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542
외전 28화
출정식
섬랑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노파에게 감사를 표했다.
“어르신, 잘 먹었어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던 노파가 조심스레 물었다.
“공자의 입맛에 맞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섬랑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맞고말고요. 얼마 전 궁중요리를 먹고 천하에 그만한 감동을 줄 요리는 없을 거라 믿었는데 어르신의 요리는 고향이 생각나는 냉혹한…… 죄송해요, 제 고향은 여느 분들의 곳과 달라서요. 어쨌든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맛이었어요.”
“……!”
노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늘 같은 궁중요리와 비교해 가며 칭찬하다니!
조금 이상한 비유가 섞였으나 평생 들어본 적이 없는 극찬 아닌가?
“노, 농이 심하십니다. 어찌 그런 과찬을.”
“진짠데. 철월이 왜 이 반점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겠어요. 어르신의 요리 솜씨 때문이죠.”
졸지에 예시가 되어버린 당사자가 반박했다.
“철월은 반점에 들러붙은 거머리가 아니라 남양장가(南陽張家)를 지키는 빈객(賓客)이다.”
“어르신, 들으셨죠? 뒷부분은 부정하지 않는 거.”
“누이의 요리는 맛있다. 철월이 보증한다.”
“거봐요. 어르신은 최고예요. 철월만 한 고수를 이십 년 넘게 칼이 아니라 요리로 잡아둘 수 있는 사람은 어르신밖에 없을걸요.”
섬랑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마인들도 거지도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노파가 그들을 둘러보며 눈물을 글썽거리는데 그녀의 아들이 나직이 권했다.
“어머님, 모두 배불리 드셨으니 그만 쉬시지요. 소자는 이분들을 모시고 맹에 다녀오겠습니다.”
“아니다. 아직 모자라실 게야. 어미가 조금만 더 솜씨를 발휘하마.”
섬랑이 거절했다.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해요. 너무 과식하면 집중력이 떨어져 곤란해질 수도 있거든요.”
난데없이 집중력이라니?
노파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몸을 가늘게 떨었다.
흉악한 외모를 보고 편견을 가졌던 게 미안할 만큼 구슬땀을 흘리며 요리를 도운 건실한 사내들이 갑자기 용모에 걸맞는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아닌가?
장이가 놀란 어미를 부드럽게 안고 속삭였다.
“공자가 무인의 마음가짐을 말하자 호위 무인들이 그것을 행하는 것일 뿐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아! 그런 줄도 모르고 이런 추태를. 공자, 죄송합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만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장이가 어서 나가라는 듯 문을 활짝 열었다.
섬랑은 씩 웃으며 걸음을 떼었고 마인들은 칼날 같은 기세를 뿜으며 주인을 호종했다.
장이가 이관휘와 함께 앞장서며 손짓하자 밖에서 부동자세로 대기하고 있던 와룡당(臥龍堂) 무인들이 길을 열어줬다.
와룡당 무인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섬랑에게 꽂혔다.
섬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인들과 길을 걸었다.
마치 오만무도한 호랑이가 사납기 그지없는 늑대들을 이끄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노파는 미친 사람인 줄 알고 동정했던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많이 닮았구나. 정말 은공의 제자인가?’
맞든 아니든.
왠지 이대로 보내긴 아쉬웠다.
“공자! 은공께서 좋아하시던 육포가 있는데 드릴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섬랑의 얼굴이 노파의 코앞에 나타났다.
“아차차. 그 중요한 걸 잊을 뻔했네. 잘 먹을게요, 어르신.”
* * *
장이는 발걸음을 옮기다가 섬랑을 힐끔 돌아보고 눈을 찡그렸다.
‘듣던 것보다 더하군. 마교 소교주답지 않아.’
마인 중의 마인이라 할 수 있는 자가 육포를 우물우물 씹으며 헤실거리는 모습이라니.
은공이 거둔 자이니만큼 무도한 성품은 아닐 거라 믿었으나 곤륜산에서 싸웠던 악독한 마인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이관휘가 장이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눈치채고 전음을 보냈다.
-대협, 선입견을 버리셔야 합니다.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잘되지 않는군. 소문보다 더해. 대체 어떤 자인가?
이관휘는 잠시 생각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잘 보기로 유명한 자네가 모르겠다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별다른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장이는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
-아닐세. 큰 도움이 됐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은공도 종잡을 수 없는 분이셨네. 본인과 닮은 사람을 만나서 거두신 것일 거야.
이관휘의 눈이 경련하는 것처럼 떨렸다.
-걸어 다니는 천재지변이란 말씀 아닙니까? 더 불안해졌습니다.
-처음엔 다 그렇지. 곧 익숙해질 걸세.
-정말 그럴까요?
-솔직히 말하지. 시간이 다소 걸릴 수도 있네.
-……그것참 큰 위로가 되는군요.
이관휘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익숙해지지 않아도 좋으니 나쁜 일만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일세. 말이 나온 김에 확인해 보세나.
-어떻게 말입니까?
방법은 간단했다.
장이는 잠시 걸음을 늦춰서 섬랑과 보조를 맞추며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엔 은공과 성품이 무척 비슷한 것 같소. 소교주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섬랑이 활짝 웃으며 으스댔다.
“이거야 원, 다들 그러시네. 뭐 제가 봐도 똑같아요.”
장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천만다행이오. 이제 안심하고 안내할 수 있게 됐소.”
“하하. 제가 대마두고 무림맹에서 난동이라도 부릴까 봐 걱정하셨어요? 이제라도 안심하셨으니 다행이네요.”
“소교주, 내 말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소.”
장이는 담담히 설명했다.
“그대가 소란을 피우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게 아니오. 그런 일이 있어도 은공께서 항상 그러셨듯이 결국엔 좋은 결과로 끝날 거라 믿는 것이오.”
“오오! 무림맹에도 제 종자기(鍾子期)가 계셨네요.”
섬랑이 크게 기뻐하며 이관휘를 나무랐다.
“어이, 이 소협. 장 대협께서 나를 바로 꿰뚫어 보시는 거 봤지? 좀 배워라, 그래야 앞으로 동냥질도 잘할 거 아냐.”
“……참고하지.”
이관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장이에게 전음으로 따졌다.
-이게 확인하신 겁니까? 어떻게 안심이 됩니까?
-은공께서 일구이언하는 자를 거두실 리 없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어지는군요.
이관휘는 한숨을 쉬다가 얼굴을 굳혔다.
-다른 분들도 우리처럼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무림맹에 들어서자 수많은 정파무인들이 살기를 쏟아내며 섬랑과 마인들을 경계했다.
상황이 이런데 마인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있나.
똑같이 살기로 맞받아쳤다.
자연히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밖에.
시간이 지날수록 인파가 더 몰려들었고 섬랑 일행과 그들을 둘러싼 와룡당 무인들은 더 이상 걸음을 옮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와룡당 무인들을 지휘하는 장이가 앞으로 나서며 모두 물러서라고 외치려는 순간.
섬랑이 감탄했다.
“역시 정파인들은 다르네요. 살의를 품었으면 당장 손을 써야지, 왜 눈치만 보면서 다른 분이 먼저 시작하기를 바라죠?”
“……!”
모두 입을 떡 벌렸다.
아니, 도발도 어느 정도여야지.
팔팔 끓는 물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 아닌가!
정파무인들의 가슴속에서 극심한 분노가 솟구쳐 올라 황당한 마음을 전부 태워 버렸다.
“마인들을 요절내야 하니 와룡당 형제들은 비키시오!”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참을 줄 알았더냐! 나중에 기습을 당했다고 변명하지 말고 어서 병기를 뽑아라!”
마인들은 사양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섬랑이 제지했다.
“남의 잔칫날에 피를 보면 쓰나. 참아.”
“…….”
대체 누가 누구보고 참으라는 건지.
기막혀하는 정파인들 사이에서 한 중늙은이가 소리쳤다.
“참고 있는 건 이쪽이니라! 마인들의 수괴는 당장 사과해라! 불응할 시 나 요지환검(搖之幻劍) 안중이 앞장서서 싸울 것이다!”
섬랑이 그를 바라보며 크게 반가워했다.
“요! 지! 환! 검! 인연을 중요시하고 곡차를 권하시는 그분 맞죠?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계신 상태로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안중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 나를 아는가?”
“물론이죠. 자오 아저씨께서 어찌나 많이 말씀하시던지.”
“다, 다설범협께서 내 얘기를? 나야말로 영광일세.”
“서로 영광이니 좋네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신기해하던 정파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화를 내려 하는데.
한 여인의 차분한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맹주께서 신강에서 온 손님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시비비는 차후에 가리는 것으로 하고 길을 열어 주십시오.”
요지환검 안중이 아름다운 중년 여인을 보고 놀랐다.
“제갈 군사가 왜 이곳에?”
섬랑이 안중에게 감사를 표했다.
“설명해 주셔서 고마워요, 대협. 제갈 군사님, 과거 지봉(知鳳)이라 불리셨던 분 맞으시죠?”
제갈린이 인정했다.
“그렇소.”
“말씀 편하게 하시죠.”
“신강을 대표해서 본맹을 방문한 소교주에게 그럴 순 없소. 이쪽이오, 어서 갑시다.”
섬랑은 어깨를 으쓱하고 제갈린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파인들은 섬랑을 매섭게 노려보면서도 좌우로 갈라져 길을 열어줬다.
섬랑은 일행과 함께 그 길을 통과해 제갈린을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섬랑이 불쑥 말했다.
“듣던 것과 다르네요.”
“무엇이 말이오?”
“무림맹은 지휘체계가 엉성하다고 들었는데 군사님의 한마디에 길이 열려서요.”
“귀교 덕분이오.”
“무슨 말씀이죠?”
제갈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정마대전을 겪고 생긴 변화란 말이지. 이제 이해했소?”
“그대론 안 될 것 같으니 규율이 엄격해졌다는 말씀이네요.”
섬랑은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화난 척하지 마세요. 이 정도로 흥분하실 분이 아니잖아요.”
제갈린의 음성이 원래의 차분한 것으로 돌아갔다.
“자오 대협이 나를 그렇게 평가했소?”
“네. 누군가가 머리채를 휘어잡고 당길 때만 빼면요.”
“……역시 혀가 너무 많으셔. 맹주는 어떻게 평하셨소?”
“농을 좋아하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르시는 분요. 갈수록 듬직해진다고 하셨어요.”
“딱 맞는 표현이오.”
제갈린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나가듯 물었다.
“패검진협(覇劍眞俠)은?”
“명가 출신에 두 발로 걸을 때부터 가전 무공을 체계적으로 익힌 인재요.”
“그게 끝은 아닐 것 같소만.”
섬랑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대인께서 가끔은 말리실 만큼 미친 듯이 수련하는 무공광이라고 하신 게 생각나네요.”
“아까 말했을 텐데. 자오 대협의 혀는 무척 많소.”
섬랑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대인이 인정하는 자질과 대인에게 악착같이 덤비는 투지까지. 쉽게 말해 전부 갖춘 기재라 극찬하셨죠.”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제갈린이 고개를 돌려 섬랑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런 천재와 싸우려고 본맹에 오다니. 소교주는 본인이 패검진협 못지않은 고수라 자신하오?”
섬랑이 뒤통수를 긁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제가 낫죠.”
“…….”
“이런. 눈빛을 보니 눈치가 빠르시네요. 좋아요, 솔직히 말하죠. 제가 훠어얼씬 뛰어난 천재예요.”
“……빨리 갑시다.”
“어? 지금 못 믿으시는 거예요?”
“서두르시오. 맹주께서 기다리고 계시오.”
제갈린은 섬랑 일행을 대연무장으로 안내했다.
그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한쪽에 세워진 높은 단상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곳엔 정파무림의 명숙들이 일렬로 착석해 있었는데 그 중앙에 앉은 사람이 일어나 섬랑을 맞이했다.
“자네가 천마신교 소교주인가?”
“네. 맹주님이세요?”
기골이 장대한 중늙은이가 힘있게 포권했다.
“맹주를 맡고 있는 팽강웅일세. 본맹에 온 걸 환영하네.”
섬랑도 정중히 예를 표했다.
“섬랑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일단 올라오게나.”
“전부 다요?”
“자네만. 함께 온 이들은 옆에 있는 천막을 사용하게.”
배분상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섬랑은 순순히 따랐다.
“너희들,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이 소협, 이따 보자.”
연규서와 단성오를 비롯한 마인들은 사방이 탁 트인 천막으로 가 두 눈을 번들거리며 사방을 경계했다.
이관휘는 개방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다가 다부진 체격의 늙은 거지가 손을 흔들며 반기자 신형을 홱 돌리더니 다른 곳으로 향했다.
섬랑이 의아한 얼굴로 내려다보는데 옆에 앉은 폭삭 늙은 거지가 왜소한 몸을 부르르 떨며 혀를 찼다.
“쯧쯧. 아직도 저렇게 꽁하다니. 크게 되긴 글렀군.”
섬랑도 동의했다.
“이 소협이 좀 그렇죠.”
폭삭 늙은 거지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내 사손을 욕하는 것이냐?”
“어? 그럼 개방 방주세요?”
“그래, 내가 바로 양회다.”
섬랑도 혀를 찼다.
“쯧쯧. 고생이 많으세요.”
“그건 또 무슨 말이냐?”
“후개 되시는 유 대협이 개방에 속가를 차려서 장가를 가겠다고 떼를 쓰니 방주께서 아직도 고생을…….”
“갈!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아니에요?”
“끄응. 됐다.”
“된 게 아닐 텐데요. 이 소협도 계속 거지 노릇을 할 생각은 없다던데요?”
“아니, 이것들이 진짜!”
“그런데 이 소협은 어쩌다 거지가 된 거죠?”
“다 제 놈 복이지.”
“네?”
“제 아비와 작은 인연이 있는 하북분타주 윤우에게 찾아가…… 아까 그놈이 보고 질색한 녀석이 윤우다. 어쨌든 그놈이 무림인이 되고 싶다고,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 방법을 알려달라 떼를 써서 윤우가 큰맘 먹고 한 수 가르쳐줬다.”
“그래서요?”
“본방의 무공을 가르쳤으니 본방이 책임져야지. 마침 자질도 쓸 만하겠다, 정풍이의 제자로 받아들였다.”
섬랑은 입을 떡 벌렸다.
“와아! 순진무구한 어린애한테 그런 사기를 치시다니.”
“사기라니!”
“솔직히 말씀하시죠. 이 소협의 자질이 탐나서 그러셨죠? 하긴, 어떤 기재가 스스로 거지가 되려고 하겠어요.”
“거지가 어때서!”
“쉿. 조용히 해주세요. 행사가 시작되려나 봐요.”
농이 아니었다.
무림맹주 팽강웅이 단상 한가운데로 나아가더니 내공을 끌어 올려 외쳤다.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하오! 의외의 손님이 와 궁금하신 점이 많겠지만 일에는 선후가 있는 법! 지금부터 무혈단 출정식을 시작하겠소! 무혈단은 대연무장으로 들어와 단상에 오르시게!”
“와아아아!”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명, 한 명, 고수가 아닌 자가 없었으나 섬랑의 시선은 선두에 선 아름다운 여인에게 못 박혔다.
여인 역시 마찬가지.
명숙들은 제치고 섬랑만 바라봤다.
그렇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만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