라고 할 말이 없는 줄 아시오?”
“무어라?”
“내 누누이 말했잖소! 본교가 강하긴 하나 곤륜산에 모인 위선자들도 약하지 않다고! 더구나 공격보다는 방어가 훨씬 쉽기 마련. 보급 계획은 또 얼마나 뒤틀렸는지 모르시오? 탑극랍마간에 숨어 있는 쥐새끼들이 틈날 때마다 훼방을 놓아 차질이 생긴 지 오래잖소! 청해성주가 사방에 관병을 깔아서 노략질하기도 힘들고! 이런 판국에 계책을 짜내면 군말 없이 따를 것이지. 본당은 저 역할을 하고 싶다, 이 임무는 본가에 너무 손해다, 이런 식으로 쉼 없이 꿍얼대며 초를 쳐서 누더기처럼 기워놓게 한 주제에 어쩌라고!”
마인들은 너무 긴 얘기에 눈을 끔벅거리다가 살기를 일으켰다.
“뭐라 핑계를 대나 싶더니, 우리 탓이라고?”
“말본새하고는! 당장 쳐 죽여서 살점을 씹어줄까?”
마인들이 손을 쓰려는 그때.
묵묵히 듣고 있던 단가휘가 입을 열었다.
“우리 중 제일 뛰어난 두뇌를 죽여서 어쩌려는 것이오? 병기주에게 손을 대는 이는 즉결처분하겠소.”
“……!”
“회의도 전투의 연장. 내 지휘를 따르기 싫은 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시오.”
말뿐만이 아니었다.
단가휘의 전신에서 소름 끼치는 마기가 일렁였다.
마인들은 똥 씹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능력은 인정하나 배알이 꼴렸다.
‘오만방자한 새끼! 네가 우리를 지휘하게 된 게 순전히 능력 때문인 줄 아느냐?’
고이륵단가는 연휘준이 교권을 잡은 후에야 지지를 표명했기에 시간이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단가휘는 곤륜을 치기 위해 차출된 가솔들을 직접 이끌고 왔다.
가주가 참전했다는 명분과 신분을 내세워 식솔들이 화살받이로 쓰이는 일에 투입되지 않도록 보호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마도칠대가문에서 유일하게 성전에 나선 가주이다 보니 연휘준도 체면을 세워줘야 했다.
단가휘를 지휘자로 삼을 수밖에.
많은 마인들이 이렇게 믿었으나 당사자의 생각은 달랐다.
단가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런 오합지졸이 있나. 한심하군.’
정파무림과 너무 비교됐다.
놈들도 장문인이나 가주는 대부분 안 왔지만 그 다음가는 이들은 빠짐없이 모인 데다 십존조차 절반이 넘게 달려왔다.
‘지휘 체계가 확실한데다 보급 또한 풍족하지. 교주는 이 전쟁에서 이길 의지가 있긴 한 걸까.’
머리가 좋은 병기주도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으리라.
단가휘가 봤을 때, 교주는 전쟁을 질질 끄는 것을 원했다.
‘그러다가 우리만으로 이기면 좋고. 애먹고 있으면 본인이 직접 참전해 승리함으로써 위엄을 높이려는 거겠지.’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마인들과 병기주가 다시 입씨름을 시작했다.
“어찌 됐든 간에 그럴듯한 계책을 내놓으라는 말이오! 꼭 놀고 있는 것 같잖소!”
“놀고 있다니! 내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한지 아시오?”
단가휘가 얼굴을 찡그리며 제지하려는 순간.
병기(兵旗) 소속 무인이 천막에 뛰어 들어와 서신을 내밀었다.
“총단에서 전서응(傳書鷹)이 급보를 가져왔습니다.”
단가휘는 말없이 서신을 받아 펼쳤다.
얼마 보지도 않았는데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건! 영이가 쓴 것이구나!’
아비가 아들의 필체를 어찌 모를까?
확실히 단영이 쓴 서신이었다.
내용을 읽어 내려갈수록 단가휘의 두 눈이 커졌다.
‘교주가 죽어? 누, 누가 돌아왔다고? 뭐로 변해서?’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또 다른 서신을 펼치자.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크게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 이 필체는!’
괴발개발 그린 글씨라니.
사람이 어찌 이렇게 쓸 수 있나.
허나 그랬던 사람이 있었다.
‘이건 흉내 낸다고 흉내 낼 수 있는 악필이 아니야! 정말 그분이란 말인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휴. 겨우 다 썼네. 전서응을 통해서 보내.”
“지, 지존. 이건…….”
“왜?”
“……아, 아무도 못 읽을 것 같습니다만. 크윽!”
“네 안목을 탓해야지.”
“죄, 죄송합니다!”
“귀찮지만 할 수 없지. 그대로 읽어줄 테니까 받아 적어서 함께 보내.”
“존명!”
그래, 분명 그랬을 것이다.
과거에 직접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정말 그분답군. 불가능한 게 없으신 건가.’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고 웅성거리던 마인들이 단가휘 주변에 모여 서신을 읽었다.
잠시 후.
천마신교 숙영지에서 엄청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악! 말도 안 돼!”
“천하가…… 천하가 도탄에! 으흐흐흑.”
* * *
섬랑은 정광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천하가 도탄에 빠져서 내려오신 거 맞아요?”
“천신 같은 거 아니라니까.”
“대인께서 그냥 대인이신 건 아는데 살짝 궁금해서요. 진옥룡이라고 불리신 건 맞죠?”
“맞고 갈래, 그냥 갈래?”
“아, 안녕히 계세요!”
섬랑이 줄행랑을 치자 지켜보고 있던 자오가 미소 지었다.
“혼란스럽긴 할 겁니다.”
“저 녀석 사정이죠.”
“이곳을 떠나면 언제 보게 될지 모르는데 작은 친절을 베푸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광이 피식 웃었다.
“자오 입이 근질거려서 그러시는 건 아니고요?”
“하하. 둘 다입니다. 그저 의견을 말씀드린 것뿐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정광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흐음. 겸사겸사 수빈이 얘기까지 해주면 더 열심히 수련하려나. 나중에 둘이 붙으면 재밌겠네.”
“그, 그런 이유로…….”
“어느 정도 격이 맞아야 양측이 평화롭죠. 적당히 부탁해요.”
문밖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섬랑이 희희낙락하며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대인!”
“그럼 수고해.”
“네?”
정광은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아걸었다.
섬랑이 어리둥절해하는데 자오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진옥룡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냐?”
섬랑은 재빨리 자오 맞은편에 앉았다.
“네, 아저씨.”
“가벼운 얘기가 아니다. 똑바로 들어야 한다.”
“물론이죠!”
섬랑은 두 귀를 활짝 열었다.
자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늘의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몇 차례나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