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557
암흑대공전기(暗黑大公傳奇) 13화
계산
정광은 마적(魔笛)을 입가에 댄 뒤 마혼(魔魂)을 개방하며 부드럽게 도발했다.
-아직도 무섭지? 거기에 박혀서 푹 쉬어.
화가 났는지 옥당(玉堂)에서 거칠게 뛰쳐나온 마혼이 정광의 인도에 따라 마적에 들어갔다.
시커먼 마적이 피를 머금은 것처럼 붉게 번들거렸고, 정광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공을 듬뿍 실어 힘껏 불었다.
그러자 마적이 정광의 마혼과 내공을 증폭시켜 토해낸 괴성이 팔방을 휩쓸었다.
끼이이이이이아아아악-
히히힝!
“크윽!”
“아아악!”
질주하던 군마들이 엎어지고 낙마한 기사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지켜보던 휜펠 병사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이 이적을 행한 정광은 인상을 썼다.
‘이놈은 아직도 겁먹은 건가?’
가끔 마라팔곡(魔羅八曲)을 불 때마다 듣기 싫다고 생난리를 치던 역천경이 얌전히 숨죽이고 있는 꼴이라니.
인상을 쓴 채 마적을 허리춤에 찔러 넣는데 에스텔이 다급히 다가와 걱정했다.
“표정이 왜 그래? 괜찮아? 마나가 역류한 거야?”
“아뇨. 피리를 힘껏 불었더니 볼이 아프네요.”
“…….”
에스텔은 흔들리는 눈으로 정광을 쳐다봤다.
그의 말도 안 되는 대답에 근심은 저 멀리 날아가고 조금 전에 받았던 충격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건 뭐였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의 등에 손을 대고 마나를 불어 넣어준 자오 덕분에 다치진 않았으나 정신적 충격은 막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런 악마 같은 소음을…….’
그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
다쳤든 안 다쳤든, 군마도 사람도 두려운 눈으로 정광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살기를 쏟아내는 사람도 있었으니, 드래곤 정벌군 총사령관 바텐베르크가 그랬다.
그는 정광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단상에서 천천히 내려와 추궁했다.
“넌 대체 뭐냐?”
“정광인데요.”
“그딴 껍데기 말고 진정한 정체! 그 어떤 흑마법사도, 마녀도 그런 사악한 괴음을 낼 순 없다! 설마 마족(魔族)이라도 되는 것이냐?”
정광이 이맛살을 좁혔다.
‘마족? 그건 또 뭐야?’
금방 감이 왔다.
‘아. 여기선 마인(魔人)을 그렇게 부르는 건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고개를 끄덕이는데 난리가 났다.
“마, 마족! 마족이다!”
“신화에나 나오는 마족이 지옥에서 올라왔다!”
병사들은 물론이오, 기사들까지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제일 큰 목소리는 휜펠 제국 궁정 수석 마법사 하츠펠트 백작의 것이었다.
“그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이었구나! 지금 드래곤이 일찍 깨어난 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마족에게 감응해서였어!”
아까 수석 마법사에게 들었던 이 황당무계한 얘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물었던 바텐베르크도 두 눈을 부릅떴다.
‘마족, 저놈이 마족이었다니!’
이제야 모든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종잡을 수 없는 성품과 상대의 속을 뒤집어 버리는 요사한 혓바닥, 위대한 휜펠 제국 기사단을 무너뜨리고 병사들을 무릎 꿇린 악독하면서도 신묘한 수법까지.
‘그래, 마족이라면 말이 되지.’
그래도 다른 이들처럼 겁을 집어먹진 않았다.
‘신화는 신화일 뿐, 그깟 마족이 뭐라고. 감히 나를 바보 취급하며 가지고 놀다가 이 중요한 순간에 마성을 드러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자부해 온 자존심에 금이 갔다.
바텐베르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냉정을 되찾았다.
‘이럴 시간이 없어.’
마법진이 결계를 완전히 뚫기까지 십 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그 안에 저 간악한 마족을 멸하고 결계에 난 틈이 다시 메꿔지기 전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드래곤이 온전한 힘을 되찾기 전에 전력을 다해 공격해야 이길 수 있었다.
그가 아무리 오만해도 제국의 수많은 석학들과 마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도출해 낸 결론을 무시할 순 없는 것이다.
“네 이놈!”
바텐베르크는 노성을 지르고 등에 메고 있던 마검 블루우트 프라센다 데이몬을 뽑아 검 끝으로 정광을 겨눴다.
“마족 따위가 인세에 올라와 이런 행패를 부리다니! 대륙 제일의 기사이자…….”
정광이 바텐베르크에게 다가가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긴 호칭을 다 읊을 시간이 어딨어요. 바쁜데 빨리 끝내죠.”
“……검을 뽑아라!”
“됐어요. 검이 상하면 곤란해요.”
“흥. 볼 줄은 아는데 제 목숨 귀한 줄은 모르는군.”
바텐베르크가 코웃음 쳤다.
정광이 블루우트 프라센다 데이몬이 얼마나 예리한 검인지 알아보고 본인의 검을 아끼려고 이러는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물론 정광의 속마음은 달랐다.
‘역시 그 녀석과 닮았다니까.’
검집 속에 있을 땐 은은한 피 냄새만 풍기던 귀여운 녀석이 밖으로 나오니 앞을 막아서는 적은 모조리 베고 피를 삼킬 기세로 마기를 줄기줄기 쏟아내고 있었다.
‘이것도 인연이니 받아야겠지.’
바텐베르크도 그게 좋겠다는 듯 정광에게 쇄도하며 검을 내질렀다.
후우우우웅-
엄청난 마나가 실린 검이 정광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것은 잔상, 바텐베르크는 당황하지 않고 가전 검술이자 그를 대륙제일인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하프트리히트를 펼쳤다.
쉬이이익-
그가 옆으로 회전하며 수평으로 그은 마검이 유령처럼 그의 뒤에서 나타나 주먹을 뻗고 있는 정광을 양단하고 피를 탐하려 했다.
정광은 재빨리 허리를 젖혀 마검을 피하고 한 발을 들어 올려 바텐베르크의 복부를 걷어찼다.
바텐베르크는 피하지 않았다.
카앙-
오히려 풀 플레이트 아머를 믿고 한 걸음 나아가 정광의 발을 튕겨내고, 옆으로 휘둘렀던 팔을 세차게 잡아당겼다.
화아아아-
피를 갈구하는 마검이 장엄한 빛을 뿌리며 균형을 잃은 정광의 상체를 노렸다.
정광은 눈살을 찌푸리고 지면을 박찼다. 간발의 차이로 마검이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고 정광은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바텐베르크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바텐베르크는 급히 검을 회수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광의 손에 불길한 검은 기운이 맺히고 주먹만 한 크기로 뭉쳐지더니 놀라운 속도로 확대됐다.
“하압!”
바텐베르크는 기합을 내지르며 단전에 가득한 정제된 마나를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그것은 비전 마나 운용법인 운히트바힘멜의 경로를 따라 질주해 마검에 담겼다. 바텐베르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대로 쏘아 올렸다.
새까만 마나 덩어리와 새하얀 마나의 빛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앙!
흑과 백이 폭발해 공멸하며 세상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바텐베르크는 막대한 마나가 기화되어 만들어진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살기를 날름거리는 마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사아아- 후웅-
회색 안개가 완전히 갈라지기 전에 정광이 먼저 뚫고 나와 손바닥을 뻗었다. 바텐베르크는 가슴을 마나로 두텁게 보호하며 마검을 계속 내려쳤다.
퍼엉-
콰직-
바텐베르크는 정광의 손바닥에 가슴을 맞아 뒷걸음질 쳤고 정광은 마검을 쥔 바텐베르크의 손에 어깨를 찍혀 상체를 숙였다.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며 번갈아 칭찬했다.
“검술이 아니라 체술이 장기였군.”
“검보다 손이 더 매우시네요.”
“내 아머에 손상을 입히다니 제법이야.”
“어깨가 가려운 건 어떻게 아시고 긁으셨죠?”
바텐베르크가 차디찬 미소를 지으며 선언했다.
“그만 끝내주마.”
격돌이 재개됐다.
바텐베르크는 싸우면 싸울수록 흥이 솟았다.
길고 길었던 외로운 시간이 드디어 끝나고 어울릴 만한 상대를 만난 것이다.
‘이렇게 강한 놈이 일개 마족일 리 없어. 어느 정도 위치에는 오른 놈이야.’
그래서 더 좋았다.
평생 익혀온 모든 기예를 끄집어내 아낌없이 베풀었다. 상대가 힘에 부치는지 멀찍이 물러나자 넘치는 고양감을 견디지 못하고 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 어떤 인간도 어떤 존재도 나를 이길 수는 없다!”
정광이 뚱한 얼굴로 대꾸했다.
“너무 멀리 가시네요. 사람만 꼽아봐도 있는데요.”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외로웠을까. 단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그럼 한 명만 예를 들게요. 이십 년 전쯤에 싸웠던 사람요. 조금이지만 그쪽이 더 나아요.”
“또 헛소리를!”
“말이 나온 김에 비교해 보죠.”
화르르르르르-
정광의 육신에서 무저갱의 암흑보다 어두운 흑염이 솟구쳤다. 그 흑염은 잔혹할 정도로 아름다운 마신(魔神)으로 화해 바텐베르크를 오연히 굽어봤다.
“이, 이건…….”
말을 더 이을 틈이 없었다.
마신이 거대한 발을 들어 올렸다가 크게 내디뎠다.
쿠웅-
“끄흑!”
바텐베르크는 항거할 수 없는 거력에 무릎이 꺾였고 마신은 또 한 걸음 다가왔다.
쿠우웅-
“아악!”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무릎을 꿇은 바텐베르크의 앞에 마신이 깊은 발자국을 새겼다.
콰아아앙-
“크아아악!”
바텐베르크는 손에 쥐고 있던 마검을 놓치고 나동그라져 검붉은 피를 토했다.
“쿨럭. 쿨럭. 크허억.”
마신의 주인이 조용히 다가와 그를 내려다봤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금속인 아다만티움으로 두껍게 도금하고 강화 마법까지 건 바텐베르크의 풀 플레이트 아머가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 있었다.
“비교를 끝내야죠. 남길 말이 있으면 해봐요. 그 사람은 저와 정담도 나누고 감사까지 표한 뒤에 죽었으니까.”
바텐베르크는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다가 더듬더듬 말했다.
“너, 너 같은 강자가 웬만한 마족일 리 없다. 모, 모든 마족 위에서 군림한다는 지옥의 군주…… 아, 암흑대공(暗黑大公)인 것이 확실…… 끄르륵.”
정광은 숨을 거둔 바텐베르크가 남긴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그렇지, 과거 연휘준을 상대했을 때처럼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를 써줬거늘, 그때처럼 한 번 더 짓밟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숨기고 있는 수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괜히 기대했네.’
그래도 결계가 완전히 뚫릴 때까지 지루하게 기다리며 하품하진 않았으니 나쁜 건 아니었다.
‘어디 보자. 좋아, 거의 다 뚫었어.’
정광은 결계에 난 구멍을 확인하고 마혼을 회수했다.
“자오. 갈 준비하죠. 아, 검 좀 챙겨주시고요.”
어느새 다가온 자오가 이미 들고 있던 마검을 등에 메며 태연히 대답했다.
“네, 단주.”
“에스텔도요. 마음의 준비는 다 끝났죠?”
“……!”
그럴 리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에스텔이 굳어버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카락까지 곤두설 정도였다.
그녀는 정광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없던 용기까지 억지로 쥐어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 정광.”
“네.”
“너, 너, 진짜 누구야?”
정광이 피식 웃었다.
“에스텔은요? 설마 하프 엘프나 마녀라고 할 건 아니죠?”
“……!”
에스텔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남들이 그녀를 보듯, 그녀도 정광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믿겠다고 다짐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러는 거야?’
에스텔은 바로 깊이 반성하고 사과했다.
“으으으. 정말 정말 미안해. 믿어, 너는 정광이야.”
“네. 에스텔은 에스텔이고요.”
“그래, 너는 나를 아, 아주 안전하게 하는 정광, 맞지?”
“정말 믿는 거 맞아요?”
정광은 어이없어하다가 뒤를 돌아봤다.
도망갈 생각도 못 하고 주저앉아 있던 정벌군이 에스텔이 그랬던 것처럼 화들짝했다.
그들도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바텐베르크처럼 정광의 정체를 오해하고 있었다.
‘그냥 마족도 아니고 암흑대공일 줄이야!’
‘이제 전부 끝이다! 세상은 오늘부로 멸망한다!’
차라리 폴리모프한 드래곤이 유희를 즐기는 중인 게 낫지, 지옥의 군주가 웬 말인가!
정광은 그들이 무슨 오해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한 사람을 꼭 집어 불렀다.
그리 크게 말한 것도 아닌데 모든 사람의 귀에 똑똑히 박히는 목소리였다.
“국왕 전하.”
안 그래도 희끗희끗하던 머리가 순식간에 더 하얘진 발부에 6세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마, 말씀하시오!”
“계산은 철저히 해야죠. 덕분에 잘 먹고 잘 잤어요. 이 정도면 밥값은 했죠? 안녕히 계세요.”
“…….”
정광의 엉뚱한 말에 발부에 6세뿐만 아니라 정벌군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밥값이라고?
휜펠 제국 정벌군을 단신으로 무너뜨리고, 누구나 대륙제일인이라고 인정하는 바텐베르크 공작을 압살해 버린 게?
정광은 휜펠 제국군에게도 잊지 않고 인사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바텐베르크 공작님이 우리를 납치하려고 한 빚을 갚으러 갈 거라고 황제 폐하께 전해주시고요. 늦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갈 거예요. 개의 잘못은 주인이 감당해야죠.”
“……!”
정광의 말에 담긴 무시무시한 의미에 휜펠 제국군은 경기를 일으키고 프로부뉴군의 얼굴은 환희의 빛으로 물들었다.
밥 좀 얻어먹은 것으로 이 난리를 쳤거늘, 원한은 얼마나 철저하게 계산할까?
“그럼 이만.”
정광은 자오와 에스텔을 이끌고 결계를 관통한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 끝에는 마침내 본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동굴이 있었다.
그리고 입을 떡 벌린 채 지금껏 있었던 일들을 지켜보고 있던 한 노인이 결계의 틈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었다.
정광에게서 개죽음당하는 걸 한번 시도해 보라고 권유받았던 프로부뉴 궁정 마법사 블랑샤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