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ghteous Demon of Kunlun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인지천삼재(人地天三才)
숙소로 돌아간 걸존과 창존은 후인들을 모아놓고 천명했다.
‘곤륜파의 진옥룡에게 내가 깨달은 것을 전하겠다!’
분노한 후인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사문의 비전무공이 아니라 개인적인 깨달음이라 해도 사문에서 익힌 것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 것.
그걸 외인에게 전한다?
누가 좋아하겠는가!
극렬하게 반대하던 후인들은 차라리 자신들에게 전수해 달라 했다.
이번엔 걸존과 창존이 분노했다.
뭐?
평상시 은근히 따돌리고 뭔가 가르치려 해도 슬슬 피하던 놈들이 이제 와서 뭐가 어째?
독존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멋대로인 것으로 명성을 떨치는 그들이었다.
바락바락 악을 써대며 거부했다.
정광에게 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발버둥 치던 후인들은 지쳐갔다.
어느새 밤을 넘어 다음 날 아침이 되어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결국 개방과 산동악가의 수장들이 절충안을 내놨다.
“일단 정광이라는 도사를 만나봐야겠습니다.”
* * *
정광은 손가락 하나를 튕겼다.
손톱 크기의 철환(鐵丸)이 세차게 날아가 후원의 나무에 박혔다.
“하아암.”
정광은 하품을 한 뒤 다른 것을 잡아서 던졌다.
날카로운 비수가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 나무에 박혀 있던 철환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
“아. 지루해.”
기지개를 켠 정광은 손을 대충 휘저었다.
한 치 정도의 길이에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침, 우모침(牛毛針)이었다.
그것들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날았다.
그리고 나무에 박힌 비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꽂혔다.
“흐으음.”
심드렁한 얼굴로 자신이 한 일을 바라보던 정광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나무를 보고 있는 당기황이 있었다.
“이거, 계속해야 해요?”
“…….”
“태상가주님.”
“응? 아! 사, 사부라 부르라 하지 않았더냐.”
“입에서 영 안 나오네요. 근데 이쯤이면 된 거 아닌가요?”
“이, 이쯤이라니!”
정광은 바닥에 놓인 상자들을 가리켰다. 그 속에는 각양각색의 암기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어제부터 암기란 암기는 종류별로 다 던지고 있잖아요.”
“…….”
그냥 던진 것도 아니었다.
정광은 그것들을 평생 익혀온 고수처럼 자유자재로 던져댔다.
당기황은 복잡한 눈빛으로 정광을 바라봤다.
그 어떤 암기도 금세 익숙히 다루는 괴물 아닌가. 대꾸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지. 아무리 잘났다 해도 아직 어린 나이야. 사부로서 제대로 된 과정을 밟게 해야 해.’
당기황은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많은 암기를 다뤄봤으니 말해보거라. 어떤 암기를 주로 삼고 싶으냐?”
“아무거나 상관없는데요.”
“그건 정도가 아니다. 하나를 정해서 제대로 수련해야 해. 비수만 하더라도 수많은 형태와 무게, 무게중심을 가지고 있다. 그 미세한 차이 때문에 적을 죽일 수도, 네가 죽을 수도 있는 게야.”
훌륭한 가르침이었지만 상대는 정광이었다.
“정해봐야 많이 가지고 다니기 힘들잖아요. 쓰고 나면 또 보충해야 하고. 똑같은 걸 어디서 구해요?”
“…….”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쓸게요. 한두 번 던져보면 감 잡히니까 문제없어요.”
다른 이가 이따위 말을 했다면 불호령을 내렸겠지만…….
정광은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놈은 어미 배 속에서부터 암기술을 배운 건가!’
설마 그럴 리가.
그래도 물어봐야 했다.
“암기술을 익힌 적이 있더냐?”
“물론이죠.”
“어미 배…… 흠. 흠. 곤륜에서?”
“네.”
당기황은 머리를 식히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다.
‘곤륜 무공의 폭이 넓다 해도 이건 아니지. 혹 비전의 암기술이 있는 걸까?’
정말 그럴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긴 뭐한데.
그래도 당기황은 물었다.
“그 암기술은 어떤 무공이지?”
“비밀인데요.”
“우리 사이에 비밀이 어딨느냐.”
“태상가주님. 우리가 그 정도로 신뢰를 쌓은 사이는 아니잖아요.”
당기황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이놈아! 내 심득을 네게 전하고 있다! 이 이상의 신뢰가 어디 있어?”
그렇긴 했다.
“으음. 비밀 지켜주실 거죠?”
“그래. 어서 말해보거라. 어서.”
침을 꼴깍 삼키며 집중하는 당기황에게 정광이 말했다.
“이름은 없어요.”
“……없다?”
“네. 토끼나 노루 사냥할 때 뛰기 귀찮아서 익힌 거거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보고 그런 황당한 소리를 믿으란 게냐!”
정광이야말로 황당했다.
전생에 새까맣게 몰려드는 적들을 상대하다 자연히 익히게 되었던 암기술이었다.
그걸 현생에 사냥하면서 다시 익혔기에 그대로 말했건만 의심을 해?
“못 믿기시면 믿지 마세요.”
정광의 표정이 불퉁해지자 당기황이 기겁했다.
“아, 아니다. 믿으마.”
“비밀은 지켜주시고요. 어르신들이 융통성은 있으신 편인데 대놓고 육식하는 건 용서 안 하시거든요.”
“암. 물론이지. 나만 믿거라.”
“근데 깨달음은 언제 가르쳐 주실 거예요?”
쩔쩔매던 당기황이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다. 먼저 암기술을 제대로 익혀야 해.”
“얼마나요?”
“그야…… 후우우.”
당기황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대충 너 정도면 되지.”
“그럼 어서 시작하죠.”
정광은 빨리 끝내고 싶었다.
이곳에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 기색을 눈치챈 당기황은 인상을 찌푸렸다가 억지로 풀었다.
“일단 네가 알아야 할 게 있다. 사람들은 본가를 독과 암기의 가문이라 하나 사실이 아니다. 거기에 신법을 추가해야 해.”
“그렇겠죠.”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
“제대로 된 신법이 있어야 몰래 다가가서 독을 뿌리잖아요.”
“……!”
“암기를 던지고 튀려면 발이 빨라야 하는 게 당연하고요.”
“……그, 그런 저렴한 표현을…….”
당기황은 튀어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참았다.
까놓고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표현은 마음에 안 든다만 비슷하다. 독과 암기를 쓰기 위해선 적과의 거리를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지.”
당기황이 손가락을 하나 꼽았다.
“아이들에게서 네가 독을 어찌 생각하는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얘기 들었다. 그 정도면 독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두 번째 손가락이 접혔다.
“네 사문은 신법으로 이름 높은 곤륜이다. 추구하는 방식은 다르나 신법 역시 더 얘기할 필요가 없어.”
다음은 세 번째 손가락이었다.
“암기의 특성과 사용법도 제대로 알고 펼쳐냈지. 이 세 가지가 갖춰졌으니 내 깨달음을 전해주마.”
당기황은 눈을 지그시 감고 묵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라. 세상에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있으니, 이 셋이 조화를 이뤄야 완전해진다는 말이지.”
“…….”
“하지만 나는 그 순서를 바꿔 인지천삼재(人地天三才)의 이치를 깨달았다.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땅을 일구고 하늘을 열면 그 어떤 적도 능히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당기황은 감았던 눈을 떴다.
그 눈은 별빛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슨 이치인지 짐작이 가느냐?”
정광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설마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독을 풀고 암기를 뿌리라는 말인가요?”
“……!”
“난 또 뭐라고. 에이, 괜히 시간만 버렸네.”
정광이 몸을 돌리려 하자 당기황이 다급히 설명했다.
“그,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사람이 주체가 되어 독으로 땅을 짓고 암기로 하늘을 이루면…….”
“그게 그거잖아요.”
“아니! 절대로 아니야! 셋이 하나로 녹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란 말이다!”
“아.”
“……아?”
정광은 당기황을 보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말라빠진 몸, 주름살 가득한 얼굴, 푸르딩딩한 안색이 평소보다 측은하게 다가왔다.
‘참 말주변 없네.’
사람, 독, 암기가 하나로 녹아야 한다?
그니까 알아듣지 다른 이라면 무슨 헛소리냐며 황당해할 게 분명했다.
“이런 의미죠?”
정광은 상자에 담긴 우모침을 한 움큼, 바닥의 흙을 역시 한 움큼 쥐었다.
그리고 신법을 펼쳐 당기황의 주변을 돌았다.
“땅이요!”
정광이 손에 쥐고 있던 흙을 던졌다. 수많은 알갱이가 허공을 날아 당기황의 몸 주변에 내려앉았다.
“하늘이요!”
이번엔 우모침이었다.
정광의 손에서 벗어나 허공에서 쏟아져 내린 침들이 당기황을 팔방에서 위협했다.
“……이게 무슨 장난질이냐!”
당기황은 버럭 고함을 지르며 양 소매를 휘둘렀다.
소맷자락에서 강한 바람이 일어나 흙먼지와 침들을 튕겨냈다.
아니, 튕겨낼 뻔했다.
“헉!”
헛손질한 당기황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흙먼지와 침들이 기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신법을 펼쳐 달리고 있는 정광의 손짓에 따라.
“……땅?”
정광의 왼손 움직임에 따라 흙먼지가 움직였다.
그것들은 작은 산맥으로 솟구쳐 당기황의 발을 묶었다.
“……하늘?”
정광의 오른손 움직임에 따라 침들이 움직였다.
그것들은 당기황의 팔방을 둘러싼 하늘이 되었다.
독과 암기의 명가 사천당가.
그 위대한 가문의 태상가주가 사람이 만들어낸 하늘과 땅에 갇혀 버린 것이다!
“……하하. 하하하. 으하하하!”
당기황은 대소를 터뜨린 뒤에 외쳤다.
“형태는 제법 잡았구나!”
“하나로 녹일 줄도 아는데요.”
“어디 한번 해보거라!”
당기황은 흥에 겨운 표정으로 양 소매를 떨쳤다.
파아앙!
커다란 북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주변 공기가 미친 듯이 밀려났다.
당연히 흙먼지와 우모침들도 그 기세에 휩쓸려 어지러이 흩어졌다.
“아, 진짜.”
정광은 투덜대며 열심히 발을 놀렸다. 동시에 양손을 휘저어 기이한 형태의 원과 선을 그려냈다.
그러자 무너져 날아가던 산이 평야가 되어 움직였다.
산산이 흩어졌던 하늘이 다시 서로를 향해 모여들었다.
결국 흙먼지로 이루어진 평야와 우모침들로 얽힌 하늘이 당기황을 다시 감싸 안았다.
“좋구나!”
당기황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우모침들을 장력으로 후려쳤다.
“인지천(人地天) 중 천(天)이 무너지고!”
그의 강렬한 독장(毒掌)에 녹아버린 우모침들이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정광은 그에 개의치 않고 흙먼지를 일으켜 하늘을 새로 세웠다.
“오호라! 지(地)마저 갈라지면?”
독장에 흙먼지들이 소멸했다.
하지만 정광은 이미 신법을 펼쳐 당기황의 팔방을 점하고 있었다.
“그렇지! 오직 인(人)만이 외로이 남는데…….”
정광이 내공을 끌어 올리며 화답했다.
“아. 소름 돋아. 이거나 드시죠!”
후우우웅-
그의 주먹이 당기황의 미간을 향했다.
당기황은 앙천광소(仰天狂笑) 하며 장력을 미친 듯이 뻗었다.
“크하하하! 인(人) 자체로 천지(天地)를 이루니, 이는 곧 인지천이 하나요, 인이…… 이잉?”
당기황은 손바닥을 내민 채 굳어버렸다.
정광은 어느새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서서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제자야. 왜 피했느냐?”
“그럼 그 독장을 그냥 맞아요?”
“……음. 그건 좀 아니지.”
당기황은 볼품없는 수염을 꼬다가 빙그레 웃었다.
추레한 외모와 다르게 무척이나 멋진 미소였다.
“덕분에 가슴이 후련해졌다.”
“저는 내공을 너무 많이 써서 답답하네요.”
“녀석. 엄살은.”
피식 웃던 당기황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당가에서 태어나 독과 암기를 벗으로 삼았다. 그게 전부인 줄 알았지.”
“친구 없으세요?”
“……잠시만 조용히 들어주겠느냐? 하지만 전부가 아니더군. 결국에는 사람이야. 천과 지가 없어도 사람만 바로 서면 된다는 걸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
“너라면 이해하겠지? 천과 지가 쓸모없다는 게 아니라 결국엔 쓰는 사람에게 달렸다는 걸. 그 이치를 알고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따라 사람 자체가 천과 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제 말해도 된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싸우면 된다는 말씀이네요. 그럴 만큼 강하다면.”
“……품위 있게 풀어주마. 독이나 암기나 그 용도와 성질을 제대로 이해하면 무엇이 있고 없든 그 묘용을…….”
정광은 당기황의 말을 흘려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듯한데.’
병기는 손의 연장일 뿐이란 말이 있다. 병기마다 가지고 있는 효율성 때문에 그것을 쓰는 것이지, 그 자체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헌데 이 영감은 독과 암기도 마찬가지라 주장하고 있었다.
다른 병기들은 안 그랬지만, 독과 암기만큼은 효율성으로 따지던 정광에겐 꽤 신선한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갖고 있었구나. 이런 게 또 있을까?’
그거야 뭐 언젠가는 알게 될 일.
“저 이제 가도 되죠?”
“……그렇게 사람과 땅과 하늘의 길이 각각 다른 것으로 보이나…… 잠깐. 간다고? 깨달음을 엿봤으면 수련을 해야지!”
“내공이 달려서 안 돼요.”
“……내공만? 다른 건 괜찮고?”
“네.”
“……녀석. 그래, 사내라면 그런 허풍도 칠 줄 알아야지.”
피식거리던 당기황이 정광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의 눈은 평소의 혼탁한 것이 아니라 깊은 호수처럼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너는 곧 올라설 거다. 나 당기황의 제자로서.”
“제자 아닌데.”
“으하하하! 부끄러워하지 말고 가슴을 펴! 천하가 네게 경배할 것이다! 그리고 네 사부인 나를 찬양할 것이다! 십존? 거지새끼와 악가 놈이나 가지라지! 난 더 위의 존재가 될 테니까!”
독존이 야망을 표하든 말든, 정광은 고민에 빠진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움직였더니 배고프네. 주방에 고기가 있으려나?’